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후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87
나쓰메 소세키 지음, 윤상인 옮김 / 민음사 / 200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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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 소설과 그냥 소설의 차이?


누군가 오페라를 보곤 실망했더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이유를 물었더니 그이 왈

“난 또 심오한 어떤 주제가 있나 하고 보면 그게 다 사랑이야기더라고요.”

즉 오페라가 연극이나 뮤지컬과 큰 차이가 없단 말이겠다. 예로 푸치니의 ‘나비부인’이 돌아오지 않은 사랑의 비애를, 셰익스피어의 ‘오델로’에서 이아고의 질시로 인한 오델로와 캐시오의 삼각관계 구도는 어쨌든 사랑이 주체가 된다. 소설 또한 마찬가지다. 보다 대중적이냐 아니냐를 차치한다해도 적어도 이야기라면 표면적으론 사랑 얘기를 빼놓곤 말하기 어려운지 모른다.

이는 다른 주제를 통해 일상을 사는 무딘 사람들의 감정선을 건드리기란 그만큼 어렵다는 말이 될 것이며, 모든 인간이 예술가가 아닐 바에야 작가는 독자나 관객의 이야기와 무관치 않은 '흥미'를 확보해야만 할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비부인’이 한 여인만의 몰락을 다룬 신파가 아닌 18세기초 서양문화 유입이란 시대적인 정황과 그 결과를,  ‘오델로 ’ 역시 인간 내부의 악을 다루었다는 관점에서 본다면 문학에서 통속성이란 ‘당의정’이라 칭할 만하다.

이쯤에서 ‘그 후’의 이야기를 해보려 한다. 19세기말 가치관의 혼란을 겪고 있는 인물의 심리를 따라가며 이야기는 서술된다. 주인공 다이스케는 무료한 일상을 그림 감상과 독서 피아노 연주 등 현학적인 취미로 메우는 지식인이며, 그의 주위에는 가부장적인 아버지와 현실에 충실한 형과 형수, 그리고 절친한 친구인 히라오카와 그의 아내 미치요가 있다. 다이스케는 자신과 한때 연이 닿았던 미치요의 대한 감정에 고민하다가 맞선을 보란 집안의 종용에 친구의 처인 미치요를 선택하기로 결심한다.

이까지 보면 통속 소설의 맥락과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인다. 모든 파행적인 것들이 그렇듯 그들이 택한 사랑은 남들의 눈에 비도덕적이며 파괴적인 성질을 지닐 수밖에 없다. 집안이 정한 정략 결혼을 했더라면 더 쉽고 안락한 생활이 보장되었고 건강하고도 아름다운 아내(즉 건전한 관계)를 유지할 수 있었음에도 말이다. 경제 활동 한 번 해보지 않은 그에게 일자리를 알아보러 가는 장면에선 타들어가는 태양빛과 보이지 않은 그림자로 그의 발걸음은 더욱 무겁다.


문득 빨간 우체통이 눈에 띄었다. 그러자 그 빨간색이 다이스케의 머릿속을 헤집고 들어와 빙빙 돌기 시작했다. 양산집 간판에 빨간 양산 네 개가 겹쳐진 채 높이 매달려 있었다. 양산 색깔이 또 다이스케의 머리로 들어와 뱅글뱅글 소용돌이 쳤다.


그가 그후에 한 선택


그의 선택은 나와 있지 않다. 다만 우체통과 양산과 전신주가 타며 머릿속을 헤집는 불길조차 그는 ‘머릿속이 다 타버릴 때까지 계속 전차를 타고 가겠’노라고 한다. ‘그 후’에 다이스케가 감내해야할 그의 불길은 더욱 뜨거워 보인다. 그는 왜 그러한 선택을 해야만 했을까. 얼핏 보면 그의 선택은 무모함이나 만용인 듯한 느낌까지 준다.

단순히 그의 탐미주의적 성향 때문일까. 그가 읽는 소설과 보는 그림과 호사가적 기질이 그렇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가 묵묵히 감내해야 했던 것은 남의 것이었던 사랑이 아니라 그가 산 시대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는 친구 히라오카와의 대화에서 엿볼 수 있다.


왜 일하지 않느냐고 말하지만 그건 내 탓이 아니야. 말하자면 세상이 그렇게 만드는 거지. 좀 더 거창하게 말하면 일본과 서양과의 관계가 잘못되었기 때문에 일하지 않는 거야. 우선 일본만큼 빚을 져서 가난에 허덕이고 없는 나라는 없을 거야. 자넨 그 빚을 언제 갚을 수 있다고 생각하나? 그야 물론 외채 정도야 갚을 수 있겠지. 하지만 그것만이 빚이 아니야. 일본은 서양에서 빚이라도 얻지 않는다면 도저히 꾸려나갈 수 없는 나라야. 그러면서도 선진국이라고 자처하고 있지. 그러고는 어떻게든 선진국 대열에 끼려고 하고 있어. 그러니 모든 방면에 걸쳐서 깊이 보다는 넓이를 확장해 선진국처럼 벌려놓은 거야. 무리하게 벌려 놓았기 때문에 더욱 비참한 거야. 소와 경쟁을 하는 개구리처럼 이제 곧 배가 터지고 말 거야. 그 영향은 전부 우리들 개인에게 미치게 될 터이니 두고 보게나. 이렇게 서양의 압박을 받고 있는 국민은 정신적으로 여유가 없으니 일다운 일을 할 수 없지. 모두 빡빡하게 짜인 교육을 받고 그러고 나면 눈 돌릴 틈도 없을 정도로 혹사를 당하니 너나 할 것 없이 신경쇠약에 걸리게 되지. 한번 이야기를 시켜보게나. 대개는 바보일 터이니까.


다이스케가 자신과 시대와의 불화를 이야기하는 이 대목은 근대화된 시기의 국내 소설에서도 비슷한 캐릭터에서도 찾아 볼 수 있다. - 염상섭의 ‘삼대’에서 덕기는 강한 삶의 신조를 지닌 조부나 근대 문물에 경도된 아버지와도 다른 우유부단한 지식인의 전형이다. 또한 현진건의 ‘술 권하는 사회’에서도 주인공에게 술을 권하는 사람은 다름 아닌 일제하의 답답한 사회라 하였다. 그들은 주색으로 인생을 낭비하고 시대를 고민하지만 별다른 대안이 있어 보이진 않는다.-

모든 면에서 독립하고 싶지만 부모의 지원을 받지 못할까 두려워하는 속물성과 주체적이며 독립적 자아와의 충돌, 일을 할 수 있는 능력이 됨에도 하기 싫은 나태함과 시대를 걱정하는 지적인 면모와의 상충은 인간이기에 지닐 수 있는 고뇌이며 이 소설이 통속 소설이 아닌 이유가 될 것이다.

그들은 무슨 일이라도 할 수 있었지만 결코 아무 일이나 하는 사람은 될 수 없었다. 현실을 취하지 않거나, 취하면서도 암울한 그림자를 드리우며 살 수밖에 없는 나약한 군상들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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