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전 박헌영

박종성 지음

값 29,000원



강토 향한 시린 눈길 한결같이 애잔해도 모두가 투사는 아니다. 있어야 할 곳에 ‘있기’도 늘 어렵다. 하물며 해야 할 일까지 ‘해내는’ 이들까지랴. ‘운동’이니 ‘저항’이니 하는 일들은 본디 쓸쓸한 법이다. 먼 땅에서 호령하며 대들기란 또 얼마나 공허하며 화려한 고통이었을까. 시작부터 그것은 ‘정치’요, 티 내지 말아야 할 ‘이력’이었다.
제대로 돌이키자. 누가 끝내 현장을 지키는지, 어떤 인물이 할 일 마다치 않고 해내는지. 어느 인사가 맵고 거친 채찍 온몸으로 맞아내며 온전히 싸우는지 말이다. 투쟁을 귀족처럼, 혁명을 벼슬아치처럼 감당한다는 게 옳은 것인지, ‘외교투쟁’도 시급하며 ‘혁명공조’ 또한 절실하다 해도 미국은 멀고 중국은 모호했음을 어찌 잊을 수 있겠는가.
러시아도 ‘평등 조선’을 기약하긴 아득했다. 하지만 거기서 솟구친 혁명의 바람을 들뜬 마음으로 맞이하겠다는 생각조차 순진하기만 했다면, 느닷없는 해방은 더 허망하였을 터다. 동강난 땅에서 일궈낸 과업이 모조리 반역이요 미움과 저주로 돌팔매 해야 할 악마의 표상이라 믿는 한, 세월의 해석은 매양 거기서 거기다.
삶의 대가를 ‘빨갱이’로 치러야 할 얄궂음 앞에 서럽도록 억울한 사람은 박헌영 자신이다. 해방 후 행적이 마뜩치 않아 강점기 투쟁마저 미워하며 말살시킴은 허투루 넘기지 못할 문제다. 일제 향한 고난의 저항이 워낙 감동적이라 그것만으로 사회주의 조선혁명과정의 과오를 온전히 맞바꾸려 듦도 유치한 과장이다. 어쩌랴. 바위 눌린 가재처럼 오도 가도 못한 채, 역사의 틈바구니에서 헤매는 그를 놓아줄 방도란 이제 살아남은 자들 몫인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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