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러티브라는 용어가 유행한다. 이야기? 아니면 사건의 전말과 국면을 실감나게 전개(이야기)하는 것 정도로 번역이 될 수 있다. 난데없어 보이는 내러티브를 꺼내 든 이유는 매트릭스라는 영화를 내러티브의 차원에서 해석할 때, 기존에 바라보지 못했던 새로운 세계를 엿볼 수 있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은 매트릭스의 주제를 가상과 실재의 혼란 즉, 무엇인 실재이고 무엇이 가짜인지를 구별할 수 없는 상황에서 실재라는 진실을 찾아가는 것으로 해석한다. 영화의 대사를 그대로 빌리자면, 사막의 진실(the truth of the desert)을 추구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측면에서 매트릭스를 인식론(무엇인 참인지를 어떻게 밝혀낼 수 있는지에 대한 논의)의 관점에서 이야기를 주고받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굳이 매트릭스에 기대지 않더라도 일상적으로 사람들은 사실과 거짓이라는 이분법적 관점에 의해 세상을 바라보는 경향을 보인다. 이렇게 매트릭스를 인식론의 관점에서 보는 사람들은 다음의 예를 들어 사람들을 설득하려 한다. "어떤 사람이 거짓을 말하고 있는 것을 알고 있는 사람에게 그 사람의 이야기는 아무런 반응(흥미, 의미의 부여, 의심 등)을 유발하지 못한다. 이미 거짓말이라는 것을 알고(인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허구의 세계에서 반응은 없다. 반응은 진실에 대한 유혹에서 비롯된다. 매트릭스가 관객들의 반응을 유발하는 것은 그 속에 진실을 추구하려는 인간 심리를 자극하는 혼란이 들어 있기 때문이다. 바로 사막의 진실이지."라고. 이들은 매트릭스를 인식론의 관점, 그것도 진실과 거짓이라는 이분법적 관점에서 해석한다.
이에 비해 내러티브의 관점에서는 이야기의 내용(인식론의 관점)보다는 이야기의 전개 방식에 더욱 관심을 갖는다. 앞의 예를 빌자면, 설사 그 사람이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을지라도, 전개 방식에 관심을 갖고 있는 사람은 거짓말에 반응하게 된다. 아니 역으로 말하면, 실제 우리는 많은 경우에 거짓말인줄 알고 있는 경우에도 그 말에 반응을 보이곤 하는데 이는 거짓말이 말해지는 방식에 관심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요컨대 반응은 내용이 아니라 방식에 관계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매트릭스가 관객의 반응을 유발하는 이유는 가상과 실재라는 내용 때문이 아니라, 가상과 실재가 다루어지는 방식 때문이라는 결론을 내려야 할 것 같다.
일상을 반성해 보기로 하자. 우리는 우리가 관계를 맺고 있는 많은 사람(친구, 가족, 동료 등)들에 대해 지금 내가 그들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은 사실을 알고 있다고 생각한다. "내 남편은 이런 저런 사람이야. 그 상황에서 그런 행동을 한 이유는 이러저러한 것이야. 어제 일어난 일은 이러저러하지. 등 등" 마치 사실을 알고 사실을 말하는 것처럼. 그러나 잠시 돌이켜 생각해 보면, 내가 사실이라고 알고 말하는 것들은 관련된 몇몇의 파편을 자신의 믿음과 경험에 의존해서 스스로 재구성한 것에 지나지 않음을 알 수 있다. 나만이 그런 것이 아니고 우리 주위의 모든 사람들 또한 이러하다. 따라서 우리가 현실이라고 믿고 있는 세계는 실제로 만들어진(재구성) 수많은 개인적 집단적 세계가 네트워크 방식으로 연결되어 있는 것에 지나지 않는 다. 매트릭스에서 인공 지능(컴퓨터)이 만들어 놓은 허구의 세계가 오히려 우리가 실재라고 믿고 있는 현실보다 훨씬 체계적이고 논리적이며 예측이 가능하다.
우리는 실재라는 현실에서 살고 있는 것이 아니라 허구(가상)와 진실(실재)이 말해지는 방식에 관심을 갖는 내러티브의 세계에서 살고 있다. "그래서 어쩌란 말이냐"라고 묻는다면, 이렇게 답할 수밖에 없다. "그런 질문이 곧 내러티브다"라고. -지도교수님의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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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 혼자서 무지 헷갈려 하고 있습니다. 내 머릿속에서는 내용과 방식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한없이 돌고 있습니다. 고리가 한군데서 탁 풀렸으면 좋겠는데 명확하게 잡히지를 않습니다.
우선! '그래서 어쩌란 말이냐'라는 질문이 내러티브인 이유는 그 질문이 위의 글에 마주하는 방식을 보여주는 질문이기 때문인가요?
또! 저에게 매트릭스는 가상의 너머에 실재가 있다고 말하는 영화로 읽힙니다.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현실을 기호들이 춤추는 허구라고 보는 저에게는 그 매트릭스의 (내용)이 이분법적 사고를 보여준다고 생각했습니다.
제가 ' 매트릭스는 이분법적 사고를 가지고 허구와 실재가 존재하는 방식을 보여주고 있다.'라고 말한다면, 이는 인식론적 관점에서 해석한 것인가요? -내 질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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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님께; '그래서 어쩌란 말이냐'라는 질문은(질문자의 입장에서 볼 때) 일차적으로 이것이 옳은지 저것이 옳은지 즉, 내용에 관심을 갖는 질문이다. 이러한 면에서 내러티브를 부정하는 질문으로 볼 수 있다(그래서 혼란을 더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차적으로 이 질문은 내러티브를 주장하는 글을 대하는 불특정인들이 글을 마주하는 전형적인 방식으로 볼 수 있다. 즉, 일종의 내러티브를 보여주는 질문으로도 볼 수 있다는 것이다. 내러티브는 다른 것(예를 들면 내용)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현상에 대해 관심을 갖은 이유가 내용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현상의 내러티브에도 들어있음을 주장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저녁님의 혼란스러움은 의미(내용)에 정초하는 관점에서 빌롯된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리고 현상(글)을 의미의 관점에서 대하는 것은 일종의 사고 방식에서 비롯된 것으로서 그 사람의 내러티브를 읽게 해준다. 따라서 저녁님의 혼란은 의미의 진위 또는 명석에 관심을 갖는 내러티브의 단상을 보여준다.
또한 저녁님의 ' 매트릭스는 이분법적 사고를 가지고 허구와 실재가 존재하는 방식을 보여주고 있다.'라는 것은 인식론적 관점에서 매트릭스를 해석하는 전형으로 보인다. 이렇게 매트릭스를 인식론적 관점에서 해석하는 것이 어떤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니다. 아니 오히려 그러한 접근이 적극적으로 요구된다. 그러나 이와는 달리, 매트릭스에서 인식의 문제를 다루어가는 방식 그 자체에 관심을 가질 수도(가질 필요도) 있으며, 그 순간 우리는 내러티브에 세계에 발을 들여 놓은 것이 된다. 그리고 그러한 내러티브의 세계에서는 진위(내용)보다는 방식(구성)이 전경이 되어, 다른 의미(내용적 의미가 아니라 메타적 의미)을 구현한다. 같은 방식으로, 앤 셜리님의 관찰자 선택을 의미(내용; 왜 그러한 선택을? 무엇을 함의하고 있는지? 등)의 관점에서 바라볼 수 있지만, 동시에 현상(원글과 덧글의 직물짜기 과정)에 대해 어느 순간 자신이 반응하는 방식을 보여 주는 관점에서 이해할 수도 있다. -지도교수님의 답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