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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미안 (오리지널 초판본 표지디자인) - 최신 원전 완역본 ㅣ 코너스톤 착한 고전 시리즈 1
헤르만 헤세 지음, 이미영 옮김, 김선형 / 코너스톤 / 2017년 1월
평점 :
⚠️유명한 작품이지만 스포일러 주의🚨
“새는 알을 깨고 나온다. 알은 곧 세계다. 태어나려는 자는 한 세계를 파괴해야만 한다. 새는 신에게로 날아간다. 그 신의 이름은 아브락사스다.”
16세였던 나의 내면을 묘한 흥분, 갈망, 설렘 등의 낯선 파동으로 어지럽혔던 문구.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에 나오는 유명한 문장이다. 소녀는 알을 깨뜨리고 아브락사스에게 날아가는 새가 자신의 알레고리인 듯 괜스레 비장한 마음으로 일기장이나 책상 앞 메모지, 교과서 여백 귀퉁이에 글귀를 반복해서 옮겨 적곤 했다.
정작 소녀는 <데미안>이라는 작품을 다 읽고도 큰 감흥을 느끼지 못했다. 외려 맘 한구석 미세한 균열을 내는 이물감이 섬뜩하고 불편했다. 종교적 계율이 엄격한 가정에서 자랐다. 신성모독의 묘한 흥분을 단죄하는 내면의 단호하고 끈질긴 죄의식 때문이었을까, 작품에서 큰 재미를 느끼지 못했다. 마치 주인공 싱클레어의 뒷걸음질처럼, 어릴적 최초의 성장통의 원흉인 프란츠 크로머로부터 구원해준 데미안을 뒤로 하고 안온한 유년의 세계로 달아나버렸듯이.
이십여 년전 느꼈던 이물감이 남아있을지 확인하기 위해 <데미안>을 집어들었다. 매혹적이고 아름답다. 정신을 고양시킨다. 성장기의 고뇌가 발원하는 지점을 적확하게 파악해서 묘사한다. 균열에서 찬란한 빛 한줄기가 매혹적으로 새어나와 익숙함과 낯섦에 주저하게 되나 이물감은 더 이상 없다. 아브락사스는 선과 악을 구분하지 않는 신이다. 선/악 또는 이성/본능을 절대적으로 구분하고 서구 세계를 이천 년간 지배해온 이원론적 세계관을 철학적 독단론이라 비판하고 의문을 던지며 도전한 니체의 사상이 떠오른다. 데미안이 싱클레어에게 인도하는 세계이다. 역시나 니체의 이름이 작품 곳곳에서 자주 짧게 언급된다.
성장 소설인만큼 십대 혈기 왕성한 청소년의 성욕 문제가 자연스레 언급된다. 허나 성욕과 정욕으로 괴로워한다고 건조하게 서술될 뿐, 정욕의 발현에 대해 연대기적 혹은 포르노적으로 소비하게끔 묘사하지 않았고 십대 때 읽을 때에도 이점이 특이하다고 생각했었다—거의 모든 남류작가의 작품들이 정도의 차이일 뿐 성장통에 여체를 소비하는 성행위 묘사 최소 한 줄쯤은 넣어주지 않았던가. 성욕의 고뇌가 음탕하게 포르노적으로 여성을 타자화하는 방식으로 개진되지 않도록 섬세하게 설계되어 있다.
이십여 년 전보다 울림은 훨씬 크고, 이해도도 깊어 왜 두루 사랑받는 걸작인지 새삼 절감한다. 도덕, 종교, 성애, 사랑, 모든 것에서 이원론을 거부하기에 싱클레어의 사랑은 성별의 이분법도 초월하여 베아트리체에서 데미안, 자기 자신, 에바 부인의 형상을 넘나든다. 유년시절, 피스토리우스와 각각 결별했듯이 결국은 데미안도 극복하고 싱클레어 홀로 서는 과제를 이룩해야 하기에 작품 말미에서 데미안과 이별의 입맞춤을 나누는데 해석이 분분한 모양이다. 궁극적으로 에바 부인과의 사랑인 것처럼 위장되어 있지만, 나는 결국엔 데미안이라는 어떤 초월적인 인간과의 사랑과 이별, 극복과 성장의 서사라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