초콜릿을 만드는 여인들
카트린느 벨르 지음, 허지은 옮김 / 작가정신 / 2008년 3월
평점 :
절판


최근 재밌는 소설을 많이 읽긴 했지만 눈물을 몇 번이나 흘릴뻔하며 읽는 책은 조금 오랜만이라 더 기뻤다
나는 신앙심이 없는 사람이지만 그래도 이 책 속의 수녀님들은 나에게 너무나 친숙함을 안겨주었다.
처음 권위적이고 신경질적인 안느 수녀를 대하며 거부감을 느끼던 것과는 반대로
나는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두 수녀의 매력에 푹 빠져버렸다.
그녀들이 마약상인으로 오해받아 죽을뻔할땐 나도 얼마나 마음을 졸였던가..
또 위험하고 힘든 여정에도 불구하고 아름다운 콜롬비아의 매력에 빠져 신에게 감사를 드리는 그녀들의 낙천성과 대범함에 나도 얼마나 마음뿌듯했던가..
게다가 드디어 그녀들이 무대 위에서 수백의 거친 사람들 앞에서 노래를 부르고 공연까지 할 때는 정말이지 너무 유쾌해졌다.
그네들이 그녀들이 수녀란걸 알면 얼마나 깜짝 놀랄까...후훗 
  
 

수녀원을 살려라

 
평화롭고 조용한 프랑스 시골의 생 줄리앙 수녀원, 마음씨 착한 수녀들이 행복하게 살아가지만
사실 그녀들에겐 문제가 있다. 비새는 성당 지붕을 수리할 돈도 없을 정도로 심각한 재정난을 겪고 있는 것이다.
다행히 세계 최고의 초콜릿을 뽑는 대회에서 생 줄리앙 수녀원의 초콜릿이 '황금 카카오' 상과 상금을 받으면서
수녀들은 백년전부터 만들던 수녀원의 자랑인 초콜릿을 다시 만들기 위해 그 재료인 카카오를 구하러 콜롬비아로 가게 된다.
바로 이 막중한 임무를 차기원장수녀 내정자인 안느 수녀와 수련수녀 자스민이 맡게 된다.
예기치 못한 사고로 인해 기예메트 수녀 대신 세상에서 도망쳐 수녀가 되겠다고 찾아온 자스민이 떠나게 된 것이다.
여행 첫날부터 삐걱대는 안느와 자스민, 그리고 그녀들을 쫓는 추격자.
과연 그녀들은 무사히 콜롬비아에 도착해 초콜릿의 재료인 카카오를 구해 수녀원을 살릴 수 있을까?
정말이지 그녀들처럼 매일같이 엄청난 사건사고를 겪는다면 나는 너무나 힘들어 좌절했을지도 모르겠다.
오지로 선교활동을 떠나는 것 말고 그 누가 수녀님들이 이런 험난한 여행을 하게 될꺼라고 생각이나 했을까?
나는 정말 이 특이하고 용감한 수녀님들에게 푹 빠져버렸다. 
  
 
산 넘어 산, 끝임없는 시련 뒤, 강해지다.
 
안느 수녀는 차기수녀원장 내정자였다. 그 사실은 누구도 의심하거나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고, 본인 또한 그렇게 생각해왔다.
그래서 그녀는 가끔 황당무계한 상상을 자주 했는데, 이를 비밀로 했다. 차기수녀원장으로서 위엄때문이었다.
 
그녀는 폭풍을 뚫고 전진하는 용감한 선장이나 영혼을 구제하는 중대한 임무를 맡은 무적함대의 함장을 꿈꾸었던 것이다.
때로는 대담한 여전사가 되어 무기를 들고 이리저리 뛰어다니는 장면을 상상하며 흐뭇해하기도 했다. 지상의 악을 무찌르는 현대판 잔 다르크라고나 할까.
- p.54
 
여행을 떠나는 첫날, 안느 수녀는 자신감과 책임감, 그리고 수련수녀를 돌봐야한다는 의무감으로 똘똘 뭉쳐있었다.
하지만 여행이 고달퍼짐에 따라 나약한 모습을 자주 보이고 수련수녀인 자스민에게 잘못을 떠넘기기도 하며, 상상 속에선 용감하던 자신이 현실에선 부끄러운 모습이나 보이는 것에 자책하기도 한다.
하지만 자책은 잠시, 자신과는 다르게 어떤 상황에서든 의연한 모습을 보이는 자스민에게 괜한 트집과 짜증을 부리기 일쑤였다.
안느는 자스민이 그녀의 아름다움과 놀라운 적응력, 어디서든 사람들의 주목을 끄는 점들로 미루어 신을 져버리고 세상의 유혹에 넘어가고말꺼라며 자스민을 자주 다그친다.
하지만 그렇게 계속 혼란스러워하던 안느는 결국 여행중 만난 신부에게 (가짜신부지만 그당시 안느는 이를 몰랐다.) 자스민의 젊음을 질투한 자신의 나약한 성격과 부족한 신앙심에 대해서 고백하고 용서를 구하게 된다.(p.296)
자스민을 다그쳤던 안느의 모습에서 나는 이미 그녀의 마지막 선택이 무엇일지 짐작하게 되었다.
 
자스민은 어떤가. 나는 그녀의 불행한 과거이야기를 들을 때 눈물이 났다. 그녀는 그렇게 고통 속에 세상을 등지고 수녀원을 찾았다.
처음부터 안느수녀보다 콜롬비아에 가는걸 두려워했던 사람은 자스민이었다.
그런 그녀가 험난한 여정을 겪으며 오히려 더 강해졌다. 때론 두려워하는 안느 수녀를 달래주고 기지를 발휘해 위험에서 벗어나기도 한다. 이국적이고 열정적인 콜롬비아의 소소한 모습 곳곳에서 경외심을 느끼고, 그때마다 신에게 감사한다.
 
'오히려 우리를 멀리 보내려 했던 그 남자한테 고마워해야 할지도 모르겠네. 그 덕에 아마존 밀림에도 와보고. 
여긴 정말 멋진 곳이야. 길거리의 멍멍이들조차 사랑스러워. 보고타에서 본 사나운 녀석들하곤 전혀 다르잖아?'
- p.165   
 
그래도 아무리 그녀들이 강하고 낙천적이고 때론 유머러스한 모습까지 보여도 하루도 빠짐없이 고난을 겪는 모습을 지켜보면 역시 마음이 바짝바짝탄다. 
  
 
고난의 끝, 결국 모든 문제의 답은 사랑이다.
 
수녀원에서 콜롬비아로 카카오 열매를 구하러 떠난 수녀는 그들이 처음이 아니다.
그리고 그 여행의 끝에는 백년전 초콜릿을 만드는 비법을 알려준 수녀님에 대한 비밀이 있었다. 또 다른 수녀들에게도 비밀은 있었다.
그리고 이제 그 여행을 함께 한 안느와 자스민에게도 비밀이 생겼다.
온갖 고초를 겪으며 또 그만큼의 감동을 느끼며 콜롬비아에 도착했지만 둘은 같은 문제로 고민하고 그래서 힘들어한다.
육체적 고통보다 더 힘들었던 마음의 고통이었다.
단조롭다고 하면 단조로운 수녀원의 일상보다 생생한 콜롬비아로의 여정 동안 그들은 분명히 변하고 많은걸 느꼈다.
그렇기때문에 그들의 고민은 당연한거였고, 아프지만 행복한 결정을 내려야했다. 그리고 돌아갈 수 없는 다른 선택은 예전의 수녀님들이 그랬듯 비밀로 간직될 것이다.
그들이 선택한 그 대상은 다르지만 그 본질은 분명 사랑이었다. 아마 그녀들은 그 사랑 속에서 진정으로 찾던 무지개를 찾은걸 테지.
 
그녀에게 힘을 준 것은 다름 아닌 사랑이었다.
'사랑이 없으면 나는 아무것도 아니리.'
 - p.214 
  
 
끝, 또 다른 시작
 
수녀원에 다시 돌아온 안느 수녀는 생각했다.
 
'이제 다 끝났어. 모험도, 말 타기도, 그리고 위험했던 순간들도.' - p.383
 
나도 점점 얇아져가는 책의 두께만큼 곧 이 매력적인 수녀들과 헤어지게 되는 것이 아쉬웠다.
몇번이나 그녀들 때문에 울고 웃었는데...
하지만 곧 안느와 자스민은 새로운 시작을 맞이하게 된다.
그 새로운 시작은 또 얼마나 흥미로운 모험들로 가득차게 될까.
책장을 덮으며 괜히 내가 더 두근두근거렸다.
 
지금 인생이 힘들고 모든게 끝났다고 생각할 때 이 책을 읽으며 끝없는 고난을 겪었던 두 수녀를 기억해보자.
그리고 다음 원장 수녀님의 말씀을 새겨둔다면 더 도움이 될 것 같다.
 
행복의 무지개는 여러분들이 하느님께 드리는 모든 것을 색으로 나타낸, 뭐라고 할까요. 일종의 팔레트 같은 것입니다.
하느님이 여러분에게 되돌려주시는 것이지요. 좋은 마음뿐 아니라 견디기 힘든 것들까지. 하지만 무지개는 항상 아름답고 늘 영롱하게 빛나지 않습니까? 비바람이 지나간 후에는 언제나 무지개가 나타나기 마련입니다. 그것을 열심히 찾아보세요.
- p.65~66
 
우리의 앞날에 행운이 함께하길 부에나 수에르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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