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명: 미디어와 공론정치

부 제: 정치평론이란 무엇인가?

저 자: 한국정치평론학회

가 격: 20,000원

발행일: 2011년 9월 10일

바코드: 978-89-7418-039-3



CONTENTS


서문 | 문창극(중앙일보) 7


[1부]정치평론과 이론


01.공적 영역으로서의 저널리즘에 관한 사유 | 임상원(고려대) 13

02.말과 정치 | 김홍우(서울대) 23

03.정치평론에서의 lexis와 logos | 이동수(경희대) 35

04.정치평론과 소통 : 쾨슬러의 민감한 판막 | 김대영(동북아역사재단)65


[2부]정치평론과 한국


05.정치평론가 이율곡 | 최진홍(서울산업대) 101

06.근대적 공론장의 등장과 정치권력의 변화 : 《독립신문》 사설을

중심으로 | 장명학(경희대) 135

07.정당 대변인의 󰡐말󰡑과 한국 정치의 관습 | 이현휘(성신여대) 173

08.촛불집회와 한국 사회의 공론장 | 홍성구(강원대) 215


[3부] 정치평론과 세계


09.정파의 대립과 법치 : 데이비드 흄의 논의를 중심으로

이병택(서울대) 261

10.후쿠자와 유키치의 정치평론 : 《時事新報》 창간호의 평론을

중심으로 | 다카시로 코이치(아주대) 287

11.21세기의 한반도와 미국 외교 | 권용립(경성대) 317

12.변화보다는 답습을 택한 오바마의 대외정책

마이클 H. 헌트(노스캐롤라이나대) 355



저자 소개



임상원

서울대학교 철학과 졸업. 미국 UCLA 언론학 석사, 미국 미주리대학 언론학 박사. 고려대 정경대 학장, 언론대학원 초대원장, 고려대 신문방송학과 명예교수(현). 주요 역서 및 논문으로는 『아레오파지티카』, 『커뮤니케이션 모델』, 󰡒자유언론과 인간의 존엄성󰡓, 󰡒갈등과 전환기의 한국 저널리즘󰡓, 󰡒자유주의와 언론󰡓 등이 있다.


김홍우

서울대학교 정치학과를 졸업하고 조지아대학에서 정치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서울대학교 정치학과 명예교수, 경희대학교 인류사회재건연구원 명예원장, 대한민국학술원 회원으로 활동한다. 주요 저서로는 『현상학과 정치철학』, 『한국 정치의 현상학적 이해』 등이 있다.


이동수

서울대학교 정치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취득한 후 미국 밴더빌트대학교에서 정치학 박사학위를 취득하였다. 현재 경희대 공공대학원 원장으로 재직 중이며, KBS 객원해설위원, 행정안전부 지방행정연수원 겸임교수, 한국정치사상학회 연구이사, 한국정치평론학회 총무이사, 경희대 NGO대학원 원장 등을 역임하였다. 대표 저작으로는 『미래와의 소통』, 『탈20세기 대화록』, 󰡒지구화 시대 시민과 시민권󰡓, 󰡒소통정치와 미디어󰡓 등이 있다.


김대영

서울대학교 정치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 정치학 석사와 박사를 받았다. 현재 민주사회정책연구원 연구교수, 동북아역사재단 홍보교육실장으로 재직 중이다.


최진홍

고려대학교 정치학과를 졸업하고 서울대 정치학과에서 석사와 박사학위를 받았다. 저서로는 『법과 소통의 정치』가 있으며, 현재 서울대 한국정치연구소 선임연구원으로 있다.


장명학

서울대학교 철학과와 동 대학원 정치학과를 졸업했다. 독일 베를린자유대학교에서 정치학 박사학위를 취득하고 현재 경희대학교 NGO국제연구소 연구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학문적 주요 관심분야는 서양정치사상, NGO와 글로벌 거버넌스 등이다. 최근 논문으로는 󰡒지구화 시대 한국의 공화민주주의󰡓, 󰡒해방정국과 민주공화주의의 분열󰡓, 󰡒제국과 영방의 긴장 속의 신성로마제국 정부󰡓 등이 있다.


이현휘

고려대학교 정치학 박사. 현 성신여대 강사. 주요 역서 및 논문으로는 『파멸의 묵시록 : 과학적 패러다임과 일상의 사유양식』, 󰡒소명으로서의 전쟁 : 미국 대외정책 정신과 신의 눈물󰡓, 󰡒미국 대외정책의 관습과 21세기 미중관계의 전망󰡓, 󰡒화이트헤드와 근대 세계관의 철학적 성찰󰡓 등이 있다.


홍성구

강원대학교 행정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교 신문방송학과 석사와 고려대학교 신문방송학과 박사를 취득했다. 현재 강원대학교 신문방송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며 한국방송통신심의위원회 보도 교양 특위 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주요 논문으로는 󰡒밀턴의 아레오파지티카에 나타난 공화주의와 언론자유󰡓, 󰡒숙의민주주의의 이론적 보완 : 공화주의적 대안 모색을 중심으로󰡓 등이 있다.


이병택

서울대학교 정치학과를 졸업하고 럿거스대학에서 정치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서울대학교 정치외교학과 BK 연구원으로 있다. 주요 논문으로는 󰡒흄의 법사상󰡓, 󰡒정파의 대립과 법치󰡓, 󰡒고대 아테네의 발전과 공동성(the common)의 변천-『아테네 헌정』을 중심으로󰡓 등이 있다.


다카시로 코이치

일본 주오(中央)대학 경제학과와 서울대학교 정치학과를 졸업. 서울대학교 대학원 정치학과에서 정치학석사와 박사학위를 받음. 아주대학교 국제학부 조교수를 역임한 후 현재는 일본에서 활동 중이다. 저서로는 일본의 이중권력, 쇼군과 천황이 있으며 정치평론가 후쿠자와 유키치 관련 논문들이 있다.


권용립

서울대학교 외교학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석사와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경성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저서로는 『미국의 정치 문명』과 『미국 외교의 역사』가 있다.


마이클 H. 헌트

예일대학교 역사학 박사. 현 노스캐롤라이나대학교 역사학과 󰡐에버렛 에머슨󰡑 명예교수. 주요 저서로는 『베트남 전쟁 독본』(A Vietnam War Reader : A Documentary History from American and Vietnamese Perspectives, 2010), 『미국의 패권』(The American Ascendancy : How the United States Gained and Wield Global Domi-nance, 2007), 『린든 존슨의 전쟁』(Lyndon Johnson's War : America's Cold War Crusade in Vietnam, 1945-1968, 1996), 『이데올로기와 미국 외교』(Ideology and U.S.Foreign Policy, 1987, 2009 재판.권용립과 이현휘가 2007년 산지니출판사에서 초판 번역 출간)가 있다. 정치평론 웹사이트, 󰡒워싱턴과 세계에 관해서󰡓(On Washington and the World) 운영. http://www.unc.edu/~mhhunt/washworld.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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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자론 


신동준 주해


차례


역자서문


제1부 장주론



제1편 생장론

제2편 사상론

제1장 장자사상의 특징

제2장 장자사상의 구성

제1절 자연주의

제2절 문예주의

제3절 자유주의

제3장 장자사상의 전개





제2부 {장자}론



제1편 편제론

제2편 주석론

1. 내편

제1장 소요유:逍遙遊

제2장 제물론:齊物論

제3장 양생주:養生主

제4장 인간세:人間世

제5장 덕충부:德充符

제6장 대종사:大宗師

제7장 응제왕:應帝王


2. 외편

제1장 변무:騈拇

제2장 마제:馬蹄

제3장 거협:胠篋

제4장 재유:在宥

제5장 천지:天地

제6장 천도:天道

제7장 천운:天運

제8장 각의:刻意

제9장 선성:繕性

제10장 추수:秋水

제11장 지락:至樂

제12장 달생:達生

제13장 산목:山木

제14장 전자방:田子方

제15장 지북유:知北遊


3. 잡편

제1장 경상초:庚桑楚

제2장 서무귀:徐无鬼

제3장 칙양:則陽

제4장 외물:外物

제5장 우언:寓言

제6장 양왕:讓王

제7장 도척:盜跖

제8장 설검:說劍

제9장 어부:漁父

제10장 열어구:列御寇

제11장 천하:天下


부록 1: 왕안석의 [장주론]

부록 2: 장자연표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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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화제국 황제들

 

- 장개석에서 등소평까지 -



신동준 저



목차


저자서문

들어가는 글



제1장 군 벌 ----- 중화제국 건설에 도전한 무장단

제2장 장개석 ----- 중화제국 건설에 실패한 풍운아

제3장 모택동 ----- 중화제국의 초석을 놓은 혁명아

제4장 주은래 ----- 중화제국의 동요를 막은 실무가

제5장 등소평 ----- 중화제국의 변신을 꾀한 부도옹


부록1 등소평의 후예들

부록2 중국현대사 연표

참고문헌





저자서문






미국의 저명한 미래학자 존 나이스비트는 2010년 초에 펴낸 {차이나 메가트렌즈}에서 미국과 중국을 각각 ‘허우적대는 독수리’와 ‘일취월장하는 팬더’에 비유하며 새로운 세계의 출현을 예고했다. 한때 창공을 유유히 날던 독수리가 이제는 고도를 되찾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는데 반해 예전엔 볼품없던 팬더가 무예 훈련으로 몸을 튼튼히 하는 등 날로 발전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미 1982년에 베스트셀러 {메가트렌즈}로 낙양의 지가를 올린 바 있는 그는 {차이나 메가트렌즈}에서 향후의 세계를 이같이 전망했다.

“미국이 세계 위상 회복에 애쓰는 동안 중국은 글로벌 시장에서 이미 대등한 경쟁자로 부상한 데 이어 장차 서구 민주주의에 맞서는 대안 모델로 경쟁할 것이다.”

이는 소련 및 동구가 무너진 직후 프랜시스 후쿠야마가 {역사의 종언}을 통해 ‘서구식 민주주의’야말로 인류역사에서 정치적 진화의 종착지에 해당한다고 단언한 것과 대비된다. 후쿠야마의 이런 주장은 당시 서구 지식인들의 일반적인 생각을 반영한 것이기도 했다. 실제로 미국을 비롯한 서구는 그간 틈만 나면 마치 교사가 학생을 나무라듯 중국을 향해 속히 ‘서구식 민주주의’를 도입할 것을 촉구했다. 이들이 1989년의 천안문사태 때 성급하게도 중국의 일당독재 체제가 이내 붕괴를 향한 초읽기에 들어갔다고 판단한 이유다.

그러나 이들의 예견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중국은 오히려 초고속 성장을 거듭하며 GDP에서 세계 제2의 경제대국 일본을 제압한 끝에 마침내 2010년에 들어와서는 미국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G2’의 일원으로 우뚝 섰다. 이는 중국이 ‘G2’라는 신조어에 쑥스러워하며 극구 사양하는데도 미국의 오바마 정부가 억지로 갖다 붙여준 영칭:英稱이다. 전국시대 말기 서쪽의 강대국 진나라가 서제:西帝를 칭하면서 동쪽의 강대국 제나라에 동제:東帝를 칭할 것을 권한 전례를 연상시키는 대목이다.

서구 열강에 100년 가까이 수모를 겪고 이후 공산체제 하에서 후진적인 빈곤경제에 허덕이던 나라가 어떻게 30년 만에 ‘G2’의 일원이 될 수 있었던 것일까? 서방이 한사코 ‘동양적 전제정부’로 깎아내린 체제가 어떻게 ‘서구식 민주주의’의 상징인 미국과 비교될 수 있는 것일까?

나이스비트는 ‘서구식 민주주의’에 대비되는 ‘중국식 민주주의’에서 그 해답을 찾았다. 그는 동서의 민주주의 모델을 각각 ‘수평적 민주주의’와 ‘수직적 민주주의’로 명명했다. ‘수직적 민주주의’는 정부의 하향식 지도와 인민의 상향식 참여가 상호작용하는 중국 특유의 정치체제를 말한다. 정부는 정책과 우선순위를 정하고 그 속에서 인민은 각자 자신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함으로써 전체적으로 국가 및 사회에 기여한다는 게 기본 골자다.

중국의 수뇌부는 등소평의 개혁개방 이후 줄곧 자본주의의 기본 특징인 시장경제는 적극 수용하면서도 ‘서구식 민주주의’에 대해서만큼은 강한 거부감을 나타냈다. 중국 특유의 ‘사회주의 시장경제’가 등장한 이유다. 이는 기본적으로 중국에는 중국 전래의 역사문화 전통에 부합하는 통치이념 및 체제가 별개로 존재한다는 확신에 따른 것이었다. 지난 2008년 1월 원자바오 총리가 링컨의 ‘게티즈버그 연설’을 살짝 돌려 인용한 사실이 이를 뒷받침한다.

“인민의, 인민을 위한, 인민에 책임지는 정부는 결코 지상에서 사라지지 않을 것입니다.”

원문의 ‘인민에 의한’이 ‘인민에 책임지는’으로 바뀐 것이다. ‘서구식 민주주의’는 투표행위로 표출되는 ‘인민에 의한 정부’가 기본 요소이나 중국의 민주주의는 위정자의 무한책임에 기초한 ‘인민에 책임지는 정부’가 그 요체라고 주장한 셈이다.

중국 수뇌부의 이런 생각은 동양 전래의 소위 ‘위국위민:爲國爲民’ 정신에서 비롯된 것이다. 과연 유권자의 투표에 기초한 정부 구성을 강조하는 서구의 ‘선거민주주의:選擧民主主義’와 위정자의 ‘위국위민’ 정신에 기초한 중국의 ‘책임민주주의:責任民主主義’ 중 어느 것이 나은 것일까?

나이스비트는 구체적인 답을 유보한 채 상당기간 동안 미국과 중국이 보다 나은 체제 및 이념을 보여주기 위해 치열한 경쟁을 전개할 것으로 내다봤다. 사실 동서양은 수천 년 간에 걸쳐 상이한 역사문화 전통을 쌓아온 만큼 어느 한 쪽의 제도가 다른 쪽보다 낫다고 보는 것 자체가 무리다.

우선 ‘민주’에 대한 인식 자체가 다르다. 서구는 ‘자유민주주의’와 ‘인민민주주의’를 막론하고 개인의 자유 및 권리에서 출발하고 있다. 국가나 사회보다 개인의 권익을 중시하는 것이다. 그러나 중국은 개인보다 국가 공동체 전체의 이익을 우선시한다. 사실 세계 인구의 4분의 1을 점하고 있는 중국이 서구처럼 개개인의 자유와 권리를 국익보다 앞세울 경우 나라 자체를 유지키가 어렵다. 이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국익우선의 불문율은 진시황이 사상 처음으로 천하를 통일한 후 2천여 년 넘게 면면히 이어져온 기본상식이다. ‘중국식 민주주의’가 ‘서구식 민주주의’와 차이를 나타낼 수밖에 없는 근본 배경이 여기에 있다.

‘서구식 민주주의’와 ‘중국식 민주주의’는 각각 일장일단이 있는 까닭에 획일적으로 어느 것이 낫다고 단정할 수 없다. 이는 양방과 한방 중 어느 하나만이 질병의 치료에 보다 나은 효험이 있다고 획일적으로 말할 수 없는 것과 같다. 양방은 외과, 한방은 내과에 강점을 지니고 있다. 환자의 상황에 따라 양방과 한방을 혼용해 사용하는 게 가장 효과적이라는 건 이제 상식에 속한다.

나이스비트도 마찬가지 입장이다. 서양이 ‘서구식 민주주의’ 시각에서 중국의 ‘비민주성’을 거론하는 것은 출발 자체가 잘못됐다고 지적하고 있는 게 그 증거다. 그는 미국이 200여 년 전에 그랬듯이 중국 역시 현재 전래의 역사문화 전통에 어울리는 새로운 민주주의 모델을 만들어가는 중이라고 본다. 서구식 잣대를 들이댄 성급한 판단을 경계한 것이다. 그가 서구의 다당제와 달리 일당독재 형식을 띠고 있는 중국의 공산당에 대해서도 긍정적인 평가를 내리는 이유다.

물론 그가 독재를 지지하는 건 아니다. 그는 중국의 공산당 수뇌부가 강고한 공산주의 이념 노선을 글로벌 스탠더드에 맞는 법과 자율로 유연하게 바꿔나가고 있는 점에 주목하고 있다. ‘중국식 민주주의’가 자리를 잡으면 정책의 결정 및 집행 과정에서도 ‘서구식 민주주의’ 못지않게 투명성을 높일 수 있다고 보고 있는 것이다. 그가 {차이나 메가트렌즈}에서 장차 중국 전래의 역사문화 전통에 기초한 ‘수직적 민주주의’가 서구의 역사문화 전통에 기초한 ‘수평적 민주주의’와 맞서 선의의 경쟁을 전개할 것으로 전망하는 이유다.

그의 이런 지적은 매양 서구의 잣대를 전가의 보도처럼 즐겨 들이대는 한국 학계의 잘못된 풍조에 대한 일대 경고에 해당한다. 조선조 이래 주변 외세에 주눅이 든 나머지 늘 남의 잣대로 자신을 평가하는 그릇된 풍조는 별반 나아진 게 없다. 21세기 현재에 이르기까지 민족 스스로의 지혜로 통합하지 못하고 아직도 분단국으로 남아 있는 현실이 그 증거다. 그런 점에서 한국 전래의 역사문화 전통에 기초한 통치이념 및 제도의 수립은 매우 시급한 과제다. 통일시대가 눈앞에 박두하고 있는 저간의 상황을 감안할 때 더욱 그렇다.

원래 자국의 역사문화 전통에 뿌리를 두지 못한 모든 국가발전 전략은 실패하기 마련이다. 치열한 국제경쟁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자국의 역사문화 전통에 뿌리를 둔 독자적인 국가발전 전략을 만들어 나갈 필요가 있다. 조선조도 18세기에 북학파들이 부국강병을 위한 개국통상 방략을 제시한 바 있다. 그러나 당시 위정자들은 이들의 주장에 콧방귀를 뀌었다. 그 결과는 나라의 패망과 백성들의 식민지 노예화로 나타났다. 나라의 발전전략과 관련해 스스로 창조적인 모델을 찾아내지 않으면 영원히 선진국의 뒤만 좇아가는 2-3류 국가의 신세를 면할 길이 없는 이유다.

미구에 닥칠 통일시대에 대비키 위해서라도 우선 이웃한 중국을 소상히 알 필요가 있는 건 말할 것도 없다. 현재 중국 수뇌부가 21세기 동북아시대를 자국을 중심으로 한 소위 ‘신중화질서’ 체제로 만들기 위해 분주히 움직이고 있다는 게 많은 전문가들의 하나같은 지적이다. 나이스비트가 2010년 벽두에 ‘수직적 민주주의’ 운운하고 나선 것도 중국 수뇌부와 상당 수준 교감을 나눈 결과로 보는 게 옳다.

중국은 신해혁명을 계기로 진시황 이래 2천여 년 간 지속된 제왕정을 무너뜨리고 서구식 공화정을 시작했지만 40년 가까이 혼란의 연속이었다. 소위 ‘중화민국 시대’에 전개된 군벌대립과 국공내전이 그 증거다. 중화인민공화국이 들어선 이후에도 별반 나아진 게 없었다. 대약진운동과 문화대혁명이 그 실례다.

중국이 면모일신하게 된 결정적 계기는 말할 것도 없이 등소평의 개혁개방에 있다. {새로운 황제들}을 쓴 솔즈베리의 시각에서 볼 때 등소평은 모택동에 이은 ‘중화제국’의 제2대 황제에 해당하나 그 내막을 보면 사실상 새로운 ‘창업주’에 해당한다. 그의 뒤를 이은 강택민과 호금도 등이 하나같이 등소평 노선을 좇고 있는 게 이를 뒷받침한다. 2010년에 들어와 중국이 ‘G2’의 일원으로 우뚝 설 수 있게 된 것도 바로 등소평의 개혁개방 덕분으로 볼 수 있다.

로마가 하루아침에 이뤄지지 않았듯이 모든 현상은 오랜 시간을 두고 그 원인이 누적된 결과로 드러나는 것이다. 중국이 21세기 ‘창조국가’를 꿈꾸게 된 과정도 마찬가지다. 본서가 ‘중화민국 시대’ 이래 21세기 ‘G2’ 시기에 이르기까지 중국을 이끌어온 개개 인물의 면면을 면밀히 추적한 이유다. 장개석과 모택동, 주은래, 등소평 등의 생장과정과 리더십을 추적한 본서는 {인물로 보는 중국근대사}의 자매편에 해당한다. 본서가 21세기 동북아시대를 우리의 시대로 만들기 위해 우리 나름의 해법 찾기에 골몰하는 모든 사람에게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2011년 늦여름 학오재:學吾齋에서 저자 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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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Politics of Subversion: A Manifesto for the Twenty-First Century by Antonio Negri (Paperback - Jul 1,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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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정판 서문


9-1 첫 영문판 이후, 내가 『Fine secolo : Un manifesto per l'operaio sociale』라는 제목으로 이탈리아어 판『전복의 정치학』을 출판했을 때, 「선언」(Il Manifesto)에 실린 리뷰에는 ‘투쟁을 향한 이름 없는 사회적 범주들’이라는 표제가 달렸다. 그것은 1989년 초반의 일이었다. 「선언」(이 신문의 마스터헤드(masthead)는 그것이 ‘공산주의 신문’임을 주장하였고, 실제로 「선언」은 공산주의 좌파 운동과 밀접히 연결되어 있다)은 1968년부터 20년간 발생한 노동계급의 구성적 변화들을 이야기할 엄두를 내지 못했다. 그때까지는 이 새로운 현실에 대해 논의함으로써 오랜 활동가들의 귀를 거슬리게 할 수가 없었다. 「선언」의 논평자조차도 완전히 설득되지 않았다. ‘사회적 노동자(socialized worker)’는 누구의 아이도 아니었고, 그/그녀의 이름으로 인정되는 것도 아니었다. 무지, 윤리적·정치적인 기회주의, 이론적인 독단주의, 피상적인 분석, 노동조합에서의 조합주의는 현재(present)를 분석하는 것을 불가능하게 만드는 현실성(reality)과 결합하였다. 거기에서는 사회적 노동자의 형성을 향한 그것의 거부할 수 없는 경향과 함께 오늘날의 상황인식에 실패하였다. 나는 이미 노동계급의 구성이 변화하고 있고, ‘대중 노동자’의 시기가 끝나가며, 점차 무형적이고 협력적인 사회적 노동력이 서서히 형성되었다는 것을 20년 전에 이해하였다. 이 때문에 나는 공산당의 기회주의적이고 독단적인 지도자들과 10년간 나를 감옥에 처넣으려는 부르주아 판사들에 의해 멸시와 미움을 받았다. 사회주의 관료들은 다중(multitude) 속에 살며, 민중들을 선동‧복무‧연구하는 누군가를 증오한다. 그리고 이러한 증오감 때문에, 그들은 진리를 파괴하기 위해 기존 체제의 권력을 부당하게 이용할 수 있다. 그러나 속상한 것은 이것이 아니라, 오늘날 (극적으로 세계 질서가 달라진) 정세 변화의 증거조차 아직까지 노동운동 활동가들의 머릿속에 입력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2003년 파리에서 개최된 운동을 위한 유럽 포럼 기간에, 나는 영국의 트로츠키주의자들과 토론하였다. 영국의 트로츠키주의자들은 마치 19세기에 살고 있는 것처럼 노동계급에 대해 말하는 사람들이고, 또한 마치 20세기가 전혀 존재하지 않는 것인 양 혁명에 대해 이야기하는 사람들이다. 『자본론』의 매 페이지마다, 맑스는 모든 발전 법칙과 계급투쟁에는 경향성(tendential)이 있다고 말하였다. 이 문제에 있어 맑스의 주장은 어느 정도 지루하게 느껴질 정도다: 맑스는 그의 동시대인들(경제학자들과 정치인들)을 완전히 바보라고 여긴 것 같다. 그리고 맑스는 항상 생산하는 새로운 플레이어들(players)이 존재하는 현재 그리고 예속(隸屬) 방법의 지속적인 변형과 적응으로서 자본주의의 발전을 그들이 이해하지 못할 것이라고 간주한 것 같다. 전통적인 노동 운동 내에서는 아직 아무도 맑스의 주장을 들으려 하지 않는다. 우리는 오늘날 맑스의 독단적인 추종자들에 대해 무엇을 말할 수 있을까? 맑스를 맹종하는 아류들에 대해 무엇을 덧붙일 수 있을까? 그것은 점차 귀머거리의 대화가 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경향들을 연구하는 방법을 실현하고 있는 중요한 소수집단이 있다. 그리고 1970·80년대에 논의된 이러한 방법(게다가 진정한 맑스주의자(genuinely Marxian)의 방법)은 점차 확립되고 있다. 이러한 방법으로 무장하고, 노동의 사회적 변형을 보지 못하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리고 이러한 방법으로 무장한 소수집단이 사회적 노동자를 향하는 정세의 중요성을 이해하지 못했다고 보는 것도 불가능하다. 더 많은 착취(exploitation)는 더욱 더 많은 착취를 의미하지만, (왜냐하면 정신적 노동과 사회적 협력을 육체적 노동에 덧붙일 수 있기 때문이다) 동시에 거대한 혁명의 기회이기도 하다.


10-1 나는 이 서문을 쓰기 위해 『전복의 정치학』을 다시 읽었다. (나는 부득이한 경우를 제외하고, 이미 출판된 책을 좀처럼 다시 읽지 않는다) 『전복의 정치학』은 훌륭한 책이다. 사회적 노동자라는 주제는 경험적인 연구에서 개발되었다. 1984·85년에 나는 결코 이데올로기적이지 않았다. 5년간의 감옥생활에 뒤이은, 나의 14년간의 망명생활의 시작은 옳았다: 그런 상황들은 누구에게도 꿈을 허락하지 않는다. 내가 1970년대와 1980년대 초반에 목격했던 빠른 확산들, 즉 새로운 무형적이고, 컴퓨터에 기초하며, 자동적이고 서비스적인 생산 과정들에 대한 나의 경험적인 조사로부터 노동과 착취 유형에 관련된 사회적 노동자가 등장하였다. 『전복의 정치학』은 ‘테일러주의(Taylorite) 노동자’에서 사회적 노동자(나중에 ‘포드주의’ 노동자 그리고 ‘포스트-포드주의’ 노동자로 불리게 되었다)로 이행하는 시대구분에 대해서도 전적으로 옳았다. 상대적 잉여가치의 수탈에서 가치의 수탈 그리고/또는(and/or) 사회적 노동의 협력적인 기능들로의 이행에 뒤따른 수탈 형태들에 관한 이 장들은 현재의 상황을 분석하기 위한 패러다임으로서 여전히 유효하다. 마지막으로, (『전복의 정치학』에서) 사회적 노동자는 생태학적 기계(ecological machine)의 일부다. 그 결과 환경 전체가 수탈 과정 속에 포함된다. 이 패시지(passage)들의 정확하고 비범한 이론적 의의를 성찰하자면, 나는 믿기 힘든 1960·70년대 계급투쟁에서의 개입방식에 큰 감동을 받았다. 이 때 개입방식이란, 나와 내 동지들이 우리의 경험적 지식을 가지고 그러한 진보를 가능하게 만들려는 방식을 말한다.


11-1 제5장 ‘사회적 노동자의 세계 경제’는 실제적으로 중요하다(요즘 5장을 다시 읽고 있다). 20년 후, 나는 세계 곳곳에 50만부가 팔린 『제국(Empire)(마이클 하트(Michael Hardt)와 함께)』을 출판했다. 혹자는 왜 『제국』과 비슷한 내용을 다루었던 『전복의 정치학』이 고작 1,000부 가량만 팔렸는지 궁금해 한다. 이것은 그 당시 내 출판인들에 대한 동정이었다. 그러나 이들은 예나 지금이나 내 의견에 동의하며, 오늘날에도 여전히 내 출판인들로 남아 있다. 우리는 불운 또는 직무유기(dereliction) 때문에, 거대한 기회를 이용하는데 실패했다.


11-2 내가『전복의 정치학』과 『제국』(『제국』에 뒤이은 『다중(Multitude)』이라는 결과) 사이의 관계를 검토하기 시작했을 때, 나는 그것의 결론을 통해 다음과 같이 논의하고자 하였다. 내가 말했듯이, 『전복의 정치학』 5장에는 많은 유사점들이 있다. -노동의 세계화와 사회 통제를 향한 필연적인 동향(trend)은 이미 5장에서 정의되었다- 그러나 또한 『전복의 정치학』 5장에는 어떻게 『제국』과 다르게 이해하느냐의 문제도 있다. 이것은 『제국』의 출처와 『전복의 정치학』이 쓰인 과정을 밝히는데 유용할 수 있다. 지금부터 이러한 점들을 아래와 같이 요약할 수 있다.


(a) 『제국』의 철학적 틀은 『전복의 정치학』의 철학적 틀과 확실히 다르다. 1985·86년에 쓰인 『전복의 정치학』에는 이탈리아 노동자주의(workerism)의 전통이 아직까지 많이 남아 있지만, 푸코(Foucault)와 들뢰즈(Deleuze)의 영향력은 거의 없었다. 사회적 노동자, 경제의 세계화, 이후의 자본주의의 모순들이라는 개념 형성을 위해 푸코와 들뢰즈가 필요하지는 않았다. 그것은 ‘세계 시장’에 대한 맑스주의 연구의 경향성(tendential) 확대에 기초할 뿐이었다. 오히려 푸코와 들뢰즈가 주체성의 생산을 위해 『천개의 고원(mille plateux)』을 창작했던 시기에, 이탈리아 노동자주의를 필요로 했다고 주장할 수 있다. 여기서 우리는 공유된 이론적 틀(이탈리아인과 프랑스인에 의해 공유된)의 발전을 갖게 되었다. 그것은 나중에 많은 사회학자, 정치학자, 철학자들에 의해 창조적으로 계승되었다.


(b) 『전복의 정치학』에 나타난 분석적이고 이론적인 많은 요소들은 전적으로 옳다. 특히 『전복의 정치학』은 신자유주의적 정책들(신자유주의를 도입하기 위한 속도(pace), 방법, 계보학 등)의 엄청난 확산에 대한 예측(prediction)들과 관련되어 서술되었다. 『제국』과 『다중』 역시, 같은 해석상의 계보(line)를 취하고 있다. 그러나 그때까지 그 동향(trend)은 이미 현실성(reality)이 되었다. 『전복의 정치학』에서의 분석은 가끔 완벽하다고 말해진다: 6장에서 예로 들면, 그때까지도 자본주의적 방식에 매주 밀접하게 생산되던 통화주의와 닉슨과 레이건 정책들에 대한 보다 일반적인 평가가 신자유주의적 정책의 전반적인 명령체계를 구성하고, 그것이 어떻게 변이(mutate)될 수 있는지 말해주고 있다.


(c) 그러나 노동자들의 혁명적 조직에 대한 논의는 『전복의 정치학』에서도 이후의 작업들에서도 불충분하다. 『전복의 정치학』 6·7장은 사회적 노동자의 조직과 관련해, 폭넓고 대안적인 몇 가지 요소들을 매우 정확하게 검토한 경우다. 그러나 이 분석은 충분치 못했고, 이후의 작업들에서도 마찬가지였다. 6·7장의 주장은 사회적 착취의 노동 조직과 생명-정치적(bio-political) 모순들과 관련된 존재론적 의문들을 다루고 있는데 반해, 노동(labour)의 변형과 조직된 체제 전복적 행위의 변형 사이의 관계를 밝히는 것이 상당히 어렵다는 것을 입증하고 있다. 이러한 장(field) 내에서 사회-경제적, 역사적인 관계 분석은 개별적인 현상들에 대한 정의 그리고 활동적인(active) 부분들과 사건들의 이론적이고 실천적인 개념들에 확실히 기초하고 있다. 뒤이은『제국』과 『다중』(『리바이어던(Leviathan)』, 『시민론(De Cive)』에 포함된 홉스주의자들의 관점을 전도한)에서는, 이 주제로 집필된 『인간론(De Homine)』의 과제가 남아 있기보다는, 오히려 정확히 인류학적인 것과 정치적인 것 사이를 잇는 늘 근본적이고 변화하는 것을 언급하기 위해, 마치 초기 근대의 위대한 정치 사상가들처럼 다시 쓴 것이었다.


13-1 『전복의 정치학』은 온전히 내 자신의 투쟁 경험에 속한다. 그리고 특히 1960·70년대뿐만 아니라, 내가 다시 운동에 참여할 수 있었던 1986년 프랑스에서의 투쟁(내가 망명한 이후 처음으로)에 의해 고무된 결과였다. 그것은 생산이 곧 사회화된 지적 노동력에 의해 헤게모니가 되었다는 것을 분명하게 보여줬던 대학생들과 고등학생들에 의한 항의 운동이었다. 그 운동은 또한 이주 노동자들을 대표하는 최초의 큰 조직들과 연결되었기 때문에 중요했다: 새로운 지적인 노동자들과 이주 노동자들의 유연성과 이동성이 그 장면(scene)에 들어왔다. 투쟁 속의 다른 국면들과 에피소드들-1995·96년 프랑스에서 일어난 일련의 투쟁들 그리고 『제국』과 『다중』에 많은 자료들을 제공했던 시애틀(Seattle)에서의 중요한 투쟁들-은 『전복의 정치학』 집필 이후에 발생하였다. 투쟁은 사회 발전에 대한 우리의 지식으로 다가올 때, 혁명적 이론에 대한 엔진이 될 때, 훌륭한 선생님이 된다. 나는 우리가 개별적으로 관련되었던 이러한 투쟁들만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어떠한 기간(period)이나 주기(cycle)에 있는 모든 투쟁들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특정한 계급 구성 내에 뿌리를 둔 모든 투쟁을 의미하는 것이다. 우리가 사회적 노동자 시대의 개막을 1968년이라 간주할 때, 우리는 대중 노동자의 투쟁들을 잊어서는 안 된다. 맑스주의와 레닌주의의 방법론에 준하여, 우리는 새로운 배치의 패러다임, 즉 프롤레타리아에 있는 경향적(tendentially) 헤게모니로써 투쟁의 에피소드들을 고려하고 있다. 그러므로 새로운 경향적이고 혁명적인 프로젝트(규정되고 발전하게 된)로서 투쟁 에피소드들을 고려해야 한다.


13-2 사회적 노동자에 대한 나의 경험 그리고 사회적 유형으로 사회적 노동자의 등장과 형성은 이탈리아와 유럽에서 있었다. 그러나 미국과 예전의 소련에 있었던 운동들과 투쟁들을 분석한 동지들의 경험은 이와 얼마나 다를까? 최근에 나는 중국을 방문할 기회를 가졌다. 나는 중국 공산주의자들(아직 프롤레타리아의 대의(cause)를 적극적으로 지지하는 이들을 뜻한다)에 의한 문화혁명에서부터 현재의 신경제정책(NEP)에 이르기까지의 거대한 모순적인 과정에 대한 해석을 발견한 것에 대단히 놀랐다. 그들은 대중 노동자에서 사회적 노동자로의 변형을 특히 신경제정책에서 강조하였다. 노동의 사회화와 축적에 대한 방법들이 변화하는 가운데, 어떻게 이러한 일들이 발생하였을까? 또한 나는 중국 공산주의자들이 삶의 현대화와 생산의 현대화 사이의 관계를 점점 더 고려하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한 것에 놀랐다. 그리고 공산주의자들은 판단, 헤게모니의 주체로서 끝이 났고, 사회적으로 활동적이고 인류학적으로 공산주의자인 새로운 지적인 노동자와의 구별도 사라졌다. 다시 말해, 우리가 예측한 동향들(trends)이 올 때, 우리가 종종 거대한 착오를 저지를 수 있다는 것은 확실한 사실인데, 이것이 가끔 내게도 일어난다. 그러나 우리는 역사적 진실 즉 에피스테메(episteme)를 구성할 수 있다. 우리가 가끔 에피스테메를 오해하지만, 우리는 종종 그것을 어떻게든 파악할 수 있다. 우리는 올란도(Orlando)가 그를 달로 데려가려는 페가수스(winged horse)를 잡았던 만큼보다 더, 목덜미를 움켜잡은 카이로스(Kairos)와 사건 즉 역사를 장악하고 있다. 우리는 노동자들의 투쟁 속에서 발전의 혁명적 목적과 유물론적 목적인(telos)을 발견한다. 즉 오늘날 전반적인 사회적 노동자의 다중 가운데서도 이러한 것들을 발견할 수 있다.


14-1 다음에 할 것은 아마도 21세기에 조직화되고 있는 사회적 노동자의 순환(cycle) 속에서 또 다른 진보된 과업을 확인하는 것이다. 아마 혹자는 네그리라는 자(guy)가 조금 웃기다고 다소 아이러니하게(not without irony) 말할 것이다: 혹자는 네그리가 1986년 이후로(오히려, 1970년대 이후로) 조직의 새로운 형태를 우리에게 보여주려고 노력해왔다고 말할 것이다. 그들의 말처럼, 네그리는 몽상하고 있는가? 글쎄, 사회적 노동자들이 그 자신에게 세계화를 부과했다고 내가 확신했던 것처럼, 우리는 새로운 사회적 괴물(단순한 인터넷 노동자 또는 사이보그(cyborg)의 창조자가 아니라, 오히려 즉시 코뮤니즘적 욕구를 표현하고 있는 누군가의 역량)의 탄생을 목도하고 있고, 세계적 노동력의 새로운 기술적 구성이 정치적으로 이행할 준비가 되었다고 나는 똑같이 확신했다. 당시에는 아직 이러한 일들이 발생하지 않았고, 그 후에 우리가 단지 이러한 일들의 정치적 기원에 대한 자연발생적 표출들을 경험했을 동안, 우리는 증가하는 증거와 수천 번의 사건들을 통해, 그 경향을 깨닫게 되었다. 우리의 예측 내 오차 범위에서는 대단한 것이 아니었다.


14-2 그 다음에 마지막으로 경향(tendency)이라는 개념: 맑스는 결코 지칠 줄 모르고 우리에게 다음과 같이 상기시켰다. (1) 경제 법칙들의 형태는 항상 경항성이 있다. 그러나 (2) 경제 법칙들은 권력 관계의 일시적 방안이기 때문에, 필연적이지 않고 오히려 유물론적인 목적인이다. 유물론적 목적인이란 투쟁에 의해 구성된 결과, 의지와 욕망들에 의해 생산된 목표, 실재(the real)의 확립 등을 말한다. (3) 그 결과, 경향은 필연적인 진보가 아니라, 그것이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이다. 주관적인 것과 객관적인 것이 그것 내에서 서로 부딪치고 있다. 경향은 세계를 변화시키는 의지가 블록(block) 변화라는 권력 관계와 우연히 만나는 장소다. (4) 이론적 작업의 어려움은 권력 관계의 해법으로서 경향을 정의하는데 있는 것이 아니라, 지식의 모험과 투쟁의 위험을 순순히 받아들일 수 있는 활동적 요소로서 경향을 정의하는 것에 있다. 실제로 투쟁의 활동적 요소는 승패와 상관없이 항상 세계를 변화시키는 힘(force)이다. 이것이 『전복의 정치학』의 근본적인 주장이다. 그리고 『제국』과 『다중』에서 재개되었고, 보강되었다. (5) 이 마지막 존재론적 전제는 사실상 혁명적 조직 이론을 다시 착수하기 위한 기초가 된다.


2004년 8월, 토니 네그리(Toni Negri)가

앨런 카메론(Allan Cameron)에 의해 영역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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