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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rx's Ecology: Materialism and Nature by John Bellamy Foster (Paperback - Mar 1, 2000)
 

역자)이범웅 : 서울대학교 대학원 국민윤리교육과에서 교육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서울대학교 및 인하대학교 강사를 거쳐, 현재 공주교육대학교 윤리교육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지은책에 <시스템 과학과 국가정책>이 있다. 
 

 


마르크스의 생태학

-유물론과 자연-






포스터(John Bellamy Foster) 저

이범웅 역
  

 

 


목차  

 

역자서문

머리말


서론

제1장 자연에 대한 유물론적 개념

유물론과 초기의 마르크스

에피쿠로스

에피쿠로스 그리고 과학과 이성의 혁명

마르크스와 에피쿠로스


제2장 실제로 지구적인 문제

포이에르바하

자연과 인간의 소외

조합과 정치경제학


제3장 성직자 자연주의자들

자연신학

자연신학과 정치경제학

『첫 번째 소론』

『두 번째 소론』

챌머스와 브리지워터 조약


제4장 유물사관의 개념

맬더스에 대한 비판과 사적 유물론의 기원

신(新)유물론

역사지질학과 역사지리학

진정한 사회주의자들의 비판

푸르동의 기계론적 프로메테우스주의

『공산당선언』의 입장


제5장 자연과 사회의 신진대사 작용

인구과잉과 인간 재생산의 조건들

앤더슨과 차별적인 생산력의 기원

리비히, 마르크스 그리고 제2의 농업혁명

리비히와 토양의 황폐화

신진대사적 균열에 대한 마르크스의 이론

지속성에 대한 마르크스의 분석

조합생산자들의 사회적 지향


제6장 우리의 해석을 위한 자연역사의 토대

종의 기원

다윈, 헉슬리 그리고 목적론의 실패

마르크스와 엥겔스 : 노동과 인간 진화

유물론자들의 맹세

인종학적 시대의 혁명 : 모르간과 마르크스

청년 다위주의자와 칼 마르크스


에필로그

변증법적 자연주의

엥겔스 이후 마르크스주의와 생태학

코드웰의 변증법

변증법적 생태학자

환경보존의 원리 

 

 



머리말


처음에 이 책의 제목은 『마르크스와 생태학』이었다. 생각이 바뀌면서 제목도 『마르크스의 생태학』으로 바뀌었다. 제목의 변화는 지난 수년에 걸쳐 내 생각의 극적인 변화를 반영한 것이었다. 극적인 변화는 수많은 개체들의 역할 변화였다.

마르크스는 종종 반생태학자로 자리 메김 되었다. 그러나 나는 마르크스의 저서에 너무 익숙해 있어서 그런 비판을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내가 아는 바에 따르면 마르크스는 그의 저서들의 여러 곳에서 심오한 생태학적 인식을 표명하였다. 그러나 내가 『위기의 지구 : 환경의 짧은 경제적 역사』(The Vulnerable Planet : A Short Economic History of the Environment, 1994)를 집필했을 무렵, 마르크스의 생태학적 통찰이 그의 사상에서 후순위였다고 나는 믿었다. 그의 생태학적 통찰이 우리의 현 생태학적 지식에 그렇게 새롭거나 중요한 기여를 별로 많이 하지 못했다고 나는 믿었다. 그리고 생태학의 발전을 위한 마르크스 아이디어의 중요성은 일반적으로 반역사적이고 맬더스주의적 관점을 지닌 생태학이 절박하게 필요로 했던 사적 유물론의 분석을 제시했다는 사실에 있었다고 나는 생각했다.

생태학을 마르크스 사상의 핵심으로 인식하는 방식으로 마르크스에 대한 해석을 가능하게 했던 것은 뉴욕에 살고 있는 이민자이자, 농부이자, 목수이자, 노동계급 철학자이자, 그 당시 내 강의의 수강생이기도 한 나의 친구 샤피로(Ira Shapiro)에 의해 날마다 제기했던 사실이며, 1980년대 이래 내가 확실히 깨달은 바이기도 하다. 마르크스의 해석에 대한 확신이 약해지려고 할 때마다, 사피로는 마르크스가 농경 문제와 토양분의 순환을 다루었던 문구를 가리키면서 나에게 말하곤 했다. 나는 그의 말을 주의 깊게 들으려했지만, 내가 들었던 내용의 충분한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사피로와 달리 나는 농사를 지어본 경험이 없으므로 그것을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동일한 기간 동안에 급진 운동가이자, 사회학자이자, 비상근 교수이자, 전문적 양봉가이기도 한 내 친구 헌트(Charles Hunt)는 내가 엥겔스의 『자연 변증법』(Dialectics of Nature)에 더욱 더 주목해야 한다고 내게 말했다. 왜냐하면 엥겔스의 『자연 변증법』의 과학성과 자연주의적 성격 때문이다. 나는 그 말을 잘 듣기는 했지만, 쉽게 동조하기 어려웠다. 『자연 변증법』은 처음부터 무용지물이 되지 않았던가?

생태학적 유물론에 대한 나의 생각은 내가 수년에 걸쳐 배웠던 마르크스주의 때문에 많은 혼란을 겪게 되었다. 나의 철학적 기반은 실증주의적 마르크스주의에 반기를 들었던 헤겔주의적 마르크스주의와 헤겔에 두었다. 실증주의적 마르크스주의에 대한 비판은 1920년대에 루카치(Lukacs), 코르쉬(Korsch), 그람시(Gramsci)의 저작물에서 나타나기 시작했으며, 프랑크푸르트학파와 뉴레프트 운동으로 계승되었다(이러한 세력은 1890년대부터 1930년대까지 유럽의 지적 흐름을 지배했던 실증주의에 대한 큰 반기를 들었다.). 여기서 강조할 점은 마르크스의 실천 개념에 뿌리를 둔 마르크스의 실천적 유물론이다. 내 생각에 마르크스의 실천적 유물론은 미국에서 『월간 비평』(Monthly Review) 전통의 정치경제학과 영국에서 톰슨(E. P. Thompson)과 윌리엄스(Raymond Williams)의 역사문화이론과 결합된 것이었다. 그러나 자연과 자연 물리과학의 문제에 대한 마르크스주의의 접근에서 그런 종합의 여지는 별로 많지 않다.

영국에서 톰슨과 윌리엄스, 미국에서 『월간 비평』과 연관을 맺고 있는 스웨지(Sweezy), 베란(Baran), 매그도프(Magdoff), 브레이버만(Braverman) 등과 같은 사상가들이 모두 마르크스주의를 더욱 광범위한 자연-물리 영역으로 연결의 중요성을 주장했던 것은 사실이다. 각자 모두는 나름의 방법으로 생태학적 사고에 기여했다. 그러나 내가 깨달았던 루카치와 그람시의 이론적 유산은 본질적으로 실증주의에 전부를 양도한 자연에 대한 변증법적 사고방식의 적용 가능성을 부정했다. 그 당시에 나는 르원틴(Richard Lewontin), 레빈스(Richard Levins), 고울드(Stephen Jay Goluld)와 같은 그런 중요한 사상가들의 연구와 우리 시대에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는 현대 생명과학 내의 더욱 대안전인 변증법적 전통을 거의 알지 못하였다(마침내 이런 깨우침이 내게서 생겨났던 것은 오랫동안 일반적으로 마르크주의로 하여금 자연과 물리과학을 뒷받침할 수 있도록 연결시켜 주려는 『월간 비평』을 접한 후였다.). 나 역시 바스카(Roy Bhaskar)의 비판적 현실주의를 제대로 알지 못했다. 설상가상으로 대부분의 마르크스주의자들(이 역사의 일부가 보존되어 있는 생물과학의 문외한인들)처럼 나는 실제적인 유물론의 역사에 대한 지식을 갖고 있지 않았다. 내가 알고 있는 유물론은 헤겔의 관념에 의해 또는 헤겔에 대한 포이에르바하(Feuerbach)의 유물론적 비판에 의해 철학적으로 형성된 실천적 정치 경제학이 전부였다. 그러나 나는 철학과 과학 내에서 논의된 대규모의 유물론 역사에 대해서 무지했다. 이러한 측면에서 마르크스주의 전통 그 자체는 그것이 알려진 바와 같이, 상대적으로 별 도움을 주지 못했다. 왜냐하면 마르크스가 유물론자로 남아있지만 기계론적 유물론과 단절한 이유를 제대로 사람들이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마르크스의 세계관이 심오하고, 정말로 체계적으로 생태학적이고(그 용어가 오늘날 사용되어지는 긍정적인 의미에서), 이 생태학적 입장이 마르크스의 유물론으로부터 도출되었다는 결론을 내가 어떻게 내렸는지(물론 후속적인 논의에 대한 지적을 제외하고)의 단계를 설명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만약 나의 생각에 단순한 전환점이 있었다면, 내 친구이자, 급진적 변호사이자, 고전학자이자, 『월간 비평』의 동료인 매게(Jhon Mage)가 내 책과 논문에 잘못이 있음을 내게 지적했을 당시 출판했던 『위기의 지구』(The Vulnerable Planet)로 거슬러 올라간다. 나의 책과 논문은 임시방편으로 자본주의의 반생태학적 성향이 상당히 17세기의 과학 혁명, 특히 베이컨(Francis Bacon)의 작품에 그 기원을 두고 있다는 낭만주의적 생태관을 채택하였다. 매게는 마르크스와 베이컨 관계의 17세기에 생겨난 자연지배 사상의 역사적 의미에 대해 의문을 제기했다. 과학과 생태학의 전반적인 문제가 처음부터 재고되어야 한다고 나는 점점 깨닫게 되었다. 내가 관심을 갖게 된 문제 중에는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다. 왜 베이컨은 생태학 이론의 공공의 적으로 자리 메김 되었는가? 왜 다윈(Darwin)은 종종 19세기 생태학 논의에서(사회 다윈주의자와 맬더스주의자의 개념에 단순한 기여를 넘어서서) 무시되었나? 이런 모든 것과 마르크스의 관계는 무엇인가?

생태이론을 마르크스와 접목시키고, 마르크스를 생태이론에 접목시키려는 사회 생태학자의 시도가 당장 필요한 유기체적 종합을 결코 창출할 수 없음을 이 과정에서 나는 일찍이 결론 내렸다. 이러한 측면에서 나는 우리가 새로운 것과 낡은 것을 접목시키고 낡은 것에 새로운 것을 덧붙임으로써 과학적 지식의 진전을 일궈낸다는 것이 무망하다는 베이컨의 격언에 충격을 받았다. 만약 우리가 별 진전 없이, 부질없이 돼뇌이는 굴레에서 벗어나려면, 근본적으로 새로 시작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그러면 문제는 유물론의 근원으로 되돌아가는 것이다. 그 문제의 답은 처음부터 관계, 즉 변증법적으로 이론의 발생과 관련하여 재검토 해봄으로 찾아질 수 있는 것처럼 보인다.

아주 놀랍게도 내가 발견한 것은 여러 이질적인 단서들이 확고부동하게 단일의 원인으로 귀착되는 탐정소설과 같은 특성이었다. 이 경우에 베이컨과 마르크스의 유물론, 다윈의 유물론(덜 직접적이긴 하지만)은 공통적인 기원을 역추적해볼 수 있다. 즉 그 기원은 고대 에피쿠로스의 유물론 철학이다. 고대의 위대한 계몽가로서의 에피쿠로스의 관점-베이컨, 칸트, 헤겔 그리고 마르크스와 같은 독보적인 사상가들에 의해 공유된 에피쿠로스 저서의 관점-은 최초로 세계의 정의에 대한 변증법적 투쟁과 관련해서 유물론 발생의 일관적 모습을 나에게 제공해주었다.

연구와 밀접히 관련해서 나는 맬더스주의에 대해 비판을 가했던 독일의 농업 화학자인 리비히(Justus von Lievig)의 연구물에 대한 마르크스의 체계적인 조사가 인간과 자연 관계에서 마르크스의 신진 대사의 균열 개념, 즉 자연의 소외에 대한 마르크스의 성숙한 분석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사실을 나는 깨달았다. 그러나 이것을 충분히 이해하기 위하여 제 2의 농업혁명과 관련하여 19세기 중반에 생겨났었고, 오늘날까지 거슬러 내려오는 토양의 고갈에 대한 역사적 논의를 재개하는 것이 필요해졌다. 생태학적 논의에 마르크스는 가장 직접적인 기여를 했다(5장을 보라.). 나를 위해 유용한 로뎀스태드(Rothamsted) 자료실에 있는 리비히의 “도입부분”(Einleitung)에 대해 길버트(Lady Gilbert)가 번역을 하도록 해준 하트퍼드셔(Hertfordshire)의 그 자료실에 근무하는 엘소프(Liz Allsopp)와 그의 동료들에게 특별히 감사한다. 『이윤에 굶주린 자들』(Hungry for Profit)이라고 이름 붙여졌고, 지금은 책 형태로 확대된 『월간 비평』(Monthly Review)의 1998년 7-8월 호를 공동 편집한 것과 관련하여 매그도프(Fred Magdoff)와 버텔(Fred Buttel)의 긴밀한 협조에 나는 큰 도움을 받았다. 나는 『조직과 환경』(Organization & Environment) 저널의 나와 공동 편집자인 제메르(John Jermier)의 도움을 받았다. 이 연구의 일부는 『조직과 환경』저널의 1997년 9월호와 『미국의 사회학 저널』(American Journal of Sociology)의 1999년 9월호에 미완성의 형태로 게재되었다.

이 책이 밝히려 하는 복잡한 지성사를 감안하고, 고대 철학과 현대 철학처럼 외관상 그렇게 서로 분리된 점을 감안할 때, 나는 특수한 재능을 지닌 탐문자를 분명히 필요로 했다. 그 역할을 매게(John Mage)가 충실히 해주었다. 지식과 광범위한 역사적․이론적 이해에 대한 그의 고전적 접근은 논증과정에서 변호사의 전문성에 버금갔다. 매게의 탐색 질문을 이 책에 굳이 언급하지 않았다. 여기서 나는 그에게 많은 도움을 받았다. 그러나 이 책의 잘못된 부분은 전적으로 나의 책임이다.

버켓(Paul Burkett)의 권위 있는 저작인 『마르크스와 자연 : 적색과 녹색의 관점』(Marx and Nature : A Red and Green Perspective, 1999)은 이것이 쓰인 배경뿐만 아니라 여기서 제공된 분석의 필수적인 보충이기도 하다. 만약 내가 『마르크스 생태학』의 정치․경제적 측면을 충분히 부각시키는데 소홀했다면, 그것의 필요성이 없었거나 과다했기 때문이다. 버켓과의 수년간의 흥미 있는 대화는 후속적인 분석을 훨씬 날카롭게 해주었다.

『월간 비평』(Monthly Review)의 세 명의 편집장인 스위지(Paul Sweezy), 매그도프(Harry Magdoff), 우드(Ellen Meiksins Wood)에게 나는 많은 신세를 졌다. 그들은 나에게 많은 격려를 해주었으며, 솔선수범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스위지의 환경 분석에 대한 헌신은 이 방향으로 나를 나가도록 하는 중요한 요인이었다. 『월간 비평』(Monthly Review)의 편집장으로서 이 책에 처음부터 관여했던 팰프스(Christopher Phelps)는 여러 중요한 측면에서 나를 도왔다.

사랑과 우정은 진실로 창조적인 모든 활동의 핵심이다. 여기서 나는 나와 꿈을 함께 했던 탐킨(Laura Tamkin), 새울(Saul)과 포스터(Iea Foster)에게 감사를 전하고 싶다. 나는 또한 포스터(Bill Foster)와 맥채스니(McChesney)에게 감사의 말을 전하고 싶다. 새울과 이다(Ida), 그리고 그들의 자손들에게 나는 이 책을 받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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