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란색은 따뜻하다 미메시스 그래픽노블
쥘리 마로 지음, 정혜용 옮김 / 미메시스 / 201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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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런 형태의 만화책 - 그러니까 '그래픽 노블'이라고 하는 형식말이다 - 은 영 익숙치가 않다. 지금까지 시도해서 겨우 끝까지 본 그래픽 노블은 '브이 포 벤데타'정도였는데, 그나마도 영화를 보고 난 이후에서야 제대로 읽을 수 있었다. 그런데 우연히 인터넷 서점을 통해 알게 된 이 책의 줄거리가 흥미로운데다가 평이 좋길래 이번에 구입해서 읽어보게 되었다. 

  칸 영화제 최고의 상인 '황금종려상'을 탄 영화 'Blue Is the Warmest Color'의 원작이라는 이 이야기는 주인공인 클레망틴의 죽음으로 시작된다. 클레망틴이 죽으며 유언에 따라 애인인 엠마가 클레망틴의 집에 하룻밤 머물며 클레망틴의 일기장을 받게 되며, 독자는 엠마와 함께 클레망틴의 청소년기와 그 이후의 삶에서 그녀에게 어떤 일이 있었고, 그녀가 어떤 감정을 느꼈는지를 차근차근 보게 된다. 클레망틴은 평범한 고등학생이다. 친구들과 어울리기 좋아하고, 시험을 준비하는, 그런 평범한 고등학생. 문제는 그녀가 동성애자라는 것이다. 

 처음에는 평범해 보였던 이 작품을 다시 한 번 차분히 읽어보면, 작가가 얼마나 섬세하게 이 짧은 이야기 속에 많은 메세지를 담아놨는지 자연스럽게 느끼게 된다. 그래픽 노블이라는 형식에 익숙해지기만 한다면, 이 책을 읽는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을 것이다. 내용이 난해한 것도 아니고, 이 그리 두꺼운 것도 아니다. 심지어는 꽤 평범한 내용이고, 뭔가 반전이 있는 것도 아니어서, 어쩌면 이 책을 나처럼 호의적인 리뷰나 평을 보고 접한 사람들에게 가장 큰 방해 요인은 호의적인 평 그 자체인지도 모르겠다. 각종 '막장 드라마'에 익숙해져있는 우리들에게 이런 평범한(?) 사랑 이야기와 주인공의 죽음으로 끝나는 결말은 사뭇 진부하게 느껴질 수도 있겠다는 생각마저 들 정도니 말이다. 하지만 그렇게 넘겨버리기에 이 이야기는 너무나 아까운 이야기며, 책을 두 번 읽고 난 지금은 바로 그 '평범함'이야말로 이 책이 전하고자 하는 이야기일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아무리 동성애가 요즘 익숙한 화제이고, 그 익숙함을 넘어 영화나 드라마, 예능 등 각종 매체에서 동성애 코드를 삽입하는 경우가 많아졌다지만, 아직도 여전히 동성애는 자극적인 소재인 게 맞다. 동성애자가 '존재하고', 그들도 우리(여기서는 대다수를 차지하는 이성애자가 되겠다)와 같은 사람이라는 걸 머리로는 받아들이지만 아직 한국은 동성애자들이 살아가기 힘든 사회라고 생각한다. 정말 사람들이 너와 내가 다르지 않은 존재라는 것을 인정한다면, 동성애자라는 것을 밝히는 게 왜 여전히 모험이 되며 왜 내 주변에서는 스스로 내가 동성애자라고 나서는 사람을 한 번도 만나보지 못했느냔 말이다. 

 그 분께 이렇게 말씀드리는 수 밖에 없겠네요. 
 제가 남자였더라도 클렘은 저와 사랑에 빠졌을 거라고요.

 .....그만 두자. 그런 식의 논리를 펴서 결론이 나는 법이 없지.

 책 소개도 그렇고, 이 책을 원작으로 하는 영화의 소개도 그렇고 이 작품을 '동성애 이야기가 아닌 보편적인 사랑 이야기'라고들 이야기하는데, 그렇게만 받아들인다면 이 작품을 반만 이해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 점이 이 작품의 훌륭한 점이기도 하다. 분명 작가는 이들의 사랑이 얼마나 평범한지를 보여준다. 그들이 만난 이후 서로의 생각에 안절부절 못해 하는 것도, 서로 오해도 하고 화해도 하는 모습이라거나 함께 이야기를 나눈 것만으로도 세상을 다 가진 것처럼 기뻐하는 모습은 평범한 (이성애자) 사람들의 사랑과 그리 다르지 않은 모습을 보인다. 그러나 그들의 사랑은 결코 '대다수의' 사랑일 수가 없다. 소수자의 사랑이기에 겪을 수 밖에 없는 공포와 두려움, 부정, 분노 등이 여전히 존재한다. 클렘(클레망틴)이 엠마와의 관계를 부모님께 들키고 난 이후 집에서 쫓겨나게 되는 것은 집안에서 반대하는 사랑을 하다가 쫓겨나는 것과 유사해 보일 수는 있지만, 근본적으로 다른 무언가가 있는 것이다. 이 점을 가장 극명하게 보여주는 점은 이후 엠마와 클렘의 갈등 부분이다.

 엠마에게 그녀의 성(性)은 타인에게로 향하는 공적 자산이다. 사회적, 정치적 자산.
 하지만 내게 그것은 이 세상에서 가장 사적인 것이다.
 엠마는 나의 이런 생각을 비겁함이라고 부르지만, 나는 그저 행복해지려고 애쓸 뿐이다.
 (중략)
 다른 모든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엠마는 자신이 동성애자라는 것을 결코 숨기지 않는다. 퍼레이드에 참가하고, 동성애 관련 사람들을 만나 예술 활동을 하고, 자신의 성을 하나의 ...뭐랄까...일종의 사회적 자아로 삼고 있는 인물이다. 그에 비해 클렘은 자신이 동성애자라는 것을 (나중에는) 부정하지 않지만, 그렇다고 그것을 타인 앞에서 거리낌없이 드러내지도 않는 인물이다. 둘 중 어떤 방식의 삶이 더 낫다는 그런 이야기는 이 책에 나오지 않는다. 다만 이런 방식도 있고 저런 방식의 삶도 있다는 것을 담담하게 드러낼 뿐이다. 이 둘의 이런 관계는 굉장히 흥미로운 부분인데, 이 부분을 어찌나 작품 내에 자연스럽게 녹여냈는지 감탄이 나온다. 리뷰를 쓰기 위해 검색을 해 보다가 작가 자신이 동성애자라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그다지 놀랍지 않았달까.

 이러니저러니 해도 읽어봐서 후회될 작품은 아니다. 그리고 이왕 이 책을 접하게 되었다면, 책꽂이에 꽂아두고, 언젠가 다시 눈길이 이 책 위에 머문다면, 다시 한 번 뽑아서 차분히 읽어보기를 권한다. 분명 처음 봤을 때는 보이지 않던 이야기를 들려줄테니까. 내게 이 책이 그렇게 해 줬듯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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