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 haine de la démocratie de Jacques Rancière (Broché - 30 septembre 2005)
Acheter neuf: EUR 13,00 EUR 12,35
번역자: 허 경
소개 : 20년 넘게 프랑스에 거주하며 프랑스 국립대학 교수자격(사회학 및 동양학)과 파리 8대학 정치사회학 박사 학위를 취득하였다. 현재 프랑스 국립 동양학대학(INALCO) 유라시아학부 교수 및 프랑스 국립 에브리(Evry)대학 사회학부 겸임교수로 있으며 '근대성'에 대한 사회철학적 고찰에 대해 주로 연구하고 있다.
민주주의는 왜 증오의 대상인가 ?
목차
서론
민주주의의 승리인가, 범죄적 민주주의인가 ?
신성 목자(牧者, 지도자)의 살해와 정치의 탄생
민주주의, 공화주의, 대의제
민주주의가 증오의 대상이 된 이유
서론
거짓으로 꾸며낸 얘기로 자신이 폭행의 피해자라고 하여 프랑스 사회 전체를 숨막히게 만든 여인; 학교에서 이슬람교도의 머리 가리개 벗기를 거부하는 중·고등학교의 여학생들; 항상 적자 상태인 사회보장 보험; 고등학교 졸업시험인 바칼로레아 시험 주제에서 라씬(Racine)과 코르네이유(Corneille)를 대체한, 보다 근대적인 몽테스키외(Montesquieu), 볼테르(Voltaire), 보들레르(Baudlaire); 기존의 연금제도를 수호하기 위해 시위하는 봉급생활자들; 본교와 같은 수준의 입학생 수용 능력을 가진 분교를 개설한 빈곤층 출신 학생들 대상의 입학할당제를 도입한, 전문 엘리트 양성을 위한 고등 교육기관(grande école); 폭발적인 성공을 거두고 있는 텔레비젼의 리얼리티쇼; 동성인들 간의 결혼과 인공수정을 통한 인간 생식. 이상에서 열거한 것들보다 더 잡다한 것을 찾을 필요는 없을 것이다. 이미 수 많은 철학자들과 사회학자, 정치학자, 정신분석학자들, 그리고 기자와 작가들이 그들의 저서나 기사, 방송 등을 통해 이러한 주제에 대해 답을 제시한 바 있다. 이들에 따르면, 이 모든 징후는 동일한 병적인 증세를 보여주는 것이며, 또한 이러한 현상은 하나의 원인에서 비롯된다고 지적하고 있다. 그것은 바로 민주주의라고 불리는 것인데, 다시 말해 것으로서, 근대적 대중사회 속의 개인들의 무제한적 욕구가 지배하는 그런 사회 체제이다.
우리는 이러한 비난과 고발이 갖고 있는 성격의 특수성을 잘 파악해야만 한다. 민주주의에 대한 증오는 분명히 새로운 것은 아니다. 이 증오는 단 하나의 이유만으로도 민주주의의 역사만큼이나 오래된 것이다. 왜냐하면 민주주의라는 용어 자체가 바로 혐오의 대상이 되기 때문이다. 우선 민주주의라는 용어는 고대 그리스에서 발명되었는데, 당시 그것은 하나의 욕된 말이었다. 이 용어를 만들어 낸 자들은, 이름을 부여할 수 없는 민중의 정부하에서는 모든 질서가 파괴된다고 믿고 있었다. 이처럼 당시 민주주의라는 말은, 권력이 출신성분에 따라 의해 주어지거나 또는 능력에 의거해 부름 받은 자들에게 곧바로 돌아 간다고 생각했던 사람들에게는 혐오스러운 말이었던 것이다. 이러한 생각은 오늘날에도 신성에 의거한 법(la loi divine)을 인간사회의 유일한 정당성의 근거로 삼으려는 자들에게는 유효한 것이다. 민주주의에 대한 이 같은 강한 증오는 분명히 실재하고 있다. 그러나 본서가 다루고자 하는 것은 이 증오에 대해서가 아니다. 그 이유는 간단하데, 필자는 민주주의를 맹렬히 비난하는 자들의 생각과는 전혀 다른 입장을 가지고 있으며, 따라서 그들과 토론할 이유도 없기 때문이다.
역사적으로, 민주주의에 대한 증오의 이면에는 민주주의에 대한 비판이 존재하고 있다. 또한 이러한 비판은이 존재하였다고는 하지만, 그것은 민주주의에 대해 그 한계를 설정하는 차원에서 였다. 민주주의에 대한 비판은 크게 두 가지의 형태를 가지고 있다. 우선, 귀족과 학자출신 의원들의 것이 그것인데, 이 그들은 이미 기정 사실로 간주되었던 민주주의와 타협하고자 했다. 미합중국 헌법제정이 바로 이 작업의 대표적인 예인데, 그것은 힘(역학구도)의 구축작업이었으며 제도적 장치들의 균형화 작업이었다. 그리고 이 균형화는 민주주의적인 것으로부터 우리가 얻어 낼 수 있었던 최선의 것을 추출하기 위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미합중국 헌법에는 동일한 의미를 가지는 두 개의 선(善), 즉 엘리트들에 의해 수립되는 정부와 소유권에 대한 엄격한 보호라는 내용이 담겨 있다. 민주주의에 대한 이러한 타협적인 비판 작업의 성공은 아주 자연스럽게 이 입장에 반대하는 새로운 비판에 자양분을 제공하였다. 마르크스는 미국 헌법의 기초 속에서 소유권의 지배를 아주 쉽게 밝혀 내었다. 공화주의 입법자들은 이 사실을 숨길 수 없었다. 그리고 마르크스는 그때 까지만 해도 쇄진 되지 않았던 사상적 이념의 형태를 확립시키게 된다. 그것은 형식적인 민주주의의 법이나 제도들은 외형에 지나지 않으며, 이러한 법과 제도 하에서, 즉 이러한 도구들을 통해서 부르죠아 계급의 권력이 행사 된다는 사실이다. 결국 법과 제도라는 민주주의의 외형과의 투쟁이 실질적인 민주주의를 향하는 길이 되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실질 민주주의 하에서 자유와 평등은 더 이상 법이나 국가라는 제도 속에서 구현되는 것이 아니라, 물질적 생활 수준과 감각적인 경험 차원에서 실현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본서에서 분석하게 될 민주주의에 대한 새로운 증오는, 아무리 이 증오가 여러 비판 모델에서 빌려온 쟁점들과 결부되어 있다고 하더라도, 이들 모델 중 그 어느 것에도 속하지 않는다고 할 수 있다. 민주주의를 증오하는 비판자들은 모두 민주주의적인 나라, 또는 민주주의 국가로 알려진 나라에서 살고 있으며, 이들 중 어느 누구도 보다 더 현실적인 민주주의를 요구하지도 않고 있다. 이들 모두는 민주주의가 지나치다고만 말하고 있다. 그런데 아무도, 민중의 권력을 구현해 준다고 자처하는 국가 기관에는 불만을 토로하지 않고 있으며, 이러한 권력을 규제하기 위한 어떠한 조치도 제안하지 않고 있다. 몽테스키외, 메디슨, 토크빌 시대의 지식인들을 열광시켰던 제도적 장치들은 민주주의 비판자들의 관심 밖에 있다. 이들은 인민 권력에 기초한 제도를 못마땅하게 여기는 것이 아니라, 대중들과 그들의 품행에 불만을 품고 있는 것이다. 이 비판자들에게 민주주의는 부패한 통치체제가 아니라, 국가와 사회에 부정적인 문제를 야기하는 하나의 문명적 위기인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얼핏 보면 혼란된 상황은 일견 놀랍게 느껴질 수도 있다. 민주주의를 비판하는 사람들은 끊임없이 민주주의의 미국을 고발하고 있다. 그들은 미국에서 출발한 차이에 대한 존중, 소수의 권리, 독단적 행위 등의 모든 악덕이 프랑스의 전통인 공화주의에 기초한 보편주의를 서서히 무너뜨리면서 이곳에 도래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이러한 비판자들이 바로 미국이 무력을 사용하여 미국식 민주주의를 확산시키려고 했을 때 가장 먼저 갈채를 보냈던 사람들이다.
민주주의에 대한 이중적인 담론은 분명히 새로운 것은 아니다. 우리는 민주주의를 최악의 정치 체제라고 보는데에 익숙해져 있다. 그러나 민주주의에 대한 새로운 반감은 이 보다 더 복잡하고 혼란된 양상을 보이고 있다. 이 반감에 따르면, 모두가 평등하면서 동시에 차이가 존중되기를 바라는 민주주의적 시민사회의 영향으로 민주주의 정부가 부패를 방치할 경우, 이 정부는 나쁜 정부라고 지적하고 있다라는 것이다. 이와는 반대로 민주주의 정부가 시민사회의 무기력한 개인들에게, 문명간의 투쟁이라고 하는 문명의 가치를 방어해 주는 전투적 에너지를 고취할 경우, 이 정부는 좋은 정부라고 말한다. 따라서 민주주의에 대한 새로운 증오는 다음과 같은 하나의 간단한 명제로 요약될 수 있다. 즉 지구상에는 오직 하나만의 선한 민주주의가 존재하는데, 그것은 민주주의 문명이 만들어 낸 재앙을 통제할 수 있는 그런 민주주의인 것이다. 본서의 지면은 이 명제가 성립되는 이유에 대한 분석에 할애될 것이며, 또한 이 명제가 갖고 있는 문제점을 도출해 볼 것이다. 그것은 단지 현대 이데올로기의 한 형태를 묘사하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다. 현대 이데올로기는 현 세계의 상태에 대해서, 그리고 거기서 정치가 의미하는 것에 관해서도 우리에게 정보를 준다. 현대적 이데올로기는 우리가 민주주의라는 용어가 만들어 낸 추문을 긍정적으로 이해하는데 도움을 주며줄 것이며, 또한 민주주의가 지니고 있는 사상적 타당성을 다시 찾아 내는데 기여할 것이라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