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 문







 또 하나의 위대한 세기 : 바로크의 자유사상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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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대한 세기’의 정체성. 고전적 사료편찬에 따르면 17세기의 특징을 ‘위대한 세기’라고 한다. 물론, 위대하다. 그러나 왜, 어떤 이유로, 누가? 이런 의문들을 제기하는 사람은 없다. 그냥 당연하게 받아들인다. 따라서 이 말이 어디서 나왔는지, 누가 이런 표현을 썼는지, 그 작가가 누군지 자문을 해보면 좀 난감해진다. 이런 말을 흔히 쓰지만, 한 번도 그것을 규명하거나 언급하거나 분석해본 적이 없다. 

  만일 각 세기를 어떤 용어나 표현으로, 그러니까 단 한마디로 짧게 말한다고 하면 18세기는 ‘계몽’의 시대, 19세기는 ‘산업혁명’ 시대라고 하는데, 20세기는 아직 그런 명칭을 쓰지 않는다. 파시즘의 시대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예를 들면, ‘중세 암흑시대’는 폭력과 잔혹함, 야만의 시대 외에 아무것도 없다고 비난한다. 그리고 바로 곧이어, 그러니까 17세기는 ....위대한 세기라고 할만하다.

  위대한 세기라는 말에는 다음과 같이 일목요연한  다양한 상품이 나타난다. 데카르트의 철학, 코르네유의 비극, 파스칼의 『팡세』, 라신의 『아탈리』, 보쉬에의 추도사, 부알로의 풍자, 세비녜 부인의 편지, 몰리에르의 희극, 라 브뤼예르의 초상화, 라 로쉬푸코의 『격언집』 등. 코기토, 신나(Cinna)를 위한 자리, 생각하는 갈대, 두 무한대, 앙리에트 드 프랑스(Henriette de France)의 시신, 『시학』(부알로의 고전주의 이론서: 역주), 그리냥(Grignan)의 시골 필기대, 타르튀프, 동 주앙, 알세스트와 같은 등장인물들 혹은 격언, 이런 말 속에서 위대한 세기는 기만하고 있다.

  17세기의 골동품이 된 이런 것들을 누가, 언제, 어떤 상황에서 추출해서 프랑스의 전시 모델을 만들어냈는지 아무도 모른다. 물론, 17세기에 깊은 영향을 미치거나, 17세기를 총체적으로 구성하는 작가, 사상, 흐름 등에서 떼어내어 선택한 것들이라고 전제할 수 있다. 그런데 이 100년 동안에 테카르트 철학, 장세니즘, 정적주의, 예수회, 기독교, 고전주의밖에 없었을까? 로마의 영웅들만 있고 교회의 문제점들은 없었을까? 가톨릭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그리스 형상은 없었을까? 고대로만 돌아가고 17세기 당대는? 소포클레스와 에우리피데스가 코르네유와 라신의 작품에서 부활했다고? 페드르와 이솝이 라 퐁텐으로 변장했다고? 플라우투스와 테레티우스가 장-바티스트 포클랭(Jean-Baptiste Poquelin)에게서 다시 현신한 거라고? 테오프라스트가 라 브뤼예르(La Bruyère)의 옷을 입고 있다고? 플라톤의 영혼과 육체는 데카르트 철학에서 ‘사유 실체와 연장 실체’(데카르트는 인간의 이성을 사유실체라고 하고, 물질의 존재 양상을 연장실체라고 주장하면서, 사유실체가 연장실체보다 우위에 있다고 한다. 연장이란 사물이 공간을 차지하는 것을 뜻하고, 실체는 원동자, 즉 그 스스로가 원인이 되어 다른 것들의 근본적 원인, 또는 세상 만물을 움직이게 하는 근본적 존재를 말한다 : 역주)가 되었다. 이 고대인들의 향연에 왜 데모크리토스나 레우키포스, 에피쿠로스나 루크레티우스는 어디에도 없단 말인가? 17세기는 - 사실 성인전에서 걸림돌이 되는 - 이런 위대한 사상가들을 희생시키면서 어떻게 위대할 수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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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Politcal Theory of Global Citizenship (Routledge Innovations in Political Theory) by April Carter (Paperback - Feb. 20,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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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에이프릴 카터 (April Carter)

민주주의와 현대정치 이론에 관한 세계적인 권위자. 대표작으로 《전지구적 시민권 정치 이론》(2001), 《여성 권리의 정치학》(1988), 《권위와 민주주의》(1979), 《직접행동과 자유민주주의》(1973), 《아나키즘 정치 이론》(1971) 등이 있다. 영국 옥스퍼드대학과 랭카스터대학, 오스트레일리아의 퀸즐랜드대학과 디킨대학에서 정치학 교수를 역임하였다.

 

목 차




서문/감사의 글




서론




1부: 코스모폴리타니즘과 1500~1914년 사이의 국제사회

      

      I부 서문: 서구 전통 내 코스모폴리타니즘의 뿌리들

      1. 기독교 왕국의 시민 혹은 세계의 시민?:

                국가체제 출현기의 코스모폴리타니즘

      2. 계몽-코스모폴리타니즘과 세계시민권

      3. 국제주의와 코스모폴리타니즘:

              1815~1914년 사이 이것들에 대한 도전들




II부:  현실 속 초국적 시민권에 대한 해석들




      II부 서문: 지구화

      4. 지구시민사회: 지구시민으로서의 역할 떠맡기  

      5. 난민과 이주자: 그들은 지구적 시민, 아니면 다국적 시민?

      6. 유럽시민권: 지구시민권으로 가는 육교, 아니면 장애물?




III부:  오늘의 지구시민권: 이론적 논제와 정치적 논제들




      III부 서문: '세계정부‘에서 ’지구거버넌스‘로

      7. 현대정치사상에서 발견한 지구시민권 개념  

      8. 지구시민권과 지구거버넌스: 국제관계론의 관점들

      9. 문화적 다양성, 페미니즘과 포스트모더니즘:

              지구-코스모폴리타니즘의 도전




      결론

      각주

      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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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크의 자유사상가들
미셀 옹프레 지음 / 인간사랑 / 출간예정일 : 미정

 

   

목     차




(반철학사, 제3권)

바로크의 자유사상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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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문. 또 하나의 위대한 세기 : 바로크의 자유사상가들

(1) 위대한 세기의 정체성 (2) 볼테르의 그림자 (3) 바로크의 힘과 권력 (4) 현학자로 불린 자유사상가  (5) 바로크의 리베르티나주 (6) 바로크 자유사상가의 군도 (7) 바로크 자유사상가란 무엇인가? (8) 리베르티나주의 완성과 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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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기 : 신앙 절대주의적 자유사상가들




     I. 샤롱과 《신중한 쾌락》

(1) 악평 (2) 비난과 모욕, 경멸의 대상 (3) 현자의 초상 (4) 사상의 일관성 (5) 회의주의자의 대립 (6) 고대의 연구 (7) 자신의 내면에서 움직이는 것 찾기 (8) 세속적 지혜의 창조 (9) 사제의 자손 (10) 바보, 천치, 멍청이들 (11) 비가톨릭적인 신 (12) 신의 두 체제 (13) 존재의 즐거움을 향하여 (14) 절제된 쾌락 (15) 유쾌한 지혜의 기술 (16) 무신론적 미덕의 출현

       

     II. 라 모트 르 베예와 《자아 쾌락》

(1) 신중한 자의 초상 (2) 세기의 빛 속에 (3) 빛의 상실 (4) 악마적 인물? (5) 자아의 사용법 (6) 영악한 자, 비극적인 자, 고독한 자 (7) 철학적 삶의 일관성 (8) 철학적으로 진기한 물품 전시실 (9) 선과 악의 이쪽 (10) 동물성애, 식인종, 분식성 (11) 사상을 숨기고 펼치기 (12) 작가의 삭제 (13) 접기, 펼치기, 과잉 접기 (14) 밤의 논리 (15) 철학적 극장 (16) 어둠 속에 빛의 흔적 (17) 철학자의 우화들 (18) 회의주의적 쾌락주의 (19) 자유워지기 위해 복종하기 (20) 회의주의적 윤리? (21) 회의주의적 기독교인 (22) 순수한 해체 도구




     III. 생 테브르몽과 《쾌락의 사랑》

(1) 주름 선언문 (2) 주름 속에 접혀진 인물 (3) 정신의 기호로 (4) 사려 깊은 자의 명암 (5) 자유사상가 살롱의 무대 (6) 검객의 언어 기술 (7) 불꽃놀이의 기억들 (8) 해부학 강의 (9) 본의 아닌 작품 (10) 철학자들에 대한 인상 (11) 가상디 효과 (12) 선(腺)의 무질서 (13) 고대인들과의 만남 (14) 루이 14세 시대의 에피쿠로스 (15) 오락의 철학 (16) 자아로부터 탈출하기 (17) 노르망디 도교사상가 (18) 그리고 모든 것에 신이?

   

     IV. 피에르 가상디와 《말하는 에피쿠로스》

(1) 자유사상가 사제 (2) 카로 씨의 육신 (3) 철학자의 망원경 (4) 《감히 네 자신의 오성을 사용하라!》 (5) 테트라드라는 정원 (6) 오페라 각본 철학자 (7) 아리스토텔레스 죽이기 (8) 저자거리의 운동선수들을 공격하다 (9) 전쟁학적 후퇴 (10) 카로 씨가 망 씨를 공격하다 (11) 호라티우스가(家)와 쿠리아티우스가(家) (12) 격한 논쟁에 대한 디테일 (13) 둘 중 가장 철학자적인 (14) 유물론 사상의 모호한 영역 (15) 복권 소송 (16) 상세한 변론 (17) 에피쿠로스, 성인, 복화술사 (18) 가상디의 유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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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기 : 범신론적 자유사상가들




     I. 시라노 드 베르주락과 《자유로운 삶》

(1) 코에 대한 전기 (2) 글의 불멸성 (3) 철학적으로 일그러져 보이는 상 (4) 변질된 데카르트적 관점 (5) 진드기의 관점 (6) 바로크적 허구 (7) 범신론의 마력 (8) 기적의 법칙 (9) 일그러져 보이는 상 속에 숨겨진 미래 (10) 뷔를레스크의 진지함 (11) 군도 같은 생각 (12) 종교적인 것의 분해 (13) 이슬람의 야만적인 축제 (14) 원숭이의 이성 (15) 《도움이 되지 못하는 데 대한 두려움》 (16) 《자유로운 삶을 꿈꾸라》  




     II. 스피노자와 《즐거움에 이르는 것》

(1) 존재하지 않는 얼굴의 그림 (2) 유대인이 유대인을 싫어하다 (3) 리베르티나주 학교에서 (4) 에피쿠로스적 삶 (5) 웃지 않고 울지 않고, 이해하기 (6) 비합리적인 것의 분해 (7) 내재성의 종교 (8) 위대한 바로크 작품 (9) 초기의 숨기기 (10) 존재론적 인식론 (11) 신의 이름 (12) 선과 악을 넘어서 (13) 육체는 무엇을 할 수 있는가? (14) 에피쿠로스의 기호로 (15) 슬픈 열정과의 전쟁 (16) 이성과 완전한 행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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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론 : 신의 몰락

(1) 리베르티나주의 힘 (2) 당대의 자유사상가 정신 (3) 불법 사상 (4) 환속한 선(禪)의 예외 (5) 망토를 걸치고 철학하기 (6) 스피노자 효과







참고문헌




연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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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면의 황금

로버트 A. 존슨 저/ 박종일 역  

 


 

목  차



제 1 장  내면의 황금

제 2 장  외로움

제 3 장  러브 스토리

제 4 장  왕의 귀환  

  저자에 관하여 

 

 

나눔을 자각하라.




매일 매일 얼마나 많은 황금의 이전이 일어나고 있는지를 지켜보면서 나는 경이를 느낀다. 그것은 어디에서나 이루어지고 있다. 예컨대, 강연을 할 때면 나는 누군가를 특별히 지목하여 그에게 말함으로써 황금을 그의 무릎위에 올려놓는다. 이것은 나 자신을 고양시키는 방법이기도 하다. 나는 늘 자신을 얼치기 강연자가 아닌가 생각해 왔었다. 그런데 어느 날 융 박사의 수제자인 마리 루이스 폰 프란츠가 나와 함께 강연하러 가면서 내게 자랑스럽게 말했다. “강연을 잘 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마음에 드는 누군가를 찾아내어 그 사람에게 대화하듯 말하는 것이에요.” 나는 그녀의 말에서 큰 위안을 찾았다. 이따금씩 나는 그녀의 방식을 따라 강연하지만 대부분의 경우에는 그렇게 하지 않는다.

일반적으로 우리는 황금을 교환하는 일에 서툴고, 우리의 우울함과 외로움은 이 교환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므로 되풀이 된다. 우리는 죄책감을 벗어나지 못한다. 나는 실패작이야. 이 방법으로는 안 되잖아.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 그러나 황금을 전달하는 일을 이해하게 되면 그 일을 귀하게 여기고 죄책감은 느끼지 않게 된다. 그때 당신은 무언가 간접적인 변화가 일어남을 알 수 있다. 그것은 느낄 수는 있지만 분명하게 파악할 수는 없다. 어떤 경로를 통해서건 누군가가 당신의 황금을 받아들인다는 사실을 명심하기만 하면 된다. 이것을 알면 우리 모두가 절대적으로 필요로 하는 어떤 긍지를 가질 수 있을 것이다.

누군가를 떠나보내기가 힘든 까닭은—자식이 집을 떠나건 가까운 이들이 세상을 떠나건—떠나는 그들에게 우리의 황금을 건네주었기 때문이다. 영적인 속성이 있는 곳이면 어디나 우리의 황금이 있다. 우리는 우리의 황금을 보관하고 있는 사람들 곁을 맴돌며 그들이 떠나지 않기를 바란다. 만약 당신이 어떤 여자에게 매달려 그 여자가 곁에 없이는—또는 저 세상으로 떠나보내고는—아무것도 할 수 없다면 그것은 당신의 황금을 그 여자에게 맡겼다는 것을 의미한다. 떠나보냄을 아쉬워함은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어려운 일이기는 하지만—당신의 투사 대상을 바꾸고 그 여자를 떠나보내야 한다.




교회에 맡김




예전에는 사람들이 영적인 황금을 교회에 맡겼다. 오늘날 그런 일은 갈수록 줄어들고 있다. 이것은 불행한 일이다. 교회는 당신의 황금을 맡겨두기에 이상적인 곳이다. 그러나 이런 방식을 시도하기란 쉽지 않음을 나는 안다. 나도 시도해본 적이 있으니까.

30여 년 전, 다음날이면 자취를 감추는 사람들에게 나의 황금을 맡기는 일에 나는 지쳐갔다. 나는 늘 가톨릭교회에 끌렸다. 가톨릭신자로 성장한 것도 아니고 교회에 가본 적도 없었지만 나는 교회에 대해 호의적인 정서를 갖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로스엔젤리스의 아름다운 가톨릭교회를 선택했다. 그곳은 스페인풍의 바로크양식을 그대로 본 따 지은 건물로서 뛰어난 조각 작품들이 많았다. 어느 날 오후 아무도 없는 틈을 타서 나는 교회로 들어가 동정녀 마리아 상 앞에 무릎을 꿇고 나의 황금을 쏟아냈다. 황금을 쏟아 내는 일은 순조롭게 이루어졌고 나는 기쁨을 맛보았다. 그런데 나는 마리아 상의 머리 위 후광이 네온관으로 밝힌 것임을 알게 되었다. 무엇 때문인지는 모르겠으나 그 네온관을 보자 무너져 내리는 느낌이었고 이후로 나는 그 교회에 다시는 가지 않았다. 우리는 시도를 멈추지 말아야 한다. 우리는 오늘 우리의 영적인 황금을 맡길 장소를 찾아야 한다.




갇힌 상자에서 나온 신




지금 하려는 얘기는 우스개 소리처럼 들릴지 모르지만 진심이다. 신은 갇힌 상자에서 나왔다. 예전에 신은 가톨릭교회당의 제단 위 감실(龕室) 속에서 살았고 감실 문을 여는 열쇠는 신부가 갖고 있었다. 신은 안에 갇혀 있었고 밖에 있는 우리는 들어갈 수가 없었다. 그래서 안전했다. 그러나 이제 상자는 부서졌고 신은 풀려났다.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해야 할지 아무도 모르고 있다.

100년 후에 역사가 지금부터 우리가 하려는 일들을 어떻게 기록해 놓을지 상상해보는 것은 흥미 있는 일이다. 놀라운 가능성이 있지만 성공하지 못하면 무시무시한 결과가 나올 것이다. 신은 고압전류이다. 그래서 내가 캘커타에서 경험한 것처럼 감당할 수 없는 고통을 갖게 됐을 때 지체 없이 도움을 청해야 한다. 우리는 신을 다시 가두어 둘 수는 없다. 신을 감실 속으로 돌려보내는 일은 불가능하다.

예전에는 제일(祭日)이면 다섯 시에 가톨릭 신부가 성체강복식(聖體降福式)을 거행했다. 신부는 양쪽에 거울이 붙어 있고 손잡이가 달린 만다라 모양의 성체현시대(聖體顯示臺)     를 들고 나온다. 성체는 두 장의 거울 사이에 안치되며 신부는 성체현시대를 들 때 손이 직접 닿지 않도록 영대(領帶)로 손잡이를 감싸서 잡는다. 그런 다음에 신부는 성체현시대를 를 돌려 신자들에게 신을 보여준다.

이제 그런 시대는 지나갔다. 신은 감실 속에 있지도 않고 성체현시대 속에 있지도 않다. 신은 밖으로 나와 모든 곳을 비추고 있다. 내면의 연금술로 만들어진 황금이 분출되고 있는 것이 그 중요한 표징의 하나이다. 내면의 황금은 당신의 최상일 수도 있고 최악일 수도 있다.

인도에서는 신은 아직 상자 속에 갇혀 있다. 이런 면에서 인도는 아름답고 평화로운 곳이다. 모두가 무엇을 해야 할지 정확하게 알고 있다. 모든 일에는 법칙이 있고 승려는 아직도 상자를 여는 열쇠를 쥐고 있다. 무언가를 알고 싶다면 고대의 신화에서 찾든지 구루나 아버지에게 물어보면 된다. 신은 모든 것을 통찰하고 있으며 그래서 그에게서 답을 구할 수 있다. 이전 가톨릭세계에서도 그랬다. 옳은 방식이 정해져 있었고 신부가 옳은 방식이 무엇인지를 가르쳐 주었다.

우리는 그런 시절로 돌아갈 수 없다. 우리는 그런 식으로 권위를 존중하지 않는다. 우리는 신을 다시 상자 속에 모실 수는 없고 그렇다고 해서 신이 상자 밖에 나와 있는 상태에서 우리가 생존할 수 있을지도 분명하지 않다. 갑자기 몇 만 볼트로 높아진 전압이 흘러들어와 집안의 전기 선로가 불타버리는 것과 같은 상황이다. 요컨대 절망적인 상황이다. 우리는 자신만의 방식, 자신만의 차별화된 대응책을 찾아내야 하는데 그럴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 예수가 우리에게 “이제부터 나는 너희를 종이라 부르지 않고 친구라 부르겠다.”고 말하는데 우리는 감당할 수가 없는 것이다. 이 말을 들을 때 우리는 잠시는 기쁠지 모르나 이내 무거운 바위에 짓눌린 느낌이 된다. 이 무거움은 이전에도 지금에도 우리 자신의 것이기는 하지만 우리는 그것을 짊어 질 수가 없다.

신이 상자 밖으로 나온 지금 그가 머물 장소가 어디 있을까? 모든 정신적 힘은 성역, 금지된 경계, 담을 용기(容器)가 필요하다. 지금까지는 그 용기가 권위였다. 그런데 오늘날 우리는 권위를 분해해 버렸다. 우리 자신이 만들어낸 비난의 밀물과 피를 요구하는 외침이 우리 자신의 황금을 부정하고 있다. 그런데 우리는 다른 사람을 손가락질 하며 그들 때문이라고 말한다.

이제 신비한 힘이 머물 장소는 우리 자신의 의식 말고는 없는 것 같다. 우리는 신을 객관적이고 집합적인 거처로부터 끌어내어 우리의 심리학 속으로 흡수하였다. 이제는 우리의 의식이 해법을 찾아내야 한다. 그런데 지금까지 우리는 해법을 찾는데 성공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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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guardia in Congress by Howard Zinn (Paperback - Jan. 14,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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