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차 가까운 시간에 퇴근하면서 붉은 색 티셔츠를 입고 전철을 타는 사람들이 많아 깜짝 놀랐다. 어떤 사람은 막차 끊길 새라 걱정하면서 전철을 타는데, 어떤 이들은 축구 응원을 위해 밤샐 작정으로 일부러 막차를 타고 시내로 나가고 있다니, 그들의 열정이 사랑스러웠다. 나는 축구 응원을 위해 붉은 색 티셔츠를 입었던 적이 단 한번도 없다. 그 이유는 시기별로 약간씩 차이가 있다. 2002년 이전에는 물론 축구에 관심이 없었기 때문이다. 2002년에는 한국 대표팀이 4강까지 올라가리라 생각도 못했기 때문에 매 경기 때마다, 이번에 사면 한번 입고 말텐데 아까워서, 라는 생각이 들어 주저주저하다 결국은 붉은 티셔츠를 사지 못했었다(그때의 짧은 생각이 지금도 참 아쉽다). 
 

 지금 내가 붉은 티셔츠를 사지 않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첫째는 양심의 가책 때문이다(양심의 가책이라기엔 너무 거창하고, 낯이 지나치게 얇아서랄까?). 평소에 K리그 경기나 심지어는 국가 대표 평가전 및 친선 경기 등등에 관심도 없는 주제에 월드컵이라는 큰 경기때만 무슨 열혈 축구팬인양 붉은 티셔츠 차림으로 응원 나가기에는 뭔가 겸연쩍은 기분이 드니 어쩔 수 없다. 〈1등만 기억하는 더러운 세상!〉에 기여하는 사람이 된 기분이랄까? 



 두번째는 나의 차림새로 인해 내가 알지 못하는 타인에게 내가 어떤 정체성으로 해독되는 게 꺼림칙하기 때문이다. 붉은 티셔츠를 입은 내가 타인에 의해 ‘저 사람은 축구 응원하러 나가는 축구팬이네’라고 해독되는 게 싫다. 비단 축구 응원복장 뿐만이 아니다. 저 사람은 ○○대학생이네, 저 사람의 직업은 ○○○네, 라고 다른 사람에게 내가 해독된다는 일은 상상만 해도 겁이 나고 끔찍하다. (그런 측면에서 학교 로고가 커다랗게 새겨진 야구점퍼를 입고 다니는 사람들을 보면 참 감탄스럽다. 비꼬는 게 아니라 어떻게 그런 복장을 감행할 수 있는지, 나같으면 겁이 나서 차마 못할 짓이라서이다) 난 나야, 특별한 나인데 어떻게 그렇게 한정된 정체성으로 나를 표현할 수가 있지? 이런 치기 어린 자존심의 발로는 절대 아니다. 내 복장·차림새·소지품이 기호로 작용하여 특정한 정체성을 부여받아 수많은 군중 속에서 누군가가 해독하기 쉬운 여지를 남기기보다는 여간해서 잘 해독되지 않는 평범한 군중 구성원 중 하나로 숨어 있고 싶기 때문이다.
 

 아르헨티나와의 경기 때 거리 응원을 나갔었다. 그때 나는 그러한 이유로 인해 하얀색 티셔츠를 입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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