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예전 학교 다닐 때 문화 교실이란 게 있었다. 작은 영화관에 몇 학급의 아이들을 몰아 넣고 그에 걸맞는 이데올로기를 주입시키던. 반공주의라는 미명하에 말이다. 무엇을 상영했는지는 자세히 기억이 안 나지만, 그때 영화는 오락물 몇 가지와 더불어, 이승복 어린이의 영웅담 같은 다분히 목적성 짙은 교육용 매체의 역할을 다분히 했었던 것 같다.
그런 방화를 보며, 동시에 만화 '똘이 장군'을 떠올리곤 했는데, 당시 무슨 무슨 날이 되면 티브이에서 방영해주던 그 만화영화의 결말 부분에 대해 신기해하곤 했다. 뭔고 하니 북한의 김일성 부자는 인간이 아니었던 것이다. 그들은 늑대였고 똘이장군의 통쾌한 표적감이 되었으며, 종국에는 늑대의 탈을 뒤집어쓴 새끼 돼지였다,는 설정 말이다. 어린 나이에도 물론 그게 사실일 거라는 확신은 하지 않았지만 왜 인간으로 표현이 안 되었을까 심각하게 생각해 보곤 했던 것이다. 뿐만 아니라 교육도 마찬가지여서, 교과서에는 북한 체제보다는 자유 민주주의 국가인 대한민국의 우월성을 사회나 도덕책에서 심심찮게 볼 수 있었다. 그건 우리가 자랑스러운 한민족이며 단일 민족이라는 사실보다 더 확고부동해 보였다. 당시 군부체제가 이끄는 나라가 반공주의를 표방함이 당연했으나, 요즈음은 남북한의 화해 무드 때문인지 상호 불신 조장을 하는 내용은 교과서에도 싸그리 어디론가 사라졌다. 어쨌든 후로 내가 생각한 건 시선이 변하면 모든 것이 변한다는 정도,였다. 그것이 비록 남루한 현실일지라도.
나를 영화관으로 이끈 것은 사상 초유의 제작비를 들여 만든 영화라는 소문에 대한 호기심반, 역사물에 민감해야 한다는 일종의 국민으로서의 의무감 반이었던 것 같다. 영화를 보며 마치 전장에 든 듯한 효과음이나 살점이 떨어져 나가고 피 튀기는 영상에 나 역시 눈이 휘둥그레지기에 충분했다. 전투신 같은 장면 묘사가 극히 사실적이었다는 건 누구도 부정하기 힘들 것이다. 또한 감독이 말하려던 시대나 상황을 초월하는 가족애는 공감가는 것이었고, 그걸 표현하기 위해 남한군의 심리 묘사에 치중했다는 것, 그리고 형제는 다름 아닌 우리 민족을 상징한다는 것까지 충분히 미루어 짐작되는 바가 있었다. 하지만 엔딩 자막이 올라가면서 나는 어쩐지 정체모를 횡횡함을 느껴야 했는데 그건 '뭔가 이프로 부족해' 하는 뜬금 없는 상실감이었다.
작가가 사건의 구성이나 인물을 형상화 할때 염두에 두어야 할 점은 필연성에 있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동생(진석)의 심리가 급작스럽게 변한데 대한 개연성이 부족했었던 것 같다. 형의 말에 순종적이며 반기를 들때도 제풀에 화를 내고 가버리는 유약한 캐릭터가 갑자기 피튀기는 전쟁터에 자원하고, 형을 찾기 위해 적진을 스스로 뛰어 드는 모습은 낯설었다. 그가 정말 형을 원했다면, 형이 권할 때 제대를 하고 가족을 부양했어야 할텐데, 형에 대한 단순한 반항심 때문에 극한의 현장인 전장에 남는다는 이야기,는 사건의 동기 부여가 부족했었던 같다. 또한 마지막 전투에서 형제가 가까스로 만난다는 설정 또한 우연적인 면이 강하다는 느낌.무슨 고대 소설도 아닐 진대 넓은 전장에서 오래지 않아(다 망가진 모습이긴 하지만) 만난다는 필연은 작위적인 느낌이 강하다. 오히려 서로가 머지 않은 자리에서 처참한 시신으로 발견이 되었다고 하면(가슴은 아프지만) 이야기에 신뢰성을 부여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전쟁의 잔인함을 머리론 알지만, 폐부까지 깊숙히 느끼지 못함은 당대를 살지 못했던 사람들의 피상적인 아픔일 것이다. 극단적인 경우로 그것은 사람들이 이 모씨가 자신의 몸으로 전쟁의 희생자를 표현하려던(?) 사진들을 얄팍한 동정과 다름아니게 받아들이며 모멸하는 이유가 될 것이다. (더군다나 그 시선이 상술로 온통 왜곡되었음에랴.)
강제규 감독이 어떤 의도로 전쟁을 표현하려 했는지를 생각해 본다. 그는 초유의 한국형 블랙버스터 영화를 만들고자 했고, 동시에 전후 세대들에게 전쟁의 아픔을 보여주려 했을 것이다. 감독은 그만큼의 감동과 더불어 관객들의 눈물샘을 자극하는 데는 성공했다. 그러면 된 것일까. (여기서 그렇다고 하면 더 할말이 없을 듯 싶다) 하지만 어쩐지 나는 그것을 위해 애써 가족주의에 편중한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전쟁 후에도 피폐하고 헐벗은 거리의 모습대신 따스하게 바라보려는 감독의 시선은 가족 상봉에 대한 따뜻한 메시지를 담으려는 의도였을 것이다. 하지만 한편 그건 전쟁을 겪지 못한 자의 피상적인 감상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고개를 들었던 건 왜일까.(다른 영화이지만 '실미도'에서 군인들의 버스 폭파 장면에서 피로 전우애를 다짐하는 부분 역시 그러했다. 감독이 '이 장면에서 필시 관객들이 울어야 해'그렇게 주문을 하기라도 한듯 불필요하게 많은 감정적 대사들은 영화의 사실성을 떨어뜨렸다는 생각이다. 정서를 극한으로 끌어올리려는 무리한 요구 때문에.) 물론 아직도 민감한 문제인 이데올로기를 진지하게 바라보기엔 시기 상조일 수도 있고, 상업성과 무관하지 않을 분야인 영화로 만들어 관객 동원에 성공한다는 보장도 없을 것이다. 그렇다고 반공주의로 돌아가기엔 시대 착오적인 일이 될 테다. 이데올로기를 강요하던 시대는 갔다. 하지만 그렇다고 사실적인 면보다 극한의 감정으로 일관하는 영화는 기실 시나리오는 허구에 기반한다는 명제를 새삼 떠올리게 했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내가 불만을 품었던 건 영화의 플롯이었지, 나 역시 눈물을 닦고 극장문을 나선 사람중에 하나이다. 분단의 아픔은 어떤 식으로든 형상화시켜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이 영화를 만든 분들의 노고에 어쨌든 감사를 드리고 싶은 마음) 영화로든 다른 분야로든 이러한 시도는 계속되어야 한다. 우리 스스로 자신의 자리를 망각하지 않도록, 다시 한번 현실을 직시하는데 도움을 주도록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