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mannerist > 파격이란 - 명연의 독이 철철 흘러넘치는 위험한 연주

경고: 골드베르크 변주곡을 처음 듣는 사람이라면 가능한 한 피할 것. 골드베르크 변주곡이 어떤 곡인지 모르고 이 음반부터 접한다면 이 연주의 파격과 그 충격이 어느 정도인지 판단하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이 곡에 대한 잘못된 편견에 빠지기 딱 좋다.

참 여러번 재발매되는 연주다. 글렌 굴드 에디션으로 한 번, 재작년 글렌 굴드 서거 20주년 기념 the states of wonder라는 제목으로 리마스터링을 거쳐 두번째 녹음과 같이 낸 게 두 번, 아직도 이 두 판본이 계속 팔리고 있는 와중에 또 이걸 찍어내다니. 양심에 찔리긴 하는지 보너스 트랙을 좀 넣고 - 사실 전체 연주시간은 38분 내외이다 - 예전의 멋진 LP자켓을 되살렸다. 하긴. 글렌 굴드 에디션의 지나치게 깔끔한 자켓보다, the states of wonder의 몰아지경에 빠진 굴드의 할랑한 차림보다, 서른 장의 굴드 사진으로 서른 개의 변주를 묘사하고 있는 원본 LP 자켓이 몇배 멋져보이긴 하다. 저 원본 LP자켓 사진을 가리켜, '글렌 굴드, 피아노 솔로'의 저자 미셀 슈나이더는 바이런적 영웅의 모습이라 극찬하기도 했으니까. 이미 글렌 굴드 에디션으로 이 연주를 가지고 있지만 저 원본 LP자켓을 되살린 걸 보자마자 가지고 있던 CD를 지인들에게 선물로 주고 이걸 살까 심각하게 고민하기도 했으니까. 가장 컬트-이 형용사를 붙이기에 그의 인기가 너무 좋긴 하지만-적인 연주자 굴드 팬의 성향을 정확히 꿰뚫긴 했다.

골드베르크 변주곡. 아래 리뷰를 쓰신 분이 지적하셨듯이 작곡 의도는 '자장가'라고 한다. 불면증에 시달리던 카이젤베르크 백작은 바흐의 제자이자 자신 휘하에 있는 쳄발로 연주자 골드베르크를 통해 불면증을 위한 곡을 하나 지어달라는 의뢰를 하고 이를 통해 탄생한 것이 골드베르크 변주곡이다. 골드베르크는 매일 밤 이를 연주했고 백작은 크게 흡족해하며 바흐에게 큰 잔 가득 금화를 주었다고 한다. 이게 바흐의 인생에서 받은 최대의 작곡 보수였다.  바흐의 제자 골드베르크의 나이와 생몰연도, 무서울 정도로 엄밀한 수학적 구조를 가진 곡의 성격 등을 들며 이게 과연 자장가가 맞는지, 저 에피소드가 사실인지에 의문을 제기하는 음악학자들도 있다고 한다. 그럼 이게 자장가가 아니라고? 그들은 골드베르크 변주곡이 '불면증'을 위해 작곡되었다는 말에 주목한다. 그거 들으면서 잠들라는 얘기가 아니라, 잠이 안올때 들으면서 마음 편히 지내고, 다른 일을 편하게 할 수 있게 해 주는 의미가 아닐까. 그렇게 해석하는 사람들도 있다. 어느 게 맞을까? 자장가? 아니면 잠안올때 마음편히 듣는 곡? 여러 연주에 따라 그 답은 달라질 수 있겠다. 가장 완벽히 곡의 구조를 재현해 낸 로잘린 투렉 여사의 연주나, 절제되고 나즈막한 울림을 전해 주는 안젤라 휴이트 여사의 연주, 모나지 않고 둥글둥글한 범생이 안드라스 쉬프의 연주를 들으면 자장가라는 말이 맞는 거 같기도 하다. 깃털처럼 가볍고 챙강챙강 파열음을 내는 굴드의 두번째 연주를 들으면 잠을 청하는데 도움이 되진 않아도 마음을 편안히 하는데 도움되는거 같기도 하고. 그럼 이 굴드의 첫번째 연주는 어느 쪽에 기울어져있을까?

결론부터 이야기하면 어느쪽도 아니다. 이 연주 들으면서 잠을 청할 수 있는 사람의 신경 굵기를 난 상상할 수 없고, 이 연주를 들으며 딴짓을 할 수 있는 사람의 산만함을 떠올릴 수 없다. 가장 짧은 말로 이 연주를 평하자면, '미친듯한 집중력과 몰입'이 아닐까?

첫번째 아리아부터 무언가에 쫓기는 듯 빠르게 처리해나갈때부터 심상찮은 분위기를 내비친다. 길지 않은 아리아 마지막 음의 여운이 끝나기도 전, 그야말로 질주하는 듯한 첫번째 변주가 이어진다. 반복구, 도돌이표를 거의 지키지 않는다. 각 변주의 핵심부만 건드리고 나면 그다음 바로 다음 변주로 미친듯이 내달린다. 조화와 균형, 바흐의 전 작품을 통해 추구하려고 했던 곡의 내적 질서와 균형보다는 악보의 지시사항이 전혀 없던 시대, 연주자의 재량을 마음껏 펼칠 수 있는 자유를 굴드는 만끽하고 있다. 바로 이 지점에서, 굴드의 연주는 맹독을 품고 있다. 고전주의 시대의 음악상이 어떠하였는가, 바흐의 골드베르크 변주곡은 그당시 어떤 모습이었는가에 대해서 굴드는 일절 관심도 없다. 그 음표 하나하나를 몸으로 받아들여 자유롭게 창조해내는, 바흐가 아닌 굴드의 골드베르크변주곡인 것이다. 이를 소름끼칠정도의 속도감과 가벼운 터치를 통해 자신만의 해석을 빚어내었다. 바흐에게 그가 빌린 것은 음표뿐이었다. 작곡자의 의도 대신 자신의 자유로운 의식을, 음과 음 사이의 빈자리, 피아노 소리가 커버하지 못하는 공간마저 자신의 허밍으로 채우고 만다. 이 강렬한 곡에 대한 지배의식. 전곡이 연주되는 38분여는, 굴드를 제외한 그 누구도 이 사이에 들어갈 수 없다. 그곳엔 작곡자 바흐의 자리도, 듣고있는 당신의 자리도 없다(굴드는 청중에 대한 혐오를 죽을 때까지 버리지 않았음을 기억하라). 오로지 피아노와 굴드만 있을 뿐이다. 그의 전기를 골드베르크 변주곡의 구조에 맞추어 서술한 미셀 슈나이더가 그 제목을 Glenn Gould, piano solo라 한 건 정말 탁월한 통찰력을 보여준 것이다.

난 그래서 이 음반을 골드베르크 변주곡을 처음 듣는 사람에게 추천하고 싶지 않다. 파격을 제대로 소화해내기 위해선 그만한 기반이 그 사람안에 쌓여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야 굴드의 이 연주가 얼마나 파격적이고 충격적이었는지 알 수 있고, 골드베르크 변주곡 자체의 매력도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처음부터 이 강렬한 연주를 접했다면 로잘린 투렉 여사의 잔잔하고 탄탄한 연주의 매력을 쉽게 느낄 수 없을게다. 연주의 질 자체는 최상급이지만 섣부르게 들어볼 음반은 결코 아니란거다. 글렌 굴드를, 골드베르크 변주곡을 궁금해하는 분들이라면 굴드의 두번째 1982년 녹음이나, 투렉 여사의 음반 등 보다 보편적인 연주를 먼저 듣고 기반을 쌓은 다음 반.드.시. 들어보시기 바란다. 이만한 파격은 서양고전음악 역사상 없었으니까. 게다가, 예전에 발매된 CD와는 달리, 38분의 본 연주 말고 쉽게 들을 수 없는 보너스 트랙이 여러 개 추가된데다, 오리지널 LP자켓을 복원한것도 장점이고. 게.다.가. 가격도 mid아닌가.  오죽하면 이런 말이 서양고전음악 애호가들 사이에서 돌아다닐까. "굴드의 골드베르크 변주곡? 그건 골드베르크 변주곡이 아니라 굴드베르크 변주곡이지."

그가 말한 예술에 대한 정의를 덧붙이며 모자란 리뷰 닫는다.

The purpose of art is not the release of a momentary ejection of adrenaline, but rather the gradual lifelong construction of a state of wonder and serenity.

예술의 목적은 순간적인 아드레날린의 분출이 아니라, 전 생애에 걸쳐 점진적인 경이와 평정의 상태를 구축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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