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탓이야 탐정 하무라 아키라 시리즈 1
와카타케 나나미 지음, 권영주 옮김 / 북폴리오 / 2008년 3월
평점 :
절판


그러니까 나는 이 책을 다른 책에 비해 꽤 오랫동안 안고다녔다. 재미가 없어서? 아니 그 반대다. 너무 아껴서 읽을 부분이 점점 줄어드는게 안타까웠다고 할까. 책 사이즈도 앙증맞고 캐릭터도 귀여운데다 내가 좋아하는 부드러운 소프트커버, 책 자체도 너무 이쁘지만 책 속 이야기도 딱 내 스타일이었다. 정말이지 미스터리나 단편을 좋아하지 않는 분이라면 몰라도 대부분 나처럼 이 책을 좋아하리라 생각한다. 

읽다보면 아쉬워서 짧게 느껴지는건지, 아무튼 특히나 짧게 느껴지는 단편 8편이 들어있다. 고바야시 슌타로 경위와 하무라 아키라가 이야기 한편씩 번갈아가며 주인공으로 나와 사건을 해결하다가 마지막엔 둘이 함께 만나고 있는 구성이다. 사건이 일어나고 혹은 계획하고 그리고 주인공 등장, 정말이지 금세 사건이 해결된다. 어떤 편은 주인공이 너무 조금 나와서 섭섭하기도 할만큼. 복잡한 트릭을 발견해 내는데 걸리는 시간과 희생자들의 삶과 주변인들과의 복잡한 관계에 대한 설명은 단숨에 건너뛰는 시간절약, 그리고 주제의 명료한 전달, 이것이 "네 탓이야" 이 책의 큰 장점이다.

이 책의 주제, 그건 바로 사소한 말과 행동이 불러오는 가까운 이웃의 악의 다. 사소한 실수가 불러오는 이런 악의가 복잡한 트릭이나 알 수 없는 미지의 살인자보다 더 무서울 수도 있는 이유는 내 주위에 일상에서 실제로 일어날 가능성이 훨씬 많기 때문이다. 더 두려운건 나의 어떤 행동으로 이웃이 분노하는가? 이를 잘 알 수 없다는거. 이 책속에서는 단지 사과를 하지 않아서, 불안감 때문에, 자만심이나 멍청한 오해때문에 혹은 약간의 돈 때문에 살인을 저지른다.

요즘 세상에 다른 사람을 죽음으로 몰아넣는 일은 간단하다. 마음의 독기를 쐬게 하면 된다고요. 새로운 방식의 저주다, 게다가 자기가 저주하는 게 아니라 생판 남이 대신 저주해 준다고요. 술에 취해 있었다고는 하지만, 그 사람...... (중략) 아버지한테 전화 서비스 일을 소개해 준 사람이었어요. (중략) 냉정함은 내 유일한 장점이지만, 이런 이야기를 듣고 침착할 수는 없었다. 공중전화 부스로 뛰어들어 일을 소개해 준 친구 집에 전화를 걸었다. (중략) 대체 뭐라고 묻나. 너 내가 죽기를 바라는구나? - p.91

자살한 영감에 관해서 추궁했더니 이 여자가 실토하더군. 바에 오는 손님이나 친구가 친해지면 다들 그런 말을 한다고. 그 녀석만 없으면, 그 녀석만 존재 안 하면. 죽이고 싶은 건 아니지만, 그래도 없어져준다면 좋겠다고. 눈엣가시라든지, 성가셔 죽겠다든지, - p.99 <당나귀 구덩이 中>

나도 누군가 내 눈앞에서 사라졌으면 하는 사람이 있었던가? 아니면 혹시 누군가 나에게 이런 악의를 품고 있지는 않을까? 조금 걱정도 되었다.

"제 아내 리리는 제멋대로고 이기적인 여자였습니다. 누구한테나 사랑받았다고 하면 거짓말일 겁니다. 적도 있었습니다. 그렇죠, 죽어주면 좋겠다고 생각한 사람도 어쩌면 있었을지 모릅니다. 저도 가끔씩 리리의 변덕에 휘둘려서 적당히 좀 하라고 생각하던 사람 중 하나입니다. 그 점을 고려해도, 그래도 아내는 살해까지 당할 그런 여자는 아니었습니다. - p. 187 <프레젠트 中>

프레젠트 편에서 살해당한 리리는 바로 우리 모두다. 우리 모두 적당히 이기적이고 누군가에게 사랑받고 누군가에게 미움받는다. 그 미움이 살인의 적의로까지 가지 않기만을 바랄 뿐이다.

이 책에서 그나마 마음에 드는 살인의 이유를 가진 살인자 이야기는 4번째 이야기 살인공작이었다. 단순히 직접적이지 않은 살인이라는 점 때문이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자신때문이 아닌 누군가를 위한 복수에는 누구나 조금은 너그러워지게 되서 그런게 아닌가 싶다. 아이러니하게도 가장 이해받을 수 있는 이유이기에 그런면에서 누구나 쉽게 이 이유를 내새워 살인을 저지를 수도 있다. 그리고 책 속에서 아직 단 하나, 프레젠트 편은 살인의 동기를 모르겠다. 어쩌면 이번 편에서는 동기는 중요하지 않은지도 모르겠지만... 사건을 밝혀내는 과정이 아주 약간 복잡했는데 일본어 원서 표지 제목은 바로 이 '프레젠트' 였다고 한다. 그걸 한국에서는 편집하며 제목을 네탓이야 편으로 바꾼것 같은데 사실, 미스터리 제목으로는 프레젠트 보다야 지금이 훨씬 낫다.

책을 다 읽어서 정말이지 너무 아쉽다. 지난번 책 <나의 미스터리한 일상> 도 재밌었는데..
한가지 다행인 것은 앞으로도 하무라 아키라를 다음 책에서 만날 수 있다는 점이다. 고바야시 슌타로 경위도 나왔으면 좋겠다. 아키라씨 말처럼 살인사건의 범인을 잡는 일은 어쨌든 경찰이 해야한다고 했으니 나올 가능성이 더 많다고 내맘대로 믿고 있다.

다음 책이 정말 기다려진다.
와카타게 나나미에게는 일상의 사소한 일을 특별하게 만드는 비범한 재주와 신비한 능력이 있는것 같다. 아니면 지금 사는 현재, 소소한 일상들을 너무나 사랑하든가... 난 그녀를 너무 좋아하게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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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이든 대답해주는 질문상자
다니카와 슌타로 지음, 양억관 옮김 / 이레 / 2008년 3월
평점 :
절판


저자 다니카와 슌타로 씨 이력을 보다가 내가 좋아하는 애니 "하울의 움직이는 성" 엔딩곡인 "세계의약속" 이라는 곡을 작곡하셨다고 해서 노래를 찾아 들어보았다. 연주되는 악기가 매우 단순해서 여성분 목소리가 잘 들렸는데 뭐랄까 무언가 웅장하면서 편안한 느낌이었다. 4월의 봄의 들판이 생각나는... 하울의 세계 속 성이 걸어다니던 그 들판... 영원한 약속, 추억... 역시 시인답게 가사는 매우 시적이었다.
 
그러니까 이 책은 뭐랄까 심심하거나 일을 끝마치고 집으로 돌아갈때 아무데나 펼치고 읽기 시작해도 되는 그런 책이다.
온갖 연령대의 사람들이 정말 희한한 질문부터 철학적인 질문까지.. 정말 어떻게 저런 질문을 생각했지? 하는 질문부터 무슨 질문이 이래? 하고 생각되는 질문도 있다. 이 모든 어찌보면 굉장히 곤란한 질문에 다니카와 씨는 대부분은 굉장히 시적으로 혹은 개인적으로 혹은 적당한 유머로 멋진 답변을 해주지만 한두개는 좀 이상한 답변도 있었다.
두서없이 어떻게든 내 관심을 끌었던 질문과 답변을 골라보았다.
 
질문01. 자동차,비행기 말고 미래엔 어떤 걸 타게 될까요? 라는 질문에
구름을 타는 것도 좋고, 바람을 타는 것도 좋고, 소리를 타는 것도 좋고, 기분에 올라타는 것도 좋을 것 같아요.(p.15) 나
질문25. 러시아워 통근,통학 시간을 어떻게 보내면 좋을까요? (p.72) 라는 질문에 대한 답은 매우 시적이다.
 
내가 가장 마음에 들었던 대답들은
질문03. 대부분의 생명체가 좌우대칭인 이유는? 
질문30. 혼자노는게 좋은데 왜 선생님은 자꾸 친구들과 놀라고 하는지 알수 없는 4살 유의 질문
질문52. 잠을 잘 때 꾸는 꿈과 꿈이 이루어진다고 할 때의 꿈이 왜 같은 한자냐고 물은 질문에 대한 답변이었다. 셋 다 정말 진지하게 납득이 갈만하게 답을 생각해 말해주는 그 과정이 참 좋았다. 
단 한마디로 깔끔하게 답변을 준 질문63. 우주인이 정말로 있을까요? 의 그 명쾌한 답변이라니...쿡
 
그러나 질문07. 왜 좋아하는 마음은 없어질까요? 에 대한 대답으로 인간은 무리를 지어 사는 동물이기에 다른 존재를 필요로 합니다. (중략) 다른 사람을 좋아하는 본연의 심성 속에 인간 사회의 기본 구조가 있을 것입니다. 사랑에는 우정도 동료애도 포함되어 있으니까요. (p.27) 질문에 대한 대답으로 적당하지 않아보인다.
 
꿈을 이어서 꾸는 방법? (p.103) 이건 나도 좀 도전해봐야겠다. 5세 수준에 맞춘 대답이긴 하지만 2번째 방법은 그나마 실행가능성이 보인다. 적당주의에 대한 반성적 질문에 대한 대답 중 '아무래도 좋아!' 라는 말 대신에 '일단 휴식!' 을 권해주신 것도 참 좋았다. (p.131) 그리고 다니카와 씨가 개인적으로 절대 거짓말로 답하는 질문이란게 "애인있어요?" 라니... 묘한 공통점 발견! 나 또한 애매모호 비슷하게 항상 "비밀!" 이라고 답하니까.
 
나는 이 공통점이 없어 보이는 질문들을 크게 5개 (마지막은 하나니까 빼고) 부분으로 나누어 엮을 수 있었다는 것도 신기했다.
그리고 마지막에 작가의 말이 있었는데 그 글 제목이 "이웃의 마음을 이해하길 바라며" 였다.
최근 연속해서 읽는 책들에서 자꾸 비슷한 점을 발견하는데 이번에도 그래서 좀 신기했다.
이 책 바로 전에 읽은 책이 와카타케 나나미 씨의 "네탓이야" 라는 책이었는데, 그 책은 사소한 행동이나 말이 불러오는 이웃의 악의에 대한 미스터리 책이었다. 그런데 그 다음에 읽은 책의 저자가 "이웃의 마음을 이해해달라니.." 이것도 찬 신기한 우연이라면 우연일 것이다.
 
그리고 나는 책 중간중간 나온 그림이 굉장히 맘에 들었다. 아기자기한게 귀엽고 따뜻한 느낌이었는데 다니카와 씨 처럼 계속 연재되는 싸이트가 나와있어서 다음그림도 기대된다. 다음에 다니카와 씨가 질문상자2를 또 같이 내셨으면 좋겠다. 지금도 계속 질문을 받고 계시다니까 말이다. 언젠가 나도 뭔가 재미있으면서 철학적인 질문을 던져보고 싶다. 후훗.
그때까지 기다려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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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득의 달인 - 적의 마음도 사로잡은 25인의 설득 기술!
한창욱 지음 / 눈과마음(스쿨타운) / 2008년 3월
평점 :
품절


설득
설득을 통해 누군가와 협상을 할 때는 나에게만 유리한 것이 아니라 상대방도 어느 정도 만족하면서 내가 원하는 지접까지 타협을 했을 때 비로소 뛰어난 설득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책은 무조건 "누군가를 어떻게 설득하라" 라는 원리만을 나열한 책이 아니라 역사속 25명의 뛰어난 설득의 달인을 소개하고 그들의 훌륭한 설득의 방법을 분석해 설득의 방법을 설명 또는 반복해 알려주고 있다.
일단, 이 책이 알려주는 설득의 방법을 이 책에서 설명하는 논리 중 하나로 설명하자면 아마도 '전문가의 권위' 를 이용한 공감대 형성일 것이다.
우리가 익히 알고있는 유명한 사람들의 이야기들이라 재미도 있고 이해도 쉽고, 몰랐던 의미까지 깨닫게 해주는 유익한 책이었으니 말이다.
 
우선 설득에 들어가기 전, 상대를 설득하기 위한 적임자를 고르는 순서에 대한 방법 다섯가지도 나와있는데, 설득의 적임자가 중요한 이유는 머리글의 정몽주의 안타까운 죽음에 대한 이야기로도 충분히 알 수 있고, 또 책 속 여불위가 화양부인을 성공적으로 설득했던 일화를 보아도 알 수 있다.
 
첫째, 상대가 호감을 갖는 사람인가?
둘째, 친분이 있는가?
셋째, 상대와 비슷한 성향을 지니고 있는가?
넷째, 설득에 성공함으로써 이득을 얻을 수 있는 사람인가?
다섯째, 말을 잘 하는가?

 
그렇다면 누구를 누구로 설득할 것인가를 정했다면 이제 우리는 과연 어떻게 설득을 해야하는가?
그건 크게 다섯가지의 법칙과 기본적인 몇 가지 원리로 설명할 수 있다.
 
일단 가장 기본적인 원칙 몇 가지를 이야기 하자면
상대의 마음을 읽어라. 상대가 진심으로 원하는 것을 알지 못하면 설득의 기본 자세가 되어있지 않은 것이다.
또한 무턱대고 설득을 하겠다고 상대방에게만 맞춘다면 진정한 설득을 이뤄냈다고 할 수 없다. 모름지기 진정한 설득이란 상대방이 원하는 타협점에 맞추면서도 자신이 원하는 타협점까지 이끌어내야 하는 것이다. (p.10)
이 중 제일 중요한건 "진실을 바탕으로 한 신뢰" 인데 이는 타인이 나를 믿는만큼 내가 나를 믿는 것도 해당이 된다. (p.45)
이 책 112 page 에는 신뢰를 높이는 7가지 방법 또한 나와있다.
 
설득의 달인이 되기 위해선 알리처럼 스스로를 설득할 줄 알아야 한다. 스스로의 신념이 확고해야 상대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다. 자기 자신도 확신하지 못하면서 상대를 설득한다는 것은 설령 설득에 성공한다고 해도 부끄러운 일이다. - p.30~31
 
'나를 믿는다' 하니까 생각나는 일이 있는데 오래전 동생과 전화 아르바이트를 한 적이 있었다. 전화를 걸어서 카드할인혜택을 설명해주고 카드에 가입하게끔 하는 아르바이트였는데 낮에 전화를 걸다보니 보통은 나이많으신 분들이 전화를 받았었다. 확률이 그렇다고 매우 높은 편은 아니었지만 대개 노인분들은 이야기를 잘 들어주고 가입도 잘 해주시는 편이었다. 다만 그 할인혜택이라는 것이 유명콘도 할인혜택이었는데 노인분들이 그런 곳을 몇 번이나 실제로 이용하실지 의문이었다. 게다가 카드 가입비도 꽤 높은 편으로 기억한다. 전화를 걸 때마다 나는 왠지 누군갈 속이는 기분에 매우 찝찝했고 결국 동생과 난 일주일 후 일을 그만두었다. 누군갈 설득해야 했던 일이었는데 나조차 믿을 수 없는 일이었기에 계속 설득을 시도할 수 없었던 것이다.
 
이 기본을 이해했다면 책 속 25명을 통해 저자가 알려주는 설득의 5가지 법칙도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일관성의 법칙 행동과 생각의 일치
상호성의 법칙 상대방에게 친절히 무언갈 받은만큼 베풀어야 한다는 강박감
사회적 인정의 법칙 '다수의 행동이 옳다'는 인식
희귀성의 법칙 몇 개 남지 않은 물건은 꼭 소장하고픈 욕망
호감의 법칙 호감을 갖고 있는 사람의 부탁은 거절하기 힘들어하는 성향
각 법칙의 설명은 책 뒤에도 잘 요약되어 정리되어 있어서 이해하기 쉽다.
 
책 속 달인들은 이런 법칙을 하나 혹은 두 개 이상씩 적절히 혼합하여 사용했는데 그 중 내가 가장 마음에 들었던 이야기는 슈퍼맨이었던 크리스토퍼 리브의 아내의 이야기와 ("아직도 당신은 그대로예요. 난 당신을 변함없이 사랑해요" - p.35) 암 환자를 위한 기금을 모으기 위해 의족을 한 채 달리기를 했던 테리 폭스의 이야기 (p.101) 였다. 특히 테리 폭스의 이야기는 여러 설득의 법칙들이 혼합되어 있었는데 우선 일관성의 법칙을 비롯해서 나머지 법칙들의 변형인 '전문가의 권위', '유대감의 법칙', '호감의 법칙' 등등이다.
 
그리고 이 책 중간중간에는 한비의 한비자 <세난> 편의 인용이 자주 보이는데 그런 고대때부터 내려오는 설득의 법칙을 이제야 알게 되다니, 아니 이미 많이 접하고는 있었지만 이렇게 일목요연하게 접한건 처음이라 평소 책을 더 많이 읽을 껄 하는 반성도 약간 들었다.
 
오랜만에 읽은 자기계발서였는데 아주 재미있었다.
그런데 이 글이 이 책의 재미를 당신에게 잘 설득하고 있는가?
그렇다고 믿는다.
일단 책 속 25명을 한번 만나보면 분명 호감을 느끼게 될 것이다. 그리고 설득의 법칙을 직접 실험해 보고 싶어질 것이다.
나도 그러니까.
 
 
 
* 오타
포숙아가 관중 (x) 을 모셔야 한다. -> 소백 (o)
- p.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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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 부패사건에 휘말리다 - 조말생 뇌물사건의 재구성
서정민 지음 / 살림 / 2008년 3월
평점 :
절판


세종은 조선왕조를 통틀어 가장 성군으로 총애받는 성왕 중의 한명이다.
그런 그와 부패사건이라니, 어쩐지 조금은 어울리지 않는 조합이다.
 
읽어보니 처음에는 계속 죄인을 비호하는 듯한 세종의 태도가 이해되지 않았는데 역시 비범한 사람은 평범한 사람보다 몇 수 앞서 본다고 했던가, 근 15년간 끈질기에 화두되었던 조말생의 사건을 통해 조선의 법치주의와 세종의 실리주의에 대해 크게 깨닫게 되는 시간이 되어 좋았다.
 
게다가 이 책을 쓰신 분이 검사로 재직 중인 분이시고 조선의 여러 법 제도와 시행의 묘사를 현재의 모습으로 표현한 부분이 많았는데 생각보다 이런 표현들이 법률에 문외한인 나로서도 그다지 어렵지 않았고 오히려 드라마에서 고신하는 모습만 보던 것 보다는 전문성을 띠어서 수긍하기가 쉬웠다.
현대적 표현이라는 건 예를 들어 이런 식이다.
 
당시 김도련은 지방에서 수없이 많은 노비소송을 제기하거나 당하면서도 패소하지 아니하는 막강한 로비스트였다. - p.23
 
조말생은 두 차례에 걸친 왕자의 난을 걸쳐 왕이 된 태종 이방원으로서는 왕권 안정에 저해가 되는 세력을 견제하고 왕권확립을 이루기 위해서 꼭 필요한 젊은 인재였다. 따라서 태종은 조말생에게 각 분야의 실무를 두루 경험하게 하고 급속승진을 거듭케 하였다. 또한 후에 세자인 양녕대군을 폐위하고 셋째인 충녕대군에게 생전양위를 물려줄때도 당신은 군사업무만을 돌보며 왕권을 강화할때도 조말생을 병조판서로 두어 함께 했으며, 조말생과의 사적인 자리에선 양녕대군의 폐위로 고심하며 눈물까지 흘릴 정도로 그를 신뢰했다.
(p.18~19)
이렇게 신뢰받고 고위간직에 있던 신하라면 응당 왕에게 충심을 바치고 정사를 돌봐야할진데, 그런 조말생이 엄청난 비리를 저질렀다는 상서문이 세종8년에 올라오게 되고, 드디어 엄청나게 뇌물을 받은 사실이 드러난다. 이후 이런 조말생에 대한 형 집행과, 사면, 직첩을 돌려주는 문제와 다시 관직을 받고 이후 그의 두 아들에 대한 문제까지 근 15년간 조말생에 대한 문제로 세종과 신하들은 대립하게 된다.
 
저자는 조선 역사상 가장 큰 비리의 대명사로 손꼽히는 조말생의 부패사건을 6단계로 나누어 분석하는데 이를 위해 수많은 자료를 참고하였으며, 세종, 사헌부, 조말생, 당시 사회상 등 각각의 주장과 이에 대한 반박, 현대적 해석 등 광범위하게 객관적으로 논리를 펼치고 있으며, 특히 세종대왕의 주장에도 잘못한 부분이 있으면 그에 대해서도 사실적으로 전하고 있다. 어느 한쪽의 입장에만 치우쳐있지 않기에 더욱 공감이 가는 것이다.
사실 이는 세종대왕의 실리주의와 법치주의의 이념이 올곧아 그렇기도 하다. 그렇기에 비록 조말생이 죄를 용서받고 관직에도 복귀하여 공을 세웠으나 후대에는 길이길이 부패의 대명사로 낙인을 찍혔을테지. 세종의 업적을 더욱 돋보이게 하는 저자의 논리와 표현력이 멋진 책이다.
 
끊임없는 대신들의 반박에도 자신의 주장을 굽히지 않고 신념을 지킨 세종대왕이 참으로 대단해 보였다. 특히 그렇게 온당한 토론을 통해 법을 중시하는 기틀을 마련한 점도. 그저 비난이 아닌 정당한 비판을 통해 사건을 해결하고 통합해 나가는 세종대왕의 이 자세가 바로 우리 시대에서 배워야 할 자세이다. 
 
나는 특히 사람의 목숨을 빼앗는 사형은 극도로 신중하여야 한다 (p.74) 와 유능한 인재는 전과를 구실로 발목을 잡아서는 안된다 (p.225) 는 (아비의 죄로 자식의 등용까지 거부해서는 안된다) 세종대왕의 실리주의가 마음에 든다.
 
저자가 말하는 '정치혐오증' 을 나도 가지고 있다. 매일 뉴스에서 싸우기만 하는 그네들과 선거기간 동안 서로를 깎아내리기에만 급급하던 모습을 보면 '상생' 운운하는 게 우스울 지경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 나라에 사는 국민이기 때문에 보이지 않는 희망 속에서도 희망을 찾는 기대를 저버릴 수 없는 것이다. 저자의 말대로 시대와 문화만 바뀌었을 뿐 인간이 살아가는 세상에는 근본적으로 큰 차이가 없다. 불완전한 인간이 만들었기에 불완전한 법을 그나마 끊임없는 시행착오 끝에 다듬어나가는 노력이 끊이지 않는 것처럼 이 책을 통해 무언가 깨닫고 배우는 사람이 많아져 조금씩 조금씩 이 사회가 바뀌어 나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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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티 잡
크리스토퍼 무어 지음, 황소연 옮김 / 민음사 / 200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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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좋아하는 만화책 중에 <블리치> 라는 만화가 있다. 이치고라는 평범한 고등학생이 어느날 갑자기 사신을 만나 그녀의 힘을 흡수하고 그녀가 나을때까지 사신대행업무(착한영혼인도, 나쁜영혼정화 등)를 하게 되어 겪게 되는 성장만화다.
더티잡도 이와 약간 유사한 내용을 담고 있다.
 
딸을 낳고 잠시후 죽어버린 아내의 병실에서 주인공 찰리는 웬 남자와 마주치게 된다. 매우 당황하는 남자, 그리고 곧 이어 알게된 사실 하나, 찰리 말고는 아무도 그 남자를 볼 수 없었다는 것. 혼란스런 맘에 딸을 데리고 퇴원한 찰리에게는 계속 이상한 일들이 일어난다.
찰리가 운영하는 중고품 가게의 물건 중 몇 개가 붉게 빛나질 않나, 처음 보는 남자의 이름이 그저 머릿속에 떠오르질 않나, 하수구에서 검은 손이 튀어나오고, 큰 까마귀가 덤벼드는 등 이상한 일들을 겪게 된다.
 
아무도 볼 수 없었던 찰리에게만 보였던 그 남자가 사실은 자칭 '죽음의 상인' 으로 영혼이 든 물건을 찾아내고 보관하다가 영혼이 없는 필요한 사람들에게 그 물건을 판매하는 일을 하고 있었고, 찰리가 아무에게도 보이지 않는 남자를 본 순간, 찰리도 '죽음의 상인' 이 된 것이었다. 저자는 이걸 더러운 일이라 하여 '더티 잡' 이라 말하고 (반어적 표현이다) 나는 이걸 색다른 모험이라고 말하고 싶다.
 
사실 찰리가 영문도 모른채 죽음의 상인이 된 이유는 중간에 찰리에게 모든 것을 설명해 줄 책을 슬쩍한 릴리 라는 종업원 때문이었다.
그녀는 평소 동경하던 특별한 일이 평범하고 한심하게 생각했던 찰리 사장님에게 일어난 것을 처음에는 시기했다.
 
"어떻게 이상해요? 쿨하고 섬뜩하게 이상한가요? 아니면 아저씨는 찰리 애셔인데 대부분의 시간을 찰리 애셔답게 보내지 못해서인가요?" - p.93 
 
사실 내가 이 이야길 색다른 모험이라고 칭하는 이유는 힘 있고 능력있는 알파 남성이 아닌 힘 없고 보잘것없는 지극히 평범한 베타 남성인 찰리의 유일한 행운이었던 아내가 죽던 날, 색다른 직업을 갖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건 릴리가 생각하기에도 평범한 찰리에게는 도무지 어울리지 않는 일이었다.
 
그런데 영혼이 없는 사람이 있다니?
그리고 누구에게 어떤 물건이 필요한건지 어떻게 알지?
 
책에선 이걸 윤회, 승급 이라는 말로 설명한다.
어떤 사람은 아직 영혼을 수용할 만한 단계에 이르지 못했고, 그렇게 영혼이 필요한 사람들은 저절로 자신에게 맞는 영혼이 담긴 물건을 찾는다는 것이다.
이건 마지막의 일어날 어떤 사건을 읽게 되면 자연히 이해가 갈 것이다.
 
찰리가 아내를 잃고 겪는 여러 가지 사건들은 거의 대부분은 힘든 일인지도 모른다. 대부분 죽음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기에 그렇다. 하지만 그렇게 우울하던 찰리가 어느날 죽기전 치즈와 크래커를, 그러니까 삶을 진정으로 음미하던 모습을 보이고 죽은 여인때문에 정말 삶을 즐기며 살아야 한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리고 이 책은 고통의 순간에도 웃음을 주는 재밌는 대화들이 많이 담겨있다.
 
소제목과 이야기의 연관성이 언뜻 생각나지 않는 것을 제외하고는 앞으로 찰스가 어떻게 될지 너무나 궁금해서 재밌게 빠져읽었다.
문득, 나의 영혼의 그릇은 무엇일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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