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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쯤 우연한(?) 기회로 내 인생의 '잘못 끼워진 첫단추'를 만났다. 이렇게 얘기해서 미안하지만,알면 서운하겠지만 이 이상의 정의가 불가능한 상대일것이다. 얼굴을 마주본 것이 아마도 약 8년만인것 같다.도통 종지부의 정확한 시점은 기억나질 않는다.
아무튼 맛있게 밥도 먹고, 원래 커피숍같은데는 절대 가지 않는다고 지겹도록 얘기했던 그 첫단추의 자발적 제안으로, 커피숍에가서 커피도 마셨다.

나는 그 첫단추와 시간을 보내면서, 아마 두가지를 느꼈던것 같다.변화시키려고 아무리 노력해도 변하지 않는 어떤 것과 변하지 않도록 붙들어두려해도 변하는 어떤 것이 있다는 것.
일종의 피해의식으로 자리잡고 있었던 첫단추와 대면,또 직면하고 나니 마음속 구석진방의 불이 비로소 탁 하고 꺼지는 것을 느꼈다. 꺼진 방(물론 그것을 알리없지만)을 마주하는 첫단추의 머릿속엔 무슨 생각이 들어있을까 궁금해졌지만 그런건 별로 중요한게 아니라는 생각을 했다.

나는 무언가를 대하는 나의 생각을 정확히 알고 싶을때 (이를테면 내 마음을 스스로 시험하고 싶을때) 그 문제에 직면하는 습관을 가지고 있는것 같다. 물론 그 선택에 대한 책임을 감수하고서라도...그런 이유로, 덥고 좀 지치는 시간이었지만 그 시간들이 나에게는 유익한 영향으로 남아줄거라는 확신마저 생겨났다. 착한 척 하려는게 아니라, 진심으로 좀 착해지고 싶었던 나도 이런것을 매번 떠올리게 된다. 원래 사람은 아무리 이타적으로 살려고 노력해도 결국엔 이기적으로 행동하게 된다. 또 삶이라는 것은 어쩌면 나 자신을 위한 반경들을 넓혀가는 무엇일지도 모른다. 그래도 나는 반발적으로 내가 오롯이 이타적으로 살아갈수 있을 어느 때를 소망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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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재능이나 음울한 예술은
고요한 밤중에 키운것이다
오로지 달만이 날뛰는 시간에
연인들은 잠자리에 든 시간에
그들의 모든 슬픔을
가슴에 안고
난 빛을 노래하며 애썼네
야망이나 빵을 위해서도 아니고
하얀 무대위에서 뽐내거나
매력을 자랑하는게 아니라
가장 은밀한 마음의
평범한 댓가를 위해서라네

 

사랑의 순간/ 사랑의 가장자리 (The Edge Of Love, 2008)



예술의 노동이, 야망이나 빵을 위해서가 아니라 어딘가에 뽐내기 위해서가 아니라 가장 은밀한 마음의 평범한 댓가를 위해서라는 말, 그 말이 이 영화 그리고 딜런 토마스라는 영국 시인에 대한 생각을 각별하게 만들어주었다.그의 고백에 또 한번 생각지 못한 위로를 받은것 같다. 개인적이고 설명하기 복잡한 얘기지만, 아무튼 나로서는 고흐와 쥐스킨트에 이어 세번째의 위안이다.

팝가수 밥 딜런에게 제2의 이름과 영감이 되어주었던,웨일즈의 방랑시인 딜런 토마스.

최근 구입한 '시월의 시' 뒷편에 적혀있는 옮긴이의 말에 의하면 [창조력]과 동시에 그에 못지 않은 [광폭한 파괴력]이 동원되어 지어진 것이 그의 시라고 한다. 창조력과 파괴력...그러나 한편으로 나는 자연의 일부이기때문에 또한 한없이 연약해있었던 그를 본다.

그리고 시골에서 나고 자란 경험들이 생명과 죽음에 대한 날것같은 심상을 키워주었으리라고 짐작하며, 도심지에서만 살아본 나는 이런것들을 그저 철없이 부러워한다. (어렸을적에 여름방학마다, 내게는 놀러갈 시골이 없다는 것에 참 서러웠던 기억도 떠올리면서)

위의 시는, 영화에서 보았던 자막의 번역을 그대로 올려두었다. '시월의 시'에서의 번역과 꽤 다른 느낌이다.조금 가볍고 쉽게 풀어진 느낌.그래도 나는 '가장 내밀한 속 마음의 평범한 급료' 보다 '가장 은밀한 마음의 평범한 댓가'라는 말이 더 마음에 들었다...  

참,위는 시의 전문이 아니다. 그래서...이래저래 원문을 적어두는게 좋을까?   

     
 

In My Craft or Sullen Art    

                                          by: Dylan Thomas
 
In my craft or sullen art
Exercised in the still night
When only the moon rages
And the lovers lie abed
With all their griefs in their arms,
I labour by singing light
Not for ambition or bread
Or the strut and trade of charms
On the ivory stages
But for the common wages
Of their most secret heart.

Not for the proud man apart
From the raging moon I srite
On these spindrift pages
Nor for the towering dead
With their nightingales and psalms
But for the lovers, their arms
Round the griefs of the ages,
Who pay no praise or wages
Nor heed my craft or art.

 
     


 


실제로도 그랬는지 알수는 없지만, 결혼도 하고 아이도 있었지만 부인 아닌 다른 사랑하는 사람을 곁에 메어두고 그저 바라보며 그녀를 위해 시를 쓰고, 때론 질투하고 좌절하며 그 힘으로 다시 시를 쓰고, 또 아예 그 둘(부인과 사랑하는 여자)을 남겨두고 또 다른 여자와 잠을 자고 아무렇지도 않게 다음날 일어나 그 집에서도 여전히 시를 쓰던 그.  
 
그의 전기랄것도 없고, 그저 '사랑의 끝,가장자리...'에 대해 얘기하고 싶었던 모양인 이 영화는 아마 그를 [훌륭한 남자]로 보고있진 않았나보다. 보다보면 나쁜놈 소리가 절로 나올, 또 한편으로는 책임감 부재의 영락없는 찌질이의 모습이라고 해야하나. (그 찌질한 남자때문에 어쩔줄 몰라하는 여자들을 보는 것도 퍽 인상깊다. 여자들은 왜 그런 남자들에게 끌리는걸까? 이해할수 없어서가 아니라, 나로서도 이젠 그 미스테리의 해답을 찾고 싶은 간절한 마음의 인상깊음이랄지.마침 영화 정보를 얻으려고 써치를 하는 도중에 [남자아이의 오이디푸스적 욕망은 육체적 대상과 이상적 대상으로 나뉘어 최소한 두 여자를 사랑하게 된다]라는 글이 적힌 어떤 포스팅을 스치듯 읽었다. 정말일까? 딜런 토마스의 행동이 그렇게 간단하게 이해될수 있는 것일려나? 나는 남자가 아니라 잘모르겠다.) 그래도 용서가 되는 건 영화의 전반에 그의 '황금같은' 목소리로 읽혀지는 시들 때문이다. 시 때문에 그렇게 외롭게 살았을테니 시 때문에라도 그를 봐줘야 않을까,이렇게 까지 생각이 드는것 보면...문학을 알아가는 것이 분별을 주기보다, 오히려 그것을 뺏어가는 경우가 의외로 많은것 같아진다.
  
케이틀린 역할의 시에나 밀러, 너무나 매력적이어서 나도 영화속 한심한 사내들처럼 그녀의 얼굴을 홀리듯 바라봤던것 같다. 

 
 
 
  
 
그런데...영화에서는 그의 아내, 케이틀린과의 관계가 너무 빈약하게 다루어져서 책 하나를 더 사려고 한다. (근데 좀 비싸다...)
토마스 외에도 D.H.로런스,스콧 피츠제럴드,헨리 밀러,실비아 플래스...이렇게 총 다섯 작가의 결혼이야기와 사랑이야기가 실려있다.  
작가들의 이름만 봐도 얼마나 치열한 이야기들일까 싶어진다.제목부터도 그런것을 암시한것 같고.
 

 
딜런 토마스의 이름으로 찾아졌던 또 다른 책.
 
 
 
 
 
그렇잖아도 엊그제부터 난데없이 김광석의 '서른 즈음에'라는 노래가 머릿속에 떠올랐는데, 왜 하필 또 이런 제목인걸까?
유치하지만 연고없는 아무나를 붙들고 시비를 걸고 싶어지게말이다.
 
뜬금없는 생각인데, 이왕 2010년의 절반이 시간을 훑듯 빠르게 지나갔으니
서른살의 첫단추는 무엇으로 꿰는게 옳을지 슬슬 생각해봐야겠다.
 

 
또... 이런것도 찾아진다. 시인과 술에 대한 이야기. (엄청난 애주가였던 딜런 토마스는-무리한 음주와 과로로 39세에 객사한 이력만 봐도- 몇장 안되는 사진 속에서도 친구도 아니요, 아내도 아닌술병과 함께 하고 있다.)

http://www2.mhj21.com/sub_read.html?uid=13224&section=section37

“(술을) 마시면 행복하고 깨어날 때의 황폐함, 그 황폐함에 대한 자기 회한과 환멸, 연민, 허무와 함께 하기 위해 마시고 또 마셨다.  그렇게 내 시는 씌어졌다. 나는 시인에게 깨어 있기보다 취해 있기를 권하고 싶다. 취기와 광기를 저버리는 것은 시인에게는 죽음이다.”

고은 시인의 이야기를 읽고나니, 내가 왜 차마 시 쓸 생각을 못하는지 알것 같아진다.아무래도 그 지경(황폐,환멸,광기)까지에는 이르고 싶지 않아하는 이중적이고 겁 많은 본성때문인가보다.

그렇지만 요즘, 시는 가장 순수하고 완전한 형태의 예술이 아닌가, 하며 경외에 가까운 어떤 생각들을 하고 있다. 나이탓을 하며 내가 너무 외면해왔던 분야라 그런지. 새롭고 놀랍고 가끔은 그 세계의 거대함에 짓눌리게 된다. 초.중학교때 백일장날이 되면 5분안에 휘갈기던 것이 시였건만... 물론 그것은 '가장 은밀한 마음의 평범한 댓가를 위해서'가 아니였기때문에 비교할 대상이 아니겠지만...나는 언제쯤이 되면 다시 시를 써볼 생각을 하게 될까, 문득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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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10-08-17 21: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많은 생각을 하셨군욥! :D

hina 2010-08-17 22:12   좋아요 0 | URL
앗.넵...좀 인상적이었어서요.
그리고,생각은(만...) 항상 많이 합니다.흐흐.
 
[수입] 바흐 : 골드베르그 변주곡
바흐 (J. S. Bach) 작곡, 머레이 페라이어 (Murray Perahia) 연주 / SONY CLASSICAL / 2001년 4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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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언가에 '처음'이라는 단어를 허락하면, 그것에 실제 가치 이상으로 많은 의미가 부여되는것 같다. 본래 썩 훌륭했다 하더라도 거기에 '특별함'이라는 프리미엄까지 붙는 느낌이 든다.

사실 좀 무난한 골드베르크를 사고싶었던 것 같다. 처음이니까...그러다 고르게 된 것이 이 음반.

'괜찮은 편이다','무난하다'의 평이 대부분이기도 했지만 내가 머레이 페라이어의 앨범을 구입하게 된 것에는 몇가지 이유가 더 있다. 1.성실한 연주라는 인상을 받았다. 2.해당곡의 탄생 목적에 맞게 연주를 듣다 잠들수 있었다^^;; (아마 제 24변주정도쯤부터 졸았던게 아닐까?) 3.요즘같은 덥고 꿉꿉한 날씨에 듣기 좋을듯 했다. 음악에도 온냉의 성질을 입힐수 있다고 가정했을때,시원 청량한 느낌이 들었던것 같다. 물론 절대로 주관적인 것... 

일단 만족해서 잘 듣고있고 가끔 아리아를 흥얼흥얼 따라하게 되는것 같다. 처음 구매한 골드베르크...  아직은 아니지만 언젠가 질려지는 그런 때가 올때까지 실컷 들어야겠다.물론 이 음반에 대해서는 아마 오랫동안 '처음'이라는 애틋함과 특별함이 다른 어떤 느낌보다 우세할꺼라고 짐작된다.

리뷰를 쓰고 있는 지금, 제법 무게있는 빗방울들이 땅에 부딪히는 소리가 들린다.그 소리에 귀기울이다 보면 마음 속 어디에 뭉쳐놓았던 우울함이 왈칵 밖으로 쏟아지는 기분도 든다. 그래서 집에 온종일 있기로 작정한때에는 은근히 이런 비,이런 빗소리를 기다리게 된다.좋다.빗소리를 듣는 것도.그 소리를 들으면서 잠이 드는 것도...  

 (근데 이 별점 같은거...꼭 해야하는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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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10-08-07 04: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무미건조해보이긴 해도, 듣다보면 뭔가 깊이가 느껴진다고 해야 하나 전 좀 그렇더라고욥.

비가 좀 많이 오는 토요일입니다. 음악이 잘 어울릴듯 하네욥!!

hina 2010-08-07 16:36   좋아요 0 | URL
아.제 서재 최초의 댓글을 남겨주셨네요~ 추천도^^ 감사해요ㅎㅎ

새벽에 비가 열심히 오다가,지금은 시원한 바람이 부네요.확실히 立추인가 봅니다!
근데 늦게까지 깨어계셨군요~
토욜쯤엔 도서관에 가시는것 같던데...행복한 주말 보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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