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삶]미국이 저지른 학살과 그 하수인 언론

▲학살의 정치학…노암 촘스키 외 | 인간사랑

국제법 전문가인 리처드 포크는 ‘개입’이란 미시시피 강과 같다고 했다. 둘 다 북에서 시작해 남으로 흐르기 때문이다. 이 책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서방 강대국, 특히 미국이 각국에서 벌인 자신의 침략과 학살행위를 어떻게 은폐·축소하고, 적이 저지른 동일한 행위는 어떻게 왜곡·과장했는지를 까발린다. 나아가 이런 불순한 의도를 전파하는 데 “하수인” 노릇을 한 언론을 정조준한다.

이라크, 다르푸르, 보스니아와 헤르체고비나, 코소보, 이스라엘, 르완다…. 세계 곳곳의 학살 현장들을 “건설적인 학살(미국이 자행하거나 자신의 이익에 즉각적 도움이 되는 것)” “자비로운 학살(미국의 동맹이나 종속국이 수행한 것)” “사악하고 가공할 만한 학살(미국의 적대국이 저지른 것)”로 구분한다. 미국이 대학살극들의 중요하고도 유일한 “촉발자이자 집행자”임을 증명하기 위함이다.

미국은 1945년부터 2009년 사이 적어도 29개국에서 “극도로 심각한” 군사적 개입을 실행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저자들이 보기에 미국은 공격 대상을 악의 화신으로 만들고는 자신의 행위를 정당화하기 위해 국제법상 “예외주의”를 설파하며 개입권 남용의 결정체인 “보호책임”을 대중에게 주입했다. 이 같은 정책을 만드는 소위 엘리트들은 뇌물과 위협, 경제제재, 테러, 침공, 점령을 일삼아왔다. 책은 이들 못지않게 주목해야 할 대상으로 뉴스 미디어를 꼬집는다.





일례로 뉴욕타임스는 2001년 9·11 테러 이후 2003년 3월21일까지 이라크를 다룬 70편의 사설에서 ‘유엔헌장’이나 ‘국제법’이란 단어를 사용한 적이 한 번도 없다는 분석이 있다. 이 신문은 또 계획된 침략행위에 대한 비판적인 견해를 맹렬하게 비난하는 평론가들만 환영했다고 한다. 저자들은 언론이 여전히 소유주와 광고주의 이해관계에 따라 의제 및 사실을 왜곡할 수밖에 없는 숙명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음을 강조한다.

노암 촘스키는 서문에서 이 책으로 “참담”한 교훈을 얻을 수 있다고 했다. 냉전이 종식되자 홀로코스트를 부정하는 시대가 열렸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법정을 꾸려 가해자로 지목된 이들을 처벌하면서도 정작 자신이 저지른 범죄에는 침묵하는 게 저자들이 말하는 “학살의 정치학”이다. 간결하면서도 호소력이 있다. 박종일 옮김.


고영득 기자 godo@kyunghyang.com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