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처가 꽃이 되는 순서 - 마음을 어루만져 주는 시 치유 에세이
전미정 지음 / 예담 / 2009년 9월
평점 :
품절



 '마음을 어루만져 주는 시 치유 에세이'라는 말에 순간 호기심이 입니다. 어떤 책일까요. '치유'라는 단어는 언제나 제 마음을 움직이는 단어입니다. 저 말이 붙은 책, 세미나, 강의를 볼 때마다 소용이 없을 거라 믿으면서도 그냥 지나치지 못함은 제가 그만큼 상처를 많이 받았다는 뜻일지도, 아직 '치유'받아야 할 상처도 많이 남아있다는 뜻일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렛츠리뷰를 통해 이 책의 존재를 알고난 이후, 저는 망설임없이 이 책을 신청했습니다. 운이 좋게 당첨되어 받아든 이 책에는 스물 여덞편의 시와 스물 여덞개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리고 스물 여덞개보다 많은 상처들과 그보다 조금 적은 꽃들이 놓여 있었습니다.

 저자는 분명 이런저런 상처를 안고 있는 사람일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상처를 받아본 사람만이 다른 사람을 진정으로 안아줄 수 있어요. 따스함을 좋아한다는 것은 그만큼 평소에 추위를 뼈저리게 느끼기 때문이겠지요. 정말 상처를 깊이 받아본 사람만이, 외로움이 어떤 건지 세포 하나하나까지 느껴본 사람만이 다른 사람의 외로움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아마 저자는 깊은 상처로 사람도 많이 잃어보고 수없이 가슴이 무너져 본 사람일 것입니다. 그렇지 않고서야 이렇게 사람의 마음을 날카롭게 파고들 수 있을 리가 없으니까요.

 여기 나와 있는 시들이 아주 어렵거나 생소한 시들은 아닙니다. 교과서에서 보던 시들도 있고, 한 번쯤 들어본 시들도 상당히 많습니다. 그런데 다가오는 의미는 너무나 다르군요. 시 몇 개가 넘어가기도 전에 벌써 마음이 하나 무너져내립니다. 책장을 넘기던 손이 뚝, 멈춰섭니다. 바르르 떨려오는 가슴을 애써 진정시키려 한숨도 쉬어보고 괜히 다른 책을 꺼내들고 조금 밝은 음악을 꺼내듭니다. 그리고 다시 페이지를 넘겨요. 역시 곧 멈춰서고 맙니다. 마음이 둘, 무너져내립니다. 다시 책을 접어두고 멀리, 하늘을 바라봅니다. 청소를 하기 시작합니다. 청소를 하면서 마음도 조금 치우고, 주섬주섬 무너진 마음을 엉성하게 쌓아올립니다. 다시 책장을 넘겨봅니다. 마음이 아플 걸 알지만 더 읽지 않고서는 버티기 힘들다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점점 차가워지는 마음을 어떻게든 감싸보려고 이불을 뒤집어쓰고 책장을 다시 엽니다. 시 몇 개가 채 넘어가기도 전에 이제는 엉엉, 어린애처럼 울기 시작합니다. 겨우 쌓아올린 마음이 와라락, 단번에 무너져내립니다. 어느 새 음악은 멈춰있고 엉엉, 제 울음 소리에 답해주는 것은 째깍째깍하는 시계소리 뿐입니다.
 

 이 책의 시들 중 소개하고 싶지 않은 시는 정말 단 한 편도, 단 한 편도 없습니다. 어쩌면 이런 시들만 모아놓은 걸까요. 시들은 시퍼런 멍자국처럼 가슴에 올올히 박혀옵니다. 하지만 기어코 제가 울음을 터뜨린 건 바로 저 시, 정호승씨의 <수선화에게>에 이르러서였습니다. 울지마라, 라고 다독이는 첫 문장을 보는 순간 그 전까지 담담하던 게 거짓말처럼 눈물, 아니 '울음'이 터져나오더군요. 꿋꿋하게 버티고 있으니까 괜찮다고 생각한 그 순간, 등을 다독이는 손길에 울음이 터져나오는 것처럼, 그렇게 울음이 터졌습니다. 나 실은 많이 외로웠던가봅니다. 견딜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많이 외로워서 외롭다고 외롭다고 말하고 싶었나봅니다. '공연히 오지 않을 전화를 기다리지 마라' ..... 당신도 많이 외로웠는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합니다.

 아주 가끔, 차라리 보이스 피싱 전화라도 울리길 간절하게 기다리게 되는 때가 있습니다. 거리에 나가 누구라도 붙들고 무슨 이야기라도 늘어놓고 싶을 때가 있습니다. 내 상처는 단풍처럼 붉게 자꾸 자꾸 밖으로 나오고, 그 허기에 난 자꾸자꾸 칼로 사과를 받아먹고 맙니다. 하지만 언젠가는 이 상처들도 꽃이 될 날이 오겠지요. 내 마음은 아직은 척박한 땅이지만, 그래도 이미 그 땅을 뚫고  여린 꽃들처럼, 언젠가 이곳에도 꽃이 하나, 둘 늘어나겠지요. 그래서 이 마음밭에 잠깐, 지나가던 누군가가 쉬어갈 수도 있겠지요. 그리하여 어쩌면 그 사람의 마음에도 꽃을 한 송이 옮겨 줄 수도 있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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