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 부패사건에 휘말리다 - 조말생 뇌물사건의 재구성
서정민 지음 / 살림 / 2008년 3월
평점 :
절판


세종은 조선왕조를 통틀어 가장 성군으로 총애받는 성왕 중의 한명이다.
그런 그와 부패사건이라니, 어쩐지 조금은 어울리지 않는 조합이다.
 
읽어보니 처음에는 계속 죄인을 비호하는 듯한 세종의 태도가 이해되지 않았는데 역시 비범한 사람은 평범한 사람보다 몇 수 앞서 본다고 했던가, 근 15년간 끈질기에 화두되었던 조말생의 사건을 통해 조선의 법치주의와 세종의 실리주의에 대해 크게 깨닫게 되는 시간이 되어 좋았다.
 
게다가 이 책을 쓰신 분이 검사로 재직 중인 분이시고 조선의 여러 법 제도와 시행의 묘사를 현재의 모습으로 표현한 부분이 많았는데 생각보다 이런 표현들이 법률에 문외한인 나로서도 그다지 어렵지 않았고 오히려 드라마에서 고신하는 모습만 보던 것 보다는 전문성을 띠어서 수긍하기가 쉬웠다.
현대적 표현이라는 건 예를 들어 이런 식이다.
 
당시 김도련은 지방에서 수없이 많은 노비소송을 제기하거나 당하면서도 패소하지 아니하는 막강한 로비스트였다. - p.23
 
조말생은 두 차례에 걸친 왕자의 난을 걸쳐 왕이 된 태종 이방원으로서는 왕권 안정에 저해가 되는 세력을 견제하고 왕권확립을 이루기 위해서 꼭 필요한 젊은 인재였다. 따라서 태종은 조말생에게 각 분야의 실무를 두루 경험하게 하고 급속승진을 거듭케 하였다. 또한 후에 세자인 양녕대군을 폐위하고 셋째인 충녕대군에게 생전양위를 물려줄때도 당신은 군사업무만을 돌보며 왕권을 강화할때도 조말생을 병조판서로 두어 함께 했으며, 조말생과의 사적인 자리에선 양녕대군의 폐위로 고심하며 눈물까지 흘릴 정도로 그를 신뢰했다.
(p.18~19)
이렇게 신뢰받고 고위간직에 있던 신하라면 응당 왕에게 충심을 바치고 정사를 돌봐야할진데, 그런 조말생이 엄청난 비리를 저질렀다는 상서문이 세종8년에 올라오게 되고, 드디어 엄청나게 뇌물을 받은 사실이 드러난다. 이후 이런 조말생에 대한 형 집행과, 사면, 직첩을 돌려주는 문제와 다시 관직을 받고 이후 그의 두 아들에 대한 문제까지 근 15년간 조말생에 대한 문제로 세종과 신하들은 대립하게 된다.
 
저자는 조선 역사상 가장 큰 비리의 대명사로 손꼽히는 조말생의 부패사건을 6단계로 나누어 분석하는데 이를 위해 수많은 자료를 참고하였으며, 세종, 사헌부, 조말생, 당시 사회상 등 각각의 주장과 이에 대한 반박, 현대적 해석 등 광범위하게 객관적으로 논리를 펼치고 있으며, 특히 세종대왕의 주장에도 잘못한 부분이 있으면 그에 대해서도 사실적으로 전하고 있다. 어느 한쪽의 입장에만 치우쳐있지 않기에 더욱 공감이 가는 것이다.
사실 이는 세종대왕의 실리주의와 법치주의의 이념이 올곧아 그렇기도 하다. 그렇기에 비록 조말생이 죄를 용서받고 관직에도 복귀하여 공을 세웠으나 후대에는 길이길이 부패의 대명사로 낙인을 찍혔을테지. 세종의 업적을 더욱 돋보이게 하는 저자의 논리와 표현력이 멋진 책이다.
 
끊임없는 대신들의 반박에도 자신의 주장을 굽히지 않고 신념을 지킨 세종대왕이 참으로 대단해 보였다. 특히 그렇게 온당한 토론을 통해 법을 중시하는 기틀을 마련한 점도. 그저 비난이 아닌 정당한 비판을 통해 사건을 해결하고 통합해 나가는 세종대왕의 이 자세가 바로 우리 시대에서 배워야 할 자세이다. 
 
나는 특히 사람의 목숨을 빼앗는 사형은 극도로 신중하여야 한다 (p.74) 와 유능한 인재는 전과를 구실로 발목을 잡아서는 안된다 (p.225) 는 (아비의 죄로 자식의 등용까지 거부해서는 안된다) 세종대왕의 실리주의가 마음에 든다.
 
저자가 말하는 '정치혐오증' 을 나도 가지고 있다. 매일 뉴스에서 싸우기만 하는 그네들과 선거기간 동안 서로를 깎아내리기에만 급급하던 모습을 보면 '상생' 운운하는 게 우스울 지경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 나라에 사는 국민이기 때문에 보이지 않는 희망 속에서도 희망을 찾는 기대를 저버릴 수 없는 것이다. 저자의 말대로 시대와 문화만 바뀌었을 뿐 인간이 살아가는 세상에는 근본적으로 큰 차이가 없다. 불완전한 인간이 만들었기에 불완전한 법을 그나마 끊임없는 시행착오 끝에 다듬어나가는 노력이 끊이지 않는 것처럼 이 책을 통해 무언가 깨닫고 배우는 사람이 많아져 조금씩 조금씩 이 사회가 바뀌어 나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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