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과 여 (2disc)
이윤기 감독, 전도연 외 출연 / KD미디어(케이디미디어) / 201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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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건 아니지
, 안 되지......’

나도 모르게 읊조렸다 

저렇게 매력적인 남녀가 사랑을 해 보겠다는데, 

내가 사랑에 대해서 여전히 보수적이라는 것을 확인하는 순간이었다

법적으로 인정되는 사랑을 어찌됐건 지켜가야지, 그 사랑이 다소 무관심했거나 상처를 주는 것이었어도 

저렇게 바깥 길을 타는 것은 반칙아닌가라는 생각이 불쑥 솟았다

하지만......

런 생각을 계속해서 이어가기에 그 곳은 너무나도 예쁘고 하얗기만 했다

너무 성급해서 보호본능마저 자극하는 그 사랑에 동의하기 시작한 것인지

영화스럽게 잘 찍힌 그 영상에 매료되었던 것인지 모르겠지만 

어쨌거나 나는 결국 그들과 함께 여행했고 사랑했고 조금은 아파했다

'설득'된 것이다.

 

 

 

/는 두 대상을 이어주는 접속조사이다. 

남과 여로 적는 것이 표기법상 맞지만 어쩐지 남 과 여가 시각적으로 더 어울린다

이 영화의 신의 한 수는 그 어떤 수식조차 없이 라는 보통명사를 담백하게 뿌려놓은 것이 아닐까. 

말의 여지도 없는 완전한 불륜 영화’였다. 

자폐를 앓고 있는 자녀까지 두고 있어 그들의 죄책감을 얼마든지 더 부추길 수 있는 영화였다. 

그런데도 이 영화의 제목은 부끄러운 치정을 떠올리게 하기보다 

아주 단순하게 그저 한 남자와 한 여자의 생각, 마음, 또는 몸에 대해 생각해 보게 한다

다 이해하고 다 공감할 필요는 없지만 그저 그렇게 바라봐 보라는 무언의 압력마저 주고 있는 느낌이다.

 

 

영화의 시작부터 왜 핀란드여야 했을까 참 궁금했다. 

국내 영화에서는 낯선 배경이다. 사회복지나 교육복지를 다루는 다큐멘터리에서 훨씬 많이 보게 되는 곳이었다

비단  상민(전도연 분)과 기홍(공유 분)에게 자폐를 앓고 있는 자녀가 있었고 

아이들을 안전하고 탁월한 프로그램으로 교육시킬 수 있는 환경이기 때문만은 아니었을 것 같다. 

아니면

놀라울 정도로 쏟아지는 눈과 키가 하늘에 닿을 듯 뻗어 있는 나무들

그리고 숲속 사우나 요정이야기를 위한 공간이 필요했던 것일까? ^^


이윤기 감독은 한 인터뷰에서 영화의 배경을 핀란드로 설정한 이유에 대해 다음과 같이 답했다.

"가장 낯선 느낌을 주는 나라 중 하나가 핀란드라고 생각했다"
"핀란드는 가까운 곳에 있음에도 아주 멀게 느껴진다" 

"실제로 핀란드를 경험한 사람들도 많지 않고, 언어 또한 생소하다"

"여러 낯선 느낌들이 교차되면서 나타나는 감정의 역류를 그리고 싶었다"


그의 말처럼 낯선 공간, 낯설게 만난 두 캐릭터의 교차를 보고 있는 것도 묘하게 두렵고 설레지만,

낯섦과 낯익음, 생소함과 친숙함의 잔잔한 변주도 흥미로웠다.


 치정을 그린 영화치고는 상당히 담백하고 여백이 많은 작품이다. 

그래서 카메라 렌즈가 가리키는 방향풍경사물그리고 인물들의 대사 하나하나와 제스처

침묵까지도 그냥 지나칠 수가 없었던 영화다

뭔가 상징성을 담고 있을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부모의 동행 없이 캠프에 간 아이들이 걱정돼 캠프장 가까이로 찾아가는 기홍과 상민. 

얼음판 위에 눈이 깊이 쌓인 호숫가를 가로질러 가보자고 농담하는 기홍, 

끊임없이 쏟아지는 눈발, 흔들리는 나무들까지 모두가 위태로운 선택을 가리키고 있다

하지만 그들의 몸과 마음에 '죄책감'이라는 더께가 쌓일 때마다 

핀란드의 눈서울의 비는 그것을 한 번씩 씻어 내려 보내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다만 쌓인 눈과 비가 다 녹지 않고 질퍽이는 것이 문제일 뿐.

"너무 멀어요..."

 기차 좌석의 한 칸과 통로를 더한 거리를 너무 멀다고 말하는 기홍. 

가까워지고 싶어요나 여기서 끝내는 게 좋겠어요같은 

통속적인 대사보다 훨씬 감각적으로 느껴졌던 대사다

기홍의 애매모호함이 선명해지는 과정에서 내뱉은 이 말에, 

내가 상민이었다면 가장 흔들렸을 것 같다.

 

 

 우연한 기회에 무대인사가 포함된 영화를 보게 되었다. 

3분도 채 되지 않는 짧은 시간동안 이윤기 감독은 

영화를 보며 여행을 다녀온 것 같은 기분을 느끼시길 바란다는, 

오늘 하루 종일 무대인사에서 반복했을

그러나 영화를 만들고 편집하는 내내 가장 중점을 두었을 인사를 남겼다

그리고 적어도 나는 그의 그 바람이 이 영화 속에 잘 실현되었다고 이야기 해주고 싶었다.

 

 

******************** !   아래에는 결말에 대한 스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  ************************

 

 

마지막 장면에서 감독은 높고 길게 늘어선 나무들 사이로 

직선 도로를 달려가는 기홍의 차를 풀샷으로 잡는다

들리는 마음들 사이로 앞으로 곧게 뻗은 길을 선택하는 

기홍을 상징하는 듯한 장면이라 잔상이 오래 남았다. 

반대로 상민은 혼자 탄 택시에서 아들의 전화를 받으며 사랑해라고 말한다

실은 기홍에게 하는 처음이자 마지막 고백이 아니었을까 싶은 말. 

그녀의 택시는 더 달리지 못하고 도로가에 멈춰선다


공유 배우는 무대인사에서 

“기홍의 선택을 미워하시는 반응을 많이 봤다

하지만 저는 그 이후, 상민은 다른 사람을 만날 수 있어도 

기홍은 평생 후회하며 다른 사람을 만나지 못했을 것 같다

고 말했다. 맞는 말이다. (적어도 이성적으로는 맞다...)

상민은 지쳤던 일상으로부터 놓여나왔고 핀란드에 다시 돌아갔으며, 

그곳에서 둘이 함께 시작했지만 기홍이 도망쳐 버린 그 결말을 직접 확인한다

울어버리고, 먼저 고백해버렸으며 그 자리에 멈춰 선다

언젠가 그녀는 다시 달리겠지만 기홍의 앞에는 멈춰설 곳만이 남았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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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면 보고서
폴 오스터 지음, 송은주 옮김 / 열린책들 / 201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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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가장 낯선 모습이 가장 친숙하다

 

 작가인 오스터가 과거의 자신을 복원하는 고고학적 작업에 동원하고 있는 도구는 언어다.” - 옮긴이의 말 중에서(p. 364 ) 

  가장 낯선 모습이 때로 가장 친숙하다. 그 친숙함은 본능이나 타고난 기질같은 것으로부터 온다. 가면을 오래 쓰다 보니 잊고 있던 민낯을 만나게 되는 때가 그렇다.

 

 

내면보고서에 관한 내면 보고서

 

  당신은 저자가 유년기의 추억을 내면의 보고서로 완성시킨 글을 읽으며... 다른 독자와 마찬가지로 자신의 이야기를 굳이 2인칭의 누군가가 서술하도록 설정한 것이 새롭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것이 이 책의 제목에 걸맞게 기억에 대한 신뢰성을 더해줄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동시에 당신에게 표지디자인에 대한 취향만큼이나 작가의 문장에 대한 취향이라는 게 있었다는 걸 발견하게 되었다. 저자가 쓴 서술방식이나 문체는 당신이 책을 끝까지 읽도록 격려해주지 않았다. 저자는 끊임없이 기억의 흐름을 따라 이야기 하는데 어쩐지 당신은 혼자만의 싸움을 하고 있는 것 같았다.

 

 어느 지점에서는 - 기억이 아주 구체적으로 재현될수록 - 오글거리게 느껴지기도 했을 것이다. 당신은 오히려 책을 읽을 때보다도 그 오글거리는 문체를 빌려 서평을 쓰고 있는 지금에서야 비로소 이 서술방식의 매력을 발견했는지도 모른다.

 

  당신은 이 책을 읽는 내내 엉뚱한 생각이 많았다. 훌륭한, ‘미국의 가장 위대한산문가의 글을 알아보는 데 영 안목이 없었던 당신은 우습게도 이 책의 편철 방식에 대단히 만족감을 느끼고 있었다.

 

"이 책은 실로 꿰메어 제본하는 정통적인 사철방식으로 만들어졌습니다.

사철 방식으로 제본된 책은 오랫동안 보관해도 손상되지 않습니다."

 

  당신이 최근 구매한 책들과 다른 하드 커버에, 민트색 갈피끈도 반가웠고, 책갈피를 늘 잃어버리고, 책갈피 없이는 읽던 곳 마저 잊어버리는 당신은 그 리본끈을 매만지며 참 감사하다고 중얼거리기도 했다.

 

  폴 오스터에게서 끝까지 어떤 인상도 받지 못하면 어쩌나 전전긍긍하던 당신에게 다행스럽게도 하드커버와 갈피끈 못지 않게 반가운 몇 단어가 나타났다.

 

지루함. 단조로움. 외로움. 잊혀짐. 글쓰기. 편지.  

 

당신은 바로 거기서 스스로 혼자 있는 법을 배웠다. 사람은 홀로 있을 때 비로소 자유로이 상상의 나래를 펼칠 수 있게 된다. (중략) 당신의 자아가 당신에게서 질질 흘러 나간다고 느껴질 때면 당신은 망연자실한 상태로 자신으로부터 분리된 느낌에 빠진 채 이리저리 걸어다녔다. p.53”

  

 "그때까지 당신은 줄곧 글쓰기 행위를 내면에서 외면으로 향하는 몸짓, 다른 이에게 가 닿으려는 노력으로 생각해 왔다. (중략) 그 당시엔 너무 어려서 나중에 얼마나 많은 것을 잊어버리게 될지 몰랐다." - p. 193  

 

  이 작가의 모든 유년시절 가운데 당신의 시선을 잡아 끈 것은 '어린 몽상가'에 대한 기억이었다. 당신도 그랬으니까. 어릴 때부터 혼자 있는 것이 여럿이 있는 것보다 편했고 에세이, 소설, 만화 등 읽을 수 있는 것은 닥치는 대로 읽었던 당신의 유년시절에도 돌이켜보면 꽤 훌륭한 몽상들이 가득했었다.

 

  지금 당신이 폴 오스터가 과거를 복기하던 때보다 훨씬 젊다는 걸 떠올린 당신은, 그제서야 이 산문가 앞에 붙은 영예로운 수식어들에 하나씩 공감한다. 지금 당신의 주변에서 일어난 시시콜콜한 이야기들을 뱉어내는 데도 허덕거리기 일쑤인 당신에게 한 달 전, 일 년 전, 오 년 전, 십 년 전, 이십 년 전 쯤의 일들을  배운만큼의 언어로 복기할 수 있을까. 당신은 이 생각이, 가능성에 대한 궁금함이기보다, 행여 가능하면 어쩌나- 하는 두려움에 가깝다는 걸 알고 있다. 하이라이팅 효과로 과장된 기억, 또는 너무 어두운 나머지 곧 영화 <인사이드 아웃>에서 본 기억의 쓰레기통으로 버려지기 직전의 상태로 겨우 남아 있는 장면들을 다시 살려낸다는 건 결코 낭만적이지 않다.

 

  그에게 당신은 여전히 미안하다. 그의 이야기는 재미가 없었다. 그가 2인칭의 누군가를 통해 자신의 유년시절을 타자화했듯이, 당신도 그의 기록을 통해 자아를 되돌아볼 수 있었다면 당신 역시 못지않은 위대한 독자가 될 수 있었을지 모른다. 아직은, 이토록, 타인의 삶에 무심하다는 걸, 당신의 식은 가슴과 좁은 품을 탓해야 하지 않을까?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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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심히 하지 않습니다 - 격하게 솔직한 사노 요코의 근심 소멸 에세이
사노 요코 지음, 서혜영 옮김 / 을유문화사 / 201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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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센 언니의 조건

 

  점심시간이나 쉬는 시간에 틈틈이 읽으려고 사무실에 책을 가져갔다. 조금씩 읽다가 덮어 세워두려던 나는 나도 모르게 책등을 뒤집어 놓는 나를 발견한다. 누군가 내 책상 위 이 책을 보고 , 얼마나 더 열심히 안 하려고 그러나라는 생각을 할까봐...^___^

  천성이 민폐 끼치는 것을 못하게 태어나서 주어진 자리에서 늘 열심을 다 했지만, 내게도 열심히 해야 한다거나, 적어도 열심히 하는 척은 해야 한다는 마음이 강하게 자리잡고 있었던 것도 같다.

 

  이 책의 저자인 사노 요코의 글을 읽으며 배우 윤여정을 떠올렸다는 리뷰를 더러 보았다. 나 역시 백번 공감이 되는 부분이었다. 윤여정 배우의 캐릭터나 인터뷰를 볼 때면 수십 년의 나이차에, 살아온 세월이 절대 같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꼰대스럽-’지 않은 무언가가 느껴진다. 시쳇말로 걸크러쉬의 원조라고 해야 하나.

 

 같은 시대를 살고 있다거나 같은 세대를 누렸다는 것이 괜한 동질감을 주는 때도 있다. 하지만, 사노 요코의 글을 읽으며 문득, 어떤 시대를 살고 있건 존재로서 깨어있다는 것, 익숙한 것에 딴지를 걸고, 평범 속에서 비범을 찾고, 좀 자주 이기죽거리는 모습에서 닮고 싶고 함께 이야기하고 싶은 에너지가 느껴졌다.

 

2. 냉소에 관하여

 

  수능을 마치고 대학에 입학하기 전, 원어민에게 영어를 배운 적이 있다. 처음엔 3~5명 소수정예로 하기로 했는데 하나, 둘 빠져나가고 어느새 원어민 강사와 나 둘만 남아 의도치 않게 일대일 개인 레슨을 받게 되었다. 그때 대화는 거의 다 잊었지만 딱 한 장면은 지금까지 기억에 남아 있다.

 

 “How about your personality? In a word?”

 

  나는 준비한 면접 질문이 나왔을 때처럼 신나게 대답했었다.

 

 “I think that my character is so cynical!”

 

  이 장면이 지금까지 남아 있었던 건, 첫째는 나를 바라보던 그 외국인 강사의 놀란 눈 때문이고, 둘째는 네가 방금 내뱉은 그 단어의 뜻을 알고 쓴 것이냐는 강사의 물음에 당황했던 나의 마음 때문이었을 것이다.

 

 냉소적(冷笑的): 쌀쌀한 태도로 업신여기어 비웃는. 또는 그런 것.

 

  물론, 그때 나는 규범적인 정의보다는, 좀 지적이고 멋진 표현으로 사용한 것이지만 막 만으로 열여덟을 넘긴 여고생에게서 나온 그 단어가 그다지도 의외였을까.

 

  어찌됐건 나는 지금도 내 성격을 설명하는 몇몇 단어 가운데 냉소를 빠뜨리지 않는다. 지식이든, 상식이든, 잡식이든 아는 말과 듣는 말이 많아질수록 타인의 말과 상황을 비꼬는 실력도 날로 늘고 있다. 얼마 전, 기사에서 냉소적인 사람이 이상적인 사람에 비해 돈을 덜 번다는 연구 결과를 보았는데 그래서 이렇게 돈을 많이 못 벌었나 싶기도 하고, 또 다른 연구에서는 비꼬는 농담을 잘하는 사람이 창의력을 요하는 일에 더 좋은 성과를 얻는다는 결론도 있던데 지금이라도 그런 일을 찾아봐야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

      

3. 다시 쓴다면......

 

  단어가, 글이, 문체가 작가 그 자체로 보이는 에세이를 오랜만에 봤다. ‘에세이라는 이름을 달고 있으면서 작가의 자아가 좀체 보이지 않는 글은 개인적으로 좀 답답하다. 사노 요코, 그녀가 어찌나 자기와 자기 일상을, ‘신변을 잡스럽게 기록해 놓았던지...... 그녀가 본 영화, , 그녀의 친구, 동료 어느 것 하나 직접 겪어본 것이 없지만, 거꾸로 내가 본 영화, , 내 친구, 동료를 그녀가 본다면 어떤 말을 해 줄 것인지 알 것만 같았다.

 

 나는 영화를 해피엔딩과 그렇지 않은 것으로 나누는 것을 그만두기로 했다. 빈자와 부자, 추녀와 미인, 행복과 불행, 리얼한 것과 거짓된 것 어떤 생활이 계속되든 끝나든, 사람의 일생이란 그 안에 모든 것들을 뭉뚱그려 갖고 있으며, 거적이든 얼룩 하나 없는 비단옷에 싸여 있든, 사는 것은 아름답다고...”

                                      - 리얼리티는 궁상맞은 것 중에서 -

 

  이제는 세상에 없는 그녀는 나와는 살아간 시대도, 나라도 같지 않다. 그런데 20165월을 살아가는 대한민국의 냉소적인 젊은이는 그녀의 글에서 낯섦과 친숙함을 동시에 느낀다.

 

  편리해진 밥통(가전)은 시민의 감각으로-

  집을 꾸미고 싶은 속물 근성은 에너지로-

  궁상맞은 일상은 리얼리티로-

  어둡고 삐뚤어진 근성은 지적인 이미지로-

 

바꾸어 바라볼 수 있는 그녀의 그 무딘 듯, 날카로운 생각들을 지켜보며 문득 어떤 아줌마, 어떤 할머니가 되어 갈 것인가 생각해 봤다. 내 평생에 이토록 다양한 이야기를 이렇게 쓸 수 있을까...... 그래도 언젠가 제대로 를 쓰고, 그녀가 보여준 그 격하게 솔직한’ 것들을, 최선을 다해 '냉소적'으로 채워보고 싶다. 예쁘게 쓰지 않을 거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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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페라처럼 살다 - 사랑과 배신의 작곡가들, 2018 아침독서 청소년 추천 도서
나카노 교코 지음, 모선우 옮김 / 큰벗 / 201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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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오페라, 글로 배워도 될까?

 

 마 전, ‘김이나의 작사법을 읽다가 생각했다.

 한 곡의 노래가 나오기까지의 비하인드 스토리를 알고 듣는 것과 노래 그 자체로 즐기는 것 가운데 무엇이 더 좋은 감상법일까?

 개인적으로는, 이야기를 알고 난 후에 좀 다른 종류의 감동을 느꼈는데......

 진지하고도 긴 물음은 아니었지만 매일 듣는 대중가요가 아닌, 입문하는 데 다소 어려움을 겪는 오페라를 마주하고 보니 그 이야기가 조금 더 간절해졌던 것 같다.

 

 의 서문이 좋으면 본문도 좋아지는 때가 많다. 이 책의 서문 역시 이어지는 본문을 기대하게 만드는, 읽기 쉽고 편하며 아주 담백한데 매력적인 글이었다. 동시에 오페라를 글로 배워도 될까?’에 대한 적당한 해답을 제시해 주기도 한다.

 

그런 이야기를 아는 것은 도움이 안 되고 오페라를 즐기는 데 썩 좋은 방법이 아니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른다. 그저 작품만 감상하면 된다고 말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런 샛길을 통해 오페라에 입문해도 괜찮지 않을까? 게다가 오페라는 원래 격정적이기 때문에 작곡가의 이야기가 더해지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이다. 

- 프롤로그 중에서

 

 

2. 친절하고 쉬운 손을 잡다.

 

 , 영화, 미술, 문화재 등 예술과 예술사에 대한 대중의 관심과 지식수준이 높아지고 있기 때문인지, 요즘은 일반 독자를 타겟으로 하는 예술 분야 도서도 쉽게 읽히지 않는 것이 많다. 일정 수준의 지식을 갖고 있다는 전제 하에, 그러니까 쇼팽의 연주곡 몇 개쯤, 톨스토이 작품 몇 개쯤은 알고 있겠지...하는 느낌으로 쓰인 책들이 적지 않다.

 

 지만 있다면 유튜브를 포함한 다양한 경로로 쉽게 오페라를 감상할 수 있는 시대가 되었지만 오페라 없이도 귀를 즐겁게 할 수 있다는 묘한 경계심은 늘 익숙한 길만 걷게 했다. 이런 분야일수록, ‘친절하고 쉬운 손길이 필요하다.

 

 런 의미에서 이 책은 신간다운 맛은 적은 클래식한 얼굴을 하고 있으면서, 옛스러운 친절함을 갖춘 책이다. ‘친절하고 쉬운 손길은 화려하지 않지만 복잡하지도 않고, 안내를 위한 장치들을 필요한 곳에 과하지 않게 잘 배치하고 있다. 음악과 명화를 이야기로 풀어내는 책들을 많이 쓴 저자의 이력을 보면 이 책의 출간 의도를 잘 이해할 수 있다.

 

 

3. 오페라로 이야기하는 법

 

오페라를 무대에 올리기 위해서는 작곡만 한다고 해서 끝나는 것이 아니다. 연주가, 가수, 합창단, 연출가, 장치담당, 의상 담당, 조명 담당 등 무대에 관련된 사람이 많았기 때문이다. - p. 26

 

 이 책에 소개된 여덟 명의 오페라 작곡가들 가운데 가장 인상 깊었던 한 사람을 꼽으라면 그 누구보다도 베버를 이야기하고 싶다. 오페라와 가족에 대한 사랑이 지극했지만 많은 예술가들과 마찬가지로 병약했던 베버의 이야기는 오페라 한 곡을 보는 듯 폐부 깊숙한 곳에 감동을 남겼다.

 

 무 평범해서 더 비범해 보였던 한 남자. 가정적이고 평범해 보이는 이 남자의 삶이 그 어떤 정신병이나 히스테리를 안고 살았던 사람들보다 더 특별해 보였던 것 같다. 저자는 그것이 남성의 책임감이나 표현법이라고 했지만, 나는 온전히 베버만이 갖고 있는 사랑법이라고 생각한다. 가족과 생계를 위해, 자신의 사후에 남겨질 이들을 위해 그나마 붙어있던 생을 희생하는 아이러니까지 감당하는 삶이 어디 흔할까.

 

 지금은 모두 걸작으로 평가받지만 시대와 공간에 따라 제대로 평가받지 못했던 야속한 운명의 작품들, 작곡가들 간의 예민한 경쟁의식과 피해의식의 반영물들, 자의식이 강했던 작곡가와 겸손하고 성실했던 작곡가들, 사교계에서의 명성을 이용했던 호색한들과 한 여인을 향한 집착에 가까운 사랑을 했던 예술가, 그리고 가정을 끔찍이도 생각했던 남편이자 생계를 늘 걱정해야 했던 가장들.

 

 실 이 책의 진짜 매력은 오페라 작곡가나 작품의 의미 그 이상으로 이야기를 풀어내는 방식에 있다. 오페라의 대표작에 대한 단순 정보를 얻을 것이라고 생각한 독자들은 이 예상치 못한 전개들에 더 빨리 책에 빠져들게 될 것이다. 저자는 이야기를 가지런하게 나열하려 하지 않고, 사건을 역행적으로 배치하거나, 주인공을 숨겼다가 클라이맥스에 내놓기도 한다. 마치 천일야화를 듣듯이, 다음 이야기가 궁금하도록 인물과 배경과 사건을 흥미롭게 배치해 낸다.

 

  권의 책을 다 읽는 순간 8명의 오페라 작곡가와 작품에 대한 결코 얕지 않은 스키마와 그들이 남기고 간 잔상들에 뿌듯해질 지도 모르겠다.

 

 

4. 샛길에서 진짜 인생을 만나다.

 

                         샛길: 큰길에서 갈라져 나간 작은 길.

 

 샛길은 잘 다듬어져 있지 않고 사람의 발길이 잘 닿지 않는 거친 길일 수 있지만 왠지 더 정겹고 설렌다시에 샛길은 '큰길로 통하는 작은 길'을 의미하기도 한다.

 

 - 예술가의 일상과, 가족, 그리고 아주 가까운 인간관계를 살펴보는 것.

 - 대단한 명성과 화려한 영광의 이면을 보게 되는 것.

 - 그리하여, 눈은 넓어지고 나의 일상은 깊어지게 되는 것. 

 

  런 관점들은 작품에 덧씌워진 화려한 왕관의 의미를 퇴색하게 할지 모른다하지만 내 일상과 생계 나의 관계 꿈과 이상 본능같은 것들이 복잡하게 꿈틀거릴 때 쯤 그러한 '이야기'들은 내 생의 감각을 한껏 흔들어줄 것이다.

 

덧붙임: 혹 이 격정적인 오페라를 이야기로만 읽고 말 독자를 위해 삽입한 동영상 QR코드는 덤 ^^

 

            

 <베버 - 마탄의 사수, (테너 최용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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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심장을 향해 쏴라
마이클 길모어 지음, 이빈 옮김 / 박하 / 201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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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량: 703.

두께: 5cm.

무게: 1075g.


  책 외관의 물리적 정보는 숫자 그 너머의 것을 떠올리게 한다.

단말기를 활용한 전자책까지 향유되는 때에 이 책은 쉽게 휴대할 수도 없고독서대에 고정하기조차 쉽지 않은, 물리적 제약을 감내하게 한다그리하여 대체로 방 책상, 또는 침대 머리맡에 그 무게를 안착시켜 두고이 비범한 저자의 이야기에 가만히, 서서히 끌려 내려가는 독서를 할 수밖에 없다.

 

 의 무게와 제목의 섬뜩함, 그리고 바로 그 '사건'의 서늘함에 짓눌렸던 마음은 책을 펼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이상하게도 진정이 된다. 책장이 넘어가는 속도는 생각보다 훨씬 빠르다. 나는 그것이 저자가 독자에게 모든 사력을 다해 진짜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신의 가족과 혈통에 관한 역사를 자기의 기억에만 의존해 기록하지 않았다. 앞서 자신의 가족을 연구해 온 학자들의 도움, 고증에 가까운 자료 분석과 가족들과의 인터뷰를 통해 복원해 낸 시공간들은 마치 19세기~20세기를 넘나드는 대하소설을 읽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을 준다. 그러나 내가 읽고 있는 이 소설같은 이야기가 실화를 바탕으로 하면서도, 실화의 극히 일부일 뿐이라는 것을 인지하는 때마다 온몸으로 전해지는 섬찟함은 피해갈 수 없다.

 극적으로 선과 악, 혹은 신과 인간, 죄와 법, 처벌과 용서같은 것에 대한 어떤 판단을 내리거나 적어도 입장을 가져보려는 노력을 해야 하겠지만, 사실 그런 강박을 내려놓기로 한 순간, 그의 이야기들이 더욱 빠르고 생생하게 전달됐다. 판단의 유보가 내 인생의 철학적 가치관을 세우는 데 사보타주가 될 수도 있겠지만 첫 700쪽은 그렇게 읽기로 한다.

 

 이클 길모어를 포함한 모든 그들이 받은 상속에는 황금만 존재하진 않았다. 아니, 황금만 빼면 무엇이든 존재했던 것 같다. 눈에 보이지도, 손에 잡히지도 않는 종교와 종족의 전쟁, 정착과 이주, 억압과 분노 그리고 저항과 보복으로 땅을 적신 피의 역사, 피의 상속.

 

 자마저 조심스럽고 두렵게 만드는 이 책의 내용에 대해 절대 객관적일 수 없는 이해관계자인 마이클 길모어는 이 사건을 어떻게 다루는 것이 바람직한가를 정확히 알고 있었다. 소름끼치는 악의 파멸과 모두의 자유로움을 당기고 싶었던 절실함은 분노, 책임의 전가, 증오가 아닌 침착함으로 전체를 아우른다. 이 기록이 어떻게 책을 써야 할까가 아닌 앞으로 어떻게 살아내야 할 것인가에 대한 답이기도 했기 때문일 것이다. 게리 길모어의 살인과 그에게 내려진 사형집행은 이미 많은 사람이 알고 있고, 이에 대한 판단과 해석이 사회적, 철학적 합의마저 이뤄낸 사건이었다. 그에 대해 그 피를 나눠가진 형제의 자격으로 다시 이야기하고자 한 것도 놀랍지만, 그 이야기를 이렇게 풀어내기로 결심한 이후에 훨씬 고통스러운 시간을 이겨내야 하지 않았을까.

 

"이쯤해서 베시(어머니)는 자신에게 이렇게 말해야 했을 것이다. ‘, 내가 결혼해서 들어온 집안이 겨우 탈출한 나의 집안보다 더 복잡한 문제를 가지고 있었다니!’ 하지만 그녀는 거기서 탈출하지 않고 그대로 머물렀다.(중략)그녀로서는 나름대로 이유가 있었다. 그리고 우리는 바로 그녀가 내린 결정이 만들어낸 결과이다." p. 151

  

 이클 길모어의 형제, 부모, 부모의 부모, 전 대까지 거슬러가는 이야기-어느 지점부터는 이 책 어디엔가 가계도가 하나 있었으면 좋겠다 싶은- 게리 길모어 사건이후, 저자가 가족이라는 관계로 겪어야 했던 모든 일에 영향을 미친 그 어떤 것이라도 찾아내겠다는 의지를 보여준다.

 

 명히 일어난 비극적인 결과 앞에 수십, 수백 가지의 가능했던 원인을 대입시키는 과정들에 수많은 만약에를 붙여본다.   

만약에... 그때 외할아버지 윌이 자신의 아버지의 괴물같은 모습을 보지 않았다면, 만약에 어머니 베시가 엄격한 모르몬교의 문화 속에서 그 일을 겪지 않았다면... 할머니 페이가 아버지 프랭크에게 아버지에 대한 사실을 자세히 알려주었더라면, 페이가 불행한 결혼생활을 하지 않을 수 있었다면... 그리하여 형 게리가 아버지로부터 학대받지 않았다면... 만약에...’

 

 히 그는 어머니의 삶과 그녀의 가족을 이야기하기 위해 모르몬교의 역사까지 파고드는데, 그럼에도 만일 이 사건이 어떤 결말을 가져올 실마리가 될 수 있다면’(p.101) 관련된 어떤 사건도 지나칠 수 없다는 태도는 그가 얼마나 그의 가족사를 덮친 악의 기운을 뿌리 끝까지, 그리고 완전히 파멸시키고자 했는지 알 수 있다. 그리고 독자는 다시 한 번 이 책의 무게는 그 어떤 것도 허투루, 서툴게, 모호하게 다뤄져서는 안 된다는 의지의 무게라는 것을 느끼게 된다.

 

나 역시 그 전설적인 이야기가 끼쳤을 영향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그 이미지들은 우리의 가슴속 깊이 운명에 대한 예감뿐 아니라, 뭔가 다른 것에 대한 예감을 심어놓았다. 우리가 들은 것은 먼 과거 잔인한 땅에서 일어난 옛이야기가 아닌, 바로 우리 자신의 운명에 대한 이야기였다는 생각이 든다.” p. 104

 

  책의 결론이 한 개인의 인격 형성에 가정환경이, 혈통이, 특정 민족과 종교, 문화가 얼마나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 밝히는 것에서 그치지 않기를 바란다. 그리고 평범하고 좋은 가정환경 속에서 성장한 것에 대해 다행스러워만 하는 것도 경계하고 싶다. 다만, 오히려, 가능하다면 나의 피에 조금이라도 섞인 모든 뿌리에 대해 탐구해보는 시간을 가졌으면 좋겠다. 얼마 전 본 영화 <스포트라이트>의 대사 몇 구절을 함께 옮긴다.

 

우린 단지 운이 좋았던 거에요

그게 당신일 수도 있었고, 나일 수도 있었고, 우리 중 누구일 수도 있었어요.”

 

아이를 키우는 것도 마을 전체의 책임이고

학대하는 것도 마을 전체의 책임이에요

 

때로 잊기 쉽지만, 우린 어둠 속에서 넘어지며 살아가요

갑자기 불을 켜면 탓할 것들이 너무 많이 보이죠.”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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