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시리즈가 단지 문지문학상의 전초전 성격을 지니는 계간지인 것일 뿐을 잘 모르는 상황이라면, 싱그러운 빛깔의 청포도 일러스트 표지와 함께 ‘소설 보다 여름’ 이라는 기획으로 서점에 깔려있는 것을 보고 필시 여름을 테마로 한 신인들의 소설일 것이라고 생각하기 쉬울 것이다. 그러한 관점에서 이 소설을 읽는다면 실망하기 십상이다. ‘여름, 이 계절의 소설’이라는 기획으로서의 이 시리즈의 콘셉트에 대해 냉정하게 평가하자면 ‘빛 좋은 개살구’라고나 할까. 


무덤을 보살피다. 

여름 테마 소설인줄 알고 읽다가 한겨울에 선산에서 양식장을 운영하는 수상쩍은 인물과 대립하는 이야기가 나와서 일단 당황.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은지, 가족간에서 어떤 대립 구조를 만들고 싶은지는 알겠지만 썩 개운치 않고 많이 아쉬웠던 작품. ‘가엾은 여자’니까 1번을 찍어야 한다’고 이야기하는 ‘노인 세대’를 대놓고 단순화하여 희화화하는 설익은 도식화가 썩 개운치 않았는데, 이어진 작가와의 인터뷰를 보니 역시나이다. 12/3 계엄의 의의가 우리 민주주의에 끼친 영향에 대해서 할 이야기가 많겠고 역사적 의의도 크겠지만, 작가의 교조적 스탠스가 은근히 불편하다.


방랑, 파도. 

유일하게 만족스럽게 읽었던 작품. 그리고 이서아라는 작가의 발굴. ‘여름, 이 계절의 소설’이라는 슬로건과도 들어 맞으며 등장인물들과 그들간의 관계성, 삶에 대한 애정이 느껴지는 사랑스러운 소설이었고, 마술적 리얼리즘이 돋보이는 장면들도 설득력이 있었으며, 일상과 삶 속에서의 날카로운 관찰력에서 나온 표현과 묘사들도 적절하다. 


“어떤 방랑객들은 바닷가 마을의 이곳저곳에서 일을 하다가 홀연히 사라졌다. 그들에게는 언제든지 돌아갈 수 있는 사랑 가득한 따뜻한 둥지가 있거나, 이 세상의 원동력이나 다름없는 앳된 꿈이 있거나, 그 어느 순간에도 작별을 예고하지 않는 쓸쓸한 심장이 있는 것 같았다.” 68쪽


우리의 적들이 산을 오를때.

작품 내 특이한 공간과 특이한 집단과의 대립적인 묘사와 긴장감에 재미는 있었지만, 전반적으로 기괴하다. 정말 기괴하다. 상징으로 가득찬 작품인데 뭔가가 작위적인 느낌에 급피로해져서 분석조차 않으련다. 나는 좀더 직관적인 작품을 선호한다.


총평: 빛 좋은 개살구 / 이서아의 발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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