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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이 땅에 살고 있는 많은 사람들에게는 해리 트루먼이 생소한 이름일 것이다. 한국전쟁을 직간접으로 겪은 60대 이상을 제외하고는. 그러나 그들 대부분도 트루먼을 ‘인천상륙작전의 영웅’ 더글러스 맥아더(Douglas MacArthur) 원수를 경질하고 북진 통일을 미루게 한 장본인 정도로 생각하고 있지 않을까? 다른 것들과 마찬가지로 일반인들의 역사 인식 역시 어릴 때 듣고 보고 배운 것들로부터 형성되기 쉽다. 필자를 포함해 60~70년대에 청소년기를 보냈던 사람들은 맥아더는 영웅이며, 트루먼은 맥아더의 북진을 반대한 편협한 인물이라는 말을 듣고 자랐다.

최근에 일부 언론과 논객들의 주장을 통해 미국의 한국전 참전을 결정한 트루먼이야말로 진정 남한의 공산화를 막아준 인물이며 대한민국의 은인이라는 인식이 퍼지고는 있지만, 어느 쪽이든 우리나라 사람들의 트루먼에 대한 평가 혹은 인식은 한국전쟁과 관련된 범주를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그러나 트루먼은 한국정쟁이라는 범주를 훨씬 넘어섰던 인물이었다. 역대 미국 대통령 평가조사에서 트루먼은 여러 차례 10위 안에 들어갔던 뛰어난 지도자였다. 새천년을 맞이한 2000년, 《월 스트리트 저널》에서 미국의 저명한 학자 132명에게 의뢰한 역대 미국 대통령 평가조사에서도 트루먼은 8위를 차지했다. 다른 조사에서도 6위로 선정됐으며, 우리나라 미국사학회도 2011년 창립 20주년 기념사업으로 출간한 (위대한) 『미국대통령 시리즈』 10권 가운데 제8권을 트루먼에게 할애했다.

미국에서 트루먼에 대한 평가가 처음부터 이처럼 높지는 않았다. 1953년 퇴임하기 전 지지율은 한때 23%였다. 워터게이트 사건으로 탄핵을 받아 1974년 37대 대통령 자리에서 쫓겨난 리처드 닉슨(Richard Nixon)의 최저 지지율도 이보다 1% 높았다. 퇴임 후에도 트루먼은 많은 미국인들로부터 외면당했다. 얼마나 인기가 없었는지 다음 일화를 보면 알 수 있다.

트루먼은 퇴임 후 부인 베스(Elizabeth Wallace)를 태우고 낡은 자동차를 직접 운전해 미국 이곳저곳을 여행 다녔다. 당시는 트루먼이 국민들로부터 별 인기가 없었으며, 퇴임 대통령에게 운전기사는 물론 경호원도 배당되지 않던 때였다. 한 번은 샌프란시스코에 사는 지인 집을 찾아 가다 방향을 잃자 트루먼은 차를 세우고 가까운 집 초인종을 눌러 길을 물었다. 집 주인 역시 길을 몰랐다. “도와주지 못해 미안하우. 근데 당신, 그 늙다리 SOB 트루먼을 좀 닮았구려. 언짢게는 생각마쇼….” 트루먼이 집주인을 쳐다본 후 씩 웃으며 답했다. “언짢게는 생각 않지만, 내가 그 늙다리 SOB, 해리 트루먼이 맞소.”

트루먼이 매우 소탈한 인간적인 풍모를 지닌 사람이었음을 증명하는 데 자주 인용되는 이 일화는 당대에 그의 인기가 바닥이었음도 같이 보여준다. 그러나 트루먼은 퇴임 후 약 한 세대가 채 지나기도 전인 1970년대 후반부터 그동안의 저평가에서 벗어나 뛰어난 덕성을 지닌 지도자로 재평가되기 시작했고, 그 흐름은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트루먼이 재평가를 받은 이유는 물론 그의 장점들이 뒤늦게 인정받았기 때문이다. 하버드대학 석좌교수인 조지프 나이(Joseph Nye)는 정치인으로서 트루먼 리더십이 평가절하 되었던 은 사람들이 “그가 지명한 인상적인 팀의 존경을 선택하고 지휘하는 능력을 무시했으며, 그의 직무 학습과 상황지성을 개발하는 능력을 낮춰본 데다, 맥아더 해임, 한국전쟁이 교착상태에 빠졌을 때 핵무기 사용 거부와 같은 힘든 결정 등에서 그의 자발적인 의지를 놓쳤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바로 트루먼은 훌륭한 팀 - 내각 혹은 참모진 - 을 조직하고 관리하는 능력이 뛰어난 지도자였으며, 경험 대신 학습에 성공했던 노력가이고, 무엇보다 결단을 내릴 때는 남에게 미루지 않았던 정치가였다.

그러나 트루먼은 정치가이기 전에 인간으로서 지극히 성실, 정직했고 대통령이 되기 전이나 후에도 가난했지만 청렴한 사람이었다. 도전을 받았을 때는 투지와 끈기로 극복했으며, 설득이 필요할 때는 단호한 논리와 다른 이들을 웃게 만드는 유머를 구사했다. 그는 아랫사람을 섬기고 사랑했으며 자기 과시를 몰랐던 위인이었다. 틈이 나면 역사책을 읽으며 과거에서 새로운 것을 찾는 노력을 게을리 하지 않았으며 모차르트, 쇼팽의 발라드와 녹턴은 물론 재즈곡까지 피아노 연주를 즐겼던 예술적 감성도 뛰어난 사람이었다. 그러면서도 부인을 비롯한 가족에게는 지극한 사랑을 바쳤으며, 국가와 국민에게도 그런 사랑을 쏟아 부었다. 한마디로 인간적인 매력이 철철 넘치는 정치가가 트루먼이었다. 5피트 10인치(176㎝)의 키로 미국 사람으로는 작은 편인 트루먼이 ‘작은 거인 Little Big Man’이라고 불린다는 사실이 이해되지 않는가?

물론 그를 비난하는 목소리가 완전히 사라지진 않았다. 무엇보다 핵폭탄을 인류에게 사용하기로 결정한 유일무이한 사람이었다는 비난은 영원히 역사에 남을 것이다. 필자는 일본이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핵폭탄을 맞지 않고 항복했더라면 좋았을 거라는 생각을 하지만 ‘과연 일본이 그럴 수 있었을까’라는 의심도 갖고 있다.

필자는 우리가 트루먼에게서 배워야 한다고 믿는다. 그렇게 매력이 많은 사람에게서 배우지 않는다면 누구에게서 배운단 말인가? 『강대국의 흥망(Rise and Fall of Great Power)』이라는 책으로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던 폴 케네디(Paul Kennedy, 예일대 역사학 교수)는 2007년 우리나라를 방문했을 때 한국의 차기 대통령은 자신감을 불어넣고 확신을 줄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한다고 말했다. “희망과 자신감 그리고 비전을 제시해 주는 인물, 국민이 어떤 불만을 갖고 있는지 들어주는 인물, 즉 제2차 세계대전 직후 해리 트루먼 전 미국 대통령 같은 대통령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케네디 교수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 사람들이 많았음에도 불구하고 2007년 대선에서 승리한 이명박 대통령은 전혀 그런 면모를 보여주지 못했고, 2012년 선출된 현 대통령 역시 전임자와 이전 대통령들보다 더하면 더했지 결코 덜하지는 않은 모질고 험한 비판을 받고 있다. 우리에게는 희망과 자신감, 비전을 보여주면서 국민이 어떤 불만을 갖고 있는지 귀 기울여 들어줄 대통령감이 아예 없는 것일까? 아니면 그런 사람이 있어도 우리가 미욱해 찾아보지 못하는 것일까? 70년 전, 남의 나라 대통령이지만 트루먼의 리더십의 이모저모를 살펴보며 우리에게 아직까지 없었던 대통령에 대한 아쉬움을 달래보고자 이 글을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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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법도 법이다’의 진실

 

많은 사람들은 소크라테스가 두 가지 명언을 남긴 것으로 기억하고 있다. “너 자신을 알라!”와 “악법도 법이다”라는 구절이 그렇다. 그러나 ‘너 사진을 알라’의 그리스어 ‘그노티 세아우톤’γνῶθι σεαυτόν은 소크라테스가 지어낸 말이 아니라 델포이의 신전에 새겨진 글귀이다. 소크라테스는 하나를 알면 열을 말하는 소피스트들에게 이 말을 썼다. 스스로 얼마나 무지한지 깨달으라고 이 말을 인용한 것이다.

소크라테스가 독배를 마시고 숨지기 전에 한 말로 알려진 ‘악법도 법이다’라는 말도 와전에 지나지 않는다. 이 말은 원래 고대 로마의 법언인 ‘법은 엄하지만 그래도 법이다’라는 뜻의 라틴어 ‘두라 렉스Dura lex, 세드 렉스sed lex’에서 나온 것이다. 2세기경 로마 법률가 도미티우스 울피아누스는 이를 두고 “이는 실로 지나치게 심하다. 그러나 그게 바로 기록된 법이다”라는 의미로 풀이한 바 있다.

소크라테스가 이 말을 한 것으로 와전된 단초는 경성제대 교수를 지낸 오다카 도모오尾高朝雄가 제공했다. 그는 1937년에 펴낸 『법철학』에서 이 법언을 인용해 소크라테스가 독배를 든 것은 실정법을 존중했기 때문이라며 ‘악법도 법이므로 지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악법도 법이다’라는 주장은 바로 로마법언을 인용한 오다카의 주장에 지나지 않는다. 그런데도 한국에서는 소크라테스가 이 말을 한 것처럼 와전되어 유포된 것이다. 여기에는 일본인 작가 시오노 나나미가 『로마인 이야기』에서 이 대목을 마치 사실인 양 부각시킨 것도 크게 작용했다.

주목할 것은 오다카 역시 소크라테스가 ‘악법도 법이다’라고 말한 것으로 기술하지는 않은 점이다. 그는 단지 소크라테스의 사례를 거론하며 로마법언을 인용해 ‘악법도 법이므로 지켜야 한다.’고 주장했을 뿐이다. 이를 곡해한 것은 전적으로 오다카 밑에서 법철학을 공부한 황산덕 등의 법학자들 탓이다. 이들은 이러 왜곡된 얘기가 전파되는 과정에서 과연 무엇을 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일각에서 과거 권위주의 정권 시절 이 말이 억압적인 법집행을 정당화하는 데 악용된 것에 책임을 져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지난 2005년 서강대 정치학과의 강정인 교수가 공저로 펴낸 『소크라테스는 악법도 법이라고 말하지 않았다』가 대표적이다. 그는 소크라테스가 이런 말을 한 적이 없다는 사실을 정밀하게 추적하면서 이 말이 과거 권위주의 정권의 억압적인 법 집행을 정당화하는 데 악용됐다고 비판했다.

그러나 그 다음이 문제였다. 그는 주장키를, “소크라테스가 독배를 마신 것은 법을 지키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을 지키기 위한 것이었다.”고 했다. 만일 소크라테스가 독배를 거부하고 해외로 도망갔다면 이는 자신의 철학을 전면적으로 부인하는 행동이 될 수밖에 없다. 강정인은 이를 근거로 소크라테스가 지키고자 한 것은 악법이 아니라 법보다 더 상위에 있는 진리였다는 식으로 주장했다. 이는 소크라테스가 친구이자 제자인 크리톤의 탈옥 권유를 좇을 수도 있었는데 그리하지 않았다는 것을 전제로 한 것이다.

그러나 이는 아무래도 지나쳤다. 객관적으로 볼 때 당시 소크라테스가 탈옥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불가능에 가까운 일을 것은 소크라테스는 법 위에 있는 진리를 지키기 위해 독배를 마셨다는 식으로 주장하는 것은 논리의 비약이다. 이는 복잡하게 해석할 일이 아니다. 비록 타락한 형태이기는 했으나 소크라테스도 자신에게 독배를 내린 아테네의 민주주의 체계를 수용한 것에 지나지 않았다. 오다카의 주장처럼 소크라테스 역시 비록 그같이 말하지는 않았으나 내심 ‘악법도 법이다.’라는 로마의 법언을 수용했다고 풀이하는 게 옳다.

『회상록』의 기록에 따르면 당시 소크라테스는 자신의 유무죄를 논하는 자리에서 “왜 새점을 치는 자들은 내버려 두고 나만 신을 모독했다고 하는 것인가?”라고 항변했다. 이어 30표의 근소한 차로 유죄가 결정된 후 형량을 논하는 자리에서는 더욱 거칠게 항변했다.

그를 비판한 사람들 입장에서 볼 때는 소크라테스 역시 여타 소피스트와 별반 다를 게 없는 일개 ‘철학자’에 지나지 않았다. 더구나 사형선고를 받고 감옥에 갇힌 상황에서 소크라테스가 ‘철학자’답게 죽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조용히 독배를 마시는 길밖에 없었다. 분노를 이기지 못해 독배를 내던지거나 할 경우 이는 치명타로 작용할 게 빤했다. 강요된 죽음을 순순히 받아들이면서 자신의 고고함을 드러내는 게 최상의 선택이었다. 실제로 그는 그같이 행동했다. 『소크라테스의 변명』에 나오는 자문자답 형식의 대화가 이를 뒷받침한다.

여기서 소크라테스는 ‘국법’이라는 가상의 화자를 등장시켜 과연 자신에게 사형을 내린 판결을 수용할 것인지 여부를 자문자답한 바 있다. 이에 따르면 개인에 의해 국법이 짓밟힐 경우 나라는 존속할 수 없다는 ‘국법’의 주장에 대해 그는 “국가는 공정하지 못한 선고를 내렸다.”고 항변했다. 이어 소크라테스 부모의 결혼을 규제하지 않았고, 이어 그 자식인 소크라테스를 국가에서 훈육했으니 소크라테스 역시 국가의 자녀에 해당한다는 ‘국법’의 주장에 대해 그는 이같이 대답했다.

“그렇다. 나라의 처벌을 받았을 때는 감금이든 처형이든 조용히 참고 따르지 않으면 안 된다.”

이를 통해 소크라테스 역시 비록 타락하기는 했으나 아테네의 민주주의 체제를 중시했음을 알 수 있다. 그런 그가 막다른 상황에 몰려 부득이 택할 수밖에 없었던 행보를 놓고 ‘법보다 상위에 있는 진리’ 운운하며 미화하는 것은 또 다른 논란을 일으킬 소지가 크다.

객관적으로 볼 때 당시 소크라테스는 ‘힘이 곧 정의다.’라고 생각하는 아테네 시민들의 상식을 정면으로 부인했다. 그의 이런 도발적인 행보는 시민들의 불쾌감만 조장할 뿐이었다. ‘불의를 당하는 게 불의를 저지르는 것보다 낫다.’는 말은 언급은 나름 이해할 수 있으나 당대의 정치가인 페리클레스를 두고 시민에게 아부만한 정치가일 뿐이라고 직격탄을 날린 것은 도가 지나쳤다. 페리클레스는 아테네 민주주의의 상징이나 다름없는 인물이었다. 이는 시민 대다수를 적으로 돌리는 짓에 가까웠다.

게다가 그는 자신만이 ‘진정한 정치적 기술’을 실천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일각에서 그의 죽음은 그가 법정에 서기 훨씬 이전부터 예견된 것이었다고 주장하는 이유다. 소크라테스의 죽음을 과도하게 미화하는 것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는 얘기다. 사권과 공권 내지 사익과 공익의 질과 양을 따져 합리적으로 결정하는 교량較量이 필요한 이유다. 객관적으로 볼 때 당시 소크라테스는 자신을 비판하는 자들의 잘못된 표결에 의해 자신이 억울하게 죽음을 당하게 됐다는 사실을 정확히 인식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이를 받아들여 독배를 들이킨 것은 도저히 어찌할 수 없는 부득이한 상황에 몰린 탓이다. 결코 법보다 위에 있는 진리를 지키기 위해 독배를 들이킨 게 아니라는 얘기다. 이같이 해석하는 것이 크세노폰이 『변명』 등에서 묘사해 놓은 소크라테스의 모습과 부합한다.

당대 최고의 현자인 소크라테스가 독배를 마신 것은 아테네 민주주의가 이미 타락할 대로 타락했다는 명백한 증거에 해당한다. 민주주의가 타락하면 이런 모습이 나타난다. 실제로 아테네는 이후 쇠락의 길로 치달았다. 최상의 정체로 간주된 민주주의가 타락하면 군주제나 공화제의 타락한 모습보다 더 무서운 모습을 띨 수 있다는 사실을 명심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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틀리기 쉬운 맞춤법

1. 왠지(0) 웬지(×) 2. 설거지(0) 설거지(×)
3. 설렘 (0) 설레임 (×) 4. 바람(0) 바램(×)
5. 며칠 (0) 몇일 (×) 6.짜깁기(0) 짜깁기(×) ...
7. 돼라 (0) 되라(×) 8. 웃어른(0) 웃어른(×)
9. 오랜만에(0) 오랜만에(×) 10. 어떡해(0) 어떻해(×)

 

 

만병통치약님의 기막힌 창작 댓글!! 

 

더운 날만 짜집기라도 한것처럼 몇일 더웠습니다. 웬지 비가 올것갔더니 설겆이 하다 보니 정말로 오랫만에 비가 오네요. 비가 오니 좋아서 '계속 이렇게 좋은 날이 되라'라는 마음이 드네요. 가을은 정말 설레임입니다. 이런 바램은 모두 같겟죠? 아니라고요? 윗어른하네 그러면 어떻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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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명: 숨 막혀 죽겠거든, 철학하라

부 제: 인생의 힘든 고비에서 나를 잡아준 책들

ISBN : 978-89-7418-580-0

978–89–7418–579–4(세트)

부가기호: 04100

가 격: 15,000원

저 자: 홍정

발행일: 2014년 10월 30일

페이지: 346페이지

제본형태: 반양장본

분 야: 국내도서 > 인문학 > 교양 인문학

국내도서 > 인문학 > 인문 에세이

국내도서 > 인문학 > 철학 일반 > 교양 철학

국내도서 > 인문학 > 책읽기/글쓰기 > 책읽기

국내도서 > 인문학 > 책읽기/글쓰기 > 글쓰기

 

 

 

[저자약력]

 

지은이 홍정

저자는 1959년 서울에서 태어났으며 삶을 온전하게 낙서(樂書)의 힘으로 살아왔다. 저자는 살기 위해 사유하는 생활 인문인이며 낙서가(樂書家)이다. 한양대학교 신문방송학과를 졸업했고, 대홍기획, 맥켄에릭슨 등 광고대행사에서 AE와 카피라이터로 일했다. 저자는 40대 초반까지 굴지의 광고회사에 다니면서 안온하게 살았다. 그러나 아버지의 사고사와 동생의 자살로 삶이 절망의 나락으로 떨어졌다. 세상에서 도망쳐 살기위해 축사(畜舍)에 기어들어 갔다. 하늘에 구멍이 뚫린 듯 억수 같은 비가 퍼붓고 축사에 물이 쏟아져 들어왔다. 물이 턱 밑까지 차올라 이제 죽었다 하고 체념하는 순간 물이 더 이상 차오르지 않았다. 구사일생으로 살아났다. 숨 막히는 고통스러운 삶에서 벗어나기 위해 찾아간 축사에서 수마(水魔)로 인해 숨이 막히는 죽음의 상황에 처했다. 저자는 어떻게 고통을 견디고 행복을 일구어낼 것인가를 고민하다가 ‘인문낙서(人文樂書) 시리즈’ 『숨 막혀 죽겠거든, 철학하라』, 『어느 낙서가樂書家의 인문학 공부』, 『결혼에 관한 문・사·철 스토리텔링』을 저술하게 되었다. 이 시리즈를 통해 저자는 독자에게 낙서를 하며 위안을 얻는 법을 알려주고자 한다. 현재 ‘인문낙서(人文樂書) 시리즈’ 4권 저술에 매진하고 있다. 저서로 『싱글라리티』(2012, 인간사랑)가 있다.

 

e-mail: bipanza@naver.com

 

차례

 

 

프롤로그・8

 

제1부 삶이 숨 막혀 봐야 철학이 보인다・19

 

제1장 내 운명(運命)은 정해진 것일까?・21

아버지와 동생의 죽음・21

축사(畜舍) 속으로・34 

“주어진 것을 선용(善用)할지니”・46 

 

제2장 철학, 그것은 삶의 활력・71

철학과의 만남・71 

니체의 ‘운명애’와의 운명적 만남・74 

자기 돌봄에 철저했던 니체의 삶에서 받은 위안・77

매순간 긍정하라는 영원회귀를 가르친 철학자 니체・89 

‘나’란 화두는 내가 죽을 때까지 놓지 않고 끈질기게 물어야 할 근원적 물음이다・108 

 

 

제3장 죽음은 나와 별개의 문제인가?・135

죽음의 공포・135  

자기를 회복할 것을 주문한 키르케고르・141 

죽음의 문제와 대면한 철학자들로부터 받은 위안・150 

 

 

 

제2부 철학, 내 삶을 드높이다・163

 

제4장 나 또한 세상 밖에 내던져진 이방인 아닌가?・165

축사(畜舍)에서 세상 밖으로・165  

유대인 공동체에서 쫓겨난 마라노였던 이방인 스피노자・167  

조국 프랑스의 안온한 삶을 버리고 유럽의 변방을 떠돈 근대인 데카르트・172  

성적 소수자였기에 더욱 자신에게 엄격했던 이방인 푸코・177 

 

제5장 결핍이 없는 삶은 행복할까?・185

살아온 삶 자체를 사랑하며 서로를 위로하며 살려고 노력한다・185 

삶에는 항상 아쉬움이 남는다는데・188  

 

 

제6장 앎을 위해 스스로 고행을 자처한 철학자들로부터 받은 위안・227

엄살 피우지 말고 고행하라・227

‘너 자신을 알라’는 자기 자신에 충실해서 살라는 준엄한 명령이다・231 

내면을 가꾸어 본래의 자기를 회복하여 살 것을 주문한 몽테뉴・251 

생물학적 삶 대신 상징적 죽음을 택한 소크라테스・256 

 

 

 

제3부 삶이 흔들릴 때 잠자는 인문 본능을 깨워 살아라・271

 

‘불쾌감으로부터의 해방’이 쾌락이다・273 

아메리카노와 행복・298  

시장에서 자위행위를 하면서 철학한 반(反)철학자 디오게네스・307  

호메로스 『일리아스』, 세네카 『인생론』, 몽테뉴 『수상록』과 분노에 대하여・313| 

 

 

에필로그・339 

참고문헌・342 

더 읽어볼만한 책・346 

 

 

이책은:

 

저자는 40대 초반까지 굴지의 광고회사에 다니면서 안온하게 살았다. 그러나 아버지의 사고사와

동생의 자살로 삶이 절망의 나락으로 떨어졌다. 세상에서 도망쳐 살기 위해 축사(畜舍)로 기어들어 가

야만 했다. 하늘에 구멍이 뚫린 듯 억수 같은 비가 퍼붓고 축사에 물이 쏟아져 들어왔다. 물이 턱 밑

까지 차올라 이제 죽었다 하고 체념하는 순간 물이 더 이상 차오로지 않았다. 구사일생으로 살아났다.

숨 막히는 고통스러운 삶에서 벗어나기 위해 찾아간 축사에서 수마(水魔)로 인해 숨이 막히는 죽음의

상황에 처했다. 저자는 어떻게 고통을 견디고 행복을 일굴 것인가 고민하다가 인문낙서(人文樂書) ① 『숨 막혀 죽겠거든, 철학하라』 : 숨 쉴 수 없을 만큼 삶에 절망했을 때 철학이 준 위안을 썼다.

 

이 책에서 저자는 인문낙서를 하면서 위안을 얻는 법을 알려주려고 한다.

삶의 곤경은 예고 없이 갑자기 들이닥친다. 누구든 난관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이때 삶은 비틀거리

휘청거린다. 상실감과 함께 사는 것 자체가 힘겨워진다. 무기력해진다. 삶은 그야말로 절체절명의

위기에 빠진다. 그러나 삶 자체를 포기할 수는 없다. 돌파구가 절실하다. 질곡에 꽁꽁 묶여 잠긴 삶을

열어야 한다. 잃어버린 열쇠를 찾아야 한다. 철학이 바로 그 열쇠다. 삶이 역경에 처해 고꾸라질수록 철학의 힘이 필요하다. 숨조차 쉴 수 없을 만큼 삶에 절망했을 때 철학은 저자를 보듬어 안고

위로했다. 삶이 숨 막혀 죽겠거든, 철학하라!

 

세상으로부터 가해지는 절망에 빠진 나를 구하기 위해 찾아간 축사에서 나는 도리어 죽을 운명에 처했었다. 그때 내가 읽고 있던 책이 키르케고르의 『죽음에 이르는 병』이었다. 체념하지 말고 의지를 다해 나를 회복하여 살라는 것이 키르케고르의 가르침이다. 수마(水魔)와 생사를 건 싸움에서 내가 죽지 않은 운명을 타고난 것은 내 운명을 부정하며 체념하는 숙명론에 빠져서 살지 말고 오히려 자기의 몫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여 삶의 의지를 고양하라는 의미로 내게 다가왔다. 나는 오랫동안 멍하니 가늘게 뿌리는 비를 맞으며 하늘을 바라보고 서 있었다. 이렇게 나는 실존적 결단의 순간과 마주서게 되었다. (본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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