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부터 서늘한 기운을 머금은 바람 한 줄기가 뜨거운 태양빛 사이를 비집고 불어오면 가을을체감하게들 된다. 올해도 어김없이 가을이 다가왔다는 신호를 그보다 더 먼저 보내왔던 건, 출근 시간이 어둑어둑해지기 시작했다는 사실이었다.  

아침 전철 승객들의 풍경이 시간대별로 달라지는 풍경을 관찰하면 재미있다. 7시만 넘어도 대부분이 화이트 칼라로 짐작되는 30대를 전후한 노동자들이 전철을 가득 메운다. 8시가 넘으면 교복을 입은 중고등학생들이 보이기 시작하고, 9시가 넘으면 두꺼운 전공서적을 든 프리한 복장의 젊은이들이 슬슬 주를 보이기 시작한다.

내가 매일 출근길 전철을 타는 시간은 오전 5시 45분에서 50분경 사이다. 이때는 전철을 탄 승객들의 연령층이 좀더 높아 나와 비슷한 연령층의 직장인─더군다나 여성은 거의 보이지 않는다─은 흔치 않다. 대개가 복장을 보았을 때 아마도 블루 칼라 직종이라고 생각되는 50-60대의 남성 노동자들이 주 승객들이다. 재미있는 건 어쩌다 5시 30분 첫차를 타고 출근하게 된 적이 몇 번 있었는데 첫 차의 승객들은 50-60대의 블루 칼라 직종이라고 생각되는 여성 노동자들이 주 승객들이라는 사실이다. 첫 차 타임만 지나가도 50-60대의 여성들은 사라지고 6시 20-30분 이전까지는 아까 이야기한 50-60대 남성들이 주를 이룬다. 6시 30분 경부터 30대 전후 정장 차림의 남/여 승객들이 하나 둘 나타나며 7시 넘어서는 절정을 이루게 되는 것이다. 

5시 45분경에 전철을 타지 않으면 안될 이유가 열 가지 정도는 넘게 있지만 이 시간에 전철을 타는 게 유쾌한 일은 아니다. 피곤에 지친 몸을 억지로 깨워 새벽 전철을 타고 40분 가량 이동하는 것도 유쾌한 일은 아닌데, 몇 십년 간은 묵은 피로에 찌든 것마냥 고되고 지친 삶의 무게가 그의 외양에서 진국 내음처럼 퍼져나오는 아저씨들과 함께 매일 아침 전철을 타고 가노라면 그 무게가 나까지 내리누르는 듯해 하루를 시작하는 새벽녘부터 뭔가 기분이 피로해지게 되기 때문이다. 내 출근 시간이 6시 반만 되어도 이런 기분이 들지는 않으련만……. 

아, 나이든 사람들이 많아서 전철 풍경이 우울하다는 건 절대 아니다. 앞서 말했듯 첫 차 타임만 되어도 50-60대 여성 노동자들이 주를 이루는데, 5시 45분-6시 때(50대 블루칼라 남성 노동자들이 많은 시간대)만큼 전철 풍경이 우울하지는 않다. 여성 노동자들 역시 정장 차림은 아니지만 밝고 화사한 옷차림을 한데다 표정이 지치고 고되어 보이지도 않으며, 그들의 수다는 유쾌하다. 

참 미스테리다. 도대체 왜 그럴까. 뭐 여튼 5시 45분경에 전철을 타지 않으면 안될 이유가 열 가지 정도는 넘게 있지만 타기 싫은 이유도 백 가지는 넘게 있다. 그래서 나는 (그렇잖아도 모든 노동자들은 그다지 유쾌하지는 않을) 출근길이 더더욱이 싫다. 그나마 하절기에는 이 시간대에 이미 해가 밝게 떠서 괜찮았는데 요즘엔 아직 해도 뜨지 않을 시간대로 변해버려 정말, 더더욱, 싫다. 

예전에 잠깐 누렸던 백수 생활이 그립다, 라고 하면 20대 청년 실업세대에 몰매를 맞을 이야기이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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