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미야 잡화점의 기적 (양장)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양윤옥 옮김 / 현대문학 / 2012년 12월
평점 :
품절


(스포일러 주의)


#“삼 년 전에는 그렇게 큰소리를 치더니만 결국 이런 거였어? 분명히 말해두겠는데 나는 너한테 가게 물려줄 생각 없어.”
가쓰로는 놀라서 아버지의 얼굴을 보았다. 여보, 하고 어머니도 걱정스러운 목소리를 냈다.
“네가 무슨 일이 있어도 기필코 생선 가게를 운영하겠다면 얘기가 달라져. 하지만 지금 너는 그게 아니야. 그런 자세로 가게 물려받아봤자 너, 생선 장사 제대로 못해. 몇 년쯤 해보다가 역시 음악을 할 걸 그랬다고 징징거리는 반편이가 되겠지.”
“그럴 일 없어.”
“뭐, 훤히 보인다. 변변히 생선 장사도 못하면 그때 가서는, 아버지가 쓰러지는 바람에 별수 없이 가게를 물려받았다느니, 집안을 위해 희생했다느니, 이래저래 변명을 둘러대겠지. 책임은 하나도 지지 않고 매사 남의 탓으로 돌릴 거라고.”
pp.138-139.



#하긴 이별이란 그런 것인지도 모른다.
돌아오는 기차 안에서 고스케는 생각했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인연이 끊기는 것은 뭔가 구체적인 이유가 있어서가 아니다. 아니, 표면적인 이유가 있었다고 해도 그것은 서로의 마음이 이미 단절된 뒤에 생겨난 것, 나중에 억지로 갖다 붙인 변명 같은 게 아닐까. 마음이 이어져 있다면 인연이 끊길 만한 상황이 되었을 때 누군가는 어떻게든 회복하려 들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침몰하는 배를 그저 멍하니 바라볼 뿐 네 명의 멤버들은 비틀스를 구하려 하지 않은 것이다.
pp. 268-269.




#비디오 영상 속의 비틀스는 고스케의 기억과는 조금 달랐다. 옛날에 영화관에서 봤을 때는 그들의 마음이 뿔뿔이 흩어져 있고 연주도 서로 어우러지지 않는 것처럼 느꼈었다. 하지만 지금 이렇게 바라보니 그때와는 전혀 느낌이 달랐다.
네 명의 멤버는 열정적으로 연주하고 있었다. 즐기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설령 해체를 앞두고 있더라도 넷이서 연주할 때 만은 예전의 마음으로 돌아갈 수 있었던 것일까.
영화관에서 봤을 때 지독한 연주라고 느꼈던 것은 고스케의 마음 상태가 원인이었는지도 모른다. 인간의 마음이 이어져 있다는 것을 어떻게도 믿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pp. 319-320.



+
나미야 잡화점에 상담 편지를 보낸 <달토끼>, <생선가게 뮤지션>, <폴 레논> 세 젊은이의 인생 역경은, 본능적으로 내장 속 깊숙한 감각을 꿈틀거리게 하는, 인류 보편성을 잘 녹여낸 아픈 이야기였다면, <길잃은 강아지> 의 이야기는 무토 하루미 개인의 일대기라기보다는 20세기 중후반 일본 현대 사회사 자체를 상징하는 서사라는 생각이 든다. 나미야 잡화점으로 흘러든 삼인조 강도와 무토 하루미의 갈등 및 작품에 암시된 화해 가능성은, 경제성장의 수혜를 호사스럽게 탕진하고 시궁창같은 현실을 물려준 베이비붐 세대와, 희망을 잃고 기존 가치에 대해 냉소적인 현재 2030 젊은 세대간의 화해를 상징한다고 읽혔다.


+<묵도는 비틀스로> 편은 가슴 깊숙이 칼로 에는 듯한 짙은 슬픔을 느끼며 읽음. 버블경제가 완전히 폭탄맞은 20세기 말 일본 사회 속에서 파탄난 한 가정사와 역사상 가장 위대한 로큰롤 밴드의 흥망사를 연결시켜 보편적인 깊은 비극성을 획득. 그러면서도 반성과 성찰, 진심어린 위로는 잃지 않는다.



+웰메이드 현대 소설을 읽고 나서의 뿌듯함. 이 작품을 이제야 읽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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