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통각하
배명훈 지음, 이강훈 그림 / 북하우스 / 201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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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5년간 참 많이도 참았다!" / "그간 끊임없이 영감을 준 '나의 뮤즈', 각하를 위한 연작소설' / "지난 5년간 쉴 새 없이 영감을 선샇나 총통각하, '그분'에게 이 책을 던진다!"
-- 책의 앞뒤에 써 있는 문구들이다. 이 문구들을 출판사 측에서 선전과 이슈를 위해 삽입한 것인지 배명훈 작가가 직접 선정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책을 다 읽고는 저 문구들은 반은 맞고, 반은 틀렸다고 생각했다. 이 책은 우리가 아는 그 가카(MB)'만'을 위한 책은 아니다. 정확히는 이 세상을 지배하고자 하는, 그래서 지금 우리 사회를 틀어쥐고 있는 사람들 전반을 위한 책이라고 생각했다.

이전에 김영하씨의 팟캐스트를 들을 때 정이현씨의 '삼풍백화점'을 언급하며, 이것이 소설이 하는 역할이라는 말을 했었다. 정확히 뭐라고 했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내가 기억하는 바에 따르면, 소설은 기사나 역사의 기록과는 다르게 삶을 재구성하여 그 의미를 오히려 명확히 느끼게 해 주는 역할을 한다. 소설가든 시인이든 예술가든, 이렇게 세상의 의미를 재조립하여, 오히려 둘러가는 듯 해 보이면서도 더없이 그 의미를 아프게 느끼게 해 주는 글을 읽을 때면, 나는 바로 이것이 동시대의 작가를 읽는 이유가 아닐까 생가하게 된다.

  고전은 시간을 초월한 단단한 보석같은 아름다움을 가지고 있다. 시간은 누구보다 냉혹한 심판자라 불과 1년 전에 세상을 떠들석하게 했던 사건이 지금은 기억되지 않는 경우는 아주 흔하다. 하물며 글임에야. 수십년, 수백년의 시간을 넘어 현재까지 사람들에게 읽히고 있는 고전을 보다 보면, 처음에는 비록 그 장벽이 높게 느껴질지라도 왜 고전이 고전인지 깊이 깨달을 수 있다. 취향에 상관없이 고전을 읽으면 왜 이것이 고전인지, 왜 이것이 현재까지 살아남았는지 절로 알 수 있는 것이다. 그에 비해 현대의 문학, 하루에도 수십권씩 쏟아져나오고 있는 책을 잡으면 그 중 대부분은 같은 이야기를 반복하거나 시간이 아까운 글인 경우가 (고전에 비해 상대적으로) 많다. 그러나 현대의 문학은 또한 고전이 절대 줄 수 없는 것을 우리에게 선사한다. 이를 비유해보자면, 고전이 이미 회사의 쓴맛 단맛을 볼대로 다 본 사람의 촌철살인같은 충고에 가깝고, 동시대의 문학은 비록 조금 서툴지라도 나와 비슷한 시기에 입사해서 누구보다 지금 내가 힘든 점을 공감하고 아파하는 동기와의 술자리 같다고나 할까. 때문에 종종 동시대의 작가를 읽는 것은 그 문장이 조금 서툴고 그 이야기의 진행이 조금 덜 매끄러울 지라도 보다 날카롭게 내 마음을 파고들곤 한다. 김영하의 '퀴즈쇼'에 나오는 위로가 100년 후의 후손들에게는 공감가지 않을지 몰라도 지금 현재 취업난과 암울한 미래에 좌절한 2-30대에게 위안을 주는 것처럼, 그리고 김애란의 '비행운'에 우리가 보다 아파하는 것처럼. 정이현의 '삼풍백화점'이 혹여 시간을 지나고 살아남아 우리의 아이들이 읽을지라도, 그 아이들은 그 사건을 뉴스에서 보고, 그 시간을 함께 살아낸 우리처럼 공감하지 못할 것처럼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비록 저 위에 이 소설이 가카만을 위한 소설은 아니라 했지만, 이 연작 소설의 첫 이야기인 '바이센테니얼 채슬러'가 5년 전, 선거 직후에 쓰여지기 시작했고, 이 소설집이 대선을 얼마 남겨두지 않은 지금 출판되었다는 것은 하나의 의미를 지닌다. 음식에도 순이 있듯, 책에도 순이 있다. 그리고 이 책의 순은 바로 지금이 아닐까. 괜한 염려겠지만, 이 책을 정치적인 색안경을 끼지 않고 찬찬히 보길 권하고 싶다. 정치적인 색만으로 이 책을 보기에는 이 책의 이야기들이 아깝기 때문이다. 특히 '새벽의 습격'이나 'Charge!', '혁명이 끝났다고?'는 우리에게 많은 생각할 거리를 던져주고 있다. 내가 이 책에서 가장 띵, 한 여운을 받았던 것은 '고양이와 소와 용의 나라로부터'라는 이야기이다. 엉뚱한 이야기들을 계속해서 늘어놓는 것 같은 앞 부분의 이야기가 결말에서 큰 의미를 가지고 다가오는 것을 봤을 때, 나는 이 작가의 앞으로를 더욱 기대해봐도 좋을 거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각 이야기에 대한 감상을 길게 풀어놓고 싶기도 하지만, 책의 이야기들이 직접 이야기할 수 있도록 나는 여기서 말을 줄여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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