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왜 개는 사랑하고 돼지는 먹고 소는 신을까 - 육식주의를 해부한다
멜라니 조이 지음, 노순옥 옮김 / 모멘토 / 2011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2008년, 정확히 10년 전이다. 미국 쇠고기 수입 반대 운동 파장이 사회적으로 컸던 해였다. 합리적 회의주의를 신조로 삼았기에 무작정 반대하기 보다는 과연 반대해야 하는지, 그렇다면 이유는 무엇인지 입장을 정리하고 싶었다. 몇 권의 책과 기사를 찾아 읽었다. 나의 인식과 잘 알려지지 않은 진실과의 간극은 아득했다. 우리 식탁에 오르는 육류는 목장에서 풀을 뜯다 인도주의적으로 도살된 고기라는 생각은 현실 기만이자 자기위안이라는 걸 알았다.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끔찍했다. ‘좋은 육질’을 위해 움직이지도 못하고 뒤룩뒤룩 강제로 살찌움을 당하면서, 1년 남짓 허락된 수명인 평생동안 몸집을 겨우 욱여넣는게 고작인 좁디좁은 창살 속에서, 비위생적인 상태로 O-157 등 유해균에 감염되고 자기 피고름과 배설물에 뒹굴다, 비인간적 노동량에 지친 도살 노동자들의 스트레스 해소감으로 구타당하며 하루 수억마리의 소들이 도륙되는 현실을 알게 되었다. 지금은 절판되었지만 개인적으로 르포르타주 걸작이라 생각되는 게일 아이스니츠의 <도살장>을 읽은 이후 공장식 육류 생산 체제에 반대하고 채식을 결심하게 되었다.


그 후로 10년이다. 여전히 꺼림칙한 느낌이 들고 즐기지는 않지만 이따금 사람들을 만나면 고기를 먹을 수밖에 없다. 채식주의를 내 삶의 신념 체계로 삼기 너무나 힘든 사회에서 나는 실패했다고 생각했다.
이 책은 채식주의를 유별나다고 볼 수도 있는 시선이 주류 이데올로기의 폭력적 시선임을 사회심리학 틀을 통해 풀어나간다. 개고기는 반대하지만 돼지나 소의 고기는 아무렇지도 않게 먹는 모순을 정당화하는 심리학적 방어기제를 차근차근히 짚어주고, 앞서 언급한 아이스니츠의 르포 및 관련 종사자들의 인터뷰를 통해 그들도 폭력적인 육류 생산 시스템의 피해자임을 짚는다. 이 사회심리학적 틀은 아주 파워풀한 설득력을 발휘해서, 육식주의 외에도 “3N: Normal, Natural, Nessesary” 라며 폭력의 모순을 교묘히 은폐하는 어떠한 주류 이데올로기에도 대입해서 생각할 수 있는 힘이 되어줄 수 있다.


무엇보다도 이 책의 장점은 인간 본성의 선함에 대한 신뢰를 잃지 않는다는 것이다. 도축장에서 곧 도살될 예정이었던 700kg의 거구로 1미터 50센티가 넘는 도축장 벽을 뛰어넘어 자유를 향해 탈출한 젖소 에밀리와 그를 응원하고 도운 마을 사람들(심지어 도축장 주인까지도!)의 아름다운 실화를 소개하며, 저자는 우리가 사실 생명을 가진 존재들을 사랑하는 가슴 따뜻한 본성을 지녔으나 폭력적 시스템에 눈에 가렸던 것이라고 위로한다. 채식주의, 여성주의 등 나의 신념을 갖고 살기에 너무 힘든 사회에서 ‘노답’이라며 패배주의에 젖어있던 내게, 이 책은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다고 말해주었다.
“동물성 식품을 일절 먹지 않는 게 이상적이기는 하지만, 먹는 양을 줄이기만 해도 동물과 자신에게 상당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중략) 그리고 변화를 향해 혼자서 애쓸 필요도 없다.”고 용기를 불어넣어 준다. 나는 소수자이나, 혼자가 아니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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