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조건
앙드레 말로 지음, 김붕구 옮김 / 지식을만드는지식 / 2012년 11월
절판


‘조금 전 메이는 마치 미치광이나 장님 같았지. ……내가 알고 있던 메이는 아냐. 나는 오직 내가 사랑하는 정도밖에는 메이를 알지 못하며, 그것도 내가 메이를 사랑하는 방법 안에서만 알고 있는 것이다. 아버지는 곧잘 이런 말씀을 하셨지. 어떤 사람을자기 것으로 만든대도 결국 자기가 그 사람을 변화시킬 수 있는 부분밖에 소유할 수 없는 법이라고. 그러면 그 다음은?’-71쪽

그는 레코드를 들으면서 느꼈던 놀라움(*녹음된 목소리가 자기 목소리처럼 들리지 않아 이질감을 느꼈던 놀라움)을 아버지에게 이야기했다.
"나도 전에 무심코 거울을 들여다보고 통 내 얼굴같이 보이지 않았던 적이 있었지……."
그의 엄지손가락은 마치 추억의 가루를 털어내기라도 하려는 듯이 오른손 손가락들을 조용히 매만지고 있었다. 그는 아들이 앞에 있다는 것도 잊어버린 듯 자기 생각을 쫓으며 이야기하고 있었다.
"그건 틀림없이 방법의 문제야. 우린 딴 사람의 목소리는 귀로 듣거든."
"그럼 자기 목소리는요?"
"목구멍으로 듣는 거지. 왜냐하면 귀를 막아도 자기 목소리는 들리거든."-57-58쪽

당신은 페르시아 여자들이 화가 나면 남편을 징이 박힌 슬리퍼로 두들긴다는 애기를 아세요? 그래도 그 여자들에게는 책임이 없대요. 그러고는 다시 예전 같은 생활로 돌아간대요. 남자와 같이 울고불고 하는 생활은 문제가 아니지만, 남자와 같이 잘 때는 노예가 되는 생활 ㅡ 그렇죠? ㅡ 말하자면 여자들이 소유당하는 생활이 다시 시작되는 거예요. 그러나 저는 소유당하는 여자는 아니예요. 당신이 흡사 어린애나 환자를 대하듯이 거짓말이나 슬슬 해가며 쾌락을 맛볼 수 있는 그런 육체는 아니에요. …(중략)… 그렇지만 당신은 아마 여자도 '역시' 인간이라는 걸 끝내 깨닫지 못하고 저승에 가실 것 같아요. 제가 지금까지 부딪친 남자들은 ㅡ 아마 앞으로도 그런 남자들밖에는 만나지 못할 테죠. 할 수 없어요. 제가 '할 수 없지'라는 한탄을 얼마나 자주 되풀이하는지 당신은 모르실 거예요. ㅡ 그 남자들은 제 매력을 발견하고 제 변덕을 미덕으로 고쳐주려고 제가 감동되리만큼 무척 애를 쓰곤 하더군요. 그렇지만 어떤 참다운 인간적인 문제가 생길 때면 그들은 으레 남자 친구를 찾아가 버리는 거예요 ㅡ 물론 위안을 받고 싶을 때는 제외하고요. …(중략)… 당신이 자기가 한갓 수표책으로밖에 보이지 않는 것을 싫어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나도 내가 한갓 육체로 되기를 거부하는 거예요.-279-280쪽

페랄은 지조르의 투철한 통찰력이 어디서 오는 것이지를 알아차리지 못하고 있었다. 그것은 상대방을 대할 때 그들 속에서 자기 자신의 단편적인 모습을 알아내는 힘에 있는 것이다. 그 예리한 관찰을 종합함으로써 지조르라는 인간의 가장 정묘한 모습을 그릴 수 있다는 것을 페랄은 모르고 있었다.-29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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