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에 읽은 마지막 책에 대한 지각 독후감. 2018년 초 전 세계를 강타한 문제작이고 거의 1년이 지나 시의성은 좀 떨어지지만 몇 주 전에 지역 도서관에서 발견하고 오? 싶어서 빌려와서 단숨에 다 읽었다. 400페이지가 훌쩍 넘는 적지 않은 분량이며, 많은 인물들이 등장해서 첫 몇 장은 관계도를 파악하느라 조금 힘들지만 이후로는 술술 넘어간다. 이 책에서 보여주는 트럼프 대통령 집권 첫 해 백악관 내부의 희극적이고 우스꽝스러운 군상들의 권력 암투와 광대놀음은 그야말로 블랙 코미디의 정수를 보여 주며, 마치 도스토예프스키 소설의 21세기 논픽션 버전을 읽는 것처럼 흥미진진하여 손에서 놓을 수가 없었다. 때로는 빵 터져서 육성으로 낄낄거리기도. 스티브 배넌과 같은 트럼프 정부 초기 핵심 인물을 비롯하여 200명이 넘는 관련 인물들의 인터뷰를 바탕으로 집필한 책이라고 하는데, 작가의 날선 sarcasm과 유머 감각, 인간에 대한 이해, 발로 뛴 수고와 취재에 경의를 표한다.



이 책이 사실이라면 정말 큰일이다. 그래도 뭔가 있으리라고 믿었던 미합중국의 대통령 도널드 트럼프는 정말 아무 것도 없었고 읽는 내내 오한이 등을 타고 내렸다. 일단은 첫 장부터 충격적이었는데, 많은 사람들이 생각했던 것과 달리 트럼프는 처음부터 진심으로 대통령이 될 생각은 없었다고 한다. 도널드 트럼프 그 자신은 물론 주변 참모진들 역시 선거에서 이기리라고 예측하지도 못했기 때문에 선거 캠프는 오합지졸들로 구성되어 있었다. 풍부한 정치적 경험을 바탕으로 한 전문가들이 합류하여 준비된 참모들로 구성된 힐러리 클린턴의 선거 캠프와 대조적으로 말이다. 민주당이든 공화당이든 역대 메이저 정당의 대선 후보라면 대통령이 되었을 경우를 대비하여 당선 여부가 불분명한 상황에서도 어느 정도는 국정 로드맵을 그리는 태스크포스 팀을 꾸리는 게 당연한 수순인데, 트럼프 진영은 이런 대비는 커녕 실질적으로 선거전략을 효과적으로 세우는 유능한 참모들마저 전무하여 주먹구구식으로 굴러가는 부실한 선거캠프를 운영하고 있었다. 공화당 쪽에서도 거의 지지를 받지 못했던 게, 도널드 트럼프라는 인물의 측근이었다는 경력이 자신들에게 별로 명예롭지 않으리라는 생각에 자리가 주어져도 손사래를 치며 거절하는 이들이 많았다고 한다(인종 차별에 성차별에 여성혐오자로 유명한 인물이니). 트럼프 자신조차도 당연히 힐러리 클린턴이 선거에서 승리할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한마디로 전형적인 ‘자기애적 인격’을 지닌 인물이 자신이 주목받는 것을 즐기며 대중으로부터 자신이 위대한 인물이라고 평가받는 것에 대해 집착하여 대선 후보가 된 것 뿐인데 덜컥 당선되어버렸다는 것이다. 비유가 적절한지 모르겠는데 2007년 대한민국 대통령 선거에서 신드롬급 인기를 몰고 왔었던 허경영 후보와 비슷한 사례라고 볼 수 있지 않을까. 둘의 인기는 기존 정치에 대한 냉소를 반영한다는 점이 비슷하니 말이다. 다른 점은 트럼프는 막대한 재벌이라 선거에서 져도 잃을 것이 별로 없었다는 사실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실제로 대통령에 당선되었다는 게 큰 차이지만.


기성 정치인과는 궤를 달리하는 트럼프의 배경은 러시아 스캔들과 같은 파문에 휘말려들 수밖에 없게 된 배경이기도 하다는 저자의 설명을 읽으니 수긍이 간다. 영향력이 큰 정치인일수록 살벌한 정치판에서 적에 둘러싸여 살아가기 마련이고, 그의 지난 행적이 앞으로의 정치 생명의 발목을 잡는 큰 약점이 될 수도 있기 때문에, 기성 정치인들이라면 본인 뿐만 아니라 주변인들까지 행동 거지를 조심해야 한다는 의식이 상식선에서 항시 있었을 것이다. 부동산 재벌로서 자신의 왕국인 트럼프 타워 안에서 모든 이가 자신의 말 한마디에 움직이던 삶을 살았던 트럼프는 조심할 이유도 없었고, 선거에서 승리하리라 생각하지도 않았기 때문에 러시아 스캔들과 같은 빌미가 적들에게 쉽게 노출될 수 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장군으로 은퇴하고 한 해 몇십만 달러의 연금을 받고 있던 플린은 어떤 돈도 거절하지 않았다. 다양한 친구와 조언자들이 플린에게 러시아나 더 큰 ‘컨설팅’ 의뢰를 하는 터키로부터 보수를 받아서는 안 된다고 충고했다. (중략) 대통령과 그의 가족들을 포함해 트럼프의 세계에 있는 거의 모든 사람들이 이러한 부주의를 저질렀다. 그들은 두 개의 평행 현실 속에 살았다. 한편으로는 대통령이 되기 위한 선거운동을 계속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도널드 트럼프가 결코 대통령이 되지 않을 훨씬 더 큰 가능성이 높은 세계--확실한 세계--에서 살아야 했다. 따라서 예전에 하던 그대로 했던 것이다. 

2월 초 샐리 예이츠와 친한 오바마 행정부의 한 변호사가 상당히 정확하면서도 재미있는 발언을 했다. “대통령에 당선되는 데 신경 쓰지 않고 살았는데 결국 당선이 됐다면 그건 확실히 묘한 상황이지요. 그리고 적들에게는 큰 기회이고요”


-본문 177쪽



재미있는 부분이 너무 많아서 꼽기가 힘들다. 일단 트럼프가 언론의 인정을 항상 갈망해왔다는 점이 잊을 만하면 계속 나오는데 너무 웃겼다. 취임식때 존재하지도 않는 100만 명이 참가했다고 트위터로 자랑하다가 빈 좌석의 사진을 보여주는 언론의 비아냥거림에 상처받기도 했고, 그래서 CIA의 관계자들과 첫 미팅에서 CIA와는 전혀 관계없는 자신의 취임식 이야기만 늘어놓는 부분은 걸작이다. 뜬금없이 취임식 참가 인원에 대한 언론과의 견해 차에 대해 횡설수설하며 오랜 시간동안 장광설을 늘어놓아 당시 마이클 폼페이오 국장 및 CIA 직원들이 힘들어하며 맞장구치는 장면은 이 책의 몇 가지 대폭소 포인트 중 하나.


문제는 그게 전부라는 것이다. 보고서와 파워프린트를 이용한 각종 통계와 근거 자료, 그를 통한 정책의 구상과 같은 피드백을 받는 것을 싫어했다. 집무실에서 쉴 새 없이 트위터를 하고 하루종일 여기저기 전화통화를 하는 것이 주요 일과이고, 신문을 읽기도 싫어해서 헤드라인 정도만 보고 자신을 어떻게 평가하는지에 대해서만 초집중하는 전형적인 관종이라는 것. (이전에 실제로 궁금해서 그의 트위터를 팔로우 해 본 적이 있었는데, 아마도 트위터를 해 본 이들이라면 다들 알겠지만 트럼프는 정말 하루 종일 트윗을 날려댄다!) 따라서 진지하게 논의된 정책마저도 그의 기분에 따라 이랬다 저랬다 극과 극 사이에서 요동을 치기도 하고, 따라서 추진한 내용이 완전 물거품이 되는 과정도 빈번하여 참모진들은 예측불허인 그가 무슨 트윗을 날리는지에 대해 신경을 곤두세우는 데에 온 정신을 기울일 수밖에 없다는 대목은 현실 코미디보다 훨씬 웃겼다.


배넌이 여행금지 조치를 자신의 철학을 반영한 첫 백악관 성명으로 추진했다면 쿠슈너는 장인이 선거운동 내내 협박하고 모욕했던 멕시코 대통령과 장인을 만나게 하는 것이 자신의 지도력을 보여주는 첫 작품이라고 생각하고 추진했다.

쿠슈너는 93세의 키신저에게 조언을 구하려고 전화를 걸었다. 나이 많은 키신저를 치켜세우고 대통령 앞에서 그의 이름을 들먹여보려고 한 전화였지만 또한 실제로 진정한 조언을 얻기 위해서이기도 했다. 트럼프는 멕시코 대통령과 문제를 일으키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한 일이 없었다. 선거운동 때의 가혹한 입장에서 물러서는 전환은 없다는 배넌의 방침에도 불구하고 멕시코 대통령을 백악관에 데려오는 것은 진정으로 의미있는 전환이며 (그것을 전환이라고 부르지는 않아도) 쿠슈너가 그에 대한 공을 주장할 수 있을 것이었다. (중략) 

엔리케 페냐 니에토 멕시코 대통령을 백악관으로 불러오기 위한 협상은 정권인수 기간 중에 시작됐다. 쿠슈너는 국경 장벽 이슈를 이민 문제에 관한 양자 협정으로 전환해 트럼프식 정치의 역작으로 만들 수 있는 기회를 보았다. (중략) 그날 오후 쿠슈너가 장인에게 보낸 전갈은 페냐 니에토가 백악관 회담에 오기로 동의했고 방문 계획이 진행될 수 있다는 것이었다.

다음 날 트럼프는 이런 트윗을 날렸다. ‘미국은 멕시코와 무역에서 600억 달러의 적자를 보고 있다.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 시작 때부터 줄곧 일방적인 거래였다….’ 그리고 다음 트윗에서 계속했다. ‘엄청난 수의 일자리와 기업들을 잃었다. 멕시코가 절실하게 필요한 장벽의 건설비용을 기꺼이 내려고 하지 않는다면 다가오는 회담을 취소하는 게 나을 것이다….’

그 순간 페냐 니에토는 바로 그렇게 했다. 쿠슈너의 협상과 정치수완은 바닥에 버려진 쓰레기처럼 되고 말았다.


-본문 134-135쪽.


재러드와 이방카는 트럼프에게 영향을 미치려면 내부에 있어야 한다는 걸 알았다. 두 사람은 웨스트윙 내 공식적인 직위와 외부 자문 역할이 갖는 권력과 영향력을 비교할 때 그 점을 고려했다. 전화 통화와 통화 사이에서--트럼프의 하루는 조직된 회의를 빼고는 거의 전부가 전화 통화였다--그를 놓쳐버릴 수 있다. 이는 엄청나게 미묘한 부분이다. 트럼프는 흔히 마지막으로 그에게 이야기한 사람에게 영향을 받았지만 그가 실제로 누군가의 말을 듣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를 움직인 건 개별적인 주장이나 청원의 힘보다는 단지 그와 함게하는 누군가의 실재였다. 물론 그가 집착이 많고 일관된 견해가 거의 없다고 해도, 그의 머릿속을 스치는 생각들이 누구와 연결돼 있고 그들이 어떤 견해를 가지느냐 하는 것이 그를 움직였다.

결국 트럼프는 그의 근본적인 유아론적 태도에 있어서는 인생의 대부분을 대단히 통제된 환경에서 살았던 부호들 중 누구와도 다르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한 가지 명백한 차이는 그가 습득한 공식적인 사회적 규율은 거의 전무했다는 점이었다. 그는 심지어 예의를 지키는 시늉조차 할 수 없는 사람이었다. 그는 예를 들어 정보를 교환한다는 의미에서 혹은 대등하게 주고받는 식의 진정한 대화는 할 수 없었다. 그는 사람들이 그에게 하는 말을 각별히 듣지도 않았고 그에 대해 특별히 신경 써서 응답하지도 않았다. (이는 그가 그토록 같은 말을 되풀이하는 이유중 하나다.) 그는 또한 누구에게든 어떤 기본적인 예의나 믿을 만한 정중함도 갖추지 않고 대햇다. 자신이 뭔가를 원할 때면 그는 예리하게 초점을 맞추고 충분히 주의를 기울였지만 누군가가 그에게 뭔가를 원할 때면 그는 성마르고 금세 흥미를 잃는 경향이 있었다. 그는 다른 이들더러 자신에게 주의를 기울이라고 요구하고는 그들이 약해서 굽실거린다고 생각했다. 어떤 의미에서 그는 직감적이고 제멋대로이며 엄청나게 성공한 배우 같았다. 그에게는 모든 사람들이 그의 명령을 수행하는 종복이거나 그의 주의와 연기를 이끌어내려고 애쓰는--그가 화를 내거나 까다롭게 굴지 않도록 하면서 그 일을 해야 하는--영화 제작 고위 관계자였다.

이에 따른 결과는 그의 열광과 급하고 자동적으로 튀어나오는 반응이었다. 그리고--그가 끊임없이 자신에게 집중하는 데서 잠시 벗어날 경우--종종 찾아오는 상대의 허약함에 대한 날카로운 인식과 그들의 가장 깊숙한 욕망에 대한 깨달음이었다. 정치는 너무 많이 아는 사람들의 점진주의 때문에 약해졌다. 그들은 시작하기도 전에 그 모든 복잡성과 이해충돌 때문에 패배하는 사람들이었다. 아는 게 거의 없는 트럼프는 그런 체제에서 괴상한 새 희망을 줄 수도 있었다. 트럼프 지지자들은 그렇게 믿으려고 애썼다. 


-본문 124-125쪽


트럼프의 백악관이 미국 역사상 어느 행정부 못지않게 불안한 상태였다면 대통령의 외교정책, 그리고 더 크게는 세계관은 가장 무작위적이고 무지하며 변덕스러워 보이는 축에 속했다. 그의 자문역들은 그가 고립주의자인지 군국주의자인지, 아니면 그 둘을 구분이라도 할 수 있는지 알지 못했다. 


-본문 298쪽


대통령은 취임 이후 직관적인 국가안보관을 개발해왔다. 행복하지 않으면 미국을 괴롭힐 수 있는 독재자들이 가능한 한 행복한 상태를 유지할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었다. 스트롱맨을 자처하는 그는 기본적으로 타협가였다. 그러니 이번 경우에 왜 러시아와 부딪치려 하겠는가?


-본문 308쪽.


대통령인데 실질적으로 정책에 대한 관심이 없고 철학도 없기 때문에 아랫 사람들의 말이 길어지면 듣지도 않으며, 자기애적 인물이라 현안과 큰 관계 없는 자신의 무용담만 장황하게 늘어놓으며 원래 현안으로부터는 크게 궤도를 벗어나기 일쑤니, 상식적으로 위에서 내려오는 정책이 아래에서 실행되는 게 아니라 완전 반대 방향으로 이루어진다는 이야기도 충격적이었다(아니 세계 최강대국 대통령이 이래도 돼???). 트럼프는 남의 말을 듣지 않으므로 회의에서 발언의 배분은 대통령 9, 나머지 1 정도로 진행되는데 이 과정도 역대급 코미디다. 참모들은 자신에게 겨우 주어지는 5분 남짓의 시간동안 대통령이 원할 것 같은 정책을 무엇이 먹히는지 보자는 식으로 재빨리 제안한 다음 대통령이 자신도 그 생각을 했었다고 생각하기를 바라게 만드는 은밀한 설득을 하는 식으로 의사 결정이 진행된다는 것이다. 의사 결정과정이 이렇게 해괴하니 대통령을 통해 자신의 정치 철학을 펼치려는 세력들 간에 권력 암투가 극심하게 진행되는 데 이 지점이 이 책의 가장 재미있는 포인트이다. 대개는 극우주의자인 스티브 배넌과 민주당원인(!) 재러드 쿠슈너와 이방카 트럼프 부부라는 큰 두 축(초기에는 프리버스까지 세 축)으로 권력 암투가 진행되었고, 어떤 날에는 극우파들이 좋아할 만한 이민금지 행정명령이 내려왔다가, 어떤 날에는 민주당에서도 환영할만한 정책이 발표되기도 하는 등 정책이 완전 널을 뛰게 된다. 가히 막장드라마급이다.


분석이나 토론이나 파워포인트는 먹히지 않았다. 하지만 트럼프에게 누가 무엇을 말했고 언제 말했는지는 중요했다. 배넌이 부추겨 레베카 머서가 트럼프에게 전화를 하면 효과가 있었다. 프리버스는 트럼프에 대한 폴 라이언의 영향력을 가질 수 있었다. 쿠슈너가 꾸며서 머독이 전화를 하면 접수가 되었다. 그러면서도 각각의 이어지는 전화는 대부분 다른 전화를 무효로 만드는 것이었다.

이러한 마비현상 때문에 세 명의 조언자들은 대통령을 움직이는데 특별히 효과가 있는 다른 방법에 의존하게 되었다. 그것은 언론을 이용하는 방법이었다. 이로써 세 사람 모두 상습적이고 세련된 정보 유출자가 되었다. (중략) 백악관에서 첫 달이 끝날 무렵, 배넌과 쿠슈너는 각자 정보를 흘릴 주된 창구들과 그 창구가 명백하게 드러나지 않도록 시선을 돌릴 부차적인 창구들의 네트워크를 갖게 되었다. 이에 따라 백악관은 언론에 대해 극단적인 증오를 나타내면서도 동시에 언론에 정보를 흘릴 강한 의지를 갖는 꼴이 됐다. 적어도 이 점에서는 트럼프 행정부가 획기적인 투명성을 달성했다.


-본문 203-204쪽


이런 상황이기에 통상적으로 다른 행정부라면 했을 정상적인 의사결정을 내리지 못하는 상황까지 벌어지자, 딸인 이방카 트럼프가 묘책을 생각해낸 부분도 재미있다. 스티브 배넌의 대통령에 대한 영향 때문에, 시리아의 화학무기 사용에 대해 제제를 가하기는 커녕 용납할 수 없다는 성명을 내는 것도 힘들어 이에 미국이 개입하지 않는다는 비난 여론이 거세지고 있던 때였다. 군사 문제에 대해 집중하지 않는 대통령 때문에 브리핑을 하기도 힘들자 이방카는 대통령의 주의집중력을 높이기 위해 입에 거품을 문 아이들의 사진을 가지고 만든 프리젠테이션을 브리핑한다. 이 자료를 보고 충격을 받은 대통령의 결정을 이끌어내는데 성공한 건 물론이고 말이다.


트럼프의 조직보다 군의 규율과 잘 맞지 않는 조직을 찾아보기는 어렵다. 그곳에는 실질적인 위계 구조가 없고 단지 맨 위에 한 사람이 있고 그 아래 모든 사람들이 그의 주의를 끌려고 서로 다투고 있었다. 이는 과업을 기반으로 하기보다는 보스의 반응을 따르는 조직이었다. 그것은 트럼프타워에서 작동하던 방식이었다. 이제 그와 똑같은 방식이 트럼프 백악관에 적용되고 있었다.

대통령 집무실 자체는 전임자들이 궁극적인 권력의 상징이자 의식의 정점으로 활용해왔다. 그러나 트럼프는 그곳에 도착하자마자 일단의 전장 깃발들을 들여와 책상에 앉은 자신의 모습을 연출했고, 집무실은 곧바로 트럼프의 일상적인 아수라장이 되었다. 그 전의 다른 어떤 대통령보다 이번 대통령에게 더 많은 사람들이 쉽게 접근하는 것 같았다. 대통령 집무실에서 열리는 거의 모든 회의에 수많은 가신들이 둘러섰고 들락거렸다. 실제로 모든 사람들이 모든 회의에 앞다투어 참석했다. 그곳에는 엉큼한 사람들이 뚜렷한 목적 없이 살금살금 돌아다녔다. 배넌은 언제나 한구석에서 서류를 검토할 구실과 마지막 한마디를 할 구실을 찾았다. 프리버스는 계속 배넌에게서 눈을 떼지 않았다. 쿠슈너는 다른 사람들의 움직임을 끊임없이 감시하고 있었다. 트럼프는 힋, 콘웨이, 그리고 종종 그의 〈어프렌티스〉 동료였던--지금은 사람들을 어리둥절하게 하는 백악관 직함을 가진--오마로자 매니골트Omarosa Manigqult까지 언제나 그의 주위에서 맴돌게 하고 싶어 했다.늘 그렇듯이 트럼프는 열렬한 청중을 원했고, 가능한 한 많은 사람들이 그에게 가능한 한 가까이 가능한 한 자주 오려고 애쓰도록 부추겼다. 그러나 머지않아 그는 자신에게 가장 열심히 알랑거리는 듯한 사람들을 알아보고 조롱하기도 했다.

훌륭한 경영자는 에고를 제어한다. 그러나 트럼프의 백악관에서는 흔히 그가 있는 자리에서 일어난 일이 아니라면 그것은 한마디로 현실 속에 존재하지 않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것처럼 보였다. 이는 뭔가 거꾸로 된 것 같은 느낌을 주었다. 어떤 일이 일어났는데 트럼프가 그 자리에 없었다면 그는 그 일에 신경 쓰지 않았고 거의 인식조차 하지 못했다. 그럴 때 그의 반응은 보통 그저 멍하니 쳐다보는 것이었다. 이는 또한 웨스트윙과 행정부 전반에 걸쳐 사람들을 채용하는 작업이 왜 그토록 느린지 설명하는 논리 한 가지를 제공했다. 거대한 관료조직을 채우는 일은 그의 시야 밖에 있었으며 그래서 그는 전혀 관심을 두지 않았다. 약속을 하고 웨스트윙에 온 방문자들은 직원이 너무 없어서 당황했다. 웨스트윙 출입문에서 해병대 복장의 군인에게 날렵한 경례로 인사를 받은 다음, 이 건물에는 정치 현안과 관련한 약속으로 찾아온 방문자를 맞는 안내원이 보통 없다는 걸 알게 되었던 것이다. 그래서 손님들은 서방세계 권력의 정점에 있는 이곳에서 스스로 미로를 헤쳐가야 했다.


-본문 183-185쪽



이 책을 읽은 지 몇 달이 지났다. 며칠 전 제2차 북미 정상회담이 결렬되었다는 뉴스를 듣고도 나는 전혀 놀라지 않았다. 한편으로는 이런 인간이 힐러리 클린턴을 떨어뜨리고 당선되었다는 데에 대해 환멸감이 느껴지기도 하다. 영부인, 국방부 장관, 상원의원 등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풍부한 정치적 경험, 연륜, 인적 네트워크 등등 모든 면에서 잘 준비된 후보였고, 전 세계 여성들이 세계 최강대국의 첫 여성 대통령 탄생을 진심으로 응원했다가 좌절했던 2년 반 전의 아픈 기억이 떠오른다. 도널드 트럼프의 당선은, 백인 남성들을 주축으로, 버락 오바마 시대를 거치며 소수자들이 메인스트림에 진출한다는 공포와 반발로 인한 명백한 백래시이다. 역시나 인종 차별보다 성차별의 벽이 더 견고하다는 걸 알리는 차가운 현실이기도 했다.

마초적이고 파토스적이며 정치인에 다소 어울리지 않는 나르시스트가 ‘기성 정치에 대한 환멸을 대체해줄 구원 투수’라는 이미지를 바탕으로 지지자들을 끌어모아 본인도 예상하지 못한 채 대통령이 되었고 벌써 2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 오랜 기간동안 민주주의 절차를 잘 다듬어왔고 원칙과 상식을 중시하여 시스템이 안정적인 나라는 그래도 막장 정치인이 대통령이 되어도 잘 돌아가는구나, 라는 생각을 하며 부럽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마지막으로 이 책의 내용을 잘 요약해준다고 생각되는 부분을 옮긴다.


게리 콘의 견해를 나타낸다고 하는 이메일은 백악관의 많은 사람들이 느끼는 끔찍함을 간결하게 요약했다. 이메일 내용은 이랬다.


이곳은 당신이 상상하는 것 이상으로 안 좋아. 한 바보가 어릿광대들에게 둘러싸여 있어. 트럼프는 아무것도 읽지 않아. 한 장짜리 메모도, 짤막한 정책 브리핑도, 아무것도. 그는 세계 지도자들과 만날 때 중간에 일어나. 지루하기 때문이지. 그리고 직원들도 더 나을게 없어. 쿠슈너는 아무것도 모르는 금수저 아기야. 배넌은 자신이 실제보다 똑똑하다고 생각하는 건방진 놈이야. 트럼프는 한 명의 사람이라기보다는 끔찍한 특성들의 집합체지. 그의 식구들 아니면 누구든 첫해럴 버텨낼 수 없을 거야. 나는 이 일을 싫어하지만 그가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알아낼 실마리를 가진 사람은 내가 유일하기 때문에 더 머물러 있을 필요가 있다고 느껴. 


-본문 301-30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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