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난 내가 늘 원했던 그런 삶을 살고 있었다. 가족에게서 떨어져, 나를 잘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 곳, 대부분 내 이름조차 모르는 곳에서의 삶, 그래서 얼마간 내 마음 내키는대로 자유롭게 다닐 수 있는 그런 삶. 그런 상황이 되면 행복감, 희열, 소망이 성취되었다는 만족감 등이 찾아오리라 생각했지만 내 마음속에서는 그 어떤 것도 찾아볼 수 없었다. - P126
그 겨울이 천천히 지나고 찾아온 봄. 내게는 길고 긴 시간이었다. 지은에게는 아닐 것이다. 알면서도 바라고 있다. 그만 잊어버리기를. 틈만 나면 베란다에 앉아 창밖을 보고 있는 것을 지켜보는 것도 견디기 힘든 일이다. 그 눈으로 보는 십일층 아래 저 아득히 먼 땅이 문득 가깝게 느껴지기라도 하면 어떡하나. 나에게도 몇 번이고 그런 순간이 있었다. 뛰어내리면 안아줄 것처럼 저 땅이 나를 반기는 순간이다. 상상만으로도 끔찍하다.
코미디에 호러를 더해보라. 그것이 우리가 살고 있는 실제 인생이다.
"그 사람이 왜 그랬는지, 혹시 저 때문이었는지 아직도 그 이유를 확실히 모르는 채 살고 있습니다. 아까 선생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저도 제 삶의 일부는 그렇게 장례식처럼 살고 있어요." ".... ""그런데 신기한 것은 그래도 삶은 계속되더군요." 사이를 두었다가 나는 앵무새처럼 대꾸했다. "네, 그러나 삶은 계속되더군요." - P7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