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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렌드 코리아 2019 - 서울대 소비트렌드분석센터의 2019 전망
김난도 외 지음 / 미래의창 / 2018년 10월
평점 :
제목을 적고 나니 좀 오글거리는 건 어쩔 수 없구나. 데헷.
《트렌드 코리아》시리즈가 이토록 인기있으며 이제 권위있는 스테디셀러 시리즈인데 처음 읽어본다니 좀 멋적다. 그만큼 세상만사에 별로 관심이 없었기도 하고, 그 이유로 세상은 어쩔 수 없이 버텨내어야 하는 것이라는 염세적인 세계관을 30년 넘게 가져왔기에 세상을 증오하면 증오했지 별로 사랑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내가 세상이 돌아가는 추세를 살펴보고 관심을 갖게 만든 것은 모두 페미니즘 덕분이다. 나를 사랑하고, 세계를 조금 더 긍정하게 도와주었으니까. 내 리뷰는 어째 항상 책 주제와 직접적인 상관은 없는 개인적인 고백으로 시작하는 것 같네. 하하.
작년도 예측에 대한 보고서로 시작하고, 2019년의 트렌드를 PIGGY DREAM이라는 mnemonic code로 정리하였는데, Play the concept, Invite to the ‘cell market’, Going new-tro, Green survival, You are my proxy emotion, Data intelligence, Rebirth of space, Emerging ‘millennial familiy’, As being myself, Manners maketh consumers 이하 10가지 주제로 트렌드 분석이 이루어져 있다. 세포마켓, 뉴트로 스타일의 유행, 환경보호가 이제 필수가 되어버린 필환경시대, 데이터 인텔리전스, 밀레니얼 가족과 같은 주제들은 딱히 트렌드에 민감하지 않은 나 조차도 올 한 해 서서히 대두되고 있음을 체감할 수 있었던 주제들이다. 다 읽자마자 까먹지 않기 위해 기억에 남는 몇 가지 주제들에 대해서 리뷰해 본다.
세포마켓의 대두는 인스타그램의 소위 ‘팔이피플’ 주도하에 선주문 후판매라는 형식을 통해 유행하는 방식을 흔히 보았는데, 탈세와 법망을 피해간다는 역기능에 대한 훈계어린 지적만 뉴스 기사에서 흔히 접했었다. 이러한 세포마켓들의 대두에 대한 미래지향적인 새로운 가치의 분석은 잘 볼 수 없었는데, 이 책에서 읽고 난 후 깨달은 바를 덧붙이자면, 이러한 방식의 마켓은 환경 의식이 이제는 필수가 된 시대에도 분명 큰 장점이 된다는 것이다. 산업혁명 이래 기존 대기업들이 주도해왔던 대량생산 후 수요와 공급 사이의 간극을 읽지 못해서 새로운 상품들이 대량 폐기처분되는 자원의 낭비 사례가 적지 않았는데 인스타그램의 개인 판매자들이나 텀블벅에서 진행되는 여러 프로젝트를 보면 더 많은 소비자들의 공감을 이끌어낸 기획이 채택되는 것을 자주 볼 수 있다. 이는 소비자가 생산을 주도하는 변혁을 이루어 내는 인식의 전환이기도 하고 세포마켓을 통해 같은 가치나 취향을 가진 소비자들간의 연대 의식이 강화되는 선순환도 이루어낼 수 있다. 물론 유명세를 이용해 저질의 상품을 판매하는 판매자들을 걸러낼 수 있는 사회적 장치의 마련은 반드시 필요할 것이다.
뉴트로는 기존의 ‘레트로’와 차별화를 위해 네이밍된 개념이다. 유행이 돌고 돈다는 거야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인데, 저자들에 따르면 아주 어린 시절 혹은 태어나면서부터 디지털 세계가 익숙한 세대들이 이를 주도한다는 점에 있어 기존의 개념과 차이가 있다는 것이다. 디지털 세대들은 동시대의 고도로 세련되고 정제된 컨텐츠들에 대한 피로감에 적극적으로 새롭게 가치를 창조하여 아날로그 시절의 컨텐츠들을 발굴해낸다는 개념 정도로 이해하면 되겠다. 뉴트로 또한 분야가 다양하여 한도 끝도 없으니 내가 좋아하는 음악 분야만 예로 들어 보겠다. 멜론과 같은 음원 스트리밍 서비스에서 ‘펄 시스터즈’처럼 1980년대 옛날 가수들의 음원에 달린 댓글들을 간혹 보면 “뭐야 내가 태어나기도 전인데 개힙해… 개쩔어”와 같은 귀여운 댓글들을 종종 발견할 수 있다. 최근 거의 900만 명의 관객을 동원할 정도로 신드롬급 이슈가 된 《보헤미안 랩소디》의 폭발적인 인기에서도 이를 확인할 수 있다. 처음에는 퀸의 전성기때 팬이었던 4050세대들이 주 관객층이었다면, 후의 신드롬을 몰고 온 세대는 현재의 20대인 90년대생들이다. CGV와 같은 영화 연령층을 보면 20대 여성들이 거의 신드롬을 주도했는데, 역시 멜론과 같은 음원 스트리밍 사이트나 유투브의 퀸 음악 관련 컨텐츠의 댓글창을 보면 ‘퀸을 듣고 나서 요즘 팝이나 가요들을 다시 들으니 세련되긴 했는데 소울이 없고 노래같지도 않아 그 좋아했던 최애 가수들의 음악조차 못 듣겠다’는 열렬한 신앙고백(?)으로 가득하다. 이들은 영화관을 콘서트장으로 만드는 새로운 문화적 현상마저 창조해냈다. 뉴트로를 통해 세대를 뛰어넘은 문화의 공유가 이루어졌다는 제보가 이어지는 아름다운 사례들을 접하면 뭉클하기까지 하다. 아, 참고로 이 책에 위의 음악 분야가 자세히 소개된 것은 아니고 본인이 이 책에 제시된 뉴트로 개념을 내가 접한 음악에 응용해서 리뷰하는 것임을 밝힌다.
데이터 인텔리전스. 4차혁명전문가 및 미래학자들의 저서를 보면 우리가 사용하는 모바일 기기는 이미 우리의 아이덴티티의 확장이라고 지적한다. 방대한 데이터들이 생성되고 수집되며 이러한 데이터들은 정보가 되고 정보가 지식이 되며 이를 어떤 알고리즘을 통해 활용해 가치를 창출하느냐, 이용 방식을 어떻게 결정하느냐에 따라 지혜가 된다. 저자들은 이러한 데이터를 data+decision의 합성어로 데시전dacision이라는 단어를 제시한다. 지금은 데이터가 무궁무진할 정도로 방대한 시대이나 가치를 창출하는 방향을 적확하게 제시하는 주체들은 턱없이 부족한 상황이라고 하며 이를 잘 활용하는 자가 승자가 될 것이다. 어떤 방식으로 이용하느냐에 따라 디스토피아가 도래할 수도 있다는 불길한 우려와 경고의 목소리는 항상 있었다. 트럼프 대통령 당선에 영향을 미치게끔 악용된 유명한 데이터 스캔들의 전례(케임브리지 애널리티카의 페이스북 이용자 5000만명 개인정보 유용)도 있었고 말이다. 과거 주민등록번호 유출과 같은 사건들은 이제 그냥 애교로 보인다. 나의 아이덴티티의 확장인 모바일 기기를 통한 개인정보 유출이 악용된다면 내 사상까지 검열받는 섬뜩한 사회를 상상하긴 어렵지 않다. 물론 인류는 지금까지 그래왔듯 이러한 역기능을 방지하기 위한 해답을 찾아내리라 믿는다. 이처럼 대량의 데이터베이스를 이용한 인공지능과 인간과의 관계맺음을 주제로 한 소설을 정확히 10년 전인 2008년에 써서 국내 주요 문학상 공모전 몇 군데에 출품한 적이 있었는데 근처도 못 가보고 죄다 낙방했었던 기억이(하하^^;) 떠오른다. 다시 글을 써볼까 하는 욕구가 솟아오르는고나.
필환경시대. 2000년대 초만 하더라도 환경 문제에 관심을 가진 사람들은 운동권이거나 여자거나 재미없는 고루한 범생이들과 같은 이미지였고 2000년대 후반 들어 점차 ‘에코백’과 같은 상품들이 ‘유행’하기 시작했다면, 이제는 환경 문제는 유행을 떠나 필수적인 문제로 전세대의 공감을 얻고 있다. 올 한해만 보더라도 비닐봉지 등 일부 재활용 품목이 수거되지 않았다거나, 이상기온현상, 초미세먼지, 미세플라스틱, 계란 파동과 같은 이슈들이 굵직굵직하게 터져 왔고 제아무리 환경보호에 대한 감수성이 둔감한 사람이라도 이제는 나의 문제로 인식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몇 달 전 스웨덴이었나, 정확히는 기억이 안 나는데 북유럽의 한 국가에서 한 청소년이 현재의 환경 정책에 불만을 갖고 거의 1년 가까이 학교를 가지 않으며 시위를 하여 기성세대들의 동참을 이끌어냈다는 뉴스를 보았는데, 그녀의 슬로건 중에 눈길을 끌었던 것은 ‘나는 이런 지구를 물려받지 않을 권리가 있다’라는 뉘앙스(정확한 내용의 기억은 나지 않는다)의 피켓이었다. 기성세대들의 비겁함을 정확히 찌른 문구였으며 이어서 그들의 죄책감을 통해 행동까지 이끌어내게 되었다고 한다. 우리는 지구를 소유한 것이 아니고 잠깐 빌려 쓰는 것이기에 후손에게 깨끗한 지구를 물려줘야한다는 이야기는 국민학교 시절부터 닳고 닳도록 들었는데 지금의 새로운 세대에게는 이것이 정말 생존권과 직결된 절박한 문제로 다가오는 것이다. 어려서부터 어머니의 영향으로 환경 감수성이 섬세한 편이었기 때문에 이러한 변화는 고무적이라 생각되며 반갑다.
밀레니얼 가족. 가족의 해체, 1인 가족의 대두와 같은 추세는 나날이 가속화되고 있다는 말을 다시 하기에도 입이 아플 정도이다. 기존의 낡은 가부장제의 유지로는 절대 사회 구성원의 재생산을 이루어낼 수 없다는 문제의식을 정책 입안자분들은 제발 좀 진지하게 생각을 해보길 바란다. 헛다리좀 그만 짚으시고 말이다. 근데 ‘밥 잘 사주는 예쁜 엄마’ 이건 뭐냐. 가사 노동의 시간을 줄이고 자기 계발에 투자하는 새로운 어머니상을 소개하면서 ‘밥 잘 사주는 예쁜 누나’라는 드라마 제목을 패러디한 것 같긴 한데 이게 웬 시대에 역행하는 여성혐오적 네이밍 센스인가. 언뜻 보면 밥은 안 하고 외모만 가꾸는 젊은 엄마 이야기로 보이는데, 여성의 자기 계발은 외모만 있는 것도 아니고 오히려 지양해야 하는 지점이 아닌가 싶어 굉장히 불편하네.
나나랜드. 한국 사회는 튀지 않는 걸 강박적으로 추구하는 사회이며 공동체 내에서의 압력에 따라 개성을 말살하는 게 일반적이다. 이제는 이런 추세에서 벗어나 남이 뭐라고 하든 자기 만족을 추구하는 라이프 스타일이 대두되고 있다는 주제였는데, 엇 이게 뭐지? 여기에 ‘탈코르셋’을 가져온 것이 화가 난다. 탈코르셋 운동은 여성의 신체에 대해 주체로서의 여성을 소외시키는 인식론적 무단 점유를 정면으로 도전하는 운동이며, 여성 해방을 위해 여성이 주체가 되어 발생시킨 적극적인 담론이다. 그런데 이를 ‘타인이 지적하는 외모 지상주의로부터의 해방이자 여남을 떠나 모두에게 자존감 문제’로 대두된다는 식으로 ‘쓰까’먹으려는 시도를 나는 도저히 용납할 수 없다. 트렌드 코리아 팀은 탈코르셋 주제에 대한 내용을 삭제하든지 아니면 2020판에서 무리한 시도였다고 인정하는 피드백을 주기를 강력하게 촉구하는 바이다.
감정대리인. 이 책에서 다뤄진 트렌드들 중에서 개인적으로 가장 충격적이었던 지점이다. 내 가치관과 맞지 않는 트렌드였고 따라서 예측조차 힘들었던 트렌드였기 때문이다. 나는 사교적인 성격은 아니지만 살면서 어디에서든 좋으면 좋다, 싫으면 싫다고 감정을 솔직하게 털어놓는 편이었으며 미움을 많이 받았었다. “여자가 뭐 저렇게 단호박으로 말하느냐”라고 말이다. 서열과 위계 문화가 만연하고 솔직하게 의견을 표출하기 어려운 한국 사회의 특성상 감정을 대신 표출해주는 컨텐츠가 인기라는 것이다. 살면서 직접적으로 대인 관계와 역경을 통해 겪을 수 있는 힘든 감정과 그를 통해 문제 대응 능력과 인격의 성숙이 이루어지는 과정들은 회피하고, 맥모닝처럼 일회적으로 감정을 소비하는 트렌드에 대한 우려도 지적한다. 디즈니 픽사의 명작 《인사이드 아웃》에서도 주인공 어린이는 기쁨보다는 슬픔을 통해 한 단계 더 성숙하지 않았던가. 이 책에서 다뤄진 내용은 아니지만 요즘 우려스러운 것은 컨텐츠 들에서 내 감정을 대신 속시원하게 해소해주면 ‘사이다’, 그 반대면 ‘고구마’라는 식이 유행인데, 사건과 갈등의 복잡한 맥락은 읽지 못하고 무조건 ‘사이다’ ‘고구마’ 거리는 것을 보면 착잡하기 그지없다. 예를 들면 화제가 되었던 웹툰 《며느라기》 댓글창에 좋은 의견도 많았지만 결말을 두고 작가님 사이다 안 주냐 광광거리는 댓글들 보면 한숨이 나왔다. 가부장제 하에서 가사노동이 여성들에게만 지워지는 이 부조리한 현실을 각자가 실천적으로 바꿔나가자는 제안을 암시하는 좋은 결말을 두고 무구영 죽이는 ‘사이다’ 결말 어딨냐 댓글들을 보자니 하아…. 할많하않.
할 말이 많은데 너무 길어지니 이만 마무리해야지. 불편한 지점들이 몇 군데 있었지만 전반적으로 트렌드를 훑기에 좋은 책인 것 같다. 올해 첫 스타트를 떼었으니 매년 꼭 챙겨서 읽어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