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가끔 생각한다. 만일 내가 아직도 글을 쓰고 있다면, 그건 무엇보다 우선 제법 뚜렷하고 그럴 법한 기쁨의 파편들을 모아놓고 싶어서라고, 아니 그럴 수밖에 없어서라고. 이 기쁨이, 아주 오래전 어느 날, 별처럼 폭발해 그 별가루들을 우리 안에 퍼트렸을 것만 같다. 시선 속에서 빛나는 약간의 별가루들, 우릴 뒤흔들어놓고, 홀리고, 기어코 혼란스럽게 만드는 것은 분명 이것이다.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보면, 그 섬광을, 이 파편화된 반사광을 자연 속에서 불시에 포착하는 것이 더 놀라운 것일지 모른다. 적어도, 이 반사광들이 내겐 결코 빈약하다 할수 없는 수많은 몽상들의 기원이니까."



퇴근길에 있어 거의 매일 지나치는 대형 서점에서 집어왔다. 구매 당시 출간일이 이틀 밖에 지나지 않은 신간이었다. 

감각이 뚝뚝 떨어져 언어가 된 건지 태초에 언어와 관념부터 존재하여 (그럴 리가 없잖아) 감각화가 된 건지 도무지 짐작조차 하기 힘들 정도로 집요하게 물성을 탐닉하고 직조해낸 황홀한 감각들의 향연이 펼쳐진다. ‘아름답다’는 ‘닳고닳은’ 형용사를 쓰기도 죄스러운 자연을 찬미하며. 문학, 특히 운문을 읽고 느끼고 감상한다는 즐거움과 희열을 느끼고 싶다면 소장해야 할 작품.


#초록수첩 #필리프자코테 #초록수첩_필리프자코테 #난다출판사 #책스타그램 #북스타그램




참고로 아래 밑줄긋기에 첨부한 문장들에 관하여 사족을 붙인다. 황홀하도록 아름다운 미문의 향연이 펼쳐져 밑줄을 긋자면 끝이 없는데 더 인상깊은 문장들도 많으나 결정장애로 인하여 이하는 랜덤으로 집어온 문장들이다.

나는 가끔 생각한다. 만일 내가 아직도 글을 쓰고 있다면, 그건 무엇보다 우선 제법 뚜렷하고 그럴 법한 기쁨의 파편들을 모아놓고 싶어서라고, 아니 그럴 수밖에 없어서라고. 이 기쁨이, 아주 오래전 어느 날, 별처럼 폭발해 그 별가루들을 우리 안에 퍼트렸을 것만 같다. 시선 속에서 빛나는 약간의 별가루들, 우릴 뒤흔들어놓고, 홀리고, 기어코 혼란스럽게 만드는 것은 분명 이것이다.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보면, 그 섬광을, 이 파편화된 반사광을 자연 속에서 불시에 포착하는 것이 더 놀라운 것일지 모른다. 적어도, 이 반사광들이 내겐 결코 빈약하다 할수 없는 수많은 몽상들의 기원이니까. - P11

이 열매들은 모든 것을 품어 공중에 유예하고 있었고, 열매 자체도 초록빛 날개 품속 알처럼 잎사귀 은신처에 멈춘 채 매달려 있었다. 하지만 잎사귀들은 곧 검어질 것이다. 저 아래 하늘보다 훨씬 더 검어질 것이다. 하늘 아래 잎사귀들은 겨우 잠들었나 싶은데, 자면서도 가볍게 몸을 떤다…….

이 열매들을 바로 따러 가는 게, 의식을 치르듯 이런 말의 성찬을 늘어놓는 것보다 나을 거라고 사람들은 생각할지 모른다. 물론 나도 이 열매를 딸 줄 안다. 나도 밝은 대낮에 그들의 터지는 빛, 건강한 둥근 뺨이며, 때론 시고 때론 수분 많은 그 맛을, 그 진홍빛을 사랑한다. 그것은 그저 또다른 이야기인 것이다. 낮의 열기 속에, 태양은 가득한데, 다른 과일을 깨물고 싶은 욕망이 득달같이 이는 가운데, 천사들이 아니라 천사보다 훨씬 나은 것들이 여름 초 눈부신 하늘을 향해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는 그런 이야기. - P18

오늘밤,
얼음처럼 차가운 바람이 별들을 후려친다.
별들 또한
더 탐욕스럽게 불타오르는 것 같다. - P60

아름다움이라는 단어를 사용할 권한이 이젠 우리에게 없어 보인다. 사실 이 단어는 닳고 닳았다. 물론, 나도 아름다움이라는 게 뭔지 잘 안다. 그렇긴 해도, 생각을 해보면 나무들에 대한 이런 판단은 이상하다. 나로선, 그러니까 정말이지 세상에 대해 별반 아는 게 없는 나로선 ‘가장 아름다운 것’ 이 본능적으로 느껴지면, 그게 바로 세계의 비밀에 가장 가까운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공기를 거쳐 우리에게까지 전달된 전언을 가장 충실히 번역한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 P31

밤 내내, 지평선 전체에, 아주 드문 일이지만, 천둥이 굴러간다. 저 먼 동방 오케스트라의 집요하고 긴 타악기 소리처럼.
아니면 다시 움직여 맞춰야 할 해골들 소리처럼. - P56

시간이라는 담쟁이덩굴이 질식시켜
주름지고, 손상된 나무 몸통,
장미 한 송이가 살짝 건드려만 준다면, 다시 푸르러질텐데.





폐허라기보단 강물이라고 말해.
아니, 모든 폐허가 실은 이 강물 같은 폐허.

자리에 없는 목동들이 해야 할 것.

구름들이 잘못 조언해 달아나고 있는
암사슴들을 붙잡아둘 것.
강물이 땋아놓은 머리를 풀어놓을 것.
협곡에 난 저 희귀한 풀들을 아껴둘 것.
산속 나무들 하나하나가 리라처럼 몸을 꼬고 있으니
돌들 상아를 울려서라도 연주할 것.
- P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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