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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면 보고서
폴 오스터 지음, 송은주 옮김 / 열린책들 / 2016년 3월
평점 :
절판


프롤로그. 가장 낯선 모습이 가장 친숙하다

 

 작가인 오스터가 과거의 자신을 복원하는 고고학적 작업에 동원하고 있는 도구는 언어다.” - 옮긴이의 말 중에서(p. 364 ) 

  가장 낯선 모습이 때로 가장 친숙하다. 그 친숙함은 본능이나 타고난 기질같은 것으로부터 온다. 가면을 오래 쓰다 보니 잊고 있던 민낯을 만나게 되는 때가 그렇다.

 

 

내면보고서에 관한 내면 보고서

 

  당신은 저자가 유년기의 추억을 내면의 보고서로 완성시킨 글을 읽으며... 다른 독자와 마찬가지로 자신의 이야기를 굳이 2인칭의 누군가가 서술하도록 설정한 것이 새롭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것이 이 책의 제목에 걸맞게 기억에 대한 신뢰성을 더해줄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동시에 당신에게 표지디자인에 대한 취향만큼이나 작가의 문장에 대한 취향이라는 게 있었다는 걸 발견하게 되었다. 저자가 쓴 서술방식이나 문체는 당신이 책을 끝까지 읽도록 격려해주지 않았다. 저자는 끊임없이 기억의 흐름을 따라 이야기 하는데 어쩐지 당신은 혼자만의 싸움을 하고 있는 것 같았다.

 

 어느 지점에서는 - 기억이 아주 구체적으로 재현될수록 - 오글거리게 느껴지기도 했을 것이다. 당신은 오히려 책을 읽을 때보다도 그 오글거리는 문체를 빌려 서평을 쓰고 있는 지금에서야 비로소 이 서술방식의 매력을 발견했는지도 모른다.

 

  당신은 이 책을 읽는 내내 엉뚱한 생각이 많았다. 훌륭한, ‘미국의 가장 위대한산문가의 글을 알아보는 데 영 안목이 없었던 당신은 우습게도 이 책의 편철 방식에 대단히 만족감을 느끼고 있었다.

 

"이 책은 실로 꿰메어 제본하는 정통적인 사철방식으로 만들어졌습니다.

사철 방식으로 제본된 책은 오랫동안 보관해도 손상되지 않습니다."

 

  당신이 최근 구매한 책들과 다른 하드 커버에, 민트색 갈피끈도 반가웠고, 책갈피를 늘 잃어버리고, 책갈피 없이는 읽던 곳 마저 잊어버리는 당신은 그 리본끈을 매만지며 참 감사하다고 중얼거리기도 했다.

 

  폴 오스터에게서 끝까지 어떤 인상도 받지 못하면 어쩌나 전전긍긍하던 당신에게 다행스럽게도 하드커버와 갈피끈 못지 않게 반가운 몇 단어가 나타났다.

 

지루함. 단조로움. 외로움. 잊혀짐. 글쓰기. 편지.  

 

당신은 바로 거기서 스스로 혼자 있는 법을 배웠다. 사람은 홀로 있을 때 비로소 자유로이 상상의 나래를 펼칠 수 있게 된다. (중략) 당신의 자아가 당신에게서 질질 흘러 나간다고 느껴질 때면 당신은 망연자실한 상태로 자신으로부터 분리된 느낌에 빠진 채 이리저리 걸어다녔다. p.53”

  

 "그때까지 당신은 줄곧 글쓰기 행위를 내면에서 외면으로 향하는 몸짓, 다른 이에게 가 닿으려는 노력으로 생각해 왔다. (중략) 그 당시엔 너무 어려서 나중에 얼마나 많은 것을 잊어버리게 될지 몰랐다." - p. 193  

 

  이 작가의 모든 유년시절 가운데 당신의 시선을 잡아 끈 것은 '어린 몽상가'에 대한 기억이었다. 당신도 그랬으니까. 어릴 때부터 혼자 있는 것이 여럿이 있는 것보다 편했고 에세이, 소설, 만화 등 읽을 수 있는 것은 닥치는 대로 읽었던 당신의 유년시절에도 돌이켜보면 꽤 훌륭한 몽상들이 가득했었다.

 

  지금 당신이 폴 오스터가 과거를 복기하던 때보다 훨씬 젊다는 걸 떠올린 당신은, 그제서야 이 산문가 앞에 붙은 영예로운 수식어들에 하나씩 공감한다. 지금 당신의 주변에서 일어난 시시콜콜한 이야기들을 뱉어내는 데도 허덕거리기 일쑤인 당신에게 한 달 전, 일 년 전, 오 년 전, 십 년 전, 이십 년 전 쯤의 일들을  배운만큼의 언어로 복기할 수 있을까. 당신은 이 생각이, 가능성에 대한 궁금함이기보다, 행여 가능하면 어쩌나- 하는 두려움에 가깝다는 걸 알고 있다. 하이라이팅 효과로 과장된 기억, 또는 너무 어두운 나머지 곧 영화 <인사이드 아웃>에서 본 기억의 쓰레기통으로 버려지기 직전의 상태로 겨우 남아 있는 장면들을 다시 살려낸다는 건 결코 낭만적이지 않다.

 

  그에게 당신은 여전히 미안하다. 그의 이야기는 재미가 없었다. 그가 2인칭의 누군가를 통해 자신의 유년시절을 타자화했듯이, 당신도 그의 기록을 통해 자아를 되돌아볼 수 있었다면 당신 역시 못지않은 위대한 독자가 될 수 있었을지 모른다. 아직은, 이토록, 타인의 삶에 무심하다는 걸, 당신의 식은 가슴과 좁은 품을 탓해야 하지 않을까?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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