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정, 외면당한 역사의 진실
이희근 지음 / 책밭(늘품플러스) / 2013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반촌이 있었다. 지금의 성균관 대학부근이었을 것이다. 알다시피 성균관은 최고의 교육기관으로 왕세자도 입학하여 공부를 하던 곳이었다. 문묘로써 공자에 대한 제사를 지내야했기에 때에 맞춰 왕도 드나들었다. 지금도 성균관을 답사해보면 노비들이 살던 공간이 남아 있음을 볼 수 있지만 성균관 주변에 마을을 이루고 살았던 사람들의 대부분이 재인이라고 불리우던 백정이었다. 백정이 도살업에 종사했다는 것은 누구나 다 아는 일이다. 제사를 지낼 때 소를 잡아야 했으므로 그들이 필요했을 터다. 그들에게는 현방 혹은 다림방이라고 하는 고깃간을 독점적으로 경영할 수 있는 권리를 주었다고 하니 먹고 살기 위해 모여든 백정의 수는 점점 불어났을 것이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면 최고의 교육기관에서 공부하던 유학생들이 그들을 과연 사람취급이나 제대로 했을까 싶은 생각이 든다. 그렇다고는 해도 도살업이 생업인 백정의 입장에서는 어쩔 수 없는 일이었을 게다. 숙종 때에는 성균관에 들어가 일을 하던 노비의 수가 3,4천명 정도였다고 하니 반촌의 크기를 미루어 짐작할 만 하다. 그렇게 사람 취급도 받지 못하던 백정.. 그들은 도대체 언제부터 그런 대접을 받으며 살았는지 궁금했었다.

 

우리가 알다시피 백정은 천대와 멸시의 대명사였다. 그런데 꼭 그렇지만도 않았던 모양이다. 백정은 본래 양인이었다는 말이 새삼스러웠다. 왕조의 호적문서에도 '양인'으로 표기되어 있었다고 하는데 왜 그렇게 업수임을 당하며 살아야 했을까? 얼마나 멸시를 당했는지 백정은 양인임에도 불구하고 갓도 쓰지 못하고 패랭이를 쓰고 다녀야 했다고 한다. 당시에는 보통 사람들이 부모상을 당했을 때 죄인이라는 의미로 쓰고 다녔던 것이 패랭이였다고 하니 항상 죄인취급을 받으며 살아야 했던 게 백정이었음을 알게 한다. 천민 중의 천민 백정. 그들을 통해 우리 민족의 쓰라린 역사를 알 수 있는 기회가 되기도 했지만 이 책에서 말하고 있는 또다른 주제, '과연 우리는 단일민족인가?' 에 대해 다시한번 생각해볼 수 있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우리의 역사를 살펴보면 우리는 정말 많이도 이민족의 침략을 받았었다. 간혹 그렇게 많은 외침을 당하고도 끝까지 살아남을 수 있었다는 것을 하나의 자긍심처럼 말하기도 하지만 냉정하게 살펴보면 그렇게 좋은 의미로만 해석되어질 수 없다는 걸 금방 알 수 있게 된다. '다문화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에게 커다란 울림을 전해줄 수 있는 주제가 아닌가 싶다. 유난스럽게 '다름'을 인정하지 않는 작금의 세태만 보더라도 이런 주제를 다루었다는 자체가 매우 흥미로웠다. 결론부터 말해보자면 우리는 이미 오래전부터 '다문화'속에서 살고 있었다는 말이다. 그런데 이 책, 정말 놀랍게도 반론을 제시할 수가 없게 만든다. 나도 모르게 공감하는 부분이 꽤나 많았다. 지금까지 외면당한 채 아픈 역사를 짊어지고 살아왔을 그들의 후예들이 다름 아닌 우리였다는 것을 누가 부정할까 싶은 생각도 들게 한다. 거란족의 침입부터 몽골족에, 그리고 임진왜란으로 인해 우리 땅에 뿌리를 내리게 된 일본인들까지 서글픈 우리의 역사를 들여다보면 과연 우리가 단일민족이라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이 생겨나기도 한다.

 

북방에서 내려 온 침입자들의 문화가 유목민이기도 했지만, 거친 생활의 한 단면만 보더라도 말을 잘타고 짐승을 잘 다루었다는 걸 눈치챌 수가 있다. 그런 그들이 고려와 조선이라는 나라에 머물며 그들만의 독특한 생활방식을 쉽게 버릴 수는 없었을 것이다. 또한 거란족의 일부가 제주도에 남아 말을 키우며 그들만의 생활방식을 고수했다는 사실은 무척이나 놀라웠다. 재미있는 것은 북방의 유목민들이 자리를 잡게 되면서 고려와 조선이 육식의 참맛을 알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 한가지만으로도 사회는 엄청난 변화의 물결을 탔다. 도살로 인해 생겨나는 고기와 가죽을 통해 부를 축적하는 이들이 생겨나기 시작한 때문이다. 약삭빠른 벼슬아치들의 냄새나는 탐욕은 어디에서나 앞장을 섰다. 예나 지금이나 일하는 놈 따로 있고 먹는 놈 따로 있는 건 정해진 이치(?)인 모양이다. 그것뿐일까? 그들을 통제하고 다스리기 위해 그칠 줄 모르고 시행되었던 '제민화정책'은 끝내 자리를 잡지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산을 잘타고 총을 잘 다룬다는 이유만으로 병인양요와 신미양요때는 무조건적으로 끌어내 그들을 죽음으로 내몰기까지 했다. 정말 아찔한 일이 아닐수가 없다. 책을 읽으면서 느낀 것은 우리땅에 머문 이민족의 수가 생각보다 많았다는 거였다. 고려시대에도 있었다는 백정. 그들이 조선시대를 살아내면서 얼마나 지난한 세월을 보내야 했는지 우리의 역사가 말해주고 있었다. 같은 백정일지라도 고려시대와 조선시대의 의미가 왜 그렇게 달라야 했는지를 알 수 있게 한다. 그들이 그토록이나 천대받는 백정으로 살아가게 되는 과정과 이유가 내게는 너무 아프게 다가왔다.

 

각설하고, 백정으로 분류되었던 사람들은 대개가 한반도의 토착민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외부로부터 들어온 거주민들... 고려시대만해도 거란족은 화척으로, 몽골족은 달단으로 불리워졌던 그들이 조선시대에 와서 백정으로 불리게 되는 역사적인 사실은 어찌 생각해보면 부끄러운 일이다. 생활습성에 따라 소나 돼지를 잡으며 도축 전문가로 살았던 그들로 인해 조선시대에 쇠고기를 구워먹는 유행이 생겨나기도 했지만 우리가 익히 들어 알고 있었던 포수라는 말도 사실은 그들 이민족을 불렀던 말이라는 걸 지금에사 알게 되었다. 다시한번 생각해봐도 이 책의 주제는 정말 흥미롭다. 우리가 결코 단일민족이 아니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는 것은, 요즘 우리 앞에 우뚝 선 '다문화 가정'의 씁쓸한 현실을 역설적으로 말하고 있는 게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들기도 한다. 아주 오래전에도 우리의 바다를 지키기 위해 총을 들었던 그들을 다시 생각해야 한다고. 연원을 거슬러 올라가면 진짜 '서울토박이'는 한반도 재래 거주민이 아니라, 깊은 산에 둘러싸인 환경에서 호랑이와 표범, 멧돼지와 조류를 사냥하며 살았던 거란족의 후예라고 보는 게 옳다... 는 말은, 처음 듣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귀를 의심할 수도 있는 일이겠지만 이 책을 찬찬히 읽어보면 수긍하게 될 것이다. 외면당한 역사의 진실을 이제는 제대로 보고 알아야 할 때다. /아이비생각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