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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Politics of Subversion: A Manifesto for the Twenty-First Century by Antonio Negri (Paperback - Jul 1,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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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정판 서문


9-1 첫 영문판 이후, 내가 『Fine secolo : Un manifesto per l'operaio sociale』라는 제목으로 이탈리아어 판『전복의 정치학』을 출판했을 때, 「선언」(Il Manifesto)에 실린 리뷰에는 ‘투쟁을 향한 이름 없는 사회적 범주들’이라는 표제가 달렸다. 그것은 1989년 초반의 일이었다. 「선언」(이 신문의 마스터헤드(masthead)는 그것이 ‘공산주의 신문’임을 주장하였고, 실제로 「선언」은 공산주의 좌파 운동과 밀접히 연결되어 있다)은 1968년부터 20년간 발생한 노동계급의 구성적 변화들을 이야기할 엄두를 내지 못했다. 그때까지는 이 새로운 현실에 대해 논의함으로써 오랜 활동가들의 귀를 거슬리게 할 수가 없었다. 「선언」의 논평자조차도 완전히 설득되지 않았다. ‘사회적 노동자(socialized worker)’는 누구의 아이도 아니었고, 그/그녀의 이름으로 인정되는 것도 아니었다. 무지, 윤리적·정치적인 기회주의, 이론적인 독단주의, 피상적인 분석, 노동조합에서의 조합주의는 현재(present)를 분석하는 것을 불가능하게 만드는 현실성(reality)과 결합하였다. 거기에서는 사회적 노동자의 형성을 향한 그것의 거부할 수 없는 경향과 함께 오늘날의 상황인식에 실패하였다. 나는 이미 노동계급의 구성이 변화하고 있고, ‘대중 노동자’의 시기가 끝나가며, 점차 무형적이고 협력적인 사회적 노동력이 서서히 형성되었다는 것을 20년 전에 이해하였다. 이 때문에 나는 공산당의 기회주의적이고 독단적인 지도자들과 10년간 나를 감옥에 처넣으려는 부르주아 판사들에 의해 멸시와 미움을 받았다. 사회주의 관료들은 다중(multitude) 속에 살며, 민중들을 선동‧복무‧연구하는 누군가를 증오한다. 그리고 이러한 증오감 때문에, 그들은 진리를 파괴하기 위해 기존 체제의 권력을 부당하게 이용할 수 있다. 그러나 속상한 것은 이것이 아니라, 오늘날 (극적으로 세계 질서가 달라진) 정세 변화의 증거조차 아직까지 노동운동 활동가들의 머릿속에 입력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2003년 파리에서 개최된 운동을 위한 유럽 포럼 기간에, 나는 영국의 트로츠키주의자들과 토론하였다. 영국의 트로츠키주의자들은 마치 19세기에 살고 있는 것처럼 노동계급에 대해 말하는 사람들이고, 또한 마치 20세기가 전혀 존재하지 않는 것인 양 혁명에 대해 이야기하는 사람들이다. 『자본론』의 매 페이지마다, 맑스는 모든 발전 법칙과 계급투쟁에는 경향성(tendential)이 있다고 말하였다. 이 문제에 있어 맑스의 주장은 어느 정도 지루하게 느껴질 정도다: 맑스는 그의 동시대인들(경제학자들과 정치인들)을 완전히 바보라고 여긴 것 같다. 그리고 맑스는 항상 생산하는 새로운 플레이어들(players)이 존재하는 현재 그리고 예속(隸屬) 방법의 지속적인 변형과 적응으로서 자본주의의 발전을 그들이 이해하지 못할 것이라고 간주한 것 같다. 전통적인 노동 운동 내에서는 아직 아무도 맑스의 주장을 들으려 하지 않는다. 우리는 오늘날 맑스의 독단적인 추종자들에 대해 무엇을 말할 수 있을까? 맑스를 맹종하는 아류들에 대해 무엇을 덧붙일 수 있을까? 그것은 점차 귀머거리의 대화가 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경향들을 연구하는 방법을 실현하고 있는 중요한 소수집단이 있다. 그리고 1970·80년대에 논의된 이러한 방법(게다가 진정한 맑스주의자(genuinely Marxian)의 방법)은 점차 확립되고 있다. 이러한 방법으로 무장하고, 노동의 사회적 변형을 보지 못하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리고 이러한 방법으로 무장한 소수집단이 사회적 노동자를 향하는 정세의 중요성을 이해하지 못했다고 보는 것도 불가능하다. 더 많은 착취(exploitation)는 더욱 더 많은 착취를 의미하지만, (왜냐하면 정신적 노동과 사회적 협력을 육체적 노동에 덧붙일 수 있기 때문이다) 동시에 거대한 혁명의 기회이기도 하다.


10-1 나는 이 서문을 쓰기 위해 『전복의 정치학』을 다시 읽었다. (나는 부득이한 경우를 제외하고, 이미 출판된 책을 좀처럼 다시 읽지 않는다) 『전복의 정치학』은 훌륭한 책이다. 사회적 노동자라는 주제는 경험적인 연구에서 개발되었다. 1984·85년에 나는 결코 이데올로기적이지 않았다. 5년간의 감옥생활에 뒤이은, 나의 14년간의 망명생활의 시작은 옳았다: 그런 상황들은 누구에게도 꿈을 허락하지 않는다. 내가 1970년대와 1980년대 초반에 목격했던 빠른 확산들, 즉 새로운 무형적이고, 컴퓨터에 기초하며, 자동적이고 서비스적인 생산 과정들에 대한 나의 경험적인 조사로부터 노동과 착취 유형에 관련된 사회적 노동자가 등장하였다. 『전복의 정치학』은 ‘테일러주의(Taylorite) 노동자’에서 사회적 노동자(나중에 ‘포드주의’ 노동자 그리고 ‘포스트-포드주의’ 노동자로 불리게 되었다)로 이행하는 시대구분에 대해서도 전적으로 옳았다. 상대적 잉여가치의 수탈에서 가치의 수탈 그리고/또는(and/or) 사회적 노동의 협력적인 기능들로의 이행에 뒤따른 수탈 형태들에 관한 이 장들은 현재의 상황을 분석하기 위한 패러다임으로서 여전히 유효하다. 마지막으로, (『전복의 정치학』에서) 사회적 노동자는 생태학적 기계(ecological machine)의 일부다. 그 결과 환경 전체가 수탈 과정 속에 포함된다. 이 패시지(passage)들의 정확하고 비범한 이론적 의의를 성찰하자면, 나는 믿기 힘든 1960·70년대 계급투쟁에서의 개입방식에 큰 감동을 받았다. 이 때 개입방식이란, 나와 내 동지들이 우리의 경험적 지식을 가지고 그러한 진보를 가능하게 만들려는 방식을 말한다.


11-1 제5장 ‘사회적 노동자의 세계 경제’는 실제적으로 중요하다(요즘 5장을 다시 읽고 있다). 20년 후, 나는 세계 곳곳에 50만부가 팔린 『제국(Empire)(마이클 하트(Michael Hardt)와 함께)』을 출판했다. 혹자는 왜 『제국』과 비슷한 내용을 다루었던 『전복의 정치학』이 고작 1,000부 가량만 팔렸는지 궁금해 한다. 이것은 그 당시 내 출판인들에 대한 동정이었다. 그러나 이들은 예나 지금이나 내 의견에 동의하며, 오늘날에도 여전히 내 출판인들로 남아 있다. 우리는 불운 또는 직무유기(dereliction) 때문에, 거대한 기회를 이용하는데 실패했다.


11-2 내가『전복의 정치학』과 『제국』(『제국』에 뒤이은 『다중(Multitude)』이라는 결과) 사이의 관계를 검토하기 시작했을 때, 나는 그것의 결론을 통해 다음과 같이 논의하고자 하였다. 내가 말했듯이, 『전복의 정치학』 5장에는 많은 유사점들이 있다. -노동의 세계화와 사회 통제를 향한 필연적인 동향(trend)은 이미 5장에서 정의되었다- 그러나 또한 『전복의 정치학』 5장에는 어떻게 『제국』과 다르게 이해하느냐의 문제도 있다. 이것은 『제국』의 출처와 『전복의 정치학』이 쓰인 과정을 밝히는데 유용할 수 있다. 지금부터 이러한 점들을 아래와 같이 요약할 수 있다.


(a) 『제국』의 철학적 틀은 『전복의 정치학』의 철학적 틀과 확실히 다르다. 1985·86년에 쓰인 『전복의 정치학』에는 이탈리아 노동자주의(workerism)의 전통이 아직까지 많이 남아 있지만, 푸코(Foucault)와 들뢰즈(Deleuze)의 영향력은 거의 없었다. 사회적 노동자, 경제의 세계화, 이후의 자본주의의 모순들이라는 개념 형성을 위해 푸코와 들뢰즈가 필요하지는 않았다. 그것은 ‘세계 시장’에 대한 맑스주의 연구의 경향성(tendential) 확대에 기초할 뿐이었다. 오히려 푸코와 들뢰즈가 주체성의 생산을 위해 『천개의 고원(mille plateux)』을 창작했던 시기에, 이탈리아 노동자주의를 필요로 했다고 주장할 수 있다. 여기서 우리는 공유된 이론적 틀(이탈리아인과 프랑스인에 의해 공유된)의 발전을 갖게 되었다. 그것은 나중에 많은 사회학자, 정치학자, 철학자들에 의해 창조적으로 계승되었다.


(b) 『전복의 정치학』에 나타난 분석적이고 이론적인 많은 요소들은 전적으로 옳다. 특히 『전복의 정치학』은 신자유주의적 정책들(신자유주의를 도입하기 위한 속도(pace), 방법, 계보학 등)의 엄청난 확산에 대한 예측(prediction)들과 관련되어 서술되었다. 『제국』과 『다중』 역시, 같은 해석상의 계보(line)를 취하고 있다. 그러나 그때까지 그 동향(trend)은 이미 현실성(reality)이 되었다. 『전복의 정치학』에서의 분석은 가끔 완벽하다고 말해진다: 6장에서 예로 들면, 그때까지도 자본주의적 방식에 매주 밀접하게 생산되던 통화주의와 닉슨과 레이건 정책들에 대한 보다 일반적인 평가가 신자유주의적 정책의 전반적인 명령체계를 구성하고, 그것이 어떻게 변이(mutate)될 수 있는지 말해주고 있다.


(c) 그러나 노동자들의 혁명적 조직에 대한 논의는 『전복의 정치학』에서도 이후의 작업들에서도 불충분하다. 『전복의 정치학』 6·7장은 사회적 노동자의 조직과 관련해, 폭넓고 대안적인 몇 가지 요소들을 매우 정확하게 검토한 경우다. 그러나 이 분석은 충분치 못했고, 이후의 작업들에서도 마찬가지였다. 6·7장의 주장은 사회적 착취의 노동 조직과 생명-정치적(bio-political) 모순들과 관련된 존재론적 의문들을 다루고 있는데 반해, 노동(labour)의 변형과 조직된 체제 전복적 행위의 변형 사이의 관계를 밝히는 것이 상당히 어렵다는 것을 입증하고 있다. 이러한 장(field) 내에서 사회-경제적, 역사적인 관계 분석은 개별적인 현상들에 대한 정의 그리고 활동적인(active) 부분들과 사건들의 이론적이고 실천적인 개념들에 확실히 기초하고 있다. 뒤이은『제국』과 『다중』(『리바이어던(Leviathan)』, 『시민론(De Cive)』에 포함된 홉스주의자들의 관점을 전도한)에서는, 이 주제로 집필된 『인간론(De Homine)』의 과제가 남아 있기보다는, 오히려 정확히 인류학적인 것과 정치적인 것 사이를 잇는 늘 근본적이고 변화하는 것을 언급하기 위해, 마치 초기 근대의 위대한 정치 사상가들처럼 다시 쓴 것이었다.


13-1 『전복의 정치학』은 온전히 내 자신의 투쟁 경험에 속한다. 그리고 특히 1960·70년대뿐만 아니라, 내가 다시 운동에 참여할 수 있었던 1986년 프랑스에서의 투쟁(내가 망명한 이후 처음으로)에 의해 고무된 결과였다. 그것은 생산이 곧 사회화된 지적 노동력에 의해 헤게모니가 되었다는 것을 분명하게 보여줬던 대학생들과 고등학생들에 의한 항의 운동이었다. 그 운동은 또한 이주 노동자들을 대표하는 최초의 큰 조직들과 연결되었기 때문에 중요했다: 새로운 지적인 노동자들과 이주 노동자들의 유연성과 이동성이 그 장면(scene)에 들어왔다. 투쟁 속의 다른 국면들과 에피소드들-1995·96년 프랑스에서 일어난 일련의 투쟁들 그리고 『제국』과 『다중』에 많은 자료들을 제공했던 시애틀(Seattle)에서의 중요한 투쟁들-은 『전복의 정치학』 집필 이후에 발생하였다. 투쟁은 사회 발전에 대한 우리의 지식으로 다가올 때, 혁명적 이론에 대한 엔진이 될 때, 훌륭한 선생님이 된다. 나는 우리가 개별적으로 관련되었던 이러한 투쟁들만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어떠한 기간(period)이나 주기(cycle)에 있는 모든 투쟁들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특정한 계급 구성 내에 뿌리를 둔 모든 투쟁을 의미하는 것이다. 우리가 사회적 노동자 시대의 개막을 1968년이라 간주할 때, 우리는 대중 노동자의 투쟁들을 잊어서는 안 된다. 맑스주의와 레닌주의의 방법론에 준하여, 우리는 새로운 배치의 패러다임, 즉 프롤레타리아에 있는 경향적(tendentially) 헤게모니로써 투쟁의 에피소드들을 고려하고 있다. 그러므로 새로운 경향적이고 혁명적인 프로젝트(규정되고 발전하게 된)로서 투쟁 에피소드들을 고려해야 한다.


13-2 사회적 노동자에 대한 나의 경험 그리고 사회적 유형으로 사회적 노동자의 등장과 형성은 이탈리아와 유럽에서 있었다. 그러나 미국과 예전의 소련에 있었던 운동들과 투쟁들을 분석한 동지들의 경험은 이와 얼마나 다를까? 최근에 나는 중국을 방문할 기회를 가졌다. 나는 중국 공산주의자들(아직 프롤레타리아의 대의(cause)를 적극적으로 지지하는 이들을 뜻한다)에 의한 문화혁명에서부터 현재의 신경제정책(NEP)에 이르기까지의 거대한 모순적인 과정에 대한 해석을 발견한 것에 대단히 놀랐다. 그들은 대중 노동자에서 사회적 노동자로의 변형을 특히 신경제정책에서 강조하였다. 노동의 사회화와 축적에 대한 방법들이 변화하는 가운데, 어떻게 이러한 일들이 발생하였을까? 또한 나는 중국 공산주의자들이 삶의 현대화와 생산의 현대화 사이의 관계를 점점 더 고려하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한 것에 놀랐다. 그리고 공산주의자들은 판단, 헤게모니의 주체로서 끝이 났고, 사회적으로 활동적이고 인류학적으로 공산주의자인 새로운 지적인 노동자와의 구별도 사라졌다. 다시 말해, 우리가 예측한 동향들(trends)이 올 때, 우리가 종종 거대한 착오를 저지를 수 있다는 것은 확실한 사실인데, 이것이 가끔 내게도 일어난다. 그러나 우리는 역사적 진실 즉 에피스테메(episteme)를 구성할 수 있다. 우리가 가끔 에피스테메를 오해하지만, 우리는 종종 그것을 어떻게든 파악할 수 있다. 우리는 올란도(Orlando)가 그를 달로 데려가려는 페가수스(winged horse)를 잡았던 만큼보다 더, 목덜미를 움켜잡은 카이로스(Kairos)와 사건 즉 역사를 장악하고 있다. 우리는 노동자들의 투쟁 속에서 발전의 혁명적 목적과 유물론적 목적인(telos)을 발견한다. 즉 오늘날 전반적인 사회적 노동자의 다중 가운데서도 이러한 것들을 발견할 수 있다.


14-1 다음에 할 것은 아마도 21세기에 조직화되고 있는 사회적 노동자의 순환(cycle) 속에서 또 다른 진보된 과업을 확인하는 것이다. 아마 혹자는 네그리라는 자(guy)가 조금 웃기다고 다소 아이러니하게(not without irony) 말할 것이다: 혹자는 네그리가 1986년 이후로(오히려, 1970년대 이후로) 조직의 새로운 형태를 우리에게 보여주려고 노력해왔다고 말할 것이다. 그들의 말처럼, 네그리는 몽상하고 있는가? 글쎄, 사회적 노동자들이 그 자신에게 세계화를 부과했다고 내가 확신했던 것처럼, 우리는 새로운 사회적 괴물(단순한 인터넷 노동자 또는 사이보그(cyborg)의 창조자가 아니라, 오히려 즉시 코뮤니즘적 욕구를 표현하고 있는 누군가의 역량)의 탄생을 목도하고 있고, 세계적 노동력의 새로운 기술적 구성이 정치적으로 이행할 준비가 되었다고 나는 똑같이 확신했다. 당시에는 아직 이러한 일들이 발생하지 않았고, 그 후에 우리가 단지 이러한 일들의 정치적 기원에 대한 자연발생적 표출들을 경험했을 동안, 우리는 증가하는 증거와 수천 번의 사건들을 통해, 그 경향을 깨닫게 되었다. 우리의 예측 내 오차 범위에서는 대단한 것이 아니었다.


14-2 그 다음에 마지막으로 경향(tendency)이라는 개념: 맑스는 결코 지칠 줄 모르고 우리에게 다음과 같이 상기시켰다. (1) 경제 법칙들의 형태는 항상 경항성이 있다. 그러나 (2) 경제 법칙들은 권력 관계의 일시적 방안이기 때문에, 필연적이지 않고 오히려 유물론적인 목적인이다. 유물론적 목적인이란 투쟁에 의해 구성된 결과, 의지와 욕망들에 의해 생산된 목표, 실재(the real)의 확립 등을 말한다. (3) 그 결과, 경향은 필연적인 진보가 아니라, 그것이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이다. 주관적인 것과 객관적인 것이 그것 내에서 서로 부딪치고 있다. 경향은 세계를 변화시키는 의지가 블록(block) 변화라는 권력 관계와 우연히 만나는 장소다. (4) 이론적 작업의 어려움은 권력 관계의 해법으로서 경향을 정의하는데 있는 것이 아니라, 지식의 모험과 투쟁의 위험을 순순히 받아들일 수 있는 활동적 요소로서 경향을 정의하는 것에 있다. 실제로 투쟁의 활동적 요소는 승패와 상관없이 항상 세계를 변화시키는 힘(force)이다. 이것이 『전복의 정치학』의 근본적인 주장이다. 그리고 『제국』과 『다중』에서 재개되었고, 보강되었다. (5) 이 마지막 존재론적 전제는 사실상 혁명적 조직 이론을 다시 착수하기 위한 기초가 된다.


2004년 8월, 토니 네그리(Toni Negri)가

앨런 카메론(Allan Cameron)에 의해 영역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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