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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하는 것이 왜 고통스러운가요? - 산 위 오두막의 생태철학자 아르네 네스와 20세기를 가로질러 나눈 대화
데이비드 로텐버그 지음, 박준식 옮김 / 낮은산 / 201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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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아르네 네스. 낯선 이름이다. 출판사는 그를 20세기에서 중요하게 기억될 철학자 중 하나라고 소개하지만 철학과 그닥 큰 인연을 맺고 있지 않은 이에게 20세기의 대표적 철학자라고 한다면 하이데거나 사르트르, 혹은 아주 아득하게 아도르노 정도의 프랑스풍 이름을 가진 이들이다. 책의 말머리는 그를 핵심적인 '생태' 철학자로 소개하고 있다. 생태 철학. 생태라는 개념이 우리에게 다가온 것도 아주 최근의 일이다. 불과 얼마 전만 해도 '환경'과 '생태'라는 개념은 거의 동의어처럼 사용되었고, '생태주의'의 개념이 '환경주의'의 개념과 구분된 것도 얼마되지 않은, 아니, 사실은 혼재되고 있는 것이 지금의 상황이다. 이렇게 우리에게 낯선 생태에다 철학까지 붙으니 첫 장을 펼치는 손이 쇠사슬을 매단 듯 무겁다.


하지만 무엇이든 처음이 어려운 법. 다행히도 아르네 네스라는, 철학자치고는 꽤 평이한 이름을 가진 이 할아버지는 일단 공부와 삶, 놀이와 일을 구분하지 않는 아주 '명랑한'사람이며, 책의 형식도 미국의 젊은 철학자(아르네 네스에 비한다면)가 아르네를 인터뷰하는 좌담 형식이어서 술술 책장을 넘길 수 있다.
의외로 잘나가는 책 읽기 진도에 흥겨워하다가 선뜩하게 마주치는 아르네 네스의 사색의 고갱이는 발길을 멈추고 생각에 잠기게 한다. 이를 테면 이런 대목이다.


"(트베스가스타인의 오두막에 머물다 보면 아주 작은 식물들을 며칠을 두고 관찰하게 됩니다. 황량하게 펼쳐진 자연 속에서 생존에 필요한 극히 적은 문명적 도구만을 가지고 살다 보면 그렇게 되지요.) 그러다 보니 전혀 다른 발달 단계에 있는 생명체들도 어떤 면에서는 서로 동등한 지위를 갖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박테리아나 무척추동물이 가지는 엄청난 중요성을 아실 겁니다. 무척이나 아름다운 이 단세포 생물은 모두 자연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저는 동물, 식물, 바위로 이루어진 이 풍요로운 세계에 속한다는 느낌에 대해 일종의 이성적인 기반을 발견했습니다. 인간은 자연을 꺼려하고 자연에 의지하지 않습니다. 점점 더 많이 자연을 지배하려 하고 자연에 대한 의존성을 줄이려 하지요 하지만 그런 의존은 좋은 것입니다. 그것은 상호관계를 의미하며 그것을 통해 대우주로부터 소우주까지, 그리고 그 반대로도 가면서 자신이 엄청나게 더 커지기 때문입니다. 우주적 차원에서 자신이 아주 작다는 것을 느낌으로써 더 넓어지고 깊어지며, 다른 사람들은 의무라고 생각하는 일을 기쁨으로 받아들이게 됩니다. 그 일이란 지구를 돌보는 것입니다. 지구를 돌보는 일이 단순히 살아남기 위한 일이 아니라 기쁨을 주는 일이 되지요."


이것이 그가 주창한 '심층생태학'의 핵심이라고 생각한다. 나와 연결된 세계를 이해하면 이해할수록 아주 아주 작은 나를 발견하게 되고 그것은 자아의 축소가 아닌 확장으로 이어진다는 것. 물론, 노르웨이의 자연환경과 그곳에서 생동하는 자연과 함께하며 자아를 연마했던 아르네 네스의 특수한 경험이다, 너무 순진하고 이상적인 발상이라는 비판이 따라붙을 수 있다. 그에 대한 반론은 책 곳곳에 나오니 읽으시며 확인하시고. 초등교사인 나에게 이 대목은 또다른 신선함으로 다가왔다. 누구라도 저 멀리 기억을 헤집어 보면 어린 시절, 열지어 가는 개미를 뚫어지게 관찰하거나 손만 대면 몸을 둥글리는 쥐며느리를 몇 번씩이나 만져 본 경험이 있을 것이다. 바다 끝에서 해가 질 때 어떤 모양일까가 궁금해 한 시간이 넘도록 지는 해를 바라본 경험도 있을 것이다. 이것은 아이의 마음이다. 순수한 호기심에 몇 시간이고 자연을 응시하고 자연을 찬탄했던 그 경험들. 아쉽게도 성장이란 그 순수한 호기심과 자연에 대한 경외감을 잃어 가는 과정이 되어 버린다. 아이들에게 생태 교육이란 이런 접근이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스친다. 교실에서 재생비누 만들고 올바른 재활용 분류법 애니메이션을 시청하는 것도 좋지만, 가장 궁극적으로는 알 수 없는 신비와 아름다움으로 가득찬 자연과 대면하고 그 속에서 마음껏 누려 보는 것... 이것이야말로 인간의 생존과 풍요를 위해 환경은 보호되어야 한다는 인간중심적인 환경론이서 탈피하여 "내가 자연이고 자연이 곧 나"인 생태론으로 직접 들어가는 것 아니겠는가 말이다. 이런 점에서 아이들은 어른보다 훨씬 더 성숙한 생태론자의 자질을 가지고 있다. 물론 학원이다 숙제다 어른보다 바쁜 요즘 아이들에게야말로 가장 무망한 일일지도 모르나. 


그가 못마땅해할지도 모르겠지만, 나는 그의 주장(혹은 주의)을 논리로서가 아니라 태도로서 받아들이고 싶다. 젊은 날 그가 심취했던 과학적 사고방식과 논리실증적 사고방식을 회수하고 '가능주의'를 소개했을 때, 그는 그것이 모든 진실을 의심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 아니라 어떤 것도 일어날 수 있다는 말이라고 했다. 즉, 인과론에 대해 절대적인 믿음을 갖지 말고 미지의 것이 작용할 가능성에 늘 대비해야 한다는 뜻이다. 인간이 알고 있는 지식들, 21세기의 그것은 너무나 깊고 넓고 다양해서 마치 인류는 모든 것을 다 알고 있는 듯, 그리고 정복하지 못한 세계는 없는 듯 보인다. 그러나 그것은 착각이다. 인류의 지식은 세계에 분포하는 존재와 현상에 대해 극히 일부분만 알고 있으며, 그것을 다루거나 관리하거나 대처하거나 혹은 무엇을 선택하는 데 있어서 현재의 인류가 석기 시대 인류보다 더 나아졌다는 증거를 찾기는 매우 힘들다. 불과 수십 킬로미터를 사이에 두고 한쪽에서는 먹을 것을 버려가며 경제를 살린다고 하는데 다른 한쪽에서는 아이들이 굶어 죽어가는 이 바보 같은 상황은 지금 우리가 만든 것인 것이다. '가능주의'는 인류에게 조금 더 겸허해질 것을 요구하고 있다.


지나치게 이상적이다, 즉 현실적이지 못하다는 비판에 대한 그의 반론 가운데 하나. 심층생태론이 국가적 개발주의에 대항하는 자세에 대한 요목 가운데 하나는 반대론자들의 주장과 논리를 '가능주의'에 입각하여 수용적인 자세로 경청하라는 것이다. 그리고 모든 가능성을 상정하여 그것에 반대하는 대신 내놓을 수 있는 '현실적인 대안'을 반드시 마련하라는 것이다. 간디에 심취했던 아르네 네스는 정부가 그가 머물던 오두막 근처에 댐을 건설하려고 하자 그에 반대하였는데, 그를 찾아온 공무원에게 "우선 커피부터 마십시다."라고 말한다. 그리고 마주앉은 그에게 상체를 기울이며 그의 주장을 세심하게 경청한다. 이 대목에서 나는 TV 토론 프로그램에서 반대 논리를 펴는 상대방을 빙글거리며 비웃던 어느 진보논객이 떠올랐다. 그의 주장은 분명 명료했고 타당했으며 정치적으로도 옳은 것이었지만, 내 눈에는 그는 '패자'로 보였다. 우리는 왜 그렇게 상대방을 멸시하고 비웃는 것에 익숙한지, 그렇지 않으면 이길 수 없다고 생각하는지. 아르네 네스를 읽어보십시오, 라고 간절히 권하고 싶다. 그가 제안한 '가능주의'와 '현실가능한 대안'의 제시는 지금 수많은 갈등 상황 속에 있는 우리에게도 많은 시사점을 준다. 제주도의 해군 기지를 설치할 것인가, 원자력발전소를 계속 유지할 것인가(혹은 더 건설할 것인가)... 문제를 둘러싼 주장과 논리는 더할 수 없이 많이 존재하고 또 명확하다. 그러나 우리가 더 배울 것은 상대방을 대하는 자세이다. 그것은 전략의 문제가 아니라 생태와 평화, 그리고 민주주의를 더 나아가게 하는 본질에 관한 문제이다. 우리는 그걸 너무 간과하는 게 아닌가, 아르네 네스는 묻고 있는 것이다. 


책에서는 아르네 네스의 가족사와 그의 취미이자 직업이었던 등반, 젊은 날 마약을 접했던 경험까지, 무게 잡고 있는 철학서에서는 볼 수 없는 시시콜콜한 이야기가 방대하게 다루어진다. 그런 이야기는 읽는 이를 더욱 흥미롭게 하는데, 그와 더하여 책을 기획한 이, 혹은 인터뷰어가 의도한 것은 아르네 네스가 고수한 게슈탈트적 사고방식과 관련이 있는 듯하다. 주체와 객체, 그리고 매개물을 무화시키고, 환경과 나, 그리고 그 둘의 상호적용이 일어나는 경험 전체가 하나의 시각이 된다는 의미를 지닌 게슈탈트적 사고방식은 그의 핵심적 주장이자 이 책이 그의 사상을 소개하는 하나의 방편으로 기능한다. 서론 본론 결론 딱딱 나눠서 핵심어에 밑줄 그으며 읽는 인문서(혹은 철학서)가 아니라 즐거이 읽어 나가다 보면(의무보다는 재미가 우선이라는 것이 아르네 네스의 일관된 태도!) 어, 이 사람이 이거 말하려나 보네, 하는 생각이 절로 드는 것. 그래서 앞서 말한 철학이니 생태니, 혹은 더 무섭게도, 심층생태학이니 하는 각잡은 개념들이 결코 낯설지 않게 다가오는 것이다.


우리와 너무 멀어져 우리가 누구인지조차 모르고, 모르고 있다는 사실조차도 모르는 우리에게 이 책은 꼭 한 번 읽어 볼 만한 가치가 있다는 생각이 든다. 아르네 네스는 책 막판에 생각하는 것은 고통스럽다고 토로한다. 인간은 본능적으로 직관적인데 언어는 다듬어져서 나오는 것이고 이것을 이어주는 과정이 생각이기 때문이다. 아르네 네스는 언어로 다듬어지기 이전에 나오는 직관을 소중히 여기기를 주문한다. 생각은 바로 거기서부터 터져나오는 것이기 때문이다. 보통 우리는 직관을 눈여겨보지 않고 하잘것없이 여기며 심지어 인지하지 못할 때도 많다. 하지만 거기서부터 생각은 시작되며, 그 생각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져 마침내 우리가 세계와 어떻게 연결되고 있는지 밝혀 준다. 각자의 경험과 생각과 사유가 행동과 실천과 연대로 이어지면 결국 우리 사회의 진보가 되는 것이다. 생각하는 것이 왜 고통스러운가요, 라는 다소 반어적이고 도발적인 제목을 호기심의 고리 삼아 아르네 네스의 삶과 사유, 사상을 따라가면 조금은 생각하는 것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라고 느끼는 나를 발견할지도. 그렇다면 이 책은 그 의무를 다한 것일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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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뜬 자들의 도시
주제 사라마구 지음, 정영목 옮김 / 해냄 / 200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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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작 <눈먼 자들의 도시>가 주는 서늘함이 너무 강해서 바쁜 틈에도 후속작을 꼭 읽어야지 했었다. 마침 놀러간 어느 집 책장에 꽂혀 있길래 빌려 읽게 되었다. 눈이 멀었던 사람들이 눈을 뜨면 어떤 일이 생길까. 나의 얇디얇은 상상력에 기대는 것보다 우선 작가가 하는 이야기를 열심히 듣는 편인 나는, 책을 읽는 내내 걸려 온 태클을 여러 차례 이겨 내고 결국 완독하고야 말았다. (주제 사라마구의 글을 읽어 보신 분은 아시겠지만, 문장부호라고는 오로지 마침표와 쉼표만 쓰는 그 해괴한 작가 취향 때문에 읽는 내내 여기서 그만 읽자는 꾀임이 수도 없이 밀려든다.)

전작과 비교하자면 우선 맥이 좀 빠진다. 우선 그 조건부터가 그렇다. 눈이 먼다는 것은 신체의 가장 중요한 부분을 상실하는 것으로, 그 자체로 인간의 행동이 극도로 제한될 수밖에 없다. 게다가 단 한명의 예외를 두고 모두 그런 상황에 처한다면 그 예외인 인물을 중심으로 독자는, 눈먼 자들의 사회심리학적 행동을 예측하고 확인하고 놀라워하며 경악하면서 이야기의 중심으로 확실하게 빠져 들어갈 수 있는 구도에 놓이게 된다.

그 반면 <눈뜬 자들의 도시>에서는 물리적이거나 신체적 상실에 대한 이야기는 없다. 그만큼 즉각적인 충격 여파는 다소 덜하다는 뜻이다. 그들은 다시 시력을 되찾았고 다시 평범한 일상을 살아간다. 그러던 중, 선거에서 투표자의 80% 이상이 백지투표를 하는 일이 벌어지고 우파 정당이 잡은 정권은 그것을 일종의 반민주적 행위로 규정하여 주동자를 색출하기에 혈안이 된다. (아, 이 상황은 지금 우리 현실 어느 구석과 너무 닮아있지 않은가. 어제 신문에는 블로거 미네르바가 구속 수감되었다는 보도가 났다.) 정권의 수뇌인 대통령과 총리, 그리고 각부 장관들은 곳곳에 프락치를 심고 조금이라도 의심가는 사람들을 잡아 가두며 심문하다가 여의치 않자 마침내 계엄을 선포하고 만다. (멀지 않은 훗날 우리가 겪을 일일지도!)

이 소설에서 왜 사람들이 백지투표를 했는지에 대한 언급은 없다. 애초에 행동의 원인이랄 것이 설정되지 않았다는 이야기다. 그것은 전작에서와 동일하다. 사람들이 왜 눈이 멀었는지 그 원인에 대해서는 아무도 모른다. 중요한 것은, 눈이 멀고서 사람들이 어떤 행동을 했느냐는 것이다. <눈뜬>에서도 마찬가지로 사람들의 행동을 살핀다. 그러나 중요한 차이는 바로 카메라의 위치다. <눈먼>에서는 눈이 먼 시민들에 카메라를 들이댔다면, <눈뜬>에서는 정치 권력자들에게로 카메라의 시선이 맞추어진다. 그들은 <눈먼>에서, 국가적 초비상상태에 이르러서도 아무런 조치도 취할 수 없던 무능력자들이었다. <눈뜬>에서는 그 무능력자들이 그간에 쌓인 피해의식과 더불어 권력을 더욱 공공히하고 때로 그 권력을 다른 것의 그것과 차별화하기 위해 얼마나 치졸하고 얄랼한 방법들을 동원하는가를 여실하게 보여준다.

카메라의 시점이 어디로 향하는지 점점 명확해지면서 작가가 하고자 하는 주제어를 좀 더 선명하게 읽을 수 있다. <눈뜬>은 <눈먼>보다 좀 늘어지고 엉성하게 읽힐 수도 있지만, 그것은 시리즈물의 완결판으로서 훌륭한 역할을 해낸다. 눈먼 자들이 눈을 뜨면서 목격하게 되는 추잡한 권력의 추종자들의 행태들은 차라리 우리 눈을 스스로 찔러 다시 눈이 멀었으면 하는 안타까움을 전해 주며 마지막 장을 덮게 한다.  

실제 눈이 멀었던 이들은 그 참혹한 경험을 통해 서로간의 연대와 조용한 행동, 작은 희망에 대한 모두의 열망이 얼마나 소중한지 알게 된 듯하다. 그러므로 그들은 진정한 마음의 눈을 떴다 할 수 있겠다. 그런 메시지를 보자면 <눈먼>과 <눈뜬>은 서로 반대의 지점에 서 있다. <눈먼>은 눈이 먼 상태에서 겪는 참혹한 일들이 너무나 절망적이지만 그 절망의 깊이에 비례하여 인간의 고결함에 대한 희망의 빛이 강렬하게 오버랩된다. 그러나 <눈뜬>에서는 정치 권력에 대항하는 대중의 현명함이 군데군데 희망의 싹을 보여주지만 결국 그것의 상징이 거세되면서 매우 절망적으로 끝을 맺는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며 자꾸 지금 우리 사회의 절망이 떠올랐다. 이명박 정권이 탄생하면서 하루도 조용할 날 없이 지내 온 1년. 쇠고기 파동에서부터 시작하여 촛불집회가 있었고, 종부세 폐지 논란이 거세었으나 결국 폐지되는 것으로 가닥이 잡혔다. 아이들에게 조금 더 보람찬 교육을 하고자 했던 교사들은 해직되었고 거대 자본의 손아귀에 방송을 넘기려는 시도는 많은 반대에도 불구하고 지금도 계속 이어지고 있다. 책 속 파렴치한 정치 권력자들은 어떤 반대 논리나 주장을 절대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들은 자신의 권력 옹호만을 유일한 제일 목적으로 삼으며 그에 반하는 모든 것을 삭제해 버린다. 소통의 단절. 자신들을 외면하는 시민을 버리고 도시 바깥으로 떠나버린 그들처럼, 지금 MB 정권도 그 어떤 반대 논리와 주장에는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 그렇다면 이 책의 결론처럼 우리도 암울한 끝을 볼 수밖에 없는가. 이 사회의 나아갈 바에 대한 혜안을 가진 일반대중은 결국 한 줌도 되지 않는 정치 권력 앞에서 무력할 수밖에 없는 걸까. 많은 사람들은 점점 더 눈을 떠 가는데 자꾸만 눈을 감으려고 하는 그들이 안타까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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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 서점을 검색하면서, 가끔 책방을 들르면서 이건 꼭 사서 읽어야지, 하면서 찍은 놓은 책이 수두룩빽빽하다. 돈이 있으면 시간이 없고, 시간이 있으면 돈이 없는 아이러니컬한 인생의 시소에서 나는 지금 전자에 속하는 시간대에 들어가 있다. 또 시간이 지나면 후자에 속하겠지. 그때를 위해 부지런히 모아둔다. 찍힌 책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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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에서 길을 잃다- 소설가 김미진과 함께 떠나는 이탈리아 여행
김미진 글,사진 / 해냄 / 2002년 6월
10,000원 → 9,000원(10%할인) / 마일리지 500원(5% 적립)
2003년 06월 13일에 저장
품절

로마로 떠나기 전에 꼭 읽어야지 하고 찍어 놓았던 책인데, 결국 읽지 못하고 떠났다. 아, 이 어쩔 수 없는 게으름! 3일 간 머물렀던 로마는 맛있는 음식과 청명한 하늘,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풍성한 일조량, 그리고, 그리고 그 수많은 성당들과 예술작품들. 로마는 충분히 매력적이고 아름다웠다. 휴일 나절, 좋은 햇볕 아래에서 이 책을 읽으며 로마를 다시 떠올려 보는 것도 즐거울 듯.
공선옥, 마흔에 길을 나서다
공선옥 지음, 노익상·박여선 사진 / 월간말 / 2003년 7월
8,500원 → 7,650원(10%할인) / 마일리지 420원(5% 적립)
2003년 07월 04일에 저장
품절
나는 개인적으로 공선옥의 작품을 즐기지 않는다. '정치적으로 선호하되, 결코 즐기지는 않는다'는 표현을 쓰고 싶다. 그의 소설을 치명적으로 암울하다. '치명적인' 것은 그 암울함이 결국 나(여성)의 현실임을 자각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의 소설을 읽고 나면 힘이 쪽 빠져버린다. 이것은, 모순이다. 그러나 다시 용기를 내어 그의 글을 읽어 보려 한다. 길을 나선 그가 소설이라는 픽션으로 우회하지 않고 내 눈을 들여다 보며 직설하는 말을 듣고 싶
모던 수필- 새로 가려 뽑은 현대 한국의 명산문
방민호 엮음 / 향연 / 2003년 7월
10,000원 → 9,000원(10%할인) / 마일리지 500원(5% 적립)
2003년 07월 21일에 저장
절판

중고등학교를 거치며 수필은 참 재미없는 문학 장르라고 생각했다. 교과서에 수록된 교훈적인 수필들이 나를 염증나게 했기 때문이다. 고등학교 졸업과 함께 사회 여기저기에 널린 수많은 생활글들을 부지불식 간에 접하며, 일상의 경험과 그 경험에서 나오는 편린들을 정갈하게 담은 글이 얼마나 아름다운가를 종종 느끼게 되었다. 그래서 다시, 우리 수필이다.
호밀밭의 파수꾼
J.D. 샐린저 지음, 공경희 옮김 / 민음사 / 2001년 5월
8,000원 → 7,200원(10%할인) / 마일리지 400원(5% 적립)
2002년 09월 07일에 저장
구판절판
회사 동료들이 이 책의 저자를 두고 내기를 건 적이 있었다. 나야 생판 모르는 사람이라 잠자코 있었지만. 시대의 고전이라는 것 외에는... 사람들이 왜 이 책을 그리 많이 읽고 또 이야기하는지 궁금하다. 한 번 읽어 봐야지. 나는 그 내기에서 진 사람이 사는 닭튀김을 내기에서 이긴 사람과 함께 먹었다.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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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뢰 제거하고 나면 또 다른 지뢰를 찾아 나서야 하는 고달픈 마감 기간. 그나마 여유를 찾을 틈새는 원고를 다 넘긴 상태에서 아직 디자이너가 교정지를 넘겨 주지 않을 때이다. 주로 술술 넘어가는 소설들, 발랄한 에세이들이 딱, 좋은 타임킬러이다. 요즘은 생기발랄한 젊은 작가들의 소설이 자주 손에 잡힌다. 가끔 뭘 이리 잘난 체하나, 싶기도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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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꽃
김영하 지음 / 문학동네 / 2003년 8월
8,800원 → 7,920원(10%할인) / 마일리지 440원(5% 적립)
2003년 10월 27일에 저장
구판절판
교정지를 기다리면 읽은 것은 아니고 유럽여행 중 비행기 안에서 읽은 소설이다. 김영하의 글은 소설보다는 에세이로 먼저 만났는데, <김영하, 이우일의 영화 이야기>는 읽기 시작한 지 세 시간 만에 돌파해 버렸다. 그 필력을 소설로 느껴 보고 싶어 산 책이다. 에세이보단 좀 더 맹숭맹숭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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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책은 어린아이들만 보는 거라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그것도 아직 글을 깨우치지 못한 유아들이. 그러나 많은 초등교사들을 만나며 그것이 얼마나 편협하고 잘못된 생각인지 알게 되었다. 그림책은 아이들뿐만이 아니라 어른들에게도 많은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리고 어른인 우리는, 그 그림책이 던져 주는 이야기를 이해하고 소화해 낼 만큼 그리 성숙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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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각대장 존
존 버닝햄 지음, 박상희 옮김 / 비룡소 / 1999년 4월
13,000원 → 11,700원(10%할인) / 마일리지 650원(5% 적립)
양탄자배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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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11월 20일에 저장

존 어쩌구 멕허너시라는 긴 이름을 가진 아이의 이야기. 너는 왜 지각을 하니, 너는 왜 숙제를 안 해오니? 그저 아이들을 야단칠 때 상투적으로 덧붙이는 '왜?'가 아니라 진정으로 아이들을 이해하기 위한 물음으로서의 '왜?'를 아이들에게 던져야 한다.
마리아
주디트 모랄레스 그림, 아드리아 고디아 글, 김정하 옮김 / 미래엔아이세움 / 2002년 11월
7,500원 → 6,750원(10%할인) / 마일리지 370원(5% 적립)
2003년 03월 07일에 저장
절판

월간지의 어린이 신간 소개를 하면서 알게 된 그림책이다. 붉은 원피스에 까만 고수머리가 인상적인 마리아는 늘 찾아오던 철새가 오지 않자 동물 탐험대를 이끌고 새들을 찾아나선다. 마리아가 철새에 대한 정보를 얻기위해 도서관을 찾아 책을 펼친 장면이 가장 인상적이었다. 작은 아이가 코를 박고 커다란 책을 들여다보는 장면이 놀랍도록 아름다웠던 기억이 난다. 보기 드문 스페인 그림책이라서 그럴까. 그림책의 빛깔은 자꾸만 지중해의 잔잔한 풍경을 떠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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