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로드의 개 로알드 달 베스트 단편 2
로알드 달 지음, 정영목 외 옮김 / 교유서가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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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의 이야기꾼이라는 수식어가 아깝지 않은 로알드 달의 단편집을 만났다. 그의 작품은 꽤 많음에도 불구하고 내가 아는 건, 남들도 다 아는 <찰리와 초콜릿 공장>, <마틸다> 뿐이었는데 이번에 <클로드의 개>를 읽으며 동화 뿐만 아니라 어른들의 이야기도 맛깔스럽게 참 잘 쓰는 작가라는 걸 알게 되었다. 어렴풋이만 알고 있던 로알드 달의 이야기에 내가 얼마나 흥미를 느낄지 처음엔 긴가민가했지만 최면에 걸린 듯 나도 모르는 새 그 다채로운 매력이 가득한 입담에 중독되었다는 걸 인정해야겠다.

 

표제작인 '클로드의 개'는 덤앤더머같은 클로드와 고든 두 인물을 중심으로 나뉜 연작단편으로 분량이 제일 많았지만 가벼운 유머를 풍기며 자연스럽게 그의 이야기 속으로 빠져들게 했다. 내세울 것 없는 보통의, 혹은 그보다 좀 더 어수룩한 느낌의 그들은 황당하고 유치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사뭇 진지한(듯한?) 태도로 나를 웃프게 했고, 일확천금을 노리며 칠전팔기하는 모습으로 짠내를 유발하지만 그렇다고 마냥 방심해서도 안된다. 그게 바로 작가가 노리는 한 수니까.

 

이들의 이야기가 계속 이어지는 줄 알았다가 화자가 전환되면서 약간 아쉬울 뻔 했는데 그 또한 잠시, 다른 세상 속으로 독자들을 끌고 가는 능력이 보통이 아니다. '조지 포지'의 화자인 조지 또한 웃픈 자아성찰과 고해성사로 안타까움을 자아내는데 어쩌겠는가, 그렇게 타고난 인생인 걸 받아들이는 수 밖에. 적나라하게 그의 치부를 드러내며 짓궂게 풀어내는 이야기 속에서 사소하지만 소소한 재미를 맛보게 하더니, 태어난 지 6주밖에 되지 않은 아기의 몸무게가 자꾸 줄어들어 걱정인 메이벌과 그 상황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그의 남편 앨버트의 이야기를 들려주는데 제목은 하필 '로열 젤리'다. 읽다보면 친절하게도 짐작가능한 미끼가 여기저기 포진되어있다. 혹시 벌써 뭔가 감이 오시려나.

 

이쯤 되니 이 책은 각 단편마다 장르가 다른건가 하는 생각이 스멀스멀 들 정도였는데... 제목처럼 달리지 못하고 조금 심심했던 폭슬리를 지나쳐 '소리 잡는 기계'는 초조한 분위기로 웃음소리가 점점 작아지게 하는가 싶더니 '윌리엄과 메리'에서는 역시 이대로 끝이 아니었군, 하고 무릎을 탁 치게 만들었다. 뭐지 이건? 여긴 어디지? 하며 생각지 못한 이야기의 흐름이라 괜히 작가님의 머릿속이 궁금해졌달까. 이어지는 마지막 두 단편 또한 이런 깜찍한 복수극이라면 눈 감아주고 싶을만큼 통쾌한 기분으로 읽었는데 작가님이 여성에 대해 가지고 있던 시선을 짐작할 수 있게 하는 내심 만족스러운 마무리였다.

 

동화같은 이야기인 줄 알았더니 오스스한 반전을 노리질 않나, 눈물콧물 짜며 슬퍼할 준비를 해야하나 했더니 사이다처럼 시원한 반전을 안겨주고 게다가 그 모양새 또한 어찌나 기발한지. 작가님이 그리는 세상은 대체 끝이 어디였을까. 미래와 과거, 혹은 그 어디도 아닌 다른 동화 속 상상의 세계로 여행을 끌려 다녀온 기분? 다만, 그 일련의 과정들 속에 기괴하고 엽기적인 장면들이 더러 있어 호불호를 나뉘게 하는 계기가 될 수도 있겠다 싶지만, 대수롭지 않게 툭 내뱉은 한마디에도 빵 터지는 어쭙잖은 나에게는 우선 호(好)였던 걸로.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사적인 감상으로 작성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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