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라이의 나라
이케가미 에이코 지음, 남명수 옮김 / 지식노마드 / 200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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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사무라이'.. 이 말을 듣고 볼 때마다 나는 긴 칼을 옆에 차고 당당하게 활보하는 남자의 이미지를 떠올리게 된다.  책표지의 그림을 보면서 문득 오래전에 보았던 '무사 쥬베이'라는 애니메이션이 떠올랐고, 맹인이면서 기가 막히게 칼을 잘 썼던 맹인 검객 '자토이치'를 떠올렸다. 어찌보면 하나의 신화같은 이야기로 느껴질법한 말들이 실제로도 존재했을까 싶은 마음도 있었다. 일종의 문화적인 콘텐츠로써 자리잡았다는 그런 의미로써 생각하기도 했었다는 말이다. 수많은 권법을 내세우며 중국의 그 넓은 땅을 주름잡았던 영웅들의 이야기처럼 말이다. 하지만 이 책의 저자 이케가미 에이코는 단순히 사무라이라는 그 의미만을 이야기하지는 않는다. 그 '사무라이'라는 전통적인 이미지속에서 찾아내고 싶어하는, 그리고 현재까지도 버려지지 않는 그 '사무라이'의  정신이 남겨주고 간 것들과 연관적인 일본의 문화적 상황을 보여주고 싶어하는 것 같다. 

토지를 소유한 무인, 토지와 농산물의 지배를 경제적 기반으로 삼았던 무사 '사무라이'.. 사무라이란 원래 전문가 즉, 그들이 가지고 있는 군사적 기능으로 지배계급에 봉사하는 기능집단이었다. (89쪽)  일종의 성주가 아니었을까 싶은 생각이 든다. 자신의 토지를 경작하며 그에게 충성을 다하는 사람들이 그들의 주변에 모여 살았다. 아니 그렇게 모여 살도록 만들었다. 고대 일본에는 군대가 없었다는 말을 빌어 볼 때 그들은 영지를 개간하여 경지화한 후 허락을 얻어 경작하며 경제적인 기반을 다지게 되었고 그에 따라 은혜와 봉사의 교환 즉, 은혜를 입었으니 그를 위해 나는 봉사를 한다는 관념이 지배적이었다는 말이다.  그런데 그 은혜와 봉사의 개념이 지극히 개인적이라는 점이 참 특이하다. 거창한 말로 '나라를 위해서'라거나, 멀리 있는 '왕'을 위한 것이 아니라 자신에게 녹봉을 주고 자신의 삶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자신만의 '주군'을 위한다는 거다. 그리고 그들은 그런 관계를 명예롭게 여겼다. 자신에게 속해있는 가솔(여기서 가솔이란 단순히 자신의 가족들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영지를 통하여 먹고 사는 모든 이들을 일컫는다)들을 지켜주고 또한 자신에게 은혜를 배푸는 주군을 위해 기꺼이 죽을 줄 알았던 그들의 관계는 인간적인 신뢰를 바탕으로 하지 않는다면 생겨나지 않았을거라는 말은 지극히 공감하는 부분이기도 하다.

무사로서 무인의 명예에 대한 배경을 보게 되면 이렇다. 쉽게 흔들리지 않는 용맹심, 겁쟁이로 보여서는 안되며,  어떤 경우라도 사람을 올바로 이끌기 위해 노력하고 다른 사람을 대할 때 너를 좋게 보도록 신경써야 한다 라거나 의식적으로 자세를 낮추어라. 상관없는 사람일지라도 공손하게 대하라 라는 무사적 배경을 보여주는 부분에서는 상당히 놀라웠다. 일반적으로 무사 즉, 무인계급이라하면 문인과는 반대적인 이미지를 풍기게 마련이다. 나쁘게 말한다면 이런 저런 생각없이 힘만을 최고로 치는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사무라이의 배경을 보게 되면서 나는 저자가 왜 '명예'라는 말을 앞서 설명하려 했었는지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무사지만, 공사의 처리에 뛰어나야 하며 건전한 판단력을 유지해야 한다는 그 말속에는 너무도 많은 것들이 함축되어 있다는 생각이 들었던 까닭이다. 단순히 무예만을 으뜸으로 치지 않고 그 무예를 다룸에 있어서의 교양까지도 그들은 잊지 않았던 것 같다. 

자신의 주군이 죽자 그 복수를 하기 위하여 2년동안이나 준비를 해 왔던 47인의 사무라이 이야기는 정말 사실이었을까? 그 많은 사람들이 주군을 위한 복수를 하고 죽음을 당연스럽게 받아들였다는 자체는 정말 믿기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서서히 국가의 형태를 만들어가던 일본의 상황으로 볼 때 일종의 사병이기도 했을 그들만의 관계를 인정해주고 또한 보호해주었다는 사실은 새삼스럽게 우리의 역사를 다시금 돌이켜보게 만드는 계기도 되었다. 조선의 역사 같았으면 그 사병으로 인한 반란을 미리 염려하여 국가적인 차원에서 무슨 수를 쓰더라도 썼을 것이다. (실제로도 그런 상황들은 많이 보였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에게는 반란이나 반역 따위는 할 생각조차 없었으며 지배계급이 원할 때는 언제든지 자신의 군대를 보내줄 수 있었다는 점에서 그들에게는 뭔가 다른 게 있었던거라고 나는 믿어의심치 않는다. 무엇이었을까? 무엇이 그들을 그토록 강한 연대감으로 묶어놓았을까?

나는 가끔 이런 생각을 해 본 적이 있었다. 우리가 그토록 크게 생각하고 받아들였던 유교적인 관념이 일본에게는 어떤 영향을 미쳤을까? 하는... 이 책을 읽으면서  부모에게 먼저 '효'를 다하기보다 주군을 위한 '충'이 먼저였다는 일본의 신유교를 알게 되었다.  일본식 신유교는 이에 즉, 家를 번영케 하는 유일한 길은 공무에 헌신하는 거라고 분명하게 말하고 있었다. 다시말하자면 국가적인 논리에 따라 '충'은 공적 가치인데 반해 '효'는 사적인 가치로 여겨 '충'을 우선적으로 여겼던 것이다. 어찌 생각해보면 일리있게 들리기도 한다.  물론 그 시대적인 상황에 맞추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살아가느냐에 따라 문화는 달라지기 마련이겠지만 자신의 처지에 맞게 받아들이고 수정할 줄 알았던 일본적인 시각에 왠지 부러움마져 느껴졌다.

중국에 조금이라도 가까워지기 위해서 중국에 맞는 수많은 제도들을 우리에게 접목시키려 했던 우리의 역사와는 다르게 일본은 중국식 유교사상을 다 받아들이지는 않았던 것 같다. 단지 유교의 도덕적 특성만을 정식이 아닌 다른 방법으로 이용하려고 했다. 그랬기에 그들의 토착적 관습에 유교의 영향력이 깊게 침투하지 않았고 가족의례나 친족관습 등에는 어떤 변화도 일어나지 않았다고 한다. 유교적 특징을 일본식으로 변화시켰다는 말이다. 어찌되었든 그들은 그들만의 정체성을 그대로 살려둘 수 있었다는 말도 되는 것 같다. 그들에게 있어서는 많은 문제를 일으켰던 종교적인 의미 또한 그렇게까지 위협적이지 않았던 듯 하다. 

장기적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 단기적인 욕망을 스스로 규제할 줄 알았으며 개인의 충동이나 욕망을 사회조직적으로 정의한 목적과 조화시킬 줄 알았던 사무라이의 명예문화는 책을 읽는 내내 나에게 놀라움을 안겨주었다. 사무라이 문화를 통해 바라볼 수 있었던 자존심을 지키기 위한 확고한 명예심이 경쟁적인 개인성과 질서있는 의식, 그리고 성실성을 뒷받침해 주었다는 말 또한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무사 영주의 직무가 단순하게 군사영역이나 정치활동에 한정되어 있지 않았고 재산이나 자원, 인재를 등용하는 복잡한 관리체계까지도 포함되어져 있었으니 그들은 그들 나름대로 농업생산력을 개선하는 수단을 강구해야 했으며 그들 영지내에서의 농업뿐만 아니라 상업활동등을 통해 수입을 얻으려고 했다는 말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자립적인 의미를 보여주고 있음이다. 한마디로 그들은 노력하지 않으면 안되었던 거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일본의 전통이라는 말조차도 나는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 책을 통해서나 매스컴을 통해서 알고 있는 아주 단면적인 지식이 전부라는 말이다. 이런 책을 통해서 조금이나마 그들의 내면을 알 수 있게 된다면 그것만큼 좋은 수확도 없을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고 이 책을 읽음으로써 그들의 문화를 다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는 말은 아니다. 일본인으로써 현재의 그들을 있게 해 주었던 것, 일본의 전통에 대해 도움말이 될 수 있기를 바랬던 저자의 말처럼 안다는 것은 정말 힘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해 본다. 제대로 보여주며 제대로 볼 수 있다는 것,  또한 제대로 안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가에 대해서 생각해 보게 된다. 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일본을 얕보는 나라가 한국이라는 역자 서문의 말이 왠지 우스갯소리처럼 들리지 않는다. 그런 우리이기에 정말 일본에 대해 제대로 알 필요가 있지 않을까 싶다. /아이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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