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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덕 형이상학을 위한 기초 놓기 ㅣ 책세상문고 고전의세계 22
임마누엘 칸트 지음, 이원봉 옮김 / 책세상 / 2002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나의 친구들은 매우 바쁘다. 취업이 임박해 자격증, 영어점수, 회화 등의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는 능력들을 개발하기 위해서 동분서주하고 있는데 이 할랑한 인간은 오늘도 고전소설과 철학서들을 찾아 머리를 쥐어짜며 고통스러운 글읽기를 수행하고 있다. 따놓은 자격증이나 그럴듯한 토익 토플점수 증명서도 없다. 학점도 개판이다. 참 할일없는 인간이다.
오늘날과 같은 시대에 철학도도 아닌 내가 왜 칸트의 저서에 흥미를 느끼고 찾아 읽는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 몇 년 전 『순수이성비판』을 읽으려다가 서문 이십 여 페이지 정도 읽고 머리를 쥐어싸매다 다른 책들의 유혹에 빠져 슬그머니 책장으로 밀어넣은지 일 년 만에, 나는 이 책을 찾아 읽게 되었다. 아마도 칸트에게 내가 흥미를 느낀 이유는 이러한 것이 아닐까. 우리는 이미 알게 모르게 서양철학의 세례를 받아 서양철학이 우리에게 나누어준 이성적 사고방식으로 사유하며 이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그 중에서도 칸트가 끼친 영향은 아마 지대할 것이다.
오늘날과 같은 다원주의 사회에서는 행동 원칙과 가치관도 상이하여 여러 가치들이 충돌하고 있고, 어떤 것이 최상의 가치인지도 불분며하고 혼란스러운 세계이다. 이런 오늘날, 도덕성의 근원은 어디에서 비롯되는 것일까. 이러한 사실을 고민하는 사람들이 접하면 좋을 책이다. 칸트는 도덕성을 경향성에서 비롯된 것이 아닌 이성의 의무에서 비롯되는 것으로 보았다. 이러한 '의무'는 절대적으로 순수하게 이성에 바탕을 둔 선험적인 도덕 형이상학이어야 한다고 보았다.
이러한 논의들을 논리적으로 순환논리의 오류를 벗어나기 위해 아주 세심하게 증명하고 있는데, 1장에서는 우선 일반인이 평범하게 인식하는 도덕성이 경향성이 아닌 이성의 의무에서 비롯되어야 한다고 논하고, 2장에서는 가언적이 아닌 정언적 명령법에 따라 행위하는 것이 도덕성의 최상 원칙임을 논한다. 또한 정언적 명령법의 목적이 "인간"임을, 다른 표현방식으로 논의하고 있다. 3장에서는 이 "의무"라는 것이 어디서 비롯되는지를 찾아서 논리적으로 연결하고 있는데, 이 개념을 "자유"에서 찾고 있다.
이상이 대강이나마 이 책에 대해 내가 이해한 내용이다.『순수이성비판』보다는 비교적(어디까지나 "비교적"임) 읽기 쉬운 책이었지만, 그래도 한줄한줄 의미를 곱씹어가며 정독하느라 고통스러웠던 책이었다는 사실은 고백해야겠다. 아직 이 책을 잘 이해했다고는 할 수 없지만, "도덕 형이상학의 기초를 놓기" 위해 칸트가 제시하는 사유 방향을 따라오면서 칸트가 우리 시대에까지 미친 영향을 새삼 절감할 수 있었으며 그 집요한 성찰에서 내가 내 인생을 살아가는데 있어 어떻게 적용될 수 있는지도 많이 돌아보게 되었다. (역자의 친절한 해제도 읽으면서 모호했던 내용을 다시금 곱씹어 정리할 수 있도록, 또한 칸트의 철학이 오늘날 가지는 의의에 대해 이해할 수 있도록 잘 도와주었다)
그 유명한 정언적 명령법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네 자신의 준칙이 보편적 법칙이 될 수 있도록 행위하라"는 것. 또한 너무 이상주의적이라고 비판을 받는 내용이기도 하지만, 모든 인간이 목적이 되고 자유로운 의지로 행위하는 목적의 왕국을 꿈꾸었다. 오늘날과 같은 비인간적인 사회에서 칸트의 철학은 우리 자신을 돌아볼 크나큰 성찰의 여지를 던져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