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 말해주세요, 꽃들의 비밀을 - 꽃길에서 얻은 말들
이선미 지음 / 오엘북스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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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을 찍는 순간은 모든 감각이 집중한다. 숨도 잠시 참아야 한다. 흔들리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많은 이들이 경험하겠지만 그 순간은 오롯이 저 너머의 꽃과 나만의 순간이다. 무념무상 완벽하게 단순하다. 하릴없이 분주한 일상에서는 만나기 힘든 그 순간의 침묵은 눈앞에 보이는 수백 수천의 사물을 넘어 ‘없음’의 순간으로 정신을 인도한다. 그런 시간들이 위로가 되지 않을 리 없다. 힘이 되지 않을 수가 없다.

책을 펼치고 「들어가는 글」중에서 읽게 된 말이다. 공감한다. 꽃을 찍는 순간은 오로지 꽃과 나의 순간이다. 거기서 꽃말고 다른 생각을 한다는 건 꽃을 제대로 보지 않는다는 말과 다르지 않다는 걸. 저녁 산책을 시작하고 구름이 늘 다른 얼굴을 하고 있다는 걸, 해가 지는 모습이 늘 다르다는 걸 너무 신기하게 바라보곤 했다. 그러니 계절을 알려주는 꽃과 만난다는 건 경이로울 수 밖에 없다. 꽃이라고 하면 가장 먼저 김춘수 시인의 '꽃' 떠오른다. 이름을 불러주고 싶다는 생각에 꽃을 더 가까이에서 바라보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결국 식물도감, 우리의 자생 식물, 야생화 도감을 곁에 두게 되었지만 사진으로 먼저 만나고 이름을 불러주며 다가갈 때의 설레임은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를 터다. 저자의 말 한마디 한마디가 예사롭지 않게 들렸던 이유다. 이 책은 그렇게 꽃과 만나는 순간 순간의 기록인 듯 하다. 꽃이 철학자 한 분을 탄생 시킨 셈이다. 그만큼 꽃과 나무, 아니 모든 식물은 사람을 알 수 없는 시간 속으로 데려다 주기도 한다. 살고 있는 동네에서 해마다 봄이면 벚꽃 축제를 한다. 꽃이 지면 그 많던 사람은 모두 사라져버린다. 한번도 꽃이 진 후의 나무를 보러 오지 않는다. 꽃이 지고 나면 푸릇푸릇한 녹음이 우거지고 그 녹음이 그림자를 드리워 상쾌하게 만든다는 걸 사람들은 잊는다. 花無十日紅이라는 말이 있다. 열흘 붉은 꽃이 없다는 말 속에는 '찰나'의 의미가 들어 있다. 우리 삶의 순간들은 모두 '찰나'일 뿐인데 모두가 아름답고 좋은, 화려함의 순간만을 보려 하는 것 같아 안타까울 때도 가끔 있다. 저자는 말한다. 꽃의 뒷모습에 진실이 있다고. 책 속에 많은 꽃이 소개되어져 있다. 이름을 많이 들어봤던 꽃도 있지만 쉽게 만날 수 없는 꽃도 많다. 너도바람꽃, 변산바람꽃, 매발톱꽃, 깽깽이풀, 동강할미꽃, 은방울꽃, 양귀비, 앵초, 연꽃, 엉겅퀴, 수국, 병아리난초, 나도수정초, 호자덩굴꽃, 좀바위솔, 스노드롭... 희귀한 꽃을 만날 수 있어 좋은 시간이었다. 사진이 좀 더 선명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있지만 잠시 마음쉼을 할 수 있어 좋았다. 이 책을 통해 제비꽃이 우리나라에만 60여 종이 핀다는 걸 알고 깜짝 놀랐다. 미선나무처럼 우리 땅에서만 자라는 꽃도 많다. 학명을 빼앗긴 건 아쉽지만. 나를 잊지 말라고 말하는 건 물망초뿐인 줄 알았는데 세상에, 양귀비의 꽃말도 '나를 잊지 말아요' 란다. 엉겅퀴의 꽃말이 '나를 만지지 마세요' 라니! '슬픔은 사라지고' 라는 미선나무의 꽃말, '행복을 여는 열쇠' 라는 앵초의 꽃말이 참 좋다. 모든 작은 꽃이 장미가 되려고 하면 봄은 그 사랑스러움을 잃어버릴 거예요... 테레사 수녀의 말이라 한다. 단 한마디 속에 많은 의미를 담고 있음을 알 수가 있다. 누구나 저마다의 아름다움이 있다는 걸. 꽃의 비밀을 알려준다더니 삶의 순간 순간을 이야기한다. /아이비생각

우리가 외부에서 가해진 고통을 더욱 크게 만드는 이유는, 우리가 정말 고통없이 살아야 한다는 환상 때문이다. - 안셀름 그륀 <너 자신을 아프게 하지 마라> (-51쪽)

"내 인생은 순간이라는 돌로 쌓은 성벽이다. ... 나는 안다. 내 성벽의 무수한 돌 중에 몇 개는 황홀하게 빛나는 것임을. 또 안다. 모든 순간이 번쩍거릴 수는 없다는 것을. 알겠다. 인생의 황홀한 어느 한순간은 인생을 여는 열쇠 구멍 같은 것이지만 인생 그 자체는 아님을." - 성석제<번쩍하는 황홀한 순간> (-75쪽)

"따져보니 제대로 살아 본 것 같지 않다. 나는 나를 떠돌던 나그네. 지금까지 살아온 것은 누구였을까."

- 네팔 시인 두르가 랄 쉬레스타 (-23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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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30 기후적응 시대가 온다 - 종말로 치닫는 인간에게 주어진 마지막 기회
김기범 지음 / 추수밭(청림출판)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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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말로 치닫는 인간에게 주어진 마지막 기회, 라는 부제앞에서 서성인다. 정말로 우리에게 마지막 기회가 있긴 있을까? 한동안 우리는 2050년을 이야기했다. 어쩌면 그때가 인간의 시간에 한 획을 그을지도 모를 때라고. 그랬는데 예고도 없이 2030년으로 수정되었다. 그렇다면 책의 표지에서도 보이듯이 앞으로 남은 시간은 6년이다. 그 후로도 우리는, 아니 인간은 살아남을 수 있을까? 모든 것이 그렇듯이 결정권을 쥔 것은 인간이다. 그러나 인간은 손에 쥔 것을 놓지 않으려고 한다. 그런데도 기회가 남아 있을거라고 말한다는 건 억지가 아닐까? 그렇게 될 수 있으면 좋겠다는 바람일지도 모르겠지만.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그 마지막 기회조차도 잡지 못할 건 불보듯 뻔한 일이다. 아니, 어쩌면 이미 늦었을지도... 영구동토층이 녹아내리고 있다느니, 지구 온난화로 인해 해수면 온도가 상승하고 있다느니, 환경변화에 관한 이야기가 날이면 날마다 매스컴을 탄다. 환경을 지켜야하니 이렇게 합시다, 저렇게 합시다... 국가별로 말은 많지만 누구하나 희생하려고 하지 않는 게 현실이다. 환경위기가 아니라 인간위기로 말을 바꿔야 한다는 말은 예사롭게 들리지 않는다. 지구가 멸망하는 게 아니라 인류가 사라질 것이라는 저자의 말을 확성기에 대고 말하고 싶어진다. 북극곰이 위험에 처한 것이 아니라 바로 인간이 위험에 처한 거라는 걸. 이익을 창출해내야만 하는 자본주의 사회를 벗어나지 않는 한, 모든 것이 돈으로 귀결되는 삶의 방식이 바뀌지 않는 한 아무리 환경에 대한 위기를 말한다해도 인간은 변하지 않을 것이다. 이 책을 읽는 나는 비관주의자도 아니고 염세주의자도 아니다. 그저 우리 삶의 형식이 조금이라도 바뀌었으면 하는 바람을 가졌을 뿐이다. 책을 읽으면서 혹시나 했던 의문에 대한 답을 보았다. 그만 무너져내렸다. 한국이 기후빌런이라는 말앞에서. 면적이나 인구 대비로 볼 때 대한민국이 기후온난화에 앞장서고 있는 국가라는 현실이 참 서글펐다.

'생태계 학살'에 가까운 개발의 연속(-80쪽) 이라는 말이 무섭다. 사라져가는 동식물의 종류가 너무나도 많다. 이쯤에서 지구촌의 저출산 문제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인간도 자연에 속한 동물인지라 환경변화에 대처하게 되어 있다. 그러니 먹고 살기 힘들어지는 이 상황에서 새끼를 낳지 않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래서 저출산을 이상하게 생각하는 게 오히려 더 이상한 일이라고 최재천 교수도 말했었다. 과학자들은 합성섬유로 만든 옷을 세탁할 때마다, 플라스틱 용기를 사용할 때마다, 비닐을 뜯을 때마다 미세플라스틱이 나온다고 경고한다.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하루에도 수십 번씩 자연스럽게 하는 행동이 미세플라스틱의 다량 배출을 야기하고 있다. 플라스틱을 쓰는 이상, 자연을 미세플라스틱으로 오염시키는 일은 피할 수 없을 것이다.(-131쪽) 미세플라스틱을 물고기가 먹고 그 생선을 우리가 먹는다는 말은 아주 단순한 일차원적인 이야기였다는 말이다. 그럼에도 아이러니 한 것은 그렇게 말하는 과학자들은 또다시 새로운 미세플라스틱을 만들어내기 위해 연구를 한다는 점이다. 이제는 멈춰야 할 때라는 말의 울림이 얼마나 더 커져야 할까? 책을 펼치고 목차를 읽은 다음 뒤에서부터 읽기 시작했었다. 그래도 아직은 희망이 있다는 말에 기대를 하면서. 책을 덮으며 작은 희망조차도 갖지 못하겠다는 생각을 한다. 기후변화가 심각해진다고해도 어쩌면 인간은 살아남을 것이다. 환경에 적응한 또다른 학명의 인류가 되겠지만 말이다. '자기앞의 생'을 걱정하기도 바쁜데 '후손의 삶'까지 생각하는 현대인이 과연 몇이나 될까 싶다. "생명과 자연앞에서 항상 겸손해야 한다는 점"을 깨달았다는 저자는 기후위기와 생물다양성 감소, 그리고 이에 대한 인류의 대응을 취재하면서 앞으로 닥쳐올 6~10년의 시간이 그 어느 때보다 더 중요하다고 느껴 이 책을 쓰게 됐다고 말하고 있다. /아이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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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을 끊어내기로 했다 - 내 발목을 잡는 가족에게서 벗어나 죄책감과 수치심에 맞서는 심리학
셰리 캠벨 지음, 제효영 옮김 / 심심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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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잘 사용하지 않는 말인지도 모르겠지만 '호적을 파버린다'는 말이 무섭게 들렸던 시대가 있었다. 그 때는 그만큼 가족간의 유대를 중요하게 여기던 시절이었다. 삼대가 한지붕 아래서 사는 경우도 허다했다. 그렇다고해서 지금은 가족간의 유대가 중요하지 않다는 말은 아니다. 시대는 변했고, 가족의 형태도 그에 따라 빠르게 변하고 있다. 삼대가 한지붕 아래 모여산다는 건 사전에서나 찾아볼 법한 말이 된 시대다. 각자의 삶을 살아내기에도 벅차 이제는 가족이라는 테두리마저 거부하고 있는 시대다. 결혼을 기피하고 아이를 낳지 않으려는 흐름을 단순히 먹고 살기 힘들다거나 육아에 따르는 비용이나 노동만으로 생각해서는 안된다. 가족이라는 의미가 편안함과 즐거움만을 주는 게 아니라는 것을 인식하게 된 것도 하나의 변명이라면 변명일 것이다. 자신에게 상처를 주는 존재는 멀리 있지 않다. 보통의 경우라면 대부분이 가까운 가족으로부터 받는 상처다. 가족에게 받는 상처의 크기와 타인에게서 받는 상처의 크기는 엄청나다. 그만큼 우리는 가족에게 '헌신' 또는 '희생'의 역할을 강요해왔던 건 아닌지 생각해봐야 한다. 가족이니까 무조건적으로 나를 편하게 해줘야 한다는 건 억지다. 이 책은 가족이라는 이유로 이해하려고조차 하지 않는 악순환의 고리가 우리를 얼마나 힘들게 하는지 다시한번 생각하게 한다. 시대가 변한 까닭에 이제는 우리의 가정법도 변해가고 있다. '구하라법'이 그것을 대변하고 있다. 가족은, 적어도 가족이라면 남들보다 더 서로를 이해하려고 노력해야 한다는 말에 백퍼센트 공감한다.

책을 열자마자 보이는 한 문장이 오래도록 시선을 붙잡는다. 관계 단절은 정당방위다... 해로운 가족과는 단절해야 한다. 저자 역시 45세에 이르러 가족과 완전히 관계를 끊었다고 한다. 기억도 나지 않는 어린 시절부터 가족의 신체적, 정서적 학대를 견디며 살았다는 저자는 미국의 공인 심리학자이자 가족 문제 전문가로 활동하고 있다고 한다. 이 책에는 저자의 오랜 경험과 상담했던 사례들이 실려 있다. 그렇다면 해로운 가족은 어떤 사람들일까? 자신만이 판단해야 할 문제다. 세상 사람들의 이해를 얻는다는 게 그리 쉽지 않은 까닭이다. 그럼에도 저자는 말한다. 해로우면서 무고한 사람은 없다고. 가족에게 선을 그어도 된다고. 해로운 가족으로 인해 평생을 괴로워하며 살 필요는 없다고. 그렇게 상처를 입은 사람들은 어떻게 치유해야 하는지 치유는 나를 알아가는 과정이다, 에서 밝히고 있다. 모든 심리학서가 말하고 있듯이 저자 역시 근원적인 상처를 알아야 한다고 말한다. 내 안에서 상처 입은 채 미처 자라고 있지 않은 또다른 나 자신과 만나야 한다는 말을 떠올리게 된다. 상처를 입은 채 그대로 성인이 되어버린 사람의 삶은 결코 행복할 수 없다는 말에 어느 정도는 공감한다. 저자는 가족과의 관계 단절로 인한 외로움이나 공허함, 그리고 일종의 죄책감 따위에 흔들릴 필요가 없다고 말한다. 그리고 완벽한 삶을 꿈꾸며 힘겹게 살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우리에게는 불완전해질 용기가 필요하다고. 가족과의 관계를 단절한 채 몇 년을 살아온 내게 위안이 되어줄까 싶어 선택했던 책이었다. 위안이라기 보다는 이런 방법으로 이겨낸 사람도 있구나, 하는 마음이 들었다. 지금까지 나 자신이 노력하며 살았던 방법이 책에서 보여 조금은 놀라웠다. 하지만 경험으로 미루어 보건데 이런 방법을 쓴다면 약간은 특이한 사람 취급을 받게 될지도 모르겠다. 왜냐하면 세상에는 자신의 의지보다 세상의 잣대에 맞춰 선택하고 판단하는 사람이 더 많기 때문이다. /아이비생각

★ 숙련된 공감 능력을 키우는 방법(-252쪽)

① 누구든 이유없이 나를 푸대접하는 사람에게는 확실하게 경계선을 긋는다.

② 내가 과민하게 군다거나 '지나치게 경계한다'고 비난하며 현실을 일축하려는 사람은 절대로 용인하지 않는다.

③ 양쪽 모두가 만족하는 관계에 집중하고, 그렇지 않는 관계는 정리한다.

④ 해로운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을 구분하는 내 직감을 굳게 믿는다.

⑤ 나를 이해하려는 의지가 없는 사람에게 내 결정을 설명하느라 시간과 에너지를 헛되이 쓰지 않는다.

⑥ 침묵의 막강한 힘을 활용한다. 대꾸할 좋은 말이 떠오르지 않으면 아무 말도 하지 않는 편이 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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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체가 일각돌고래라면 - 인간이 만물의 영장이라는 편견에 대하여
저스틴 그레그 지음, 김아림 옮김 / 타인의사유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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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의 성장은 실제로 존재하며 전 세계적인 재앙이 닥치지 않는 한 성장세는 되돌릴 수 없다. 정부나 사회의 개선 역시 실제로 일어나기는 하지만, 이조차도 일시적이다. 정부와 사회는 길을 잃을 수 있으며 확실히 그렇게 될 것이다. 역사는 진보하거나 쇠퇴하는 흐름이 아니라 이득과 손실이 반복되는 과정이다. 인류 지식의 성장과 진보는 우리가 다른 동물들과 다르다고 여기게끔 유혹하지만, 실제 우리의 역사를 보면 꼭 그렇지도 않다.(-312쪽)

도대체 니체와 일각돌고래가 무슨 관련이 있는거야? 라는 의문이 들었던 것도 사실이지만 '인간이 만물의 영장이라는 편견에 대하여'라는 소제목때문에 읽게 된 책이다. 책의 목차를 훑어보다가 다시 정색을 하고 한줄 한줄 읽었다. 그러다가 저자가 궁금해졌다. 책을 읽기도 전인데. 저스틴 그레그, 생물학과 교수라고 나온다. 게다가 돌고래류의 사회 인지를 중심으로 한 동물의 의사소통 및 행동과 인지, 언어의 진화와 그 배경 등을 집중적으로 연구하고 있다는 말도 보인다. 그래서 또 찾아보았다. 일각돌고래에 관해. 일각돌고래는 바다를 떠나서는 살 수 없는 존재라고 한다. 인간이 사육할 수 없다는 말일 게다. 니체를 생각하면 '신은 죽었다'라고 말한 철학자 정도로만 기억하고 있는데 그 말의 진정한 의미에 대해서는 한번도 찾아본 적이 없는 듯 하다. 책의 도입부에 이런 말이 보인다. 니체가 마부에게 채찍질을 당하며 고통스러워하는 말을 끌어안고 한없이 울었다고. 그 이후로 정신이상에 시달렸다고. 저자의 말이 이채롭게 다가왔다. 각설하고 다시 목차를 훑어보니 저자의 주장에 대해 하나씩 생각해 보게 된다.

들어가며 ... 니체 씨, 제 이야기를 들어 보시겠습니까?

1장_ 인간의 지적 우월함은 환상이고 착각인 것 같습니다 : 네.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2장_ 인간은 거짓말 때문에 자멸하고 말 것입니다 : 그 말도 백퍼센트 공감합니다.

3장_ 인간은 죽음에 대해 너무 많이 알고 있습니다 : 그럴까요? 그런 척 하는 건 아니고요?

4장_ 인간이 만든 도덕성은 날 선 칼이 되어 돌아왔습니다 : 이건 책을 읽어봐야겠군요.

5장_ 인간만 의식을 가졌다고 말할 수 없겠습니다 : 인간만 의식을 가졌다고 생각하는 건 오만입니다.

6장_ 인간의 시간 여행 능력은 망가졌을지도 모릅니다 : 음, 이것도 책을 좀 읽어봐야겠군요.

7장_ 인간만이 예외라는 가정은 잘못되었다고 생각합니다 : 확실합니다. 인간만이 예외일 수는 없죠. 모든 일에. 목차만 읽고 이렇게 기대감에 부풀다니, 놀라웠다.

만약 인간이 언어를 사용하지 않는 유인원으로 남았다면 이 세상에 이리도 많은 죽음과 불행이 닥쳤을까? 아마 아닐 것이다. 언어는 동물계 전체에 즐거움보다 불행을 야기할 가능성이 크다.(-304쪽)

인간만이 언어를 사용한다는 건 어쩌면 교만이 불러온 착각이 아닐까? 이 세상의 모든 것이 인간위주로 생각되어지다보니 '우리'가 아닌 '저들'의 소통수단을 언어가 아니라고 착각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는 말이다. 저들도 저들 나름의 소통수단이 있으며 저들 나름의 사회와 그에 따른 규범이 있을 것이다. 저자의 말을 빌려보더라도 저들에게도 어떤 규칙은 분명히 있어 보인다. 인간을 포함한 모든 동물들은 검증되지 않고 아무도 입 밖으로 꺼내지 않는 침묵적인 규칙에 의해 살고 죽는 것처럼 보인다.(-168쪽) 그렇다면 감정은? 감정 역시 저들에게도 있다. 코끼리가 동족의 죽음앞에 숙연해지는 것을 다큐를 통해서도 많이 보았고 죽은 새끼를 며칠동안이나 안고 다니던 어미 돌고래의 이야기도 우리에게는 익숙하다. 저들도 공포와 행복함을 느낄 수 있는 것이다. 헛소리는 거짓말과 다른데, 거짓말은 타인의 행동을 조작할 의도로 고의적으로 거짓 정보를 만들어 내는 것이다. 반면에 헛소리꾼은 자신이 말하는 것이 정확한지 아닌지 알지 못하고 신경 쓰지도 않는다. 즉, 꼭 진실이 아닐지라도 진실로 보이거나 그렇게 느껴지는 특성에 더 관심이 있다.(-112쪽) 하물며 저들은 헛소리조차 하지 않는 존재들이다. 일전에 지구에서 인간과 함께 살아가기로 했던 외계생명체가 인간이 거짓말을 한다는 이유로 공존이 아닌 점령을 선택했다는 이야기를 어느 드라마에서 본 적이 있다. 그처럼 저들과 인간의 차이점은 확실해 보인다. 슬프지만 좋지 않은 쪽으로.

나가며 ... 니체 씨, 우리 이제는 좀 더 겸손해져야겠죠?

책을 읽으면서 은근슬쩍 소름이 돋았다. 철학자의 이름을 내세워 저자가 하고 있는 말은 자연과의 공존이었던 까닭이다. 이 책을 읽는 중에 멕시코에서는 지구 온난화로 인한 더위로 인해 원숭이 무리가 나무에서 떨어져 죽었다는 뉴스를 보게 되었다. 이럴수가! 이런데도 불구하고 인간은 지구의 환경에 대한 위기 의식을 느끼지 못하는 게 분명하다. 어느 방송에선가 학자가 나와 이런 말을 했었다. '기후위기'가 아니라 '인간위기'라고 말을 바꿔야만 한다고. 그래야만 직접적인 위기감을 느낄 수 있을거라고. 책을 마무리하며 저자가 남긴 한마디가 커다란 울림을 전하고 있음이다. 니체씨, 우리 이제는 좀 더 겸손해져야겠죠?

우리 모두에게 선택권이 있습니다. 우리는 미래 세대의 환경을 지켜줄 수 있는 변혁적 행동을 시작할 수 있죠. 아니면 평소와 마찬가지로 각종 산업을 계속 이어 가다가 환경을 지키는 데 실패할 수도 있습니다. 현재 우리는 사회의 거의 모든 것을 송두리째 비워야 합니다. 저는 여러분이 당혹스러워하기를 바랍니다. 제가 날마다 느끼는 두려움을 여러분도 느꼈으면 합니다. 그런 다음 여러분도 행동에 나서기를 바랍니다. 마치 당장 위기에 닥친 것처럼 행동했으면 합니다. 우리가 사는 집에 불인 난 것처럼요. 왜나면 실제로 지금 그런 위기이기 때문이죠.(-272쪽) 크레타 툰베리의 말이다. 불은 이미 났다./아이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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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티네이션 아트 - 전 세계 505곳에서 보는 예술 작품
파이돈 프레스 지음, 이호숙.이기수 옮김 / 마로니에북스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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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쪽에 나갈 일이 있으면 항상 보고 오는 작품이 하나 있다. 햄머맨이다. 건물높이의 크기를 가진 사람모형의 작품인데 35초마다 한번씩 햄머를 움직인다. 바쁘게 움직이는 사람들의 시간과 겹쳐지기도 하지만 힘겨운 일상을 담아낸 듯 보여 많은 느낌을 전해받곤 한다. 책속에서 그 작품을 보게 되니 반가웠다. 또 하나, 덕수궁 돌담길을 따라가다 보면 덕수궁 뒷쪽 담장 아래에 찌그러진 형상의 사람들이 서 있다. 그 작품 역시 이채로운 느낌을 준다. 전세계의 예술작품을 한눈에 볼 수 있다면 어떨까? 유명하다는 작품들을 보기 위해 세상의 여러곳을 모두 가볼 수는 없는 일이니 그런 기회가 있다면 선택해보는 것도 괜찮은 일일 것이다. 이 책이 바로 그런 역할을 한다. 유명하다는 작가들의 이렇다 한 작품들을 도록처럼 모아놓았다. 정성 가득한 귀한 책이다. 미술에 문외한인 까닭으로 책에 실린 작품들을 이해하거나 공감할 수 있는 부분들이 많지는 않았다. 특히나 현대미술은 직접 봐도, 혹은 설명을 들어도 그 의미를 이해하고 공감한다는 게 그리 쉽지않다. 현대미술을 이해하는 건 정말 어렵다고 하니 그냥 보고 느끼면 된다던 어느 선생님의 말씀이 떠오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실적인 작품들을 만날 때는 고개가 끄덕여지기도 했다.

이안 대번포트라는 작가의 <쏟아져내리는 선들>이라는 작품이다. 사진을 보면서 살면서 우리가 얼마나 많은 편견속에서 허덕이는가 되묻게 된다. 많은 사람이 예술작품이라고 보기에 뭔가 부족하다고 느끼지 않을까 싶어서. 알 수는 없어도 작가만의 어떤 의미가 담겨 있을거라고 믿고 싶어지는 작품이 아닌 까닭이다. 어쩌면 일상의 단순함을 담은 작품일수도 있는 일이지만. 경기도 안양의 안양예술공원에도 세계의 작가들이 만든 조형물들이 많다. 도슨트를 따라 작품의 설명을 들으며 한번 돌아본 적이 있었는데 저마다의 의미를 담고 있다는 걸 알고 너무 쉽게 생각했던 것에 대해 미안함을 느꼈었다. 일본 나오시마에 설치되었던 쿠사마 야요이의 작품 '노란 호박' 조형물도 설명을 들으면 이해하게 될까?



이런 저런 이유를 댄다해도 역시 현실적인 작품들이 눈에 들어오는 건 사실이다. 아르망이라는 작가의 두 작품을 보면서 무서운(?) 생각을 한다. 왼쪽의 작품명이 '장기주차'다. 우리 동네 무개념으로 세워둔 자동차들을 이런 방식으로 장기주차를 시키면 어떨까 하고. 오른쪽 작품명은 '평화를 향한 희망'이다. 레바논의 15년 내전 종식을 축하하는 의미로 만들었다는데 콘크리트에 갇혀 있는 전차들의 모습이 살풍경하다.


마우리치오 카텔란의 '무제'라는 작품인데 미술관에 설치되었다는 게 왠지 이채롭게 다가온다. 전통적인 작품들과 불경스러운 조화을 이루고 있다는 이 작품이 미술관과 어떤 조화를 이루고 있는지 한번 느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이곳 저곳에 흩어진 세상의 작품들을 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아이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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