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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n in Dark Times by Hannah Arendt (Paperback - Mar. 25, 19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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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한나아렌트 

  • 제2의 로자 룩셈부르크로도 불리는 한나 아렌트는 시몬느 베이유, 로자 룩셈부르크, 에디트 슈타인과 함께 4대 유태인 여류 철학자로 꼽힌다. 아렌트는 1906년 독일의 하노버에서 유태인으로 태어났다. 그녀는 유태인으로서의 자의식을 평생 강하게 간직하며 살았는데, 이러한 조건이 그의 삶이나 사상에 끼친 영향도 적지 않은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
  • 최근작 : <정치의 약속>,<전체주의의 기원 2>,<전체주의의 기원 1> ... 총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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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역자: 홍원표 
  • 최근작 : <정치 @ 영화>,<한나 아렌트 전기>,<논술 다이제스트 3> … 총 10종 (모두보기)
  • 소개 : 한국외국어대학교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고, 1992년 같은 대학교 대학원에서 '고전적 합리주의의 현대적 해석'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한국외국어대학교의 사회과학대 교수로 있다. 지은책으로는 <정치적 탈근대성과 정치공동체>, <정치의 대전환> 등이 있고, 옮긴책으로 <국가이론의 재조명>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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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두운 시대의 사람들







    목 차







    머리말




    제1장 어두운 시대의 인간성 : 레싱에 관한 고찰




    제2장 로자 룩셈부르크




    제3장 안젤로 쥬세페 론칼리




    제4장 칼 야스퍼스 : 찬사




    제5장 칼 야스퍼스 : 세계 국가의 시민?




    제6장 이자크 디네센




    제7장 헤르만 브로흐




    제8장 발터 벤야민




    제9장 베어톨트 브레히트




    제10장 발데마르 구리언




    제11장 랜달 자렐







    역자 후기




    해제 논문




    색인




    머리말







    지난 12년에 걸쳐 기회 있을 때마다 집필한 수필과 논문으로 구성된 이 책은 등장인물들이 어떻게 살았고 세계 속에서 어떻게 행동했으며 시대의 움직임에 어떻게 영향을 받았는가를 주로 언급하고 있다. 이 책에 소개된 사람들은 서로 닮은 면을 지니고 있지 않다. 따라서 그들이 자신들을 공동의 장에서 소개하는 것에 대해 발언하도록 기회를 가졌다면, 우리는 그들이 어떻게 항의했을 것인가를 충분히 상상할 수 있을 것이다. 그들의 재능이나 신념, 직업이나 환경은 서로 다르기 때문이다. 하나의 예외는 그들이 서로 상대방을 서로 모른다는 점이다. 그러나 그들은 모두 세대는 다르지만 같은 시대에 살았던 사람들이다. 물론 제1장에 소개한 연설문에서 레싱을 마치 같은 시대의 인물로 취급하였지만, 그는 예외이다. 따라서 그들은 생애 중에 시대를 함께 했을 뿐만 아니라 정치적 파국과 도덕적 절망, 예술과 과학의 경이적인 발전으로 점철된 20세기 전반의 세계를 서로 공유하였다. 이 시대는 그들 중 일부를 매장하였으며 다른 사람들의 생애와 저작에 영향을 미쳤지만, 그 시대에 영향을 거의 받지 않은 사람은 소수이고 그 시대에 제약을 받지 않았다고 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한 시대의 대표자들, ‘시대정신’의 대변자들, 역사의 해설자들을 고대하면서 바라보는 사람들은 여기에서 공허하게 찾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책 제목에 표기된 “어두운 시대,” 역사적 시대의 모습을 이 책 어디서나 볼 수 있다고 생각한다. 나는 이 문구를 브레히트의 유명한 시 「후손들에게」에서 빌려 왔다. 이 시는 무질서와 굶주림, 학살과 살육, 부정의에 대한 분노 그리고 “악만이 존재하고 분노가 존재하지 않을 때 나타나는 절망, 그렇지만 인간을 추악하게 하는 합리적인 증오, 소리를 소음으로 만드는 근거 있는 분노 등을 담고 있다. 이러한 것들은 모두 공적으로 발생하였을 때 분명히 현실적이었다. 여기에는 비밀이나 신비가 존재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것이 결코 모두에게 보이는 것도 아니었고 모두가 간과할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파국이 갑작스레 모든 사물과 사람을 덮쳤지만, 이전까지는 실체가 아니라 모든 공적인 대변자들의 매우 효과적인 빈말과 허튼 소리가 파국을 은폐하는 기능을 하였다. 이들은 여러 가지 다양하고 교묘한 수법으로 끊임없이 불유쾌한 사실을 해명하면서 정당화하였기 때문이다. 우리는 어두운 시대에 생활하고 활동했던 사람들, 그리고 그 시대에 대해서 생각할 때 ‘기존질서’(당시에는 ‘체제’로 표현함)가 초래하고 확장시켰던 이러한 기만을 고려해야 한다. 공적 영역은 좋든 나쁘든 행위와 말로 자신들이 누구이며 무엇을 할 수 있는가를 보여줄 수 있는 현상공간을 제공함으로써 인간사에 빛을 밝힐 수 있는 기능을 담당한다. 그런데 공적 영역이 “신뢰성 상실”과 “보이지 않는 통치”, 그리고 존재하는 것을 노출시키지 않고 은폐하는 언어, 오래된 진실을 보호한다는 명분으로 모든 진실을 무의미한 사소한 것으로 폄하하는 도덕적인 또는 다른 형태의 권고 때문에 그 빛을 잃게 될 때, 어두움은 찾아왔다.

    이러한 것은 결코 새로운 것이 아니다. 이러한 것은 사르트르가 이미 30년 전에 구토(La Nausee)』(나는 아직도 이것을 가장 훌륭한 작품으로 생각한다)라는 소설에서 나쁜 신념과 고지식한 정신(l'esprit de serieux)이란 관점으로 기술하고 있는 조건들이다.1) 이 세계에서 공적으로 인정을 받는 사람들은 모두 비속한 사람들 속에 속하며, 현존하는 모든 것은 당혹감을 확산시키고 구토를 야기하는 불투명하고 무의미한 현세주의 속에 있다. 이러한 것은 또한 40년 전 하이데거가 (전혀 다른 목적이긴 하지만)『존재와 시간』의 일부 단락에서 더할 나위 없이 정확하게 기술하고 있는 조건들과 똑같다. 그는 이 저서의 일부 단락에서 “그들(세인 ; das Man)”과 “잡담”, 일반적으로 자아의 프라이버시에 의해 숨겨지지도 보호받지도 않은 채 공적으로 나타나는 모든 것들을 언급하고 있다.2) 인간 존재에 대한 그의 기술에 따르면, 현실적인 또는 진정한 것은 모두 공적 영역에서 억누를 길 없이 터져 나오는 “빈말”의 압도적 힘에 의해 구타당하고, 이러한 빈말이 일상적 존재의 모든 국명을 지배하며 미래에 닥칠 모든 사물의 의미 또는 무의미를 예견하면서 거부하기도 한다. 하이데거에 따르면 이러한 평범한 일상의 세계가 지닌 “무한한 범용성”에서 벗어나는 길은 파르메니데스와 플라톤 이래 철학자들이 정치영역에 대치시켜 놓았던 고독 속으로 물러나는 길밖에 없다. 여기서 우리가 관심을 갖는 것은 하이데거의 분석철학적 타당성(나는 그것이 부정할 수 없는 것이라고 생각한다)도 아니고 그 배후에 있는 철학적 사고의 전통도 아니며, 다만 한 시대의 어떤 유의 근본적인 경험과 그 개념적 기술에 대한 것이다. 우리들의 문맥에서 볼 때 핵심은 이러하다. 즉, “공적인 것의 빛은 모든 것을 어둡게 한다.”3)라는 냉소적이고 왜곡된 것 같은 명제는 바로 문제의 핵심을 표현하였고 현존하는 조건들의 가장 명료한 내용을 압축적으로 담고 있다.

    내가 여기에서 넓은 의미로 언급하고 있는 “어두운 시대”는 실제로 소름끼칠 정도로 신기한 20세기의 극악무도한 행위 그 자체와 동일한 것은 아니다. 오히려 어두운 시대는 새로운 것도 아닐 뿐만 아니라 역사상 드문 것도 아니다. 다만 예나 지금이나 그만큼의 범죄와 재앙을 나눠 갖고 있지 않는 미국 역사에서는 알려져 있지 않을 뿐이다. 가장 어두운 시대에서도 인간은 무언가 밝은 빛을 기대할 권리를 지니는데, 그러한 밝은 빛은 이론이나 개념에서보다는 오히려 불확실하면서 깜박이는 약한 불빛에서 나올 수 있으며, 그 빛은 몇몇의 남녀들이 그들의 삶과 일 속에서 지상에 주어진 그들의 시간을 훨씬 넘어서 모든 환경을 떠나 불을 밝힌 것이다. 이러한 확신이 이 책에 그려진 프로필의 대체적 배경을 이루고 있다. 우리들처럼 어둠에 길들여져 있는 눈으로서는 그들의 불빛이 촛불인지 타오르는 태양인지를 알 수가 없다. 그러나 그러한 객관적 평가는 후손들에게 안전하게 남길 수 있지만 부차적으로 중한 문제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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