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호출
김영하 지음 / 문학동네 / 1997년 9월
평점 :
절판
지친 일주일의 피로를 잊게 만들며 잠깐 허구의 세계로 빠지도록 허용하는 금요일 밤에 방송되는 MBC 베스트극장처럼 그의 소설은 소설스럽고 재미있다. 상징적인 뭔가를 넌지시 던지며 머리 굴리게 만드는 어려운 글들이 아니라 보여주는 대로 읽혀지는 대로 따라가기만 하면 그저 술술 읽히는 부담스럽지 않고 적당히 놀래키는.
초기 단편들이라 아직 다양한 형식이나 주제를 보여주기 어려웠는지 몇 개의 단편들은 서로 닮아있었는데 총이라던지 손, 십자드라이브, 발레 등 한가지에 유난히 집착하며 세상에 배반당하고 적응하지 못한 채 좌절해가는 캐릭터들을 주인공으로 내세워 몰입시키는 방식이라던지, 1인칭 시점에서 쓰여졌다던지 하는 것들이다. 하지만 모든 단편이 간결하고 재미있다. 외국 영화 어디선가 접한 것 같은 낯설지 않은 소재와 베스트 극장 한 편 감으로 부족함이 없을 정도의 스토리다.
책 표지 안에서는 김영하의 97년도 사진을 볼 수 있었다. 그 당시는 이게 패션코드였는지 기억은 안나는데 귀찌를 하고 나름대로 외모에 관심을 가진 듯한 젊은 남자. 인터넷에서 검색해보니 그는 현재 sbs에서 라디오를 진행하고 있다고 하고, 노란 머리로 염색한 현재의 사진도 검색된다.
음악과 영화, 조각, 게임, 광고 등 다양한 예술과 대중문화의 소재들을 의식하며 소설에 편입시킴으로써 글 만으로는 표현이 부족할 상황들에 멀티미디어적인 효과를 줄 줄 아는 그는 트렌드를 의식하고 문화와 예술을 즐기며 살아가는 젊은이처럼 보인다. 그래서 그가 만들어내는 이야기들은 지루하지 않고 친숙하고 재미있다. 참고로 맨 뒤에 있는 평론은 소설과 비교되게 읽을 수도 없이 현학적이고 지루해서 오히려 웃음이 터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