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판 범우비평판세계문학선 19
프란츠 카프카 지음, 박환덕 옮김 / 범우사 / 1999년 10월
평점 :
품절


2004년 작년 한 해 동안, 감각적으로 치중한 현대 소설(특히 현대 일본 소설)들만 읽다 보니 뇌가 비어가는 것 같은 위기감에 봉착했다(물론 감각적인 카타르시스의 효과는 강해서 감동적이기는 하다. 최근 1년간의 개인사가 복잡하다 보니 더욱 그런가....-_- ).

2005년은 고전 두 편을 읽으면서 시작했는데, 어제는 카프카의《심판》을 완독했다. 5~6년 쯤 전에 상당히 따분하게 읽었던 것으로 기억되었지만 다시금 이 작품의 모호하면서 괴이한 분위기에 젖어 읽어보니 흥미롭고 괴상한 매력을 느끼기까지 했다(읽는 고통은 여전했지만).

비현실적인 공간과 인물들의 행동에 대한 묘사들. 기괴한 상황의 설정. 비유적인 상황들을 통한 인간 삶의 부조리에 대한 성찰. 이런 점이 이 괴상한 천재 소설가의 작품들을 많은 이들에게 열광시키게 했던 요인일까? 소설 내내 사건들과 인물들, 배경들은 그로테스크하고 현실에 기반을 두었으면서도 비현실적인 성격이 강하다. 특히 공간에서 이런 그로테스크한 비현실적 성격이 두드러지는데, 평범한 서민들이 살고 있는 아파트에 위치하고 있는 재판소의 배경 묘사는 더더욱 그러하다. 이런 점은, 이해할 수 없고 부조리하기 짝이 없지만, 우리 삶 한가운데 있는 삶의 부조리함에 대한 선고의 필연적 실존을 비유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된다.

주인공 요제프 K는 체포당하고 심판받을 때까지, 자신의 체포에 정당한 이유도 없이 그저 그렇게 관련 사건들이 진행되어지는 것에 휘말리게 된다. 이유를 알기 위해 노력하고 부조리한 점들을 밝히려고 하나 가능하지 않았던 헛수고였다는 괴이한 내용이다. 고등학교 2학년 때 멋도 모르고 읽었었는데 도대체 뭘 이해하고 읽었었는지... 지금 생각하면 피식 웃음이 나오기만 한다.

특히 가장 인상깊었던 장은 3장인데, 자신의 삶에 부조리하게 선고된 체포의 원인을 밝히러 간 재판소에서, K가 그 재판소의 공기에 견디지 못해부축을 받으며 힘겹게 바깥 세상으로 나오는 장면이 있다. 삶에 대한 선고에 관련된 공간에 있을 때마다 K가 강박증을 느끼고 그 공간의 공기에 적응하지 못하는 장면은 심심찮게 눈에 띈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고 비유하는 것일까? 부조리의 선고의 원인을 찾고자 하지만 막상 그 본질을 밝히고 대면하기에는 인간적 한계가 느껴지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닐까하고 조심스레 생각해 본다. 어느날 갑자기 내동댕이쳐진 것처럼 부조리한 인간 삶에 대한 성찰... 공감은 가지만 인정하기 싫은 기분은 왜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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