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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명의 사기꾼 - 모세, 예수, 마호메트 ㅣ 패러독스 12
스피노자의 정신 지음, 성귀수 옮김 / 생각의나무 / 2005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세 명의 사기꾼 : 모세, 예수, 마호메트
라고 주장하는 이 책은 17세기에 떠돌던 괴문서들 중에서 가장 악명높은 문헌이라고 한다. 이 문서의 역사적 의의와 가치에 대한 선전문구들을 보고 솔깃해서 읽어보았는데, 다 읽고 나서 느낀 점은 우선은, 기대만은 못하지만 시대적으로 큰 의의를 갖고 있는 텍스트라는 생각이었다.
16~17세기에 유럽에서 기독교 구체제의 모순에 대한 반발로 종교개혁이 일어난 이후로, 종래의 문자주의적(성서에 실려있는 내용들을 비유적으로써가 아닌 문자 그대로 믿는 방식), 권의주의적 기독교에 대한 비평과 자성의 움직임이 일어났다. 거기다 이성적인 사유방식과 과학적 연구방식이 대두되며 학문의 기반을 쌓는데 그러한 방법론들이 확립되면서 양쪽의 결과로 종교철학, 고고학, 자연과학 등등의 학문 분야에서 기독교라는 종교의 실체를 찾기 위한 여러가지 연구들이 수행되었다. 18세기와 19세기가 지나면서 이러한 분야들의 연구 결과들이 점차로 누적되면서 신성불가침한 텍스트로 여겨졌던 성서가 역사적 사실이 아니라 허구적인 신화적 서사문학이라는 결론이 더욱 설득력을 얻게 되었고, (한국 기독교를 제외하고) 대부분 서구의 구교와 신교들도 성서를 있는 그대로가 아닌, 비유로 가르침을 주는 텍스트로 받아들이고 있는 추세이다.
이런 오늘날의 시점에서 봤을 때, 이 책이 주장하는 내용들은 별로 새로울 것도 없으며, '세 명의 사기꾼' 플러스 하나 더 해서 '네 명ㅡ모세, 예수, 마호메트, 누마 폼필리우스ㅡ의 사기꾼'의 행동을 비판하는 내용도 날카로운 비판력으로 접근한다기보다는 기독교를 혐오하는 감정적인 면이 앞선 모습이 보인다.
하지만 본인은 이러한 점이 이 책을 감상하는 포인트 중 하나라고 생각된다. 그러면 여기서 내가 생각하는 이 텍스트 관전 포인트(?) 세 가지를 소개하겠다.
첫째. 이 저자가 이 문헌을 작성했을 당시의 시대상을 떠올리며 읽는 것이다. 그럼 저자가 보이는 태도를 아주 잘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저자는, 기독교의 제도적이나 그 밖의 다른 문화적인 면에서가 아니라 교리 자체에서 이성을 마비시키고 인간을 끝없는 죄의식 속으로 몰아넣어 기독교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종교에 빠져버릴 수 밖에 없는 교리적 모순을 아주 잘 인식하고 있다. 아주 통찰력이 뛰어난 사람으로까지 보이지는 않지만 시대를 앞서서 이성적 판단을 할 수 있었던 사람이다. 재미있는 사실은, 그렇기에(어느 정도 시대를 앞서 이성적 판단을 할 수 있는 인물이었기에) 그 시대를 문화적, 정치적, 종교적으로 꽉 잡고 있는 기독교라는 세력에 매우 분노하여 이성적인 면에서 벗어나 감정적으로 기독교를 '씹는' 모습이 종종 눈에 띈다는 사실이다.
둘째. 문헌의 마지막 부분에서 종교를 초월한 대안으로 스피노자의 사상을 전개하는 부분에서는 다시 이성적인 모습을 보여주기도 하는데, 나는 스피노자의 사상에 대해 잘 아는 바가 없으므로 사상적으로 어떠한지는 모르겠지만, 이 부분의 전개도 매우 재미있다.
셋째. 오늘날 현대의 이성에서 기독교에 대해 이미 비판이 널리 행해지는 부분들을 '시대를 앞선' 이 문헌에서 찾아서 읽는 즐거움이다. 이성을 마비시켜 모두 신의 섭리로 생각하는 사고방식을 비판하는 예화(우연히 돌이 떨어져 사람이 죽은 것도 하나님의 섭리다라는 내용의 예화 등)들이 보이면 독자들은 반가우면서도 매우 즐겁게 이 책을 읽을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