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숭고한 히스테리환자 : 라캉과 함께 한 헤겔

슬라보예 지젝

 

레나타(Renata)에게

서론: 불가능한 절대적 앎

미셸 푸코는 철학 자체를 반플라톤주의와 동일시할 것을 제안했다. 그것은 바로 플라톤이 철학의 장을 끄집어 낸 사상가였기 때문이다. 아리스토텔레스부터 시작해서 모든 철학자들이 플라톤과 거리를 두면서 자신들의 생각을 규정했다. 비슷한 방식으로 우리는 지난 두 세기의 철학은 헤겔에 대해 거리를 두면서 구성됐다고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헤겔은 “범논리주의(panlogicisme)”의 괴물, 현실의 총체적 변증법적 매개의 괴물, 관념의 자기운동 속에서 현실이 완전히 와해되게 한 괴물을 구현한다. 이 괴물에 맞서 개념의 매개에서 벗어난다고 여겨지는 요소가 여러 가지로 명확히 드러났다. 이 표시는 의지의 비합리적 심연이란 이름으로(쉘링), 개인의 실존(l’existence)의 역설이란 이름으로(키에르케고르), 삶의 생산적 과정이란 이름으로(맑스) 관념의 절대주의에 맞선 세 개의 커다란 포스트헤겔적 전복 속에서 이미 발견될 수 있다. 헤겔에 동일시하는 가장 호의적인 해설가들은 절대적 앎이 구성하는 한계를 넘어서기를 거부한다. 그래서 장 이폴리트(Jean Hyppolite)는 포스트헤겔적 경험이 이성의 진보란 틀을 폭파시키는 텅 빈 반복에 의해 역사-시간의 과정을 확고히 시작시켰을 것이라고 강조한다... 결국 헤겔의 지지자들에게 있어서도 헤겔적 체계에 대한 관계는 항상 “난 잘 알지만 그래도”의 관계이다. 헤겔이 실제성(l’effectivité)의 근본적으로 적대관계적 성격, 주체의 분산 등을 단언했다는 것은 잘 알려져 있다. 그러나 그럼에도... 균열은 모든 상처들을 봉합하러 오는 절대 관념의 자기매개 안에서 마침내 사라진다. 절대적 앎의 위치는, 마지막 화해의 위치는 여기에서 헤겔적 사물(Chose)의 역할을 한다. 이것은 거리를 두는 것이 좋은 무서우면서도 동시에 우스운 괴물이다. 이것은 불가능하면서도(절대적 앎은 물론 접근할 수 없는 것이며 실현될 수 없는 관념이다!) 동시에 금지된(절대적 앎은 도망치게 만든다. 왜냐하면 살아 있는 것의 모든 풍부함을 개념의 자기운동 안에서 죽게 만들겠다고 위협하기 때문이다!) 사물이다. 다른 말로 하자면 헤겔의 세력권 안에서 스스로를 규정하고자 하는 모든 시도는 동일시가 실패하는 지점을 내포한다. 사물은 항상 희생돼야 한다...

우리에게 있어서 개별자의 살아 있는 실질(substance)을 집어삼키고 죽이는 “범논리주의적” 헤겔의 이런 모습은 그의 비판자들의 실재(le réel)이다. 이때 실재는 라캉적 의미이다. 즉, 실제로는 실존하지 않는 지점(헤겔 자신과는 관계가 없는 괴물)이지만 그럼에도 타자에 대한 부정적 참조를 이용해 우리의 위치를 정당화할 수 있으려면, 다시 말해 거리두기의 노력을 정당화할 수 있으려면 전제가 돼야 하는 지점의 건설이다. 절대적 앎의 괴물 앞에 선 포스트헤겔주의자들을 사로잡는 공포는 어디에서 오는가? 이 환상적 건설은 그것의 매혹적인 현전(présence)을 통해 무엇을 감추는가? 어떤 구멍, 어떤 텅 빔이다. 헤겔을 라캉과 함께 읽으려고 애쓰면서 이 구멍을 그려내 보는 것이 가능하다. 다시 말해 대타자(l’Autre) 안에서의 결여에 대한, 의미작용적(signifiant) 과정을 연결하는 중심이 되는 정신외상적 텅 빔에 대한 라캉의 문제의식을 기반으로 해서 말이다. 이런 관점에서 절대적 앎은 라캉이 분석 과정의 마지막 계기에 의해, 대타자 안에서의 결여의 경험에 의해, “통과하기(la passe)”라는 지칭에 의해 그려내려고 노력했던 것에 대한 헤겔적 이름이란 것이 드러난다. 만약 라캉의 유명한 표현처럼 사드가 우리에게 칸트의 진리를 제공한다면, 그 자신이 우리에게 헤겔의 변증법의 운동을 특징짓는 기본 모태에 접근할 수 있도록 해 줄 수 있을 것이다. 즉, 사드와 함께 하는 칸트, 라캉과 함께 헤겔이다. 그렇다면 헤겔과 라캉 사이의 관계에는 무엇이 있는가?

오늘날 상황은 명확해 보인다. 아무도 라캉이 헤겔에게 일정한 빚을 졌다는 것을 부인하지는 않지만, 그가 할 수 있었던 모든 참조는 아주 한정된 시기에 만들어진 특정한 이론적 대여에 한정된다고 인정된다. 1940년대 말부터 1950년대 초 사이에 라캉은 정신분석 과정을 욕망의 인정 그리고/또는 인정의 욕망이 가진 상호주관적 논리의 용어들 안에서 설명하려 시도했다. 이때 이미 라캉은 헤겔적 체계의 닫힘에 대해, 절대적 앎에 대해 거리를 두려고 노력했다. 그는 절대적 앎을 완벽히 동질적이고 완성됐으며 스스로 닫힌 담론의 접근 불가능한 이상형과 비슷하다고 봤다. 나중에는 전부가-아님(pas-tout)의 논리와 빗금친 대타자의 개념을 도입함으로써 헤겔에 대한 이 최초의 참조를 무효로 만들었다. 달리 보면 헤겔의 절대적 앎 ― 닫힌 “원들의 원” ― 과 라캉의 빗금친 대타자 ― 완전히 구멍이 뚫린 앎 ― 사이의 대립보다 더 양립 불가능한 대립을 상상할 수 있겠는가? 라캉은 본보기가 되는 헤겔 반대자가 아닌가?

특히 라캉에 대한 비판들이 헤겔에 대한 그의 빚을 도드라지게 만든다. 즉, 라캉은 목적론적 원 안에 텍스트의 확산을 억류하는 지하의 헤겔주의 때문에, 이성-남근중심주의에 갇힌 사람으로 머무를 것이다... 이 비판에 대해 라캉주의자들은 당연히 헤겔주의에 대한 라캉주의의 단절을 강조하면서, 라캉이 헤겔주의자가 아니고 과거에도 절대 아니었다고 지적하면서 라캉을 구하려 애쓰면서 응답할 것이다. 이제 헤겔-라캉의 관계를 새로운 방식으로 연결하면서 이 논쟁에 다르게 접근할 때이다. 우리가 보기에 라캉은 완전히 헤겔주의자이다. 하지만 그는 그 사실을 모른다. 그는 물론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 같은 헤겔주의자는 아니다. 다시 말해 헤겔에 대해 명백한 참조를 한다는 점에서의 헤겔주의자는 아니다. 그러나 바로 그의 가르침의 마지막 단계에서, 전부가-아님의 논리 안에서, 실재에 대한, 대타자 안의 결여에 대한 강조 안에서 그는 헤겔주의자이다. 그리고 마찬가지로 라캉의 빛으로 헤겔을 읽는 것은 일반적으로 인정되는 것과 같은 “범이성주의자” 헤겔의 이미지가 아닌 완전히 다른 헤겔의 이미지를 제공한다. 그것은 기표의 논리의 헤겔, 즉 텅 빈 중심의 반복적 실증화(positivation)로서의 분절된 자기참조적(autoréférentiel) 과정의 헤겔을 나타나게 할 것이다.

이런 독해는 따라서 범진리주의 그리고/또는 역사주의의 퇴적층으로부터 구출된 헤겔, 기표의 논리의 헤겔을 끄집어내면서 두 용어들의 정의 자체를 바꾼다. 반대급부로 라캉의 학설이 갖는 가장 전복적인 핵, 즉 대타자 안의 구성적 결여라는 핵을 분명히 그려내는 것이 가능하게 된다. 그래서 이 책은 기본적으로 대화 형식이다. 어떤 실증적 사고의 방향을 전개하려면 그것에 반대되는 주장들을 포함하지 않을 수 없다. 예를 들어 헤겔에 대해 이미 언급된 일반적 생각들은 헤겔주의 안에서 “이성의 제국주의”가 갖는 본보기 사례를 발견한다. 이런 폐쇄된 체계 안에서 개념(Concept)의 자기운동이 모든 차이들을 그리고 물질적 과정의 모든 분산을 부각시킨다. 그런 일반적 생각들은 라캉에게서도 발견된다. 그러나 그것들은 헤겔에 대한 다른 생각과 어깨를 나란히 한다. 하지만 그런 생각은 헤겔에 대해 라캉이 명시적으로 확언한 것 안에서 발견되지는 않는다. 그런 이유로 우리는 이 확언들을 대부분 침묵하면서 지나친다. 우리가 보기에 라캉은 “자신이 어느 부분에서 헤겔주의자인지를 몰랐다”. 왜냐하면 헤겔에 대한 그의 독해는 코제브(Kojève)와 이폴리트의 전통 안에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변증법과 기표의 논리 사이의 관계를 연결하기 위해서는 헤겔에 대한 라캉의 모든 명시적 참조를 처음에는 한쪽에 치워두어야 한다.

그런데 오늘날 철학적 논쟁은 그 용어 자체에서도 변화된 것처럼 보인다. 주체의 분산에 대한 “후기구조주의자들의” 주제들은 더 이상 철학적 논쟁에 양분을 제공하지 않는다. 전체적으로 볼 때 칸트적이라고 말해질 수 있을 여러 버전(하버마스의 커뮤니케이션 윤리에 이르기까지)의 입장으로의 이론적 회귀를 중개하는 정치(Politique)의 특정한 재 현재화(인권, 전체주의에 대한 비판)가 철학적 논쟁의 대상이다. 칸트의 이런 재 현재화는 철학을 복권시키도록 해준다. 그리고 철학을 이데올로기적-상상적 효과로 축소시키는 “증후적 독해들”로부터 철학을 구하고, 따라서 “이성의 전체주의”(이런 관점에서 포스트칸트적 관념주의의 발전과 동일시된)를 피하면서, 다시 말해 역사적 과정의 지평선을 열어두면서 철학적 성찰이란 주제에 새로운 신빙성을 부여하도록 해준다. 두 번째 단계에서 우리의 책도 이런 경향과의 암묵적 대화를 해 갈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여러 수준들에서 철학의 세 영역들을 참조해가며 진행될 것이다.

― 우선 칸트적 영역 자체: 라캉으로부터 시작해 우리는 잘못 알려진 칸트의 차원을 그의 재 현재화 안에서 연결하려 노력한다. 이 칸트의 진리는 사드이다. 그는 쾌락의 지령을 숨기는 불가능한 초자아적 명령의 칸트, 원초적 에 대한 그의 이론 안에서 쉘링에 의해 급진화된 칸트이다.

― 칸트 철학의 이 재 현재화의 영향 하에서 맑스는 오늘날 잊혀졌다. “전체주의”의 경험 후에 맑스로부터 무엇을 구해낼 것인가? 증후를 발명한 사람(라캉, “RSI”세미나)아 남는다. 이것은 이데올로기의 필연적으로 무의식적인 지위에 대한, 환상과 증후의 관계 등에 대한 몇몇 가르침을 우리에게 전해줄 수 있다.

독사(doxa)에 따르면 분석철학은 헤겔의 가장 급진적 반대자처럼 지각된다. 그런데 우리가 보기에 헤겔적 변증법의 알려지지 않은 핵은 명백한 헤겔주의의 여러 버전들에서보다는 분석철학의 특정한 경향 안에서 더 작동한다(예를 들어 크립키Kripke의 반묘사주의antidescriptivisme).

이 삼중의 대화를 기반으로 이 책의 두 번째 부분은 정치-이데올로기적 영역의 라캉 이론의 윤곽을 대충 그리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이것은 소위 “전체주의적” 현상을 진단하고 동시에 민주주의의 근본적으로 모순적인 지위를 파악하도록 해 줄 것이다.

이 책의 마지막 주제는 라캉의 학설이 정치-이데올로기적 영역의 이론의 밑그림들을 포함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 밑그림들은 제대로 만들어지지 않았다. 바로 이것이 현대 사상의 커다란 수수께끼들 중의 하나이다. 아마도 이 수수께끼의 해결은 다른 수수께끼의 해결과 일치할 것이다. 그것은 왜 라캉의 헤겔주의가 갖는 진정한 차원이 제대로 알려져 있지 않았는가?라는 것이다.

이 책은 자크-알랭 밀레르(Jacques-Alain Miller)의 지도 아래 진행되고 1985년 11월에 파리 8대학교의 정신분석학과에서 발표된 박사학위 논문인 “증후와 환상 사이의 철학”을 다시 정리한 것이다. 이 작업을 응원해 준 프로이트의 장(Champ freudien)의 그와 다른 동료들에게 감사의 말을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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