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변풍경 - 박태원 장편소설 문학과지성사 한국문학전집 10
박태원 지음, 장수익 엮음 / 문학과지성사 / 200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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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쨌든 사십 여 년 만에 청계천이 복원되었다. 하천을 살리는 작업이란 것이 삼사년만에 이루어질 성격의 작업이 아니고, 생태와 하천 본연의 기능을 살리는 자연적인 완벽한 복원을 위해서는 몇 십년이 걸린다는 비판과, 이명박 시장의 추진력 아니었으면 지금까지도 복원 작업은 시작도 되지 못했을 것이다라는 영웅주의적 업적 기리기 등등 아직까지도 말이 많다. 아무튼, 복개된 지 사십 여년 만에 청계천이 복원된 오늘날의 시점에서, 옛 청계천변의 민중들의 삶의 모습을 그린 『천변풍경』을 읽는 과정은 또 다른 재미를 느끼게 했다고나 할까.

오늘날은 비단 토지, 노동, 자본 뿐만 아니라 지식도 전문 기술도 정보도 …사회경제적으로 유용한 모든 요소들이 자본의 성격을 갖고 있는 고도 자본주의 시대이다. 이러한 오늘날의 시점에서 보았을 때에도 놀라울 정도로, 작가는 일제 강점기 하에서 이미 자본주의에 물든 세태를 치밀하게 잘 관찰하고 있다.  이런 세태를 천변이라는 공간 주변으로 서로 연계를 갖고 있거나 혹은 연계성이 없는 '도시'라는 공간 안에서의 다양한 인간 군상들의 삶의 단면을 영화 카메라의 시점으로 옮겨가며 관찰하듯 비추어주고 있다.

'천변'을 중심으로 도시라는 공간이 지닌 속성으로 사람들이 얼마나 각박해지고 약아지는지 객관적인 눈으로 날카롭게 서술되고 있다(이런 사실을 가장 대표적으로 반영하는 것이 시골에서 올라와 한약국 집에서 일을 하게 된 열 네 살 소년 창수가, 상경한지 육개월도 지나지 않아 순수성을 잃고 생존을 위해 약삭빨라지는 모습이다). 하지만 그런 한편, 작가는 이런 많은 인간 군상들 중에서도 어려운 상황에서도 인정과 지킬것을 지키려는 사람들 편에서 안쓰러우면서도 애정이 담긴 시선으로 터치하면서도, '때묻은' 사람들은 인정사정없이 날카로운 풍자적인 시선으로 바라보며 묘사하고 있다.

구한말에서 일제강점기로 흘러오면서 빠르게 삶의 풍속도가 바뀌어가는 모습도 흥미롭게 작품 전체에서 관찰할 수 있다. 어디서 읽었는지 기억은 나지 않는데 작가 박태원은 부모의 강제로 얼굴도 못보는 신부와 혼인을 올렸다고 하며, 이런 사실 때문에 부모가 배우자를 정해주는 풍습을 매우 혐오하여 자유연애론을 주장하였다고 한다. 이러한 점을 염두하고 작품을 훑어보면, 그런 풍습으로 두 살림 세 살림을 차리고 폭력을 휘두르는 남편 때문에 고달픈 삶을 사는 여인들을 많이 찾아볼 수 있다.

특별한 주인공이 없이, 조금 오버해서 비교 적용하자면 영화 『내 생애 가장 아름다운 일주일』에서처럼 여러 인물들이 등장하여 천변이라는 공간에서 다양한 군상들의 삶을 보여주며 이런 시대적인 자화상을 자유로운 앵글을 지닌 카메라처럼 스케치하는 소설의 모습은 매력적이면서도 흥미롭다.  다만, 읽으면서 아쉬웠던 점은, 작품 뒤의 평론에서 지적하듯이 고전 소설적 우연적 요소들이 꽤 등장한다는 점이다(사족:개인적으로 개연성 없이 우연적으로 사건이 해결되는 플롯을 매우 싫어한다ㅡ그래서 하루키에게 관심을 갖고는 있지만 팬이라고 할 정도는 못 되는 것 같다). 사기당하고 인신매매당할 뻔한 금순이가 기미코의 제안으로 새 삶을 찾는다든지, 금순이와 헤어진 남동생이 우연히 백화점 앞에서 마주친다든지, 점룡이가 오입질을 하고 다니는 이쁜이의 남편 강가를 우연히 술집에서 만나 패주는 장면이라든지, 등등등에서 심심찮게 볼 수 있다. 평론가는 그런 인물들이 구원받을 수 있는 요소가 '우연성'이라는 것을 암시함으로 더욱 암담함을 보여주는 역설적인 효과를 노린 것일지도 모른다고 논하고 있긴 하지만.

뱀발달기. 도시라는 공간을 카메라의 시점으로 가장 잘 보여주는 시점은 이발소 소년 재봉이가 바라보는 천변의 풍경이다. 가장 재미있는 시점이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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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haGreen 2006-02-01 21: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리뷰에 문장이 지나치게 길어진 비문이 많습니다. 거슬리지만 지금은 지쳐서 나중에 고치려는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