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한 정부 수립과정 비교 : 1945-48


목차



서문


제1장 해방3년사 연구의 새로운 방향 이정식


제2장 남북한 헌법 제정과정 비교: 1947-1948 서희경


제3장 남북한 정당활동 비교: 1945-1948 심지연


제4장 남북한 군대의 창설과정 비교: 1945-1948 한용원


제5장 미국과 소련의 경제정책 비교: 1945-1948 이승현


제6장 미국과 소련의 철군과정 비교(1): 1945-1948 이지수


제7장 미소공위와 미소의 조선임시정부 수립대책 남광규


제8장 소련의 북한 정치세력에 대한 정책: 1945-194 이철순


제9장 소련의 한반도정책, 1945-1948: 양궤(兩軌)전략 백학순


제10장 미국의 대한반도 정책 평가: 1945-1948 신복룡

저자소개: 

이정식

미국 캘리포니아대학 로스엔젤레스(UCLA) 졸업

미국 캘리포니아대학 버클리(UC Berkely) 정치학박사

현재 경희대학교 평화복지대학원 석좌교수, 미국 펜실베니아대학교(U. of Pennsylvania) 명예교수 

저서 : 『몽양 여운형』, 『대한민국의 기원』, 『이승만의 구한말 개혁운동』, 『구한말의 개혁 독립투사 서재필』, Japan and Korea : The Political Dimension, Communism in Korea(공저), The Politics of Korean Nationalism 외 다수.  


심지연

서울대학교 정치학과 졸업

서강대학교 정치학박사

현재 국회입법조사처 처장

저서 : 『한국민주당연구』, 『인민당연구』, 『조선신민당연구』, 『이강국연구』, 『최창익연구』, 『한국정당정치사』 외 다수



한용원

육군사관학교 19기 이학사

서울대학교 사학과 졸업

서울대학교 정치학석사

고려대학교 정치학박사

현재 한국교원대학교 명예교수

저서 : 『창군』, 『통일정책ㆍ교육론』, 『남북한의 창군』, 『북한학』, 『한국의 군부정치』외 다수



이승현

연세대학교 정치외교학과 졸업

연세대학교 정치학박사

현재 국회 입법조사처 조사관
 


이지수

서울대학교 정치학과 졸업

모스크바대학교(МГУ) 정치학박사

현재 명지대학교 사회과학대학 북한학과 부교수

저서 : 『북방정책-기원, 전개, 영향』(공저), 『대한민국 건국의 재인식』(공저)

논문 : 「페레스트로이카와 북소/러 관계」, 「냉전 후 러시아정치에서 정보기관의 역할과 전망」, 「북핵문제에 대한 러시아의 입장과 정책 : 공식적 차원과 새로운 시각」외 다수
 


이철순

서울대학교 정치학과 졸업

서울대학교 정치학박사

현재 부산대학교 사회과학대학 정치외교학과 부교수

저서 : 『해방전후사의 재인식 2』(공저), 『대한민국건국의 재인식』(공저), 『1950년대 한국사의 재조명』(공저) 외 다수

논문 : 「한국전쟁 이전 미국의 한국의 가치에 대한 평가」, 「1950년대 후반 미국의 대한정책」, 「이승만의 단독정부론에 대한 일고찰」외 다수



백학순

서울대학교 사범대학 영어교육학과 졸업

서울대학교 대학원 정치학과 석사과정 수료

펜실베니아대학교(U. of Pennsylvania) 정치학박사

현재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

저서 : 『북한 권력의 역사』, 『북한의 국가전략』(공저), North Korea in Distress : Confronting Domestic and External Challenges (공저) 외 다수

논문 : 「역대 남한정부의 대북·통일정책 : 정체성과 이익의 정치」, 「북한에서의 '단일적 지도력'의 확립과 당·국가 건설」, 「북·미관계(1945-2007)」외 다수



신복룡

건국대학교 정치학과 졸업

건국대학교 정치학박사

현재 건국대학교 정치대학 정치외교학과 석좌교수

저서 : 『동학사상과 갑오농민혁명』, 『한말개화사상연구』, 『한국정치사』, 『전봉준평전』, 『한국정치사상사』, 『한국의 정치사상가』, 『한국분단사연구 : 1943-1953』, 『한국사 새로 보기』, 『이방인이 본 조선』, The Politics of Separation of the Korean Peninsula, 1943-1953


 


서문


1948년 남북한에 각각 독자적인 정부가 수립된 지 어언 60년 이상이 경과한 지금 남북의 현실은 그야말로 극명한 대조를 보이고 있다. 남한은 2010년인 올해에 G20 의장국으로서 선진국 문턱에 다다른 나라로 지칭되는 반면 북한은 폐쇄적인 독재국가로서 실패한 국가의 전형으로 묘사되고 있다. 최근에는 화폐개혁의 후유증으로 정권의 붕괴가 멀지 않았다는 전망까지 나오고 있다. 어디에서 이런 남북의 차이가 비롯된 것일까? 우리는 그 실마리를 풀기 위해 남북한 정부의 모태(母胎)가 형성된 1945년부터 1948년까지의 시기, 소위 해방 3년의 시기를 돌아보지 않을 수 없다.

이러한 문제의식을 가지고 해방3년의 시기를 다루는 이 책은 원래 2006년 한국정치학회가 기획한 “남북한 정부 수립과정 비교:1945-48”이라는 프로젝트의 결과물이다. 당시 학회는 다음과 같은 필요성 때문에 이 프로젝트를 수행하고자 했다.

첫째 통상 ‘해방3년사 연구’라고 불리는 이 시기의 연구는 많은 연구 성과가 축적되었지만 탈냉전 이전 시기의 연구는 수정주의적 시각이 주류를 이루어 다소 편향된 측면이 있었다는 점이다. 학회는 탈냉전 이후 등장한 새로운 시각의 연구 성과를 적극 반영하여 연구의 균형을 잡을 필요성을 느끼고 있었다. 둘째, 그 동안의 연구는 남북한 정부 수립 과정을 분절적으로 연구해 왔을 뿐 비교의 관점이 결여되어 있었다는 점이다. 남북한 단독정부 수립과정을 면밀하게 비교 분석함으로써 해방 3년사 연구의 논쟁점들이 새롭게 조명될 수 있을 것으로 보았다. 또한 비교의 과정에서 남북한이 상호 영향을 미친 점에도 주목할 필요성을 느꼈다. 셋째, 새로운 자료의 발굴로 새로운 해석이 가능하다고 보았다. 특히 탈냉전 이후 새롭게 공개된 구소련 시절의 비밀해제 자료들을 이용할 수 있게 되어 해방 3년사에 대한 새로운 해석이 가능하다고 판단하였다.

이 프로젝트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몇몇 필자들은 너무나도 이질적인 체제를 비교한다는 것 자체가 무리라는 의견을 제시하기도 하였으나 몇 차례의 사전 발표회를 통해 이 작업이 상당히 의미가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예컨대 이승만의 단독정부론을 남한 자체만을 놓고 다루는 것과 북한의 정권 수립과정과 비교해서 보는 것은 큰 차이를 보인다는 점이다. 또한 남북한 헌법제정 과정을 비교해 보면 남쪽이 북쪽보다 훨씬 민주적이고 자율적인 분위기하에서 헌법이 제정되었음을 알 수 있었다. 양쪽 정부의 수립과정을 비교해 보면서 여러 가지 차이점이 뚜렷하게 드러남을 알게 되었던 것이다.

먼저 이정식의 논문은 이 책의 집필진에게 일종의 문제의식을 던져준 매우 귀중한 논문이라고 할 수 있다. 이 논문은 해방3년사 연구의 ‘새로운 접근법’으로 미군정과 소군정을 비롯한 남북한 정치세력의 상호작용과 양자 간의 비교연구를 제시하고 있다. 이러한 비교연구는 남북 양쪽의 동일한 점 내지 유사한 점, 그리고 다른 점 등을 분석함으로써 개체들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그는 향후 남북간 비교연구의 주제로서 “이질문화 또는 신문화의 수용과정”, “이질적인 정치경제 체제 도입과정”, “관료체제와 관민관계”, “선거제도가 남북한 주민의 정치의식에 미친 영향”을 들고 있다. 한편 그는 해방3년사를 총체적으로 이해하려면 미ㆍ소군정 정책들의 상호연관성을 연구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지적하고 있다. 그 예로서 “소련군정의 남한 정치 관여”, “조만식 연구의 국제적 의의”, “북한의 토지개혁 등이 남한에 미친 영향”, “북한의 새 화폐 발행과 남북한 교역”, “5ㆍ10선거와 남북협상회의”를 들고 있다.

남한과 북한의 헌법 제정과정을 비교한 서희경의 논문은 남북한의 헌법이 각각 분리되어 제정되었지만 서로를 의식하고 경쟁하면서 탄생한 쌍생아적 성격을 지니고 있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남북한 헌법 제정과정을 비교할 때 가장 특징적인 점은 북한이 인민의 완전한 의사 구현을 위한 ‘절차’에 강조점을 두었지만 헌법 내용에 대한 ‘반대’는 거의 발견되지 않는 반면 남한은 그 절차가 국회내부에 제한되었지만 그 제정과정은 매우 논쟁적이었다는 것이다.

남북한의 정당활동을 비교한 심지연의 논문은 남한의 정당이 등록주의를 택한 미군의 정책 때문에 다양성을 가질 수 있었던 반면에 북한의 정당은 허가주의를 택한 소련군의 정책 때문에 획일성이라는 전혀 다른 모습을 갖게 되었다고 진단하고 있다. 이러한 차이점 때문에 우선 정당 수에 있어서 남한은 수 많은 정당이 결성될 수 있었던 반면 북한은 허가를 받아야 했기에 최종적으로는 세 개의 정당밖에 존립할 수 없었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 또한 정당의 의사표현에 있어서도 큰 차이가 있어서 남한의 정당이 모스크바 3상결정에 대해 자유롭게 찬반 의사를 표현할 수 있었지만 북한의 정당은 오로지 찬성만이 강요되었다는 것이다. 심교수는 결론적으로 해방정국의 이러한 정당활동의 차이로 남한이 개방적인, 열린 사회가 될 수 있었던 반면 북한은 최종적으로는 유일사상만이 지배하는 폐쇄적인, 닫힌 사회로 귀결되었다고 주장한다.

남북한 군대의 창설과정을 비교한 한용원의 논문은 미국과 소련의 대조적인 정책의 특성으로 인해 첫째 미국은 남한에 치안유지를 위한 경비대를 창설한 데 반해, 소련은 북한에 혁명 수출을 위한 정규군을 창설했으며, 둘째 미국은 남한에 내부의 전복활동에 대처할 수 있는 무장력을 육성한 데 반해, 소련은 북한에 혁명의 수출기지 강화를 위한 무장력을 육성하였으며 셋째 미국은 남한에 방어형 성격의 무장력을 건설하기 위한 지원을 한 데 반해 소련은 북한에 공격형 무장력을 건설하기 위한 지원에 진력하였다고 지적하고 있다. 그리하여 결과적으로 미국은 남한에 1775년 미국 독립전쟁 당시 미군수준에 불과한 경비대를 건설한 데 반해, 소련은 북한에 최신예 탱크사단 및 항공사단을 구비한 현대식 정규군을 건설하게 되었다고 한다.

해방3년 기간의 미국과 소련의 경제정책을 비교한 이승현의 논문은 미국과 소련이 모두 한반도에서 일제로부터 식민지경제를 물려받았으나 그 성격은 완벽한 자본주의 경제체제는 아니었지만 자본주의 시장경제에 좀 더 유사한 체제였다고 진단한다. 따라서 자본주의 체제를 지향한 미국은 현상유지적인 경제정책을 실시한 데 반하여 사회주의 체제를 지향한 소련은 현상타파적인 경제정책을 실시하였다고 결론내리고 있다. 소유제와 관련하여 미국은 개인소유제를 기본으로 하였으나 소련은 국유화를 기본으로 하는 정책을 펼쳤으며 경제운용과 관련해서도 미국은 현상유지에 무게를 둔 반면 소련은 인민경제계획을 수립하여 계획경제를 실시하는 수준에 이르렀다는 것이다.

1948년 소련의 철군과정을 살핀 이지수의 논문은 다음과 같은 점을 지적하고 있다. 첫째, 소련이 공표한 공식적인 철군 일정과 실제의 일정은 다르다는 것이다. 실제 철군은 1948년 10월 19일 훨씬 이전부터 시작되었으며 완료 또한 공식적인 날짜로 밝힌 12월 25일이 아니라 이미 11월말이라고 본다. 둘째, 위와 같은 혼동이 생기는 이유는 기록의 부정확성 때문이 아니라 실제로 진행되는 현실과 겉으로 공표되는 공식 발표가 불일치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소련의 이러한 이중성은 여러 측면에서 드러난다고 본다. 즉, 소련은 대내적으로는 북한 위성정권의 기반을 구축하면서 겉으로는 단일민주정부 수립을 위한 미국과의 대화를 추구하기도 하였고, 북한 정권의 내적 기반이 완성된 이후에는 대내적으로 전쟁에 대비한 군사적 기반을 구축하면서 겉으로는 단일정부 수립을 위한 대남대화, 남북지도자 연석회의를 주도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소련군 철수도 소련의 이러한 이중적인 행태의 맥락 속에서 이해될 수 있다는 것이다.

미소공위에서의 미국과 소련의 “조선임시정부” 수립대책을 살핀 남광규의 논문은 애초부터 미국과 소련은 서로 다른 구상으로 신탁통치에 임했다고 본다. 즉 미국은 미영중소 4대국 신탁통치가 소련을 견제할 수 있는 국제적 조건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신탁통치에 찬성한 반면, 소련은 좌파가 우세한 한반도의 정치지형상 장차 수립될 조선임시정부는 소련에 우호적인 정부가 될 것이기 때문에 신탁통치에 찬성했다는 것이다. 좌파가 우세할 것으로 예상하고 조선임시정부 안을 제시한 소련의 입장에서 볼 때 임시정부 수립을 위한 협의 대상이 되는 “민주적인 정당과 사회단체들”에 대한 해석은 매우 중요한 것이었다. 결국 이 문제 때문에 두 차례에 걸친 미소공위가 결렬되었다는 사실은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바이지만 이 논문은 이에 덧붙여 미소공위 협의 과정에서 국내 우파정치세력이 보인 비현실성을 지적하고 있다. 즉 이들에게는 국제세력과 협력하여 국가수립을 모색하는 ‘선 국제협력 후 민족협력’ 노선이 현실적으로 가능한 선택이었지만 그렇게 하지 못했다고 비판하고 있다.

해방 3년 시기 동안의 소련의 북한정치세력에 대한 정책을 살핀 이철순의 논문은 북한정권이 수립되는 과정에서 소련의 역할이나 영향력을 무시하고 김일성이 상당한 자율성을 누린 것으로 보는 수정주의적 시각을 비판하는 입장에 서 있다. 북한정권은 전통주의 시각에서 지적하는 순수한 연립단계와 사이비형 연립단계를 거쳐 공산당 단독정권 수립에 이르게 되었는데 이 과정에서 소련의 역할은 지대하였다는 것이다. 스탈린은 1945년 9월 초순 김일성이 입북하기 전에 이미 그를 낙점하였으며 1946년 7월에는 다시 그를 신임하여 박헌영과의 권력 투쟁에서 그가 우위를 점할 수 있게 해 주었다는 것이다. 또한 소련은 토착민족주의자인 조만식과 중국과 연계된 연안파를 제압하여 김일성이 안정적으로 정권을 잡을 수 있도록 도와주었으며 소련극동군 제1방면군 군사위원 스티코프 상장은 당시 북한정치의 실질적인 총연출자였다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북한 정권은 그 수립과정을 살펴 볼 때 완전한 ‘괴뢰정권’은 아니더라도 소련의 강력한 후견 하에 있었던 위성국가였으며 김일성의 소련에 대한 자율성은 거의 없었다는 것이다.

해방 3년 시기의 소련의 대한반도정책을 살핀 백학순의 논문은 소련의 정책이 기본적으로 양궤(兩軌)전략이었다고 본다. 즉 소련은 한편으로는, 자신의 점령지인 북한에서 조속히 그리고 배타적으로 친소정권을 세워 이를 공고히 해 나가면서, ‘동시에’ 다른 한편으로는 ‘모스크바외상회의 한반도 결정’이라는 국제적 합의의 틀에 의거하여 미소공위를 ‘진정성’을 갖고 운용하는 등 한반도 전역에서의 친소국가를 수립하고자 하였다는 것이다. 이러한 주장은 소련의 대한반도 정책은 해방직후 초기부터 자신의 점령지인 북한에서 친소 단독정부를 수립하려는 목표를 갖고 있었으며 따라서 소련이 한반도 분단을 초래했다거나, 이와는 달리 소련은 미소공위를 통해 한반도 전역에서 친소 단일정부를 수립하는 것이었는데 결과적으로 그러한 정책목표를 달성하지 못하고 북한만을 차지하여 친소정부로 만들었다는 기존 연구들의 주장과는 다른 것이다. 이 점에서 이 논문은 기존의 소련의 대한반도정책 연구에 논쟁을 제기하면서 연구의 활성화에 크게 기여할 것으로 보인다.

해방 3년 시기의 미국의 대한반도정책을 살핀 신복룡의 논문은 네 가지 측면에서 그 정책을 평가하고 있다. 첫째, 미국에게 한국은 일본의 종속변수였기 때문에 한국의 분단을 결정하는 과정에서 미국은 한반도를 대일정책의 희생양으로 고려한 측면이 있다는 것이다. 둘째, 한국은 동아시아에서 반공보루로서의 가치를 가지고 있었으며 한국의 공산화는 일본의 방위에 직접적인 위협이 될 뿐 아니라 태평양이라는 호수의 일각이 무너진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었다는 것이다. 셋째 한반도는 미국에게 민주주의 전시장으로서의 가치를 가지고 있었으나 남한 정치세력의 한계 때문에 미국은 민주주의의 우월성을 보여 줄 수 없었다는 것이다. 아울러 미국은 한국의 민주화보다는 반공화에 더 높은 가치를 부여하여 남한 정부의 권위주의화에 묵시적으로 기여했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군사적 측면에서 볼 때 미국의 대극동(한국) 정책의 기조는 ‘섬의 고리’에 기초한 해ㆍ공군 우선 전략이었으며 애치슨라인은 이를 대표적으로 표현한 것이라고 한다. 또한 이러한 원칙은 오늘날까지 변함없이 미국의 대한반도 정책의 기조를 이루고 있다는 것이다.

이 책에 수록되어 있는 논문들은 모두 같은 시각을 갖고 있는 것은 아니다. 전통주의적 시각에 가까운 논문부터 중립적 성향의 논문, 수정주의적 시각에 가까운 논문도 있다. 필자들 간의 시각이 달랐기 때문에 대 여섯 차례에 가까운 토론 과정에서 꽤 심각한 논쟁과 이견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자유로운 분위기 하에서 서로 허심탄회하게 토론할 수 있었던 것은 유익하고 귀중한 기회로 기억될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