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부 시리즈
- 1권 : 빙과 / 2권 : 바보의 엔드 크레디트 / 3권 : 쿠드랴프카의 차례
- 요네자와 호노부 (지은이) | 권영주 (옮긴이) | 엘릭시르 (출판)

 : 책을 사는 데에는 사람에 따라 많은 이유가 있겠지만, 나는 대개 충동적으로 책을 산다. 내가 요네자와 호노부의 고전부 시리즈 첫 권인 '빙과'를 사게 된 것도 단순히 '표지가 예뻐서'라는 이유였던 것이다. 뭐, 일상계 추리물이라는 점도 작용했겠지만 말이다. 표지 분위기가 마음에 들어서 한 번에 1-2권을 사서 읽었고, 사실 한동안 이 작가를 잊고 있었다. 역시 '표지가 예뻐서 꽂아놓은 모습을 보면 기분이 좋다'는 이유로 아주 마음에 드는 작품이 아니었음에도 늘 자리가 모자라는 내 책장에서 다른 책들에 밀리지 않고 살아남아 있기는 했지만서도 말이다.

 라이트노벨을 아예 안 읽어 본 것은 아니지만, 그리 즐기지도 않는 내게 이 책은 좀 미묘하게 다가왔다. 이 시리즈, 특히 1-2권은 뭔가 미묘하다. 아주 재미없는 것도 아니지만, 읽고 흥분해서 '이거 정말 대박인데!'를 외칠 만큼 재미있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물론, 일상계 추리물에서 이 정도 퀄리티를 뽑아내는 작품을 만난 적이 별로 없다. 이야기는 깔끔하게 떨어지고, 이 속에 등장하는 '사건'들은 정말 당장 동네 고등학교에서 벌어져도 이상하지 않을 만한 이야기라 나름 흥미진진하기도 하다. 하지만 바로 그래서 작품이 좀 밋밋하게 느껴진달까, 임팩트가 부족했달까. 그러니까 그거다. 재미있게 읽었고, 금방 팔지 않을 정도는 되었지만, 이렇게 후기를 남길 정도까지는 아닌 딱 그 정도였다고 '생각했'다. 때문에 3권인 '쿠드랴프카의 차례'가 나왔다는 것을 알고 보관함에 담아두긴 했으면서도 그렇게 금방은 사지 않았더랬다. 

 
 인연은 조금 이상한데가 다가오는 경우가 있다. 내가 이 시리즈의 3권을 사게 된 것은 순전히 우연 때문이었다. 일전에 문학동네 물류창고 이벤트에 갔을 때, 나는 문학동네의 대인배스러움을 잘못 예측해서 '담아올 목록'을 조금밖에 적어가지 않았고, 그래서 막판에는 단순히 상자를 채우기 위해 일단 눈에 보이는 책을 마구 집어넣었는데, 그 중에 같은 작가의 '개는 어디에'가 들어 있었다. 그리고 역시 담아 왔으니 별 생각없이 읽게 된 그 책의 결말부에서 주는 '느낌'이 상당히 ... 뭐라고 해야 하나 ... 껄쩍지근했다. 그래, 그거다. 그 '껄쩍지근함' 말이다. 그게 내가 이 작가의 작품에서 내내 느끼던 무언가였다. 그래서 샀다. 사서 읽었고, 나는 또 다시 그 감각을 느꼈다. 1권에서부터 느끼기는 했지만 무시했었던 그 느낌이 3권까지 오면 어느 새 켜져서 작품 속에 데굴거리며 굴러다닌다.

 (*이하 스포일러 있을 수 있음)

 고교 생활 하면 장밋빛. 장밋빛 하면 고교 생활. 이렇게 호응관계가 성립된다.
 그러나 그렇다고 모든 고등학생이 장밋빛을 희망한다는 뜻은 아니다.
 - 1권 <빙과> 중


 고전부 시리즈는 기본적으로 학원물이다. 그래서 사건은 참 소소하고 귀여운 것이 대부분이다. 같은 책이 늘 비슷한 시간에 대출되고 반납되는 이유라거나 문이 잠겨있는 교실의 비밀이라거나, 축제에서 벌어지는 소동의 이야기라거나 말이다. 바로 '그래서' 나도 모르게 이 책을 읽어가며 자연스럽게 밝고 예쁜 그런 분위기를 느끼게 된다. 서로에게 관심이 있지만 겉으로는 투닥거리는 사토시와 미야카도 귀엽고, '신경쓰여요!'라며 주인공을 괴롭히는 지탄다의 모습이 여자인 내 눈에는 좀 거슬리긴 하지만, 그 말에 끌려가는 호타로의 모습도 귀엽다. 피가 낭자한 살인 사건도 일어나지 않는다. 사기와 배신, 탐정과 그 숙적 사이의 치열한 두뇌 싸움이 벌어지는 것도 아니다. 그렇지만 여기 평범한 사람의 평범한 어두움이 있다. 그게 너무 평범해서 더 묵직하게 느껴지는 어두움이 말이다.

 1권 '빙과 사건'의 결론은 어떤가. 세키타니 쥰이 '산 채로 잡아먹히게 된'것은 평범한 사람들의 평범한 생각과 행동 때문이었다. 축제는 열고 싶지만, 학교는 무섭고, 대신 우우-- 몰려서 누군가를 희생양으로 만들어놓고, 정작 자기에게 불리하게 돌아가니까 슬금슬금 발을 빼는 그 평범한 비겁함이 쥰의 퇴학을 불러왔다. 어찌되었거나 축제는 열렸으니까, 라고 슬슬 발을 뺐고, 결국 쥰은 잊혀졌다. 3권의 결말 역시 씁쓸하다. 재능이 없는 사람의 '기대'에 깔려있는 자신에 대한 절망감은 우리가 늘 느끼는 것이라 지나칠 정도로 이해가 잘 되는 그것이었고, 사건 자체의 결말도 아프다. 결국 그렇게 열심히 전하려고 했던 메세지는 정작 당사자에게는 닿지도 않고 끝나게 되고 만다는 거 아닌가. 읽고 나서 '왜 청춘물의 결말이 이렇게 씁쓸한 거야!!'라는 소리가 절로 나오는 결말이었다. 그래, 이건 너무 '현실적'이다. 현실에서는 좋은 의도가 좋은 결말을 불러오지도 않고, 노력하는 자는 종종 재능 있는 자에게 쉽게 져 버리고, 아무리 진심을 담아 뭔가를 해도 그 진심 자체가 아무렇지도 않게 묻혀버리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재미있는 것은, 이 점이 이 시리즈를 '특별'하게 만들어준다는 것이다. 그리고 나는 이게 시리즈의 힘이라고도 생각한다. 처음에는 평범해보였던 인물과 설정들이 시리즈가 진행될수록 그 성격이 복잡해져가는 게 보인다. 주인공 뿐만 아니라 그 주변 인물들의 성격도 보다 입체적이 되어가고, 이후의 사건에 의해 이전의 사건의 의미를 다시 생각해 볼 수 있게 되는 건, 시리즈가 아니고서는 힘든 일이다.(당장 나만 해도 3권을 읽고서 1권을 재평가하게 되었으니 말이다.) 앞으로 당분간은 이들의 이야기를 지켜봐도 될 것 같다. 4권을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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