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저드 베이커리 - 제2회 창비 청소년문학상 수상작
구병모 지음 / 창비 / 2009년 3월
평점 :
절판



달콤한 빵들이 있는 그 곳

'위저드 베이커리'를 읽다보면 문득 갓 구운 따뜻한 빵이 먹고 싶어진다. 어떤 빵들이든 그 맛뿐 아니라 마법의 효능까지 있다면 얼마나 신기할 것인가. 마법은 현실의 바람을 압축해 놓는 장치이다. 현실에서 불가능한 것들이 마법을 통하면 평범한 소녀들은 빨간 구두를 신고 화려한 무도회에서 춤추고, 호박과 쥐가 마차와 마부가 되니까. 현실에서는 마법이란 게 없기에 소설은 판타지의 형식을 취하지만 내게 책은 할 말을 꽤 압축해 놓은 양갱처럼 느껴졌다. 달콤하고 진득한 사유의 양갱을 베어문 채 한장 한장 읽어가다 보면 위저드 베이커리가 보인다. 이 마법사 빵가게에는 응당 마법사를 축으로 갖가지 다양한 빵 레서피들이 이야기의 카테고리를 만들어 가고 있다. 


동화에 담긴 현실

서양 대부분의 동화 원작이 그리 순수하고 아름다운 이야기만은 아닌 것처럼 이 이야기도 어린이를 비롯한 어른들에게 단순한 꿈과 희망을 주는 이야기만은 아니다. 예컨대 '나'가 빵을 끔찍이도 싫어하게 된 발단은 가정의 불화이다. 즉 의붓어머니가 집에 오면서 일어나는 갖가지 일화 즉 의붓동생을 강간했다는 죄명으로 집에서 쫒긴다든가, 그 범인이 아이러니하게도 아버지였다든가, 의붓어머니가 나를 죽이려고 부두 인형을 빵가게로부터 주문한다든가 하는 현실은 추악하다. 

그러고보니 동화 또한 이야기다보니 현실이 완전히 배제되진 않아왔다. 즉 동화에는 인간이라면 누구가 맞이하게 될 죽음의 문제가 등장한다. 백설공주 이야기에도 그렇고 인어공주도(디즈니영화는 해피엔딩이지만) 우리의 이야기인 효녀 심청도 부활하긴 하지만 눈먼 아비를 위해 기꺼이 죽음을 택하고 바리데기도 병든 아비를 위해 지옥을 경험한다. 
 
또한 새엄마로 인한 역경 모티브도 참으로 무수하다. 신데렐라나 백설공주, 헨젤과 그레텔, 우리나라의  심청이 또한 그렇고 동화는 아니지만 김동리의 '등신불' 또한 그렇다. 새엄마가 그리도 악녀로 그려지는 것은 사랑의 배분문제 때문이 아닐까 한다. 똑같이 정을 주어도 남들과 자녀들이 보기엔 공평하게 비추어지지 않은 까닭이 아닐까. 그래서 이야기속에 무수한 새엄마들은 악녀의 이미지를 탈피하기 힘든 것 같다. 사실 그녀들 또한 삶이 고단하지 않을까. 의붓 자식들이 말을 듣나, 같은 사랑을 주고 싶지만 인간이기에 차마 공평해지지 못하는 심정도 있을 것이고, 남들의 이목과, 아비가 주는 사랑이 전처자식들에게 치우칠까 전전긍긍해야 하고. 남편 애정이 자신만 바라보도록 미모도 가꾸어야 하고 그녀들도 사실 삶이 피곤하긴 매한가지일 게다.

그럼에도 동화는 행복한 결말이 당위이다. 심청이 왕과 결혼하여 왕후가 된다든지, 무수한 불행했던 공주들이 왕자와 결혼하는 설정은 행복을 쉽고 편하게 결론내려 버린다.  


욕망의 문제

책은 인생이 동화처럼 아름다운가 묻고 있다. 주인공 '나' 어린 시절 맛본 대보름빵은 아픔과 회한과 상처와 그리고 사랑이 범벅된 맛이다. 용산역에서 정신이 온전치 않았던 엄마로부터 버려지며 맛보았던, 그러나 그 맛은 비할 수 없이 감미로웠던 기억으로 '나'를 괴롭힌다. 어린 '나'는 조금씩 뜯어먹었던 그 맛을 추위와 공포로 결국 다 게워버리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커가며 그 맛을 찾아 헤맨다. 더불어 꿈에서 만나는 엄마 또한 그러한 달콤한 고통으로밖에 만나지 못한다.

이야기에는 타인의 마음을 살 수 있는 프레첼과 상대를 해할 수 있는 부두인형과 시간을 되돌릴 수 있는 타임리와인더 쿠키가 나온다. 사람의 마음을 조종할 수 있는 빵이나 시간을 돌릴 수 있는 과자가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내가 사랑하는 사람을 내 사람으로 만들 수 있다면, 그 사람에게 좀 더 잘했더라면, 그 일을 그렇게 처리하지 않았더라면 하고 누구나 과거를 후회해본 적이 있을 것이다.  이것들은 상대의 마음을 조종할 수 있는 빵이지만 주문자 또한 비슷한 응분의 대가를 받을 것을 각오해야 한다.

이밖에도 사업상 행운을 주는 에그 머핀, 잠재의식을 일깨워주는 메모리얼 아몬드 스틱, 상대를 추억하게 만드는 만주, 도플갱어를 만들어 주는 피낭씨에 등이 있다.

이런 과자의 효능들은 인간의 무수한 욕망을 대변해주는 듯 하다. 사랑을 받고 누리고자 하는 욕망과 기억하기조차 끔찍한 의식을 회피하고자 하는 욕망, 사랑이 변질되어 상대를 죽이고 싶다는 욕망은 인간이라면 한번쯤 가져봄직 하다.

자, 어떤가. 이러한 과자들이라면 당신의 양심을 한번쯤 속이고 베이커리에 들어서고 싶지 않겠는가. 그러나 그 과자의 마지막에는 아래와 같은 경고문이 붙어 있음을 알게 될 것이다.

'긍정이나 부정, 자기가 바라던 어느 쪽의 변화든 간에 물질계와 눈에 보이지 않는 비물질계의 질서에 변화를 일으키는 일입니다. 따라서 모든 마법의 이용 시 그 힘이 자신에게 부메랑이 되어 돌아올 수 있다는 사실을 반드시 명심하라'고 말이다.

 
P.S.

열린 결말은 상상의 재미가 있지만 무책임하다. 이 이야기에서도 경우의 수로 결말지어 놓았다. 하나는 아버지가 강간범으로 잡혀들어가고 내가 꿋꿋하게 살아가든가, 다른 하나는 불행의 근원이었던 의붓어머니를 선택하게 않게 된 답지를 선택하도록 말이다. 어떤 선택지를 고르든 나쁘다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한 경험들이 쌓여가며 우리는 이른바 어른이 되어가는 것이니까.

제과점에서 어떤 빵을 고르든 상관없는 것처럼 어떤 삶이든 선택할 수 있는 답지가 우리의 삶에는 존재한다. 다만 빵맛이 어떠하든 그 선택을 한 자신을 책임질 수만 있다면, 오늘 당신에게 위저드 베이커리에 한번 방문해 보길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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