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에 나는 없었다 애거사 크리스티 스페셜 컬렉션 1
애거사 크리스티 지음, 공경희 옮김 / 포레 / 201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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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순간부터 어떤 책을 읽어도 더 이상 '새롭지'않다는 느낌이 들었다. 이 책의 주제는 새롭지 않다. 그런데도 새로웠다. 너무 뻔하지만, 동시에 신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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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해
임성순 지음 / 은행나무 / 201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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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읽는 내내 머리가 지끈거렸고, 읽고 나서도 마음이 무거웠다. 아니, 소설이 어려운 것은 아니다. 오히려 너무 알기 쉬워서 문제였지.

 소설의 배경은 일제 치하 말기, 전쟁에 동원된 포경선 유키마루라는 배 안이다. 이 안에는 수없는 사람들이 있다. 일본군들도 있고, 동원된 조선인들도 있고, 역시 강제로 동원된 필리핀인이나 대만인들도 있다. 그리고 같은 조선인이라도 일본군에게 아첨하는 자도 있고, 원했든 아니든 일본군에게 반기를 들게 되는 자도 있고, 일본군이라 하더라도 나름 공평하게 대하고자 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폭력으로 일단 군기부터 잡고자 하는 사람도 있다.

 폐쇄적인 사회가 극한의 상황에 맞닥뜨리게 되면 어떤 일이 일어나는가에 대해서는 이미 많은 작품이 나와있다. 그래서 우리는 그 상황에 대해 너무나 잘 안다. 너무 잘 알아서 그 안에서 이젠 어떤 가혹행위가 일어나더라도 우리는 혀를 쯧쯧거리며 '그런 상황이라 그랬을 거야'라고 한두마디 정도 보탤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 작품이 그리고 있는 것은 그런 주제와는 조금 다르다. 생존게임이라는 점에서는 역시 바다에서 표류하는 배 안의 일을 그린 샬럿 로건의 '라이프보트'와 비슷해 보일 수도 있으나, 막상 읽어보면 완전히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다는 것을 쉬이 알 수 있을 것이다.

 내가 보기에 이 소설은 극한 상황에서 어떻게 살아남을 것인가에 대한 내용이기보다는 오히려 폭력이 어떤 식으로 정당화되고, 또 대물림되는가를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렇게 한 사회 내에 내재된 폭력이 '폐쇄 집단'이 될 때, 그것이 어떻게 폭발하는 가 역시 잘 보여준다. 초반에 부당하게 징용되어, 아무렇지도 않은 이유만으로 무참히 폭행당하는 조선인들의 이야기를 읽을 때 분노하고 속상해했던 독자들이라면, 그 조선인들이 자신이 당한 폭력을 그대로 필리핀인들이나 대만인들에게 행할 때 적잖이 당황스러운 기분을 느낄 것이다. 

 

필리핀인들이 동요했다. 마누엘을 이렇게 만든 만덕을 가리키며 그들은 소리를 질렀다. 만덕은 당황했다. 그는 일본인에게 배운 대로 행동했을 뿐이었다. 만덕은 갑판장의 좋은 학생이었고, 그가 대만인이나, 필리핀인에게 했던 짓들은 갑판장의 행동과 크게 다를 바 없었다. (중략) 경험해본 적 없는 상황에 처한 만덕은 대치한 조선인들에게 우리가 저 새끼들에게 말리면 안 된다고, 고장난 축음기판처럼 같은 소리를 반복할 뿐이었다. -p.293

 

 참으로 안타까운 일인데, 부당하고 폭력적인 일을 당한 사람이 권력을 가진 위치에 서게 되었을 때, 사람은 왜 자신이 당한 일을 타인이 당하지 않게 하기 위한 일을 할 확률보다, 자신이 당했던 부당한 폭력을 '나도 당했어'라는 이유로 타인에게 가하는 경우가 많은 걸까? 작품을 다 읽고 작가의 말에 나와 있는, 이 소설의 동기가 되는 해양 사고에 관한 이야기를 읽다보면 마음이 더 무거워진다.(심지어 이 실제 사고는 어떤 극한 상황도 아니고, 이런 일제 치하 전쟁기 때도 아닌, 불과 3~5년 전에 일어난, 한국인 선원이 동남아시아 선원이나 조선족 선원을 어떻게 대했는지에 대한 내용이다.) 이런 이야기를 읽고 '인간은 원래 짐승이야. 인간은 원래 다 이기적이고, 폭력적이지.'라고 넘겨버리는 것은 오히려 간단하다. 내가 섬뜩하게 느껴지는 건, 우리나라가 이 책의 배경이 되는 유키마루와 다르면 얼마나 다르냐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최근 화제가 되고 있는 윤일병 사건을 위시한 군대 내의 각종 폭력사고도 그렇고, 회사 내 폭력과 왕따, 학교내 폭력이 이 배에서 일어난 사건과 본질은 닿아 있다는 생각이 자꾸만 들었다. 이런 폭력의 특징이 부당한 폭행을 당한 사람이 피해자의 위치에서 벗어나면 도리어 가해자가 되어 새로운 피해자를 만들어낸다는 것 아니겠는가. 환경이 점점 혹독해지고, 먹을 것이 점점 부족해질수록 선원들의 행동이 잔인해지는 걸 보면, 최근 먹고 살기 각박해지며 사회 내에서 각종 문제가 터지는 것이 생각난다. 에필로그에 해당하는 챕터 '먼 빛'을 제외하면, 이 소설의 거의 결말부라고 할 수 있는 챕터의 제목은 '무간지옥'이다. 이것이 우리 사회의 미래가 되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어디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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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해
임성순 지음 / 은행나무 / 201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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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력은 어떻게 대물림되고, 또 이렇게 폭력이 내재된 사회의 결말은 어떻게 되는가를 보여주는 소설. 전작 컨설턴트에 비해 많이 발전한 작가의 필력 또한 느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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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부 시리즈
- 1권 : 빙과 / 2권 : 바보의 엔드 크레디트 / 3권 : 쿠드랴프카의 차례
- 요네자와 호노부 (지은이) | 권영주 (옮긴이) | 엘릭시르 (출판)

 : 책을 사는 데에는 사람에 따라 많은 이유가 있겠지만, 나는 대개 충동적으로 책을 산다. 내가 요네자와 호노부의 고전부 시리즈 첫 권인 '빙과'를 사게 된 것도 단순히 '표지가 예뻐서'라는 이유였던 것이다. 뭐, 일상계 추리물이라는 점도 작용했겠지만 말이다. 표지 분위기가 마음에 들어서 한 번에 1-2권을 사서 읽었고, 사실 한동안 이 작가를 잊고 있었다. 역시 '표지가 예뻐서 꽂아놓은 모습을 보면 기분이 좋다'는 이유로 아주 마음에 드는 작품이 아니었음에도 늘 자리가 모자라는 내 책장에서 다른 책들에 밀리지 않고 살아남아 있기는 했지만서도 말이다.

 라이트노벨을 아예 안 읽어 본 것은 아니지만, 그리 즐기지도 않는 내게 이 책은 좀 미묘하게 다가왔다. 이 시리즈, 특히 1-2권은 뭔가 미묘하다. 아주 재미없는 것도 아니지만, 읽고 흥분해서 '이거 정말 대박인데!'를 외칠 만큼 재미있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물론, 일상계 추리물에서 이 정도 퀄리티를 뽑아내는 작품을 만난 적이 별로 없다. 이야기는 깔끔하게 떨어지고, 이 속에 등장하는 '사건'들은 정말 당장 동네 고등학교에서 벌어져도 이상하지 않을 만한 이야기라 나름 흥미진진하기도 하다. 하지만 바로 그래서 작품이 좀 밋밋하게 느껴진달까, 임팩트가 부족했달까. 그러니까 그거다. 재미있게 읽었고, 금방 팔지 않을 정도는 되었지만, 이렇게 후기를 남길 정도까지는 아닌 딱 그 정도였다고 '생각했'다. 때문에 3권인 '쿠드랴프카의 차례'가 나왔다는 것을 알고 보관함에 담아두긴 했으면서도 그렇게 금방은 사지 않았더랬다. 

 
 인연은 조금 이상한데가 다가오는 경우가 있다. 내가 이 시리즈의 3권을 사게 된 것은 순전히 우연 때문이었다. 일전에 문학동네 물류창고 이벤트에 갔을 때, 나는 문학동네의 대인배스러움을 잘못 예측해서 '담아올 목록'을 조금밖에 적어가지 않았고, 그래서 막판에는 단순히 상자를 채우기 위해 일단 눈에 보이는 책을 마구 집어넣었는데, 그 중에 같은 작가의 '개는 어디에'가 들어 있었다. 그리고 역시 담아 왔으니 별 생각없이 읽게 된 그 책의 결말부에서 주는 '느낌'이 상당히 ... 뭐라고 해야 하나 ... 껄쩍지근했다. 그래, 그거다. 그 '껄쩍지근함' 말이다. 그게 내가 이 작가의 작품에서 내내 느끼던 무언가였다. 그래서 샀다. 사서 읽었고, 나는 또 다시 그 감각을 느꼈다. 1권에서부터 느끼기는 했지만 무시했었던 그 느낌이 3권까지 오면 어느 새 켜져서 작품 속에 데굴거리며 굴러다닌다.

 (*이하 스포일러 있을 수 있음)

 고교 생활 하면 장밋빛. 장밋빛 하면 고교 생활. 이렇게 호응관계가 성립된다.
 그러나 그렇다고 모든 고등학생이 장밋빛을 희망한다는 뜻은 아니다.
 - 1권 <빙과> 중


 고전부 시리즈는 기본적으로 학원물이다. 그래서 사건은 참 소소하고 귀여운 것이 대부분이다. 같은 책이 늘 비슷한 시간에 대출되고 반납되는 이유라거나 문이 잠겨있는 교실의 비밀이라거나, 축제에서 벌어지는 소동의 이야기라거나 말이다. 바로 '그래서' 나도 모르게 이 책을 읽어가며 자연스럽게 밝고 예쁜 그런 분위기를 느끼게 된다. 서로에게 관심이 있지만 겉으로는 투닥거리는 사토시와 미야카도 귀엽고, '신경쓰여요!'라며 주인공을 괴롭히는 지탄다의 모습이 여자인 내 눈에는 좀 거슬리긴 하지만, 그 말에 끌려가는 호타로의 모습도 귀엽다. 피가 낭자한 살인 사건도 일어나지 않는다. 사기와 배신, 탐정과 그 숙적 사이의 치열한 두뇌 싸움이 벌어지는 것도 아니다. 그렇지만 여기 평범한 사람의 평범한 어두움이 있다. 그게 너무 평범해서 더 묵직하게 느껴지는 어두움이 말이다.

 1권 '빙과 사건'의 결론은 어떤가. 세키타니 쥰이 '산 채로 잡아먹히게 된'것은 평범한 사람들의 평범한 생각과 행동 때문이었다. 축제는 열고 싶지만, 학교는 무섭고, 대신 우우-- 몰려서 누군가를 희생양으로 만들어놓고, 정작 자기에게 불리하게 돌아가니까 슬금슬금 발을 빼는 그 평범한 비겁함이 쥰의 퇴학을 불러왔다. 어찌되었거나 축제는 열렸으니까, 라고 슬슬 발을 뺐고, 결국 쥰은 잊혀졌다. 3권의 결말 역시 씁쓸하다. 재능이 없는 사람의 '기대'에 깔려있는 자신에 대한 절망감은 우리가 늘 느끼는 것이라 지나칠 정도로 이해가 잘 되는 그것이었고, 사건 자체의 결말도 아프다. 결국 그렇게 열심히 전하려고 했던 메세지는 정작 당사자에게는 닿지도 않고 끝나게 되고 만다는 거 아닌가. 읽고 나서 '왜 청춘물의 결말이 이렇게 씁쓸한 거야!!'라는 소리가 절로 나오는 결말이었다. 그래, 이건 너무 '현실적'이다. 현실에서는 좋은 의도가 좋은 결말을 불러오지도 않고, 노력하는 자는 종종 재능 있는 자에게 쉽게 져 버리고, 아무리 진심을 담아 뭔가를 해도 그 진심 자체가 아무렇지도 않게 묻혀버리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재미있는 것은, 이 점이 이 시리즈를 '특별'하게 만들어준다는 것이다. 그리고 나는 이게 시리즈의 힘이라고도 생각한다. 처음에는 평범해보였던 인물과 설정들이 시리즈가 진행될수록 그 성격이 복잡해져가는 게 보인다. 주인공 뿐만 아니라 그 주변 인물들의 성격도 보다 입체적이 되어가고, 이후의 사건에 의해 이전의 사건의 의미를 다시 생각해 볼 수 있게 되는 건, 시리즈가 아니고서는 힘든 일이다.(당장 나만 해도 3권을 읽고서 1권을 재평가하게 되었으니 말이다.) 앞으로 당분간은 이들의 이야기를 지켜봐도 될 것 같다. 4권을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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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참자 재인 가가 형사 시리즈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김난주 옮김 / 재인 / 201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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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히 읽게 된 이 소설은 히가시노 게이고에 대한 편견을 한번에 무너뜨려준 책이다. 살인 사건의 수사가 이렇게나 인간적일 수 있다는 게 놀랍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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