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일이 그렇겠지만 영화를 주관적인 관점에서 만들 때(볼 때도) 오류는 상당한 편견이 작용한다는 점일 것이다. 원작은 누가 뭐래도 원작이다, 라는. ‘태양은 가득히 Plein Soleil’(1960년)와 ‘리플리 The Talented Mr. Ripley’(2000년)은 패트리사 하이스미스의 소설「The Talented Mr. Ripley」를 원작으로 했다 한다. 주인공 이름이 같고 전체적인 플롯도 비슷하지만 르네 끌레망과 앤소니 밍겔라 감독의 눈은 사뭇 달랐던 듯 보인다. 두 편의 영화를 보고 원작을 읽어봐야겠단 생각이 들었던 이유는 감독들의 각색의 정도의 의문도 있지만 영화를 볼때 우선 이야기 구조를 살피는 습성 탓에 말이다. 시간이 나면 읽어봐야겠다.


비디오 예고편에서 눈길을 끌어 골랐던 리메이크 작품 [리플리]이야기를 먼저 할까 한다. 나는 보다가 이 영화의 엄청난 구라(?)에 눈이 돌아갈 뻔 했다. 수많은 조작과 사건의 우연성을 어쩜 그리 남발하는지. 원작이 쓰여진 게 50년대라 하지만 그래도 영화를 각색할 땐 스토리의 개연성에서 관객이 납득이 가게끔 해야 할 것 아닌가. 원작이 쓰였던 50 년대조차 전근대적인 수법이 먹히는 시기가 아니며, 최초의 인공위성 스푸트닉 호가 당대에 우주를 날아다녔다는 사실을 밍겔라 감독은 망각한 게 아닐까. 생각해보니 이 감독의 전작 [잉글리쉬 페이션트]는 아름다운 영상에도 불구하고 왠지 그닥 내킨 영화는 아니었던 것 같다.

먼저 주인공 [리플리]에서의 톰 리플리가 석유 재벌 아들인 디크 그린리프를 찾아 프랑스로 떠나는 설정부터 내키지 않았다. 모든 걸 소유한 아버지가 아들을 찾고 싶다면 여러 방법이 있었을 텐데 굳이 생면부지의 사람에게 거금의 돈을 들려 보낸 점은 아무래도 작위적이다.

둘째, 재벌 아들 디키 또한 대학때 친구라는 말에 쉽게 그와 동화되었다는 점은 그렇다 쳐도 플롯의 허점은 후에 톰이 살인을 한 후 그 수사과정에서도 난무한다. 범죄에 쓰여진 차에 지문 조회는 왜 못하며, 디키의 사체를 버린 섬 근처를 샅샅이 뒤져보는 최소한의 수고로움은 절차조차 생략되어 있다. 그러므로 쉽사리 이루어지는 여권 조작이나 수표 조작처럼 엄청난 결함은 딴지 걸 의욕을 잃어버린다.

개인적인 아쉬움은 디키 역의 주드 로가 리플리 역에 더 적합하지 않았을까 하는 점이었고 (캐릭터의 특성인진 몰라도 맷 데이먼이 너무 수줍은 연기를 한 탓이다.) 반면 이 영화에서 좋았던 점은 또 다른 살인을 암시하는 열린 결말로 끝맺는 설정은 특이하고, 전작엔 흐르지 않는 재즈 선율이 나른하다.


 후에 본 ‘태양은 가득히’는 좀 자조적인 심정에서 봤다. ‘뭐 그 내용이 그 내용 아니겠냐’ 싶은데도 꼭 봐야 할 것 같은 궁금증 때문에. 하지만 천만의 말씀. [올드보이]를 영화로 먼저 보고 그 다음에 만화를 봤을 때처럼 그게 잘못된 생각이었다는 걸 통감해야 했다. [태양의 가득히]의 톰 리플리는 매력적이지만 냉혈한으로 그려진다. 예고된 잇다른 살인을 하면서도 시체 옆에서 태연히 식사를 하고, 거리낌없이 친구의 애인을 유혹하는 식이다. 그러므로 [태양은 가득히]의 톰은 인간적이라기보단 치밀하고 특이한 캐릭터에 속한다. 흥미로운 캐릭터였고 사건 전개도 공감이 갔다. 특히 수사관을 피해 끊임없이 도망치는 장면이나 애인을 잃어버린 마르쥬를 유혹하는 장면에서 톰은 더할 바 없이 매력적이었다.(이건 순전히 알랭들롱의 조각상 같은 외모탓일지 모르지만. 지금은 아주머니가 된 분들이 육십년대 왜 그토록 그에게 열광했는지 비로소 난 이해했다.)

비록 두 작품 다 주인공들의 살인은 우발적이었지만 감독의 의도는 그 동기에서 극명한 차이가 있다. [리플리]에서는 주인공이 동성애 캐릭터로 그려지기 때문이다. 톰 역인 맷 데이먼은 디키의 연인으로 분한 마지 역의 기네스 펠트로보다 미남이고 매력적인 디키(주드 로)를 사랑하는 역할이다. 자신을 지루해하고 경멸하는 디크를 죽이고, 어쩔수 없이 하는 살인은 차라리 인간적인 면이 있다. 그러니 [리플리]에서의 톰은 유약하면서도 어쩔 수 없는 상황에 자신을 방치하는 비열한이다. [리플리]에서 살인 동기는 사랑하는 이를 바라보다 좌절하는 인간적인 고뇌에, [태양은 가득히]는 부유함을 동경하는 자의 자조에 가깝다고 느꼈다.

인간을 살아가게 하는 동기가 되는 것은 하찮은 욕망에서 비롯된다고 영화는 이야기한다. 그게 밥이든,색이든, 재물이든, 학문이든 간에. 사회 제도가 허락하는 한 사람들은 그것들을 추구할 것이고 또다른 [태양은 가득히]들은 끊임 없이 만들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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