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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죽을 것인가 - 현대 의학이 놓치고 있는 삶의 마지막 순간, KBS 선정 도서
아툴 가완디 지음, 김희정 옮김 / 부키 / 2015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아툴 가완디, 김희정 역, 어떻게
죽을 것인가, 부키㈜, 2015.
Atul Gawande,
Being Mortal, Wellcome Collection, 2014
『나는 고백한다, 현대의학을Complications(2002)』에서 지적이면서도 진솔하고 깊은 울림을 주는 글이 인상적이었던 하버드 외과 레지던트가 타임지가 선정한 100대 사상가이자 위대한 보건의료정책가가 되어 돌아왔다.
전작 『Complications』에서는 인간의
생물학적 제약에 대처하기 위해 분투하는 의학의 잠재력에 매혹을 느끼고 의학도의 길을 걷게 된 꿈 많던 청년 의사가 현실 의료 현장에서 느끼게 된
딜레마와 한계에 대해 고뇌하고 솔직히 털어놓는 인간적인 모습에 감동받았었는데, 아툴 가완디의 진솔하고
겸허한 태도와 날카로운 통찰력은 10년도 넘게 훌쩍 지났어도 여전했다.
이 책에서 가완디는 처할머니인 앨리스 홉슨의 죽음을 계기로 현대 요양원 제도가 지닌 허점과, 죽어가는 환자에게 지나친 의료 행위를 제공하여 도리어 환자의 마지막 삶의 질을 망쳐 놓는 의료 시스템의 모순을
지적하면서, 질병을 고치고 수명을 연장하겠다는 의학적 모델을 기반으로 한 의료 시스템은 정작 질병과
노화로 고통 받는 인간을 주체에서 객체로 소외시킨다는 뼈아픈 문제인식을 우리에게 상기시킨다.
“우리(의료계 종사자들)는
구체적이고 개별적인 문제를 처리하는 데 능숙하다. 대장암, 고혈압, 무릎 관절염 등 특정 질환에 걸린 환자가 찾아오면 어떤 조치를 취할 수 있다.
그러나 고혈압과 무릎 관절염에 더해 각종 다른 문제들을 안고 있는, 이를테면 자신이 영위해
온 삶의 방식을 모두 잃어버릴 위험에 처한 할머니를 만나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고, 많은 경우
문제를 더 심각하게 만들어 버린다.” [75쪽]
노화로 가족들 사이에서 자연스러운 죽음을 맞은 할아버지 시타람 가완디, ‘늙었다는
죄로 감옥에 갖힌 것 같은 비참한 기분’을 느끼다 요양원에서 죽음을 맞은 처할머니 앨리스 홉슨, 척수종양으로 투병하다 생을 마감한 아버지 아트마람 가완디의 죽음의 여정을 따라가며 그는 자연스러운 죽음과 인간의
존엄성이라는 측면에서 보았을 때 우리가 망각하고 있던 중요한 가치들을 수면 위로 끄집어낸다. 선의를
가장한 기만(죽음을 미룰 수 있다는 환상)과 냉정하지만 존엄한
삶을 살 수 있게 만드는 직면(인간은 결국 죽는다), 자율성과
안전이라는 가치의 충돌이다.
“스스로는 자율권을 원하고, 사랑하는 사람들은 안전하길 바라는 게
인간이라는 거예요.” 바로 이 점이 노쇠한 사람들에게는 가장 크고 역설적인 문제가 되고 있다. “우리가 애정을 가진 사람에게 바라는 일들 중에는 정작 자신은 단호히 거부하는 것들이 많다는 거죠. 자아감을 침해하는 일인 경우가 많기 때문이에요.” [168쪽]
“현대 의학은 한 달에 1만
2000달러가 드는 화학요법, 하루에 4000달러짜리
집중 치료, 한 시간에 7000달러짜리 수술 등으로 죽음을
미루려 애쓰는데 능하다. 그러나 결국 죽음은 오고야 마는데도 어느 시점에 치료를 멈춰야 할지 아는 사람은
거의 없다.” [238쪽]
“인간으로
산다는 것이 한계를 안고 살아가야 한다는 의미라면, 그런 인간을 돌보는 역할을 하는 직업이나 기관 – 의사에서 요양원까지- 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인간이 그 한계에 직면하고
분투하는 과정을 도와야 한다. (중략) 그러나 우리가 제공해
줄 수 있는 것이 무엇이든 간에 의료진이 개입해 환자로 하여금 희생과 위험을 감수하도록 하는 일은 더 큰 삶의 목적을 위한 것일 때만 정당화될
수 있다. 이를 망각할 경우 우리는 환자들에게 거의 야만적인 고통을 주게 될 수도 있다. 반면 의사의 역할과 한계를 분명히 기억할 경우, 우리가 가져다 줄
혜택은 실로 놀라운 것이 될 수도 있다.” [395-396쪽]
잘 죽을 권리Well-dying를 보장하는 의료 체계를 만들기 위한
여러 대안적 움직임들과 자신이 접한 죽어가는 환자들의 케이스를 씨실과 날실처럼 엮어 풀어내며, 가완디는
한 인간이 죽음으로 가는 최후까지도 반드시 지켜나가야만 하는 존엄성과 자율성의 철학을 확인한다. 한편, 그는 아버지의 삶의 자율성을 지켜나가기 위한 마지막 투쟁을 묵묵히 도우며 끝까지 지켜낸다. 가족들의 도움을 통해 아버지 아트마람 가완디는 기나긴 암투병 과정에서 자신에게 필요한 가장 적확한 시점마다
의학기술의 도움을 받았고, 자신의 자율성과 존엄성을 유지하는 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싶은 정확한 시점에서
의학기술의 중재를 거부했다. 가완디는 이를 ‘너무나 고통스러웠지만
내 인생에서 가장 값진 경험’이라고 술회한다. 아툴 가완디가
아버지와의 일화를 통해 인도하는 죽음으로의 여정을 따라가며 많이도 울었다. 3년 전 32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난 누군가가 생각나서. 가완디가 덤덤히 풀어놓는
아버지의 죽음을 따라가며 가슴이 찢어지게 아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이 최후까지 존엄을 지키려 분투하는 과정에서 빛나는 위대한 의지와 아름다움을 체험할 수 있었던 귀중한 경험이었다. 인정하기 싫고 피하고 싶지만 언젠가 역시 죽음을 받아들여야 할 나의 최후는 어떠한 모습이어야겠다는 그림이 조금씩
그려지는 것은 물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