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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심장을 향해 쏴라
마이클 길모어 지음, 이빈 옮김 / 박하 / 2016년 2월
평점 :
분량: 703쪽.
두께: 5cm.
무게: 1075g.
이 책 외관의 물리적 정보는 숫자 그 너머의 것을 떠올리게 한다.
단말기를 활용한 전자책까지 향유되는 때에 이 책은 쉽게 휴대할 수도 없고, 독서대에 고정하기조차 쉽지 않은, 물리적 제약을 감내하게 한다. 그리하여 대체로 방 책상, 또는 침대 머리맡에 그 무게를 안착시켜 두고, 이 비범한 저자의 이야기에 가만히, 서서히 끌려 내려가는 독서를 할 수밖에 없다.
책의 무게와 제목의 섬뜩함, 그리고 바로 그 '사건'의 서늘함에 짓눌렸던 마음은 책을 펼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이상하게도 진정이 된다. 책장이 넘어가는 속도는 생각보다 훨씬 빠르다. 나는 그것이 저자가 독자에게 모든 사력을 다해 진짜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자신의 가족과 혈통에 관한 역사를 자기의 기억에만 의존해 기록하지 않았다. 앞서 자신의 가족을 연구해 온 학자들의 도움, 고증에 가까운 자료 분석과 가족들과의 인터뷰를 통해 복원해 낸 시공간들은 마치 19세기~20세기를 넘나드는 대하소설을 읽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을 준다. 그러나 내가 읽고 있는 이 소설같은 이야기가 실화를 바탕으로 하면서도, 실화의 극히 일부일 뿐이라는 것을 인지하는 때마다 온몸으로 전해지는 섬찟함은 피해갈 수 없다.
궁극적으로 선과 악, 혹은 신과 인간, 죄와 법, 처벌과 용서같은 것에 대한 어떤 판단을 내리거나 적어도 입장을 가져보려는 노력을 해야 하겠지만, 사실 그런 강박을 내려놓기로 한 순간, 그의 이야기들이 더욱 빠르고 생생하게 전달됐다. 판단의 유보가 내 인생의 철학적 가치관을 세우는 데 사보타주가 될 수도 있겠지만 첫 700쪽은 그렇게 읽기로 한다.
마이클 길모어를 포함한 모든 ‘그들’이 받은 상속에는 황금만 존재하진 않았다. 아니, 황금만 빼면 무엇이든 존재했던 것 같다. 눈에 보이지도, 손에 잡히지도 않는 종교와 종족의 전쟁, 정착과 이주, 억압과 분노 그리고 저항과 보복으로 땅을 적신 피의 역사, 피의 상속.
독자마저 조심스럽고 두렵게 만드는 이 책의 내용에 대해 절대 객관적일 수 없는 이해관계자인 마이클 길모어는 이 사건을 어떻게 다루는 것이 바람직한가를 정확히 알고 있었다. 소름끼치는 악의 파멸과 모두의 자유로움을 당기고 싶었던 절실함은 분노, 책임의 전가, 증오가 아닌 침착함으로 전체를 아우른다. 이 기록이 ‘어떻게 책을 써야 할까’가 아닌 ‘앞으로 어떻게 살아내야 할 것인가’에 대한 답이기도 했기 때문일 것이다. 게리 길모어의 살인과 그에게 내려진 사형집행은 이미 많은 사람이 알고 있고, 이에 대한 판단과 해석이 사회적, 철학적 합의마저 이뤄낸 사건이었다. 그에 대해 그 피를 나눠가진 형제의 자격으로 다시 이야기하고자 한 것도 놀랍지만, 그 이야기를 이렇게 풀어내기로 결심한 이후에 훨씬 고통스러운 시간을 이겨내야 하지 않았을까.
"이쯤해서 베시(어머니)는 자신에게 이렇게 말해야 했을 것이다. ‘오, 내가 결혼해서 들어온 집안이 겨우 탈출한 나의 집안보다 더 복잡한 문제를 가지고 있었다니!’ 하지만 그녀는 거기서 탈출하지 않고 그대로 머물렀다.(중략)그녀로서는 나름대로 이유가 있었다. 그리고 우리는 바로 그녀가 내린 결정이 만들어낸 결과이다." p. 151
마이클 길모어의 형제, 부모, 부모의 부모, 전 대까지 거슬러가는 이야기-어느 지점부터는 이 책 어디엔가 ‘가계도’가 하나 있었으면 좋겠다 싶은- 는 ‘게리 길모어 사건’ 이후, 저자가 가족이라는 관계로 겪어야 했던 모든 일에 영향을 미친 그 어떤 것이라도 찾아내겠다는 의지를 보여준다.
분명히 일어난 비극적인 결과 앞에 수십, 수백 가지의 가능했던 원인을 대입시키는 과정들에 수많은 ‘만약에’를 붙여본다.
‘만약에... 그때 외할아버지 윌이 자신의 아버지의 괴물같은 모습을 보지 않았다면, 만약에 어머니 베시가 엄격한 모르몬교의 문화 속에서 그 일을 겪지 않았다면... 할머니 페이가 아버지 프랭크에게 아버지에 대한 사실을 자세히 알려주었더라면, 페이가 불행한 결혼생활을 하지 않을 수 있었다면... 그리하여 형 게리가 아버지로부터 학대받지 않았다면... 만약에...’
특히 그는 어머니의 삶과 그녀의 가족을 이야기하기 위해 모르몬교의 역사까지 파고드는데, ‘그럼에도 만일 이 사건이 어떤 결말을 가져올 실마리가 될 수 있다면’(p.101) 관련된 어떤 사건도 지나칠 수 없다는 태도는 그가 얼마나 그의 가족사를 덮친 악의 기운을 뿌리 끝까지, 그리고 완전히 파멸시키고자 했는지 알 수 있다. 그리고 독자는 다시 한 번 이 책의 무게는 그 어떤 것도 허투루, 서툴게, 모호하게 다뤄져서는 안 된다는 의지의 무게라는 것을 느끼게 된다.
“나 역시 그 전설적인 이야기가 끼쳤을 영향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그 이미지들은 우리의 가슴속 깊이 운명에 대한 예감뿐 아니라, 뭔가 다른 것에 대한 예감을 심어놓았다. 우리가 들은 것은 먼 과거 잔인한 땅에서 일어난 옛이야기가 아닌, 바로 우리 자신의 운명에 대한 이야기였다는 생각이 든다.” p. 104
이 책의 결론이 한 개인의 인격 형성에 가정환경이, 혈통이, 특정 민족과 종교, 문화가 얼마나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 밝히는 것에서 그치지 않기를 바란다. 그리고 평범하고 좋은 가정환경 속에서 성장한 것에 대해 다행스러워만 하는 것도 경계하고 싶다. 다만, 오히려, 가능하다면 나의 피에 조금이라도 섞인 모든 뿌리에 대해 탐구해보는 시간을 가졌으면 좋겠다. 얼마 전 본 영화 <스포트라이트>의 대사 몇 구절을 함께 옮긴다.
“우린 단지 운이 좋았던 거에요.
그게 당신일 수도 있었고, 나일 수도 있었고, 우리 중 누구일 수도 있었어요.”
“아이를 키우는 것도 마을 전체의 책임이고,
학대하는 것도 마을 전체의 책임이에요”
“때로 잊기 쉽지만, 우린 어둠 속에서 넘어지며 살아가요.
갑자기 불을 켜면 탓할 것들이 너무 많이 보이죠.”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